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인도 패러독스를 아시나요

정신건강 증진식품 개발 한창


프랑스에 ‘프렌치 패러독스’가 있다면 인도에는 ‘인도 패러독스’가 있다.

다른 서구나라들과 비슷하게 기름진 음식을 먹으면서도 심혈관 질환자의 비율이 낮은 프랑스의 현상을 일컫는 프렌치 패러독스. 그 이유는 프랑스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적포도주에 폴리페놀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도 패러독스는 무엇일까.

“인도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서도 치매에 걸릴 확률이 낮습니다. 전통 요리인 카레를 즐겨 먹기 때문이죠.”

국내 최대 카레제조업체인 오뚜기의 중앙연구소 정승현 수석연구원은 카레예찬론자다. 카레는 여러 가지 향신료가 조합된 요리에 대한 통칭이다. 우리가 익숙한 카레는 그 가운데 강황이 주된 재료로 쓰이는 인도식 카레다. 생강과(科) 식물인 강황의 뿌리를 말려 곱게 빻으면 샛노란 가루가 얻어지는데, 이 가루에서 독특한 맛과 향이 난다.

“집에서 요리할 때 물에 풀어서 쓰는 카레 가루는 다양한 향신료와 밀가루, 유지 등이 혼합돼 있는데, 강황이 4%쯤 들어 있어 그 양이 일본보다 3배 이상 많죠. 저희 카레가 인도 본토의 카레에 더 가깝습니다.”


뇌 속에서 아밀로이드 뭉침 막아

카레의 건강증진 효과의 일등공신이 바로 강황이다. 강황에는 커큐민이란 색소분자가 다량 들어 있는데, 카레의 노란색은 바로 커큐민 때문이다. 그런데 커큐민은 색을 낼 뿐 아니라 강력한 항산화, 항염증 작용을 한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게다가 커큐민은 뇌혈액 장벽을 통과하기 때문에 혈관을 타고 뇌까지 들어갈 수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의대 그레고리 콜 교수팀은 2005년 ‘생물화학저널(JBC)’에 발표한 논문에서 커큐민이 아밀로이드베타 단백질에 달라붙어 아밀로이드베타 단백질이 뭉치는 걸 방해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알츠하이머병은 아밀로이드베타 단백질이 뭉쳐 섬유를 형성하면서 뇌조직을 파괴해 일어난다.


이 결과는 커큐민 또는 카레를 지속적으로 섭취했을 때 나타나는 효과를 잘 설명한다. 즉 알츠하이머병이 잘 걸리는 유전자변형 생쥐에 소량의 커큐민을 꾸준히 먹일 경우 대조군에 비해 아밀로이드베타 단백질의 침착이 줄어들었다거나 싱가포르의 노인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카레를 먹는 빈도와 인지능력이 비례했다는 결과가 있다.

정 연구원은 “카레에는 강황뿐 아니라 카다몬, 후추, 계피 등 다양한 향신료가 들어가는데, 항산화력을 실험한 결과 강황만 썼을 때보다 향신료가 적절히 섞였을 때 더 높았다”며 “이런 결과를 고려해 카레의 구성성분 비율을 결정한다”고 말했다. UCLA 의대 페르난도 고메즈-피닐라 교수는 “실험동물에 쓴 농도보다 많이 섭취해도 커큐민은 독성이나 부작용이 거의 없다”며 “인도에 알츠하이머병 환자가 드문 이유는 커큐민을 다량 섭취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과일에 들어 있는 폴리페놀의 항산화력도 뇌의 건강에 도움이 된다. 폴리페놀을 섭취한 쥐는 해마의 가소성(새로운 시냅스를 만드는 능력)이 향상돼 학습과 기억 능력이 향상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하지만 이런 작용이 어떤 메커니즘으로 일어나는가는 아직 불분명하다.최근에는 포스파티딜세린이라는 물질이 치매예방 효과가 있다고 해서 주목받고 있다. 포스파티딜세린은 세포막을 이루는 인지질의 한 종류로 지방산과 아미노산(세린)으로 이뤄진 분자다. 2003년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청(FDA)은 “포스파티딜세린을 섭취하면 노인성 치매나 인지장애의 위험성을 줄일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그 뒤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콩에서 추출한 포스파티딜세린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우리나라 식약청도 포스파티딜세린을 ‘노인의 인지력 개선용 기능성 원료’로 승인했다.


커피의 카페인 vs. 녹차의 데아닌

각성 효과가 있는 대표적인 음료인 커피와 녹차. 그런데 이 둘은 미묘하게 서로 다르다. 커피를 마실 때 흥분감 속에 정신이 깨어나는 느낌이 든다면 녹차를 마시면 차분함을 유지하면서도 정신이 맑아진다는 느낌이다. 이런 차이는 정신을 각성시키는 성분이 다르기 때문이다. 커피는 카페인이 다량 들어 있는 반면(한 잔에 약 100mg), 녹차는 카페인 함량은 적은(약 30mg) 대신 커피에는 없는 데아닌이란 분자가 들어 있다(약 15mg).

데아닌은 단백질을 만들 때 구성요소로 쓰이는 20가지에 포함되지 않는 아미노산으로 녹차와 일부 버섯에만 들어 있다. 녹차의 고유한 감칠맛은 데아닌에서 온다. 카페인과 마찬가지로 데아닌도 뇌혈액 장벽을 쉽게 통과하기 때문에 뇌세포에 직접 작용한다. 그렇다면 카페인과 데아닌의 작용은 어떻게 다를까.

카페인은 아데노신이라는 생체물질과 구조가 비슷하다. 우리 몸이 피로를 느끼면 뇌는 아데노신을 분비한다. 아데노신이 뉴런의 아데노신 수용체에 붙으면 신경 활동이 떨어지며 졸린다. 그런데 카페인이 아데노신 수용체에 먼저 붙어 아데노신이 붙는 걸 방해하면 뉴런은 계속 민감한 상태로 있게 된다. 커피를 마시면 몸의 피로를 잠시 잊게 되는 이유다.


데아닌의 작용 메커니즘은 카페인처럼 명확히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뉴런의 신경전달물질 방출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 즉 감마아미노낙산(GABA)과 도파민의 수치를 올린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GABA는 신경흥분을 억제하고, 도파민은 쾌락에 관여해 부족하면 우울증, 지나치면 조울증을 보인다. 데아닌이 글루탐산의 과도한 흥분자극을 억제한다는 보고도 있다. 일본 나고야대 심리학과 키무라 켄타 교수팀은 스트레스 실험 전이나 중간에 데아닌을 섭취할 경우 스트레스에 따른 심박수 증가나 타액 면역글로불린A(s-IgA) 수치 증가를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연구자들은 이에 대해 데아닌이 교감신경계의 활성화를 억제한 결과라고 2007년 국제학술지 ‘생물심리학’에 발표했다.

한편 데아닌 자체는 인지능력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영국 노스움브리아대 심리학부 앤드류 숄레이 교수팀은 2008년 같은 저널에 카페인과 데아닌을 함께 섭취할 경우에만 각성도와 기억력이 더 나아졌다고 보고했다. 연구자들은 “데아닌이나 카페인 단독으로는 기억력에 영향을 주지 못하는데, 함께 쓰면 뚜렷이 향상됐다”며 “데아닌의 작용에 대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근 국내 한 업체는 녹차의 데아닌을 다량 함유한 음료를 출시했다. 아모레퍼시픽의 ‘머리가 맑아지는 물, 브레인플러스(Brain+)’란 제품으로, 한 포에 데아닌 50mg이 들어 있다. 아모레퍼시픽 유세진 연구원은 “브레인플러스 한 포를 물에 타 마시면 고급녹차 3~4잔에 들어 있는 데아닌을 섭취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식물에서 정신건강 증진물질 탐색한다

식용이나 약용으로 쓰이는 식물이나 해산물에서 정신건강에 도움을 주는 물질을 찾는 연구도 시작됐다. 한국식품연구원(이하 식품연) 한대석 박사는 식품연과 외부 기관의 연구자들을 모아 2009년부터 ‘정신건강 증진식품’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탤런트 최진실 씨 자살을 계기로 지난해 3월 서울에서 ‘정신건강 증진식품 국제심포지엄’을 열었는데, 지금까지 식품연에서 주관한 행사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몰렸습니다. 현대인들이 정신건강에 대해 느끼는 위기의식이 실감되더군요.”

설문을 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90%가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고 대답한다. 기계적으로 측정해 봐도 43%가 스트레스 상태로 나온다. 연구팀은 식물 400여 종을 조사해 이런 현상을 완화할 수 있는 물질을 발굴하고 있다. 한 박사는 “스트레스 완화뿐 아니라 수면 유도, 인지기능 향상, 식욕 같은 욕구 조절 등 정신건강의 여러 측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물질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한 박사는 “지금까지 식품과학 연구는 암, 비만, 당뇨병 등 신체질환을 중심으로 이뤄졌으나 최근 선진국은 정신건강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에 대한 연구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유럽의 식품분야 공동연구체인 ‘Food for Life(삶을 위한 식품)’는 정신건강 증진식품 연구를 식품·건강 분야의 3대 과제 가운데 하나로 선정했다. 사실 선진국에는 이미 제품화된 정신건강 증진식품이 꽤 나와 있다.

식품연 김동수 연구위원(전 식품연 원장)은 “지난해 미국에 시장조사를 나갔는데, 어딜 가나 정신건강 증진식품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미국의 한 회사가 만든 ‘포커스 스마트(focus smart)’란 제품은 ‘뇌를 위한 영양소’임을 강조하며 비타민, 미네랄, 오메가3 지방산, 인지질, 식물 추출물 등을 캡슐 형태로 함유한다.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성분들을 다 모아놓은 셈이다. 또 ‘트루네이처(TruNature)’란 제품은 은행잎추출물과 빙카라는 식물에 있는 빙카민을 변형한 빈포세틴이란 성분이 들어 있는데, 이 역시 정신을 맑게 하고 기억력을 향상시킨다는 개념이다.

김 위원은 “정신건강 증진식품 분야는 선진국에 비해 10년 이상 뒤져 있다”며 “새로운 개념과 기술을 개발하려면 식품과학자와 신경과학자, 임상전문가의 융합연구가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관련기사를 계속 보시려면?

식품으로 마음의 평화 찾는다
인도 패러독스를 아시나요

2010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강석기 기자

🎓️ 진로 추천

  • 식품학·식품공학
  • 생명과학·생명공학
  • 의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