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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똑같은 가상공간

미래 세계 플랫폼 ‘세컨드 라이프’

지난 4월 미국 버지니아공대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 나는 지금 희생자들의 추모비 앞에 서있다. 너무나 허망하게 가버린 그들이 안타까워 사진 앞에서 쉽게 발을 떼질 못한다. 화환과 촛불, 잔잔한 음악이 더욱 쓸쓸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내 옆의 다른 조문객도 그들의 사진을 찬찬히 살펴본다. 잠시 그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브라질 사람이다. 서툰 영어로 나누는 대화지만 우리는 둘 다 같은 기분에 젖어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 동안 다양한 장소에서 세계 각국의 사람들을 만났지만 이렇게 숙연한 기분이 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착잡한 마음에 오늘은 이만 끝내기로 한다. 친구들에게 작별 메시지를 보낸 뒤 로그아웃을 하고 노트북을 닫는다.

나는 현실에, 아바타는 가상현실에

최근 프랑스 대통령으로 취임한 니콜라 사르코지는 세컨드 라이프에 선거 캠프를 차리기도 했다.


얼마 전 필자는 인터넷에서 버지니아공대 총기 난사 사건 희생자들을 조문했다. 가상현실 공간에서 희생자 가족을 돕는 행사에 기부금을 내고, 외국인을 만나 대화를 나눴으며, 헤어질 때 껴안으며 서로를 위로했다. 버튼 하나로 몇 분 만에 새로운 친구를 사귄 셈이다.

이것은 SF 영화나 소설 속 한 장면이 아니다. 인터넷이 연결된 컴퓨터만 있으면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현재의 모습이다. 이런 상상과도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곳은 바로 ‘세컨드 라이프’(Secondlife)다.

세컨드 라이프는 미국 린든랩에서 개발한 가상현실 서비스다. 게임과 비슷하게 자신의 분신인 아바타를 통해 가상현실 공간에서 전세계 사람들과 만날 수 있다. 모든 사용자가 한 공간에 머무르는 인터넷 서비스인 셈이다. 조만간 음성 채팅 서비스도 제공할 예정이다.

불과 6개월 전만 해도 세컨드 라이프에 거주하는 사람은 100만명 미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수가 600만명을 넘어섰고, 올해 말에는 2000만명 정도로 불어날 추세다. 가히 폭발적인 성장세라 할 수 있다.

이미 영국, 프랑스 등 유럽의 사용자 수가 미국 내 사용자 수를 넘어섰고, 일본에서는 연일 세컨드 라이프의 인기가 미디어에 보도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사용자들이 막 활동을 시작했다.

글로벌 기업들도 세컨드 라이프에 대거 진출했다. IBM, 아디다스, BBC, 로이터, 소니를 비롯해 최근에는 도미노피자, 캘빈 클라인, 코라콜라 등 여러 분야의 기업들이 세컨드 라이프에 둥지를 틀었다.

영화와 드라마가 개봉되고, U2와 같은 세계적인 밴드가 콘서트를 여는 등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들이 세컨드 라이프에서도 똑같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인 힐러리 클린턴이 이곳에 대선 캠프를 차리고 선거 유세를 펼쳐 화제를 낳았다.

그 동안 가상현실을 표방한 서비스는 여럿 있었다. 국내에서는 세컨드 라이프보다 3년 앞선 2000년 3차원 채팅 프로그램에 건축 기술을 접목한 ‘다다월드’에 10만명 이상이 집을 짓고 살았다. 하지만 지금은 200명 정도만 남았다.

그렇다면 세컨드 라이프가 이토록 전세계적인 열풍을 불러일으키는 까닭은 뭘까.

1린든 달러는 얼마?

0102 세컨드 라이프의 가상 공간은 모두 사용자가 직접 만든 것이다. 멋진 경관(01)부터 현대적인 도시(02)까지 사용자들은 세컨드 라이프가 지원하는 그래픽 툴로 원하는 사물을 직접 제작할 수 있다.


우선 세컨드 라이프는 단순한 게임이 아닌 진정한 가상현실 서비스로 인정받고 있다. 여기에는 린든랩의 진일보한 철학과 독특한 시스템이 큰 역할을 한다. 린든랩은 아이템을 만들어 사용자에게 판매하는 일반적인 상업 행위를 하지 않는다.

가상공간에서 비즈니스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플랫폼인 토지를 제공하고 그에 대한 이용료만 받는다. 그 외 세컨드 라이프에서 일어나는 상거래에 대해서는 어떤 수수료도 받지 않는다.

이것이 다른 가상현실 서비스나 기존 게임과 차별되는 세컨드 라이프만의 가장 큰 특징이다.

웹 2.0 시대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는 개방성이다. 린든랩은 오픈소스 정책을 통해 사용자가 필요한 응용프로그램을 직접 개발해 다양한 비즈니스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 토지를 구입하기만 하면 세컨드 라이프에서는 누구나 원하는 비즈니스를 할 수 있다. 소위 ‘오픈 그리드’(Open Grid) 정책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가상현실 공간을 채우고 있는 건물, 자동차, 가구, 의류는 모두 사용자들이 직접 만든 것이다. 세컨드 라이프가 지원하는 그래픽 툴로 원하는 사물을 직접 제작하고, LSL이라는 자체 프로그램 언어로 사물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사용자가 곧 개발자가 되는 구조다. 즉 세컨드 라이프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오픈 소스 프로젝트’인 셈이다.

이런 개방성이 세컨드 라이프 성장의 일등공신이다. 세컨드 라이프를 설립한 린든랩의 최고경영자인 필립 로즈데일은 미국 IT 주간지인 ‘인포메이션위크’ 5월 2일자 인터뷰에서 “세컨드 라이프는 사용자와 기업이 함께 건설해나가야 성공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런 특징 때문에 세컨드 라이프는 미국광고주연맹을 대상으로 2006년 미디어 업계 최고 이슈를 물은 설문조사에서 ‘유튜브’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세컨드 라이프가 차세대 손수제작물(UCC) 포털 서비스로 그 가치를 평가받은 셈이다.

동영상 UCC가 UCC의 대명사로 자리잡은 국내 시장에 반해 세컨드 라이프는 동영상은 물론 텍스트, 사운드, 제스처, 애니메이션 등 어떤 콘텐츠라도 사용자들 스스로 생산하고 가공하며 유통시킬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세컨드 라이프는 차세대 UCC 포털로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무엇보다 세컨드 라이프의 가장 큰 매력은 환전이 가능해 실제 통화 가치가 발생하는 경제 사회라는 점이다. 세컨드 라이프에서 통용되는 ‘린든 달러’는 미국 달러와 환전(5월 초 현재 1달러당 약 270린든 달러)이 가능하다. 현재 세컨드 라이프에서는 우리 돈으로 하루에 약 17억원의 거래량이 발생한다.

가장 성업 중인 분야는 쇼핑이며 부동산 업체들도 큰 수익을 내고 있다. 세컨드 라이프에서 부동산을 사고팔아 실제 백만장자가 된 안시 청(Anshe Chung)은 그녀의 아바타로 ‘비즈니스위크’ 표지를 장식하며 세계적인 유명인사가 됐다.

월드와이드웹의 3D 버전


세컨드 라이프에서 부동산 재벌이 된 안시 청의 아바타가 2006년 5월 1일자 ‘비즈니스위크’표지를 장식했다.


세컨드 라이프가 과연 우리의 미래 모습일까? 이와 유사한 형태가 아니더라도 머지않아 많은 콘텐츠들이 3D 기술과 접목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세컨드 라이프는 디지털 가상공간을 향한 가장 적극적인 실험의 장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래서 혹자는 세컨드 라이프를 ‘월드와이드웹(WWW)의 3D 버전’이라고 평가한다. IBM의 샘 팔미사노 회장은 “세상에 인터넷이 처음 소개됐을 때의 충격이 다시 올 것”이라며 세컨드 라이프를 차세대 3D 인터넷 서비스로 꼽았다.

세컨드 라이프 안에 담겨 있는 철학과 시스템, 그리고 기술력은 웹 2.0의 화두를 넘어 인터넷이 미래로 진일보하는 하나의 과정이다. 그런 과정이 진행되는 곳은 누구든 참여할 수 있고 협업을 통해 스스로 만들어나갈 수 있는 열린 공간에서 이뤄져야 한다. 세컨드 라이프가 미래의 플랫폼이 될지는 결국 사용자들의 손에 달렸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사라진 ‘웹 혁명’ 이후 ‘상호’와 ‘개방’이라는 키워드로 새로운 혁명을 일궈낸 세컨드 라이프. 이곳의 주민이 돼 사람들을 만나는 데 필요한 것은 컴퓨터 한 대와 몇 초의 시간이면 충분하다. 당신의 상상력 끝이 닿는 곳, 세컨드 라이프. 당신은 이곳에 몸을 던질 준비가 됐는가?

세컨드 라이프란?

미국 린든랩에서 개발한 가상현실 서비스. 한달에 700개 이상의 토지가 생겨나고, 100만 명 이상의 사용자가 가입한다. 린든 달러가 실제 달러로 환전되며 이와 관련한 다양한 비즈니스가 발생하고 있다. IBM과 같은 글로벌 기업이 대거 입주해 있다. 가까운 시일 내에 음성 채팅 서비스가 제공될 예정이며, 그래픽 부문에서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2007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박승훤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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