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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석의 나이테 ‘동위원소 비’
물질의 화학적 성질은 원자핵 안에 있는 양성자 수(원자번호)로 결정된다. 하지만 양성자 수가 같아도 중성자 수가 달라 화학적 성질만 똑같고 질량이 다른 원소도 있다. 예를 들면 원자번호가 16인 산소(O-16)와 화학적 성질은 똑같지만 중성자가 O-16보다 각각 하나와 둘씩 더 많은 O-17과 O-18도 있다. 이런 원소를 동위원소라고 한다.
동위원소들은 대부분 불안정하기 때문에 원자핵이 일정한 속도로 붕괴하며 안정한 원소로 변한다. 이때 알파선이나 감마선 같은 방사선을 방출하기 때문에 이런 동위원소를 특별히 방사성 동위원소라고 부른다.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연대측정팀 김정민 박사는 “방사성 동위원소의 남은 양과 생성된 원소의 양의 비(동위원소 비), 그리고 방사성 동위원소의 고유한 반감기(방사성 동위원소가 붕괴해 양이 절반이 될 때까지 걸리는 시간)를 알면 암석의 나이를 구할 수 있다”며 “방사성동위원소는 암석의 나이테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반감기가 1만 년인 방사성 동위원소 A가 있다고 하자. 어떤 암석에서 A가 25g, A가 붕괴하면서 생성된 B가 75g 나왔다면, 전체 100g에서 A가 차지하는 비율이 1/4이기 때문에 2번의 반감기를 거쳤다는 뜻이다. 즉 이 암석의 절대 연대는 2만 년으로 추정할 수 있다.
나이가 수억 년에 이르는 오래된 암석의 연대를 측정하는 데 가장 널리 쓰이는 방사성 동위원소는 반감기가 약 44억 7000만 년인 우라늄(U-238)이다. U-238은 알파선 같은 방사선을 방출하며 자연 붕괴해 원자번호 206인 납(Pb-206)으로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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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과학자들은 ‘열이온화 질량분석기’(TIMS, 이하 팀스)라는 장비로 우라늄과 납의 동위원소를 분석해 암석의 나이를 측정했다. 팀스는 광물이나 암석 시료 전체를 분말로 만들고 강산으로 녹인 뒤, 분리된 우라늄과 납을 팀스에 넣어 각각의 동위원소 비율을 측정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팀스로 암석의 절대 연대를 측정하는 데는 단점이 있다. 어렵게 찾아낸 희귀 암석 또는 광물을 가루로 빻고 강산으로 녹여야 하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시료를 훼손해야 한다. 게다가 퇴적암의 경우 나이가 다른 광물 입자가 섞여 있기 때문에 암석 시료 전체를 분말로 만들어 연대를 측정하는 팀스로는 정확한 나이를 측정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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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물을 훼손하지 않고 절대 연대를 정확하게 구하는 방법은 없을까. 김 박사는 “고분해능 이차이온 질량분석기 ‘슈림프’(SHRIMP, Sensitive High Resolution Ion Microprobe의 약자)가 답”이라고 말했다. 1980년대 초 호주국립대 과학자들이 개발한 슈림프는 광물 전체를 녹이는 팀스와 달리 광물의 일부만을 분석한다. 슈림프가 광물 일부분으로도 절대 연대를 구할 수 있는 비결은 산소이온 빔이다.
광물 입자에 산소이온 빔을 쏘면 우라늄과 납이 이온화돼 떨어져 나온다. 강력한 레이저 총을 쏴 ‘시간의 부스러기’를 얻는 셈이다. 질량분석기에서 이온들을 질량에 따라 분리한 뒤 측정한 동위원소 비와 반감기로 절대 연대를 측정하는 이후 과정은 팀스와 같다.
지난해 3월 서울대 조문섭 교수팀은 남한에서 가장 오래된 암석을 발견해 국내 발간 영문학술지 ‘지오사이언시스 저널’ 3월호에 발표했다. 조 교수팀은 암석에 섞여 있는 지르콘을 슈림프로 분석해 절대 연대가 25억 1000만 년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하지만 당시 국내에 슈림프가 없어 일본 히로시마대까지 가서 절대 연대를 측정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 국내에서도 슈림프로 방사성 동위원소 비를 측정할 수 있게 됐다. 지난해 12월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연대측정팀이 슈림프를 처음 도입한 것. 김 박사는 “슈림프는 전 세계에 15대밖에 없는 최신 연대 측정장비”라며 “앞으로 슈림프를 이용해 지각진화 과정 같이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은 사실에 대한 연구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슈림프를 사용해 암석의 연대 측정을 하려면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홈페이지(www.kbsi.re.kr)에서 기기사용 신청을 하면 된다.
암석은 45억 년에 이르는 지구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시간의 화석’이다.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연대측정팀은 암석 시료를 크게 훼손시키지 않고도 절대 연대를 정확하게 측정하는 고분해능 이차이온 질량분석기를 지난해 12월 국내 최초로 도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