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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물리학자의 시네마 픽] 삼체인의 나노섬유 무기를 만든다면

 

 
‘삼체’는 중국 작가 류츠신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미국 드라마다. 거대한 우주 질서 앞에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담았다.

 

편집자 주
물리학의 시선으로 보면 왜 같은 작품도 더 재밌게 느껴지는 걸까요? 빛을 연구하는 물리학자 김세정 교수가 올 하반기 여러분을 위한 특별한 큐레이션을 선보입니다. 많은 기대 바랍니다.

 

▲ NASA , JPL-Caltech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케플러 임무는 두 개의 항성을 가진 행성, 케플러-16b를 발견했다. 위는 케플러-16b를 묘사한 그림이다. 드라마 ‘삼체’에는 항성이 하나 더 추가된, 세 개인 행성이 등장한다.

 

오랜만에 볼만한 SF 드라마가 나왔다며 주위 사람들이 한동안 열광적으로 추천한 작품이 있다. 한국어 제목은 ‘삼체’, 영어 제목으로는 ‘3 Body Problem’이다. 이 영화는 대중뿐만 아니라 필자 주변 물리학자들도 많이 언급하는 드라마였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제목부터가 물리학에서 아직도 해를 못 구한 난제인 ‘삼체’이기 때문이다. 

 

세 개의 항성을 도는 행성이 있다면

 

 

드라마 ‘삼체’는 중국 작가 류츠신의 소설이 원작이다. 필자는 소설을 이미 읽은 적이 있어 정주행을 시작하기 전부터 기대가 컸다. 컴퓨터 공학자이기도 한 작가는 이 작품으로 SF 문학계의 권위 있는 상인 휴고상을 받았다. 소설과 드라마에선 어떤 외계 문명(삼체인)이 자신들의 새로운 정착지로 지구를 택하며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이 그려진다. 그들이 지구까지 오는 데 걸리는 시간은 매우 길고, 그 긴 시간 동안 인간 문명이 외계 문명을 앞지를 수 있기에, 삼체인들은 지구의 과학 발전을 막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지구를 공격한다.

 

삼체인의 지구 침략에는 필연적인 이유가 있다. 바로 삼체인이 살고 있는 행성이 3개의 항성 주위를 돌고 있기 때문이다. 즉, 삼체인은 삼체 문제에 직면한 외계 문명이다. 삼체 문제는 세 물체 간 중력이 어떻게 작용하고, 이 결과로 각각의 물체가 어떤 움직임을 보이는지 다루는 문제다.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물체의 움직임은 뉴턴의 운동 방정식만으로도 예측이 가능하다. 우리가 공을 포물선으로 던질 때 공의 초기 속도와 발사 각도만 알면, 이후 포물선 운동의 궤도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 이는 거대한 지구와 공, 두 물체의 중력 작용을 계산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체 문제(Two Body Problem)’에 해당한다. 

 

행성의 움직임은 어떨까? 쉽게 태양과 지구로 비교해서 생각해 보자. 태양계 내에는 지구 외에 다른 행성들도 있지만, 태양이 압도적인 질량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구와 태양의 관계만 고려하면 된다. 역시 이체 문제다. 결과적으로 지구를 포함한 태양계 내의 행성들은 안정적인 타원 궤도로 운동한다. 

 

신기한 점은 이체 문제에서 물체가 단 한 개만 늘어나도 행성의 움직임을 예측하기가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이는 1680년대, 아이작 뉴턴이 생존했던 시절부터 과학자들을 잠 못 들게 한 난제다. 뉴턴은 이체 문제를 통해 행성의 움직임을 수학적으로 완벽하게 증명했다. 하지만 삼체 문제에서는 해를 찾을 수가 없었다. 최근까지도 특수한 상황에서만 주기적인 운동을 할 수 있는 경우들이 보고됐을 뿐이다. 

 

때문에 세 개의 항성을 가진 삼체인의 행성에선 지구처럼 낮에는 해가 뜨고 밤에는 해가 지는 규칙성을 찾아볼 수 없다. 삼체인들은 그저 극한의 환경에서 수분을 탈수시켜 껍데기가 된 뒤, 환경이 다시 좋아지면 깨어나길 반복할 뿐이다. 그런 그들이 찾은 이상적인 정착지가 바로 지구다. 

 

▲ Perosello(W)
 

 

세 물체 간에 작용하는 중력과 그 궤도 운동을 예측하는 삼체 문제는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난제다. 이미지는 삼체가 만들어 낼 수 있는 대표적인 궤도 운동 사례 20가지다. 

 

나노섬유, 어떻게 만들까
▲에스티원
나노섬유는 전자방사 방식으로 만든다. 원료물질에 전기장을 걸면 표면에 한 종류의 전하가 유도된다. 같은 종류의 전하는 서로 멀어지려는 성질이 있다. 멀어지려는 힘이 표면장력을 넘어서면 나노섬유가 길게 뽑힌다.
▲Miskolc university
머리카락, 나노섬유, 꽃가루의 크기 비교. 나노섬유는 머리카락의 500분의 1 두께로 지름이 수십~수백 나노미터(나노미터1nm는 10억 분의 1m)에 불과하다.
 

 

 

삼체인이 지구를 공격하는 신기술, 나노섬유

 

 

삼체인이 지구에 도달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400년. 그동안 지구가 더 발전하지 못하도록 삼체인은 지구를 계속해서 위협한다. 이때 등장하는 기술 중 하나가 ‘나노섬유(nanofiber)’다. 드라마에서 나노섬유는 두께가 매우 얇아 사람의 눈에는 전혀 보이지 않고, 동시에 매우 강해 선체를 여러 조각으로 갈라버리는 다소 충격적인 무기로 등장한다. 그뿐만 아니라 선체 내부에 있던 사람들까지 잘라 몰살시켜 버린다. 삼체를 본 많은 지인이 이 장면이 정말 가능한 것이냐고 물어왔다. 간단히 답하자면 나노섬유는 이미 존재하고, 영화처럼 무기로 개발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크지 않다. 

 

먼저 소설 속 나노섬유 무기가 얼마나 얇은지 살펴보자. 원작 소설에서 나노섬유 무기가 등장할 때 보면 사람 머리카락 굵기의 100분의 1이라고 설명한다. 머리카락 굵기는 편차가 꽤 있는데, 일반적으로 50㎛(마이크로미터1㎛는 100만 분의 1m) 정도다. 즉 드라마 속 나노섬유 무기의 두께는 대략 0.5탆, 또는 500nm(나노미터1nm는 10억 분의 1m)로 추정할 수 있다. 

 

현실 세계에서 나노섬유는 이미 20세기에 개발됐다. 심지어 현재 기술로는 나노미터보다 작은 두께를 뜻하는 서브 나노미터 두께로도 제작 가능하다. 나노섬유는 의료, 필터 제작 등 다양한 분야에 쓰인다. 최근엔 광학 분야에도 활발히 이용되고 있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첨단메카트로닉스연구그룹의 김건우 연구원팀은 체온을 효과적으로 낮출 수 있는 나노섬유를 개발했다. doi: 10.1021/acsnano.1c04104 연구팀은 나노섬유가 외부에서 들어오는 태양 빛은 효율적으로 반사하고, 복사열은 잘 투과하는 광학적 성질을 이용했다. 나노섬유를 만들 때 폴리머에 다른 물질들을 섞을 수도 있는데, 빛을 내는 발광물질을 섞으면 LED 또는 레이저를 만들 수 있다. 나노섬유는 광섬유처럼 빛을 손실 없이 전달하는 광도파로도 쓰일 수 있다. 

 

나노섬유를 무기로 쓰기 어려운 결정적 이유

 

 

다시 삼체 이야기로 돌아와, 나노섬유가 무기로 쓰이기 위해선 물체를 자를 수 있을 정도의 강도가 보장돼야 한다. 앞선 응용 사례에서 살펴본 나노섬유들은 고분자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강도는 약한 편이다. 최근 나노섬유 강도를 높이기 위해 금속 또는 탄소로 만드는 연구들이 진행되곤 있지만, 강도를 높인다고 해도 드라마에서처럼 나노섬유로 물체를 자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바로 탄성 때문이다. 

 

▲ netflix
드라마에서 주인공 오거스티나 살라자르(왼쪽에서 두 번째)가 헬멧을 쓰면 수수께끼를 풀어 문명의 파괴를 막고 여자아이를 구해야 하는 게임이 시작된다. 살라자르는 헬멧을 그저 가상현실(VR) 게임 장비라 생각하지만, 헬멧의 정체는 삼체인이 인간에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고안한 도구였다.

 

거미줄은 단위 면적당 강도가 철의 다섯 배 수준이다. 그렇다고 해서 거미줄을 손으로 잡아당겼을 때 손이 베이지는 않는다. 거미줄의 탄성 때문이다. 대부분의 물질은 크기가 작아지거나 얇아지면 탄성이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나노미터 크기에서는 표면적이 부피에 비해 상대적으로 커지며 표면 에너지가 중요해진다. 

 

표면 에너지가 증가하면 물질의 원자 간 결합이 강화돼 더 높은 탄성을 갖게 된다. 예를 들어 비교적 두꺼운 실리콘 웨이퍼에 힘을 가하면 구부러지지 않고 깨져버리는데, 실리콘을 아주 얇은 막으로 만들면 구부릴 수 있게 된다. 따라서 현실에선 아무리 강한 나노섬유가 있다고 해도 선체를 자르려고 하면 그 전에 늘어나며 휘어질 것이다. 

 

탄성을 없애고 강철보다 강한 나노섬유를 길게, 단일 결정(single crystal)으로 만들면 드라마나 소설을 재현할 수 있을까. 여전히 열적인 문제가 남아있다. 물체를 자를 때 마찰력이 생기고, 마찰력은 열을 만든다. 열은 물질의 부피가 작은 나노섬유에는 치명적이어서 나노섬유가 녹거나 타기 쉽다. 

 

마지막으로 이런 물질이 개발된다고 해도 영화에서처럼 물체를 자르기 위해선 나노섬유를 잡고 있을 무언가가 필요하다. 가장 간단한 방법이 양쪽 두 기둥에 묶는 것인데, 역시 만만치 않다. 나노섬유에 힘이 가해지면 나노섬유에 묶인 기둥마저도 잘려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소설에서는 지속적으로 진동하는 기둥에 나노섬유를 묶어 그 접촉을 불규칙하게 만듦으로써 기둥이 절단되는 것을 방지하지만 현실에서는 가능하지 않다. 의료, 에너지 등 인류의 삶을 이롭게 하기 위해 연구하는 나노섬유가 과연 미래에는 무기로 사용될 날이 올까. SF의 상상력에 감탄할 따름이다.  

 

 

김세정
호주 멜버른대 전기 및 전자공학과 교수. 서강대 물리학과를 졸업했고 KAIST에서 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20년 호주 멜버린대에 임용돼 바쁘게 실험실을 꾸려나가고 있다. 세계 광학 단체 OPTICA의 앰배서더로 활동 중이고, 2022년에는 책 ‘대학원생 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2(공저)’를 출간했다. 학계에서 접하는 최신 과학을 한국의 미래 과학자들과 나누고자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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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김세정 (호주 멜버른대 전기 및 전자공학과 교수)
  • 에디터

    김미래
  • 디자인

    이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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