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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과학을 돕는 과학, 과학정책] 한국 R&D 예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2024년 한국 과학계에 빙하기가 찾아왔다. 연구개발(R&D) 예산이 14.7%나 삭감된 가운데, 김공룡 박사와 동료 과학자들은 허리띠를 졸라매며 연구비를 줄이고 있다. 연구비가 줄어 일자리를 잃거나, 연구 방향성이 크게 바뀐 연구자도 속출하는 상황. 그럼에도 김공룡 박사는 연구를 이어가야 한다. 

 

편집자 주
이번 호를 마지막으로 ‘과학을 돕는 과학, 과학정책’ 연재를 마칩니다.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우여곡절 끝에 고생대에서 삼엽충 연구를 시작한 김공룡 박사는 지금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살펴보려면 2023년 6월로 돌아가야 합니다. 6월 28일 윤석열 대통령은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정부 연구개발(R&D) 예산이 “나눠 먹기, 갈라먹기식”이라고 비판하며 “R&D 예산을 원점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R&D 국제협력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따라 2023년 12월 21일, 기획재정부는 2024년 연구개발(R&D) 예산을 26조 5000억 원으로 확정했습니다. 이는 2023년 예산보다 14.7% 삭감된 규모입니다. 한국에서 R&D 예산이 삭감된 건 1991년 이후로 처음 일어난 일입니다. R&D 예산 삭감 이야기가 처음 나왔을 때부터 과학기술계는 일제히 우려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전국과학기술노조, 기초과학 학회협의체, 공공과학기술연구노조, 심지어는 과학고와 영재고 학생들이 모인 ‘R&D 예산 삭감 대응을 위한 영재학교생 공동행동’ 등 다양한 단체에서 잇달아 성명을 발표하며 “삭감된 R&D 예산을 복원하라”고 비판했죠. 

 

R&D 예산 삭감이란 뜨거운 주제를 이해하기 위해선 R&D 예산, 그리고 과학정책 그 자체를 이해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과학동아는 올해 1월부터 ‘과학을 돕는 과학, 과학정책’ 코너를 연재했습니다. 1월호부터 3월호까지는 과학정책 전반과 한국 R&D 정책의 현황을 다뤘습니다. 4월호에서는 정부가 R&D 예산 삭감의 이유로 든 과학자들의 ‘카르텔’, 즉 연구 평가에 대해 다뤘습니다. 이어 5월호에서는 현 정부의 R&D 국제협력 예산 확대가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지 살펴봤습니다. 

 

그 사이 과학기술계에는 다양한 피해 사례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연구비가 삭감되면서 실제로 일선 연구 현장에선 인건비를 감축하기 위해 연구자의 수를 줄이거나, 진행하던 연구과제를 중단한 사례가 속출했습니다. 국제협력 연구에서도 예산 삭감으로 인해 기존에 계획하던 연구를 진행하지 못하게 되면서 국제적 신뢰 관계가 깨지는 등 피해가 있었습니다.

 

정부 총지출 대비 R&D 투자 규모
 
 
과학자들은 “R&D 예산 삭감이 정부 예산 변동에 따른 예측 가능한 선의 변동이었다면 이렇게 반발이 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최근 11년 정부 총지출 대비 R&D 투자 규모 비율을 그래프로 나타냈다. 4.9% 안팎을 유지하다 2024년 3.9%로 급락한 것을 볼 수 있다.

 

R&D 예산, 장기 예측이 가능하도록

 

 

현재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25년 정부 R&D 예산을 짜기 시작했습니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5월 8일 기자간담회에서 “내년도 R&D 예산을 대폭 확대해 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 내년에 다시 R&D 예산이 증액된다면 과학계에도 꽃이 필까요? 과학동아가 연재를 통해 만난 각계 전문가들을 다시 찾아 앞으로의 한국 과학정책이 가야 할 방향을 물었습니다.

 

홍성주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혁신시스템연구본부장은 “예산이 확 늘어날 경우, 연구 현장의 상황은 작년보다 분명 나아질 것으로 전망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단서가 붙습니다. 바로 신뢰도 회복입니다. 연구자들이 R&D 예산과 관련해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예측 가능성과 일관성입니다. 2024년 R&D 예산이 대폭 삭감되면서 신뢰 관계가 깨져버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연구자는 연구 계획을 세우고 연구비 경쟁에 공모 및 선정돼야 하며, 연구를 실행하고 그 성과를 평가받는, 연구비 지원 당국이 제시한 일련의 절차를 준수해야 합니다. 이 과정은 정부와 연구자 간에 연구의 목표부터 투입될 자원의 양까지 합의를 이루는 일종의 신뢰 프로세스입니다. 그렇기에 예산의 급격한 삭감은 연구의 신뢰 기반을 침해하는 위험 요인입니다. 정부는 예산의 증액과 함께, 연구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한 예측 가능한 예산 운용을 위한 노력을 병행해야 할 것입니다.” 

 

예측할 수 있는 예산 운용. 천승현 세종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이상적인 R&D 예산은 지속 가능한 연구가 가능하도록 꾸준히 늘어나는 것”이라며 독일의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독일의 경우, 전체 국가 예산의 일정 부분을 R&D 예산으로 지정 해두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2005년부터 2015년까지는 매년 전체 국가 예산의 5%가, 2015년부터 2030년까지는 전체 국가 예산의 3%가 R&D 예산으로 편성됐죠.

 

천 교수는 “정치적 상황이나 경제 상황 등 외부 조건에 구애받지 않고, 장기적인 예측이 가능하게 만드는 시스템이 중요하다”면서 “설혹 국가 예산이 감소해 R&D 예산이 덩달아 감소하더라도, 이에 따른 삭감은 훨씬 적은 반발을 불러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지난 4월 10일 이뤄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총선)에서 몇몇 후보자들은 국가 예산의 일정 부분을 R&D 예산으로 배정하는 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우기도 했습니다. 그중 황정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과학동아와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대통령 말 한마디에 국가의 미래를 책임지는 R&D 예산이 좌지우지되지 않도록 국가 총예산 대비 최소 5% 이상 R&D 예산에 투입되는 ‘국가예산목표제’를 1호 법안으로 법제화할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IBS
‘단군 이래 최대 기초과학 프로젝트’로 꼽히는 한국형 중이온 가속기 ‘라온’의 전경. R&D 예산이 삭감되면서 대형 연구 프로젝트도 진행에 차질이 생겼다. 라온의 경우, 2024년 가동 횟수가 기존 예상보다 대폭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과학은 계속돼야 하니까, 과학정책

 

 

6개월 동안의 연재를 통해 살펴본 과학정책은 무척 다양한 이해관계가 맞물리는 섬세한 분야였습니다. 정부는 예산을 쪼개 국가의 발전에 도움이 될 초석을 쌓아야 하고, 연구자는 자신들의 연구에 필요한 돈을 지원받아야 하니까요. 어려운 일이 맞습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많은 소통이 이뤄져야만 효과적인 과학정책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인상적인 점은 이번 R&D 예산 삭감 사태를 통해 연구자들 간에도 목소리를 더 잘 낼 조직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는 점입니다. 공공을 위한 과학기술인 포럼(FOSEP)은 3월 30일 ‘R&D 수난 시대, 연구자로 살아가기’ 토론회를 열었습니다. 이홍식 FOSEP 연구국장(한국생산기술연구원 수석연구원)은 과학동아와의 e메일 인터뷰를 통해 이 같은 후기를 전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점은 해결 방안에 대한 의견이었습니다. 이러한 사태가 재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연구자들의 목소리를 한곳에 모으고 권익을 지킬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하며, 현재 상황에 대해서도 집단소송 등의 방식으로 해결책을 찾자는 의견이 상당히 적극적으로 나왔었습니다. 장기적 관점에서 과학기술계의 목소리를 전할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1월호 ‘과학기술정책이란 무엇일까?’ 기사에서 한국 과학기술정책의 역사를 톺아봤던 것, 기억하시나요? 한국의 과학기술정책은 한국전쟁 이후 국가의 경제성장이라는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100년도 안되는 짧은 시간 안에 한국의 과학기술은 놀라운 성장을 이뤘습니다. 

 

이번 R&D 예산 삭감 사태를 통해 과학동아는 그간 한국의 과학기술정책을 되돌아봤습니다. 성장과 변화를 봤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았습니다. 국가 정책의 변화를 보며 큰 염려를 느끼는 동시에, 목소리를 내는 과학계 인사들을 통해 기대를 품을 수도 있었죠. 중요한 건 과학 연구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거라는 점입니다. 지금, 그 어느 때보다 과학기술정책에 대한 관심이 중요한 시점입니다. 

 

▲Shutterstock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집권 기간 내 R&D 예산 규모를 전체 국가 예산의 일정 비율로 고정해 지원하는 ‘하이테크 전략’을 시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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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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