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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인터뷰] 내핵 속에 핵이 하나 더? 교과서에 없는 지구 속 구조를 찾아서

[지구 속 구조, 열어서 자세히 살펴보자] 약 45억 년 전, 원시 태양 주위를 돌던 암석 덩어리가 뭉쳐 지구가 만들어졌다. 뜨거운 상태로 녹아있던 원시 지구에서 무거운 금속 원소는 깊은 중심으로 가라앉아 금속성 핵을 만들었고, 상대적으로 가벼운 규소 광물은 위로 떠 올라 지각과 맨틀을 이뤘다. 지구 내부 구조를 살피면 역으로 지구의 역사를 추적할 수 있는 이유다.

‘지각-맨틀-외핵-내핵.’

양파 껍질 까듯 지구의 지표에서 심부까지의 구조를 묘사한 그림을 누구나 한 번쯤은 본 적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 지구 내부 구조가 이렇게 단순하고 깔끔하게 생겼을까? 모든 과학이 그렇듯 우리가 상식처럼 여겼던 지식은 지금 이 순간에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지질학자들과 함께, 생소한 지구 속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이곳이 대전 지진 관측소입니다. 별 거 없죠?”

 

조창수 한국지질자원연구원(지질연) 지진연구센터장이 잠겨 있는 관측소 문을 열며 말했다. 5월 24일, 지질연 부지 내 대전 지진 관측소를 찾았다. 관측소는 야트막한 언덕 ‘속’에 있었다. 땅 속으로 향하는 문을 열고 들어가니 축축한 냉기가 먼저 느껴졌다. 관측소 안에는 외부 진동을 차단하기 위해 흰 상자를 씌운 지진파 관측 기계 5대가 놓여 있었다. ‘웅웅’ 기계소리를 제외하면 내부는 조용했다. 조 센터장은 “요즘 관측소는 무인으로 운영한다”며 “관측 기계로 얻은 지진파 정보가 실시간으로 지진연구센터의 상황실에 전송된다”고 설명했다.

 

조 센터장을 따라 들어간 상황실에는 전국의 60곳 넘는 지질연 상시 관측소에서 보내온 데이터와 중국, 일본, 러시아 등지의 지진 관측소 지진파 데이터가 모이고 있었다. 이 데이터를 취합해 분석하면 한반도 일대의 지진은 물론, 북한이 핵실험을 한 장소와 시간도 알 수 있다. 지진연구센터 상황실이 재난과 안보 상황에 대비한 국가중요시설로 취급받는 이유다. 그리고 하나 더, 지진파 데이터를 분석하면 지구 내부의 구조도 파악할 수 있다.

지진파 속력이 갑자기 달라지는 지점에 주목

 

지구 속을 직접 눈으로 보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지금까지 수직으로 가장 깊이 들어간 시추공은 옛소련 과학자들이 판 1만 2262m 깊이의 ‘콜라 초심층 시추공’이었다. 지구 평균 반지름이 약 6371km이니, 겨우 0.19% 정도를 파내려간 것이다.

 

지질학자들은 직접 볼 수 없는 지구 내부 구조를 알기 위해 여러 방법을 쓴다. 이중 가장 중요한 방법이 지진파를 관측하는 것이다. 지진, 화산 분화, 산사태 등이 일어나면 만들어지는 땅의 진동을 지진파라고 부른다. 연못에 돌을 던지면 물결이 일어나고 그 물결이 연못 가장자리로 퍼져나가는 것처럼, 지진으로 만들어진 지진파도 주변으로 퍼져나간다. 이때 지구 내부를 통과하는 지진파는 매질인 지구 내부 구조에 따라 속도가 바뀌고, 반사되거나 사라지기도 한다. 이를 통해서 지구 내부 구조를 추측할 수 있다.

 

물론 지진파 분석은 연못의 물결을 구경하는 일과는 비교할 수 없이 어렵다. 지진파가 지구 내부를 통과하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없으니 전 세계에 흩어진 지진 관측소의 데이터를 모아서 지진파가 어떻게 퍼졌을지 재구성해야하기 때문이다.

 

1909년, 현 크로아티아 출신의 지진학자 안드리야 모호로비치치는 지진파가 도달 예정 시간보다 더 빨리 도착하는 현상을 관측했다. 지구 내부로 전달되는 지진파에는 크게 종파인P파와 횡파인 S파가 있다. P파의 평균 속력은 초당 6~7km이고, S파는 3.5~4km다. 그런데 이 속도보다 지진파 신호가 더 빨리 도착한 것이다.

 

그는 지하 깊은 곳에 지진파가 더 빨리 전달되는, 알려지지 않은 구조가 있다고 추측했다. 그 구조를 통과한 지진파가 빠르게 도착했다는 것이다. 그 새로운 구조가 바로 맨틀이었다. 그리고 모호로비치치가 발견한 지진파의 속력이 변하는 지하 약 35km의 경계를 ‘모호로비치치 불연속면’, 줄여서 ‘모호면’이라 부르게 됐다.

 

이후 1914년에는 미국의 지진학자 베노 구텐베르크와 독일의 지진학자 요한 비헤르트가 지하 약 2889km에서 ‘구텐베르크 불연속면’을, 1936년에는 덴마크 지진학자 잉에 레만이 약 5154km 아래의 ‘레만 불연속면’을 발견했다. 이를 통해 맨틀 아래에도 외핵과 내핵이라는, 이제는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는 구조가 있음이 밝혀졌다. 그러나 불연속면은 이후에도 계속 발견됐다.

새로운 불연속면이 계속 밝혀지는 이유

 

“맨틀의 불연속면은 하나가 아닙니다. 모호면이 잘 알려져 있지만 깊이 410km에도, 깊이 660km에도 불연속면이 존재하죠.” 임호빈 지진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은 맨틀의 구조가 알려진 것보다 복잡하다고 설명했다.

 

맨틀은 지표에서 약 35~2900km 깊이에 펼쳐진 암석층이다. 지구 전체 부피의 84%를 차지할 정도로 거대하다. 맨틀이 마그마 상태의 액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실제 맨틀은 높은 온도와 압력으로 유동성을 가진 고체 상태다. 그리고 내부가 균질한 구조로 이뤄지지도 않았다.

 

예를 들어 깊이 100km까지의, 온도와 압력이 낮아 딱딱한 맨틀 최상부는 지각과 함께 ‘암석권’이라 부른다. 이보다 깊은 맨틀은 무르고 변형되기 쉽다. 깊이 410km와 660km 부근에서는 지진파의 전달 속도가 갑자기 증가하는 불연속면이 있는데, 지질학자들은 410km와 660km 불연속면 사이를 ‘전이대’라 부른다. 임 연구원은 “전이대를 이루는 두 불연속면 이외에 다른 깊이에도 불연속면이 존재한다는 연구가 계속 나오고 있다”며, “최근 연구 결과들은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불연속면이 나타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지구는 깊이 들어갈수록 온도, 압력, 밀도가 커진다. 위에 쌓여있는 암석들이 누르는 힘이 커지는 데다, 지구 내부의 방사성 원소가 방사성 붕괴를 일으키며 열을 방출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깊은 곳의 광물을 이루는 원자나 이온들은 서로 가까워지게 되고, 이런 고온고압 환경에서도 버틸 수 있는 더 안정한 구조로 화학적 변화를 일으킨다. 이렇게 광물의 종류가 변해 밀도 등의 성질이 달라지면 지진파의 속도가 갑작스레 변하게 된다.

 

그렇다면 많은 불연속면들이 왜 예전에는 발견되지 않았던 걸까? 기자의 질문에 조 센터장은 “이 불연속면들은 지각과 맨틀, 맨틀과 외핵 사이의 불연속면만큼 명확하지 않다. 또한 지진파가 깊이 들어갈수록 데이터를 해석하는 것도 어려워지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지진파가 지구 내부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반사되고 굴절되면서, 지진파 해석을 방해하는 잡음이 심해진다. 이 때문에 불연속면들은 방대한 지진파 데이터가 쌓인 최근 들어서야 속속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나아가 지진파 데이터가 쌓이고 해석 방법이 발전하면서, 맨틀보다 더 깊은 곳에서도 새로운 구조가 발견되고 있다. 최근엔 우리가 교과서를 통해 배운 것과는 사뭇 다른 구조가 호주 연구팀에 의해 발견됐다.

 

내핵 안에서 새로운 핵을 발견하다

 

“지난 10년간의 지진파를 관측한 결과 내핵 내부에 반지름이 650km인 또다른 구조가 있다는 증거를 발견했습니다. 이 구조를 ‘최심부 내핵(IMICinnermost inner core)’라고 부르죠.”

 

팜 탄숨 호주국립대 지구과학과 연구원은 지난 5월 18일 과학동아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최심부 내핵’이라는 생소한 용어를 소개했다. 팜 연구원은 같은 대학의 흐르보예 트칼치치 교수와 함께 지진파로 지구 내핵을 꾸준히 연구한 내핵 전문가다.

 

두 연구자는 2018년 11월 30일 미국 알래스카 주에서 일어난 규모 7.1의 지진을 포함해, 지난 10년 동안 발생한 규모 6 이상의 지진 200여 건을 분석했다. “알래스카 주에서 발생한 지진파는 지구 중심부를 통과해 대척점인 남대서양에 도착해 반사됩니다. 이렇게 반사된 지진파인 ‘반향파’는 최대 5번까지 반사되면서 지구 중심을 통과하는데, 저희는 이 반향파를 관측했습니다.”

 

반향파 관측 결과, 지구 중심에서 650km 떨어진 곳에서 지진파의 속도가 예상과 다르게 느려지는 현상이 발견됐다. 일반적으로 지진파는 내핵 내에서도 특히 지구 적도면 부근을 통과할 때 속도가 살짝 느려진다. 그런데 연구팀은 내핵 안쪽에서는 P파가 지구 적도면이 아니라 자전축에서 약떨어진 방향을 통과할 때 속도가 느려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곳에서 P파의 속도는 약 4% 느려졌다. doi: 10.1038/s41467-023-36074-2

 

방향에 따라 지진파 전달 속도가 달라졌다는 뜻은, 내핵 안에 기존에 알려지지 않은 이방성을 가진 구조가 있다는 뜻이다. 팜 연구원은 “왜 이방성이 나타나는 지는 아직 모른다”며, “내핵을 구성하는 철과 니켈의 금속 결정 구조가 다르기 때문 아닐까”라고 추측했다. 외핵은 액체 금속으로 이뤄진데 비해, 내핵은 고압 환경 탓에 고체 금속으로 이뤄져 있다. 최심부 내핵은 바깥 부분보다도 압력이 높아 내핵과 같은 고체 금속이지만 결정 구조가 다른 방식으로 배열돼 있으리라는 추측이다.

 

내핵은 약 한 세기 전에 발견됐다. 그런데 이제야 최심부 내핵이 발견된 이유가 궁금했다. 이에 대해 팜 연구원은 “내핵이 있는 지구 중심부를 통과하는 지진파 자료를 수집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지진파가 내핵 내부를 통과하려면, 우선 지구를 가로지를 정도로 강력한 규모의 지진이어야 하고, 또 진원의 지구 반대편에 지진파 관측소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구 표면의 70%는 바다로 덮여 있다. 팜 연구원은 “지진이 일어난 지역의 지구 반대편이 바다가 아닌 관측소가 있는 땅일 확률이 극히 낮다”며 “이번에 분석한 알래스카주의 지진파는 지구 반대편인 남극에 관측소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 최심부 내핵은 언제쯤 교과서에 등장할까. 팜 연구원은 “최심부 내핵이 존재한다는 이론은 이미 2002년에 나왔고, 뒷받침할 증거도 쌓이고 있어 현재 학계에서는 대체로 인정받는 분위기”라면서도, “초등학교 교과서에 언제쯤 실릴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고 웃었다.

 

“제 5살 아이가 학교에 가면 내핵 안에 층이 하나 더 있다고 말하는데,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대요. 아무래도 최신 연구가 보편적인 상식이 되려면 시간이 더 걸리겠죠.”

 

최신 연구가 모두의 상식이 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쉽게 가늠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연구자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교과서 너머의 알려지지 않은 지구 구조를 밝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23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대전=이창욱 기자
  • 일러스트

    정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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