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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과학고의 실상을 까발린(?) ‘과학고 생존일지’ 작가 인터뷰

‘어느 봄과 첫사랑’ ‘심심해서 과학고 일짱 도전해봄’. 클릭해보고 싶은 제목과 귀여운 그림체로 눈길을 끄는 웹툰 ‘과학고 생존일지’는 윤찐빵 작가가 본인이 겪었던 과학고 입시 과정과 재학 당시 에피소드들을 다룬 작품이다. 과학고, 과학기술원을 거쳐 대학원에 이르기까지 삭막한(?) 삶을 살아온 그가, 과학과 사람에 대한 애정 가득한 작품을 만들게 된 이유가 궁금해 4월 4일 벚꽃이 활짝 핀 KAIST 캠퍼스를 찾았다.

 

‘과학고 생존일지’에는 과학고에 입학한 주인공 찐빵이가 겪은 좌절과 성장, 갈등과 함께 기숙사에서 치킨을 몰래 시켜 먹으려고 애쓰는 과학고생의 단짠단짠 일상이 담겨있다. 찐빵이는 윤찐빵 작가(KAIST 산업디자인학과 석사 1년)의 또 다른 페르소나다. 찐빵이의 고군분투를 바라보며 한때 꿈을 가져봤던, 그리고 오늘도 꿈을 꾸는 이들은 그 시절, 혹은 현재의 자신을 비춰본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눈물을 흘리거나 미소 짓게 되는 게 이 웹툰의 마력이다. 

 

그 덕일까, 과학고 생존일지는 입시를 준비하는 청소년들과 이공계 출신들에게 특히 큰 사랑을 받으며 네이버 웹툰 베스트도전 인기 순위 종합 4위, 일상 장르 3위에 올랐다(4월 16일 기준). 윤찐빵 작가는 ‘과학고 생존일지’ 이외에도 일상툰과 광고툰 등의 다양한 콘텐츠를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며, 귀여운 캐릭터와 공감할 수 있는 일상 이야기로 10만이 넘는 팔로워들에게 관심을 받고 있다.

 
‘찐빵이’ 캐릭터를 좋아하는 독자들의 요청으로 2023년 4월 텀블벅 펀딩을 통해 제작, 판매한 찐빵이 인형이다.

 

과학고의 실상을 그려 다 까발리겠다(?)

 

“과학고를 다니며 팍팍하고 힘들 때마다 친구들에게 농담처럼 언젠가 과학고 생활의 실상을 만화로 그려서 세상 사람들에게 다 까발리겠다고 말하곤 했어요.”

 

웹툰을 그리게 된 계기를 묻자 윤찐빵 작가가 웃으며 말했다. 외부인이 상상하는 과학고 생활은 현실과 무척 다르다. 윤찐빵 작가는 “과학고에 입학하기만 하면 모두 좋은 대학에 가고, 어느 정도 안정이 보장된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면서 “하지만 실제 과학고 생활은 끊임없는 비교와 경쟁의 연속이었다”고 말했다. 때론 치열하고, 때론 유쾌하던 일상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 선택한 도구가 바로 만화였다. 윤찐빵 작가는 “중고등학교 시절 내내 만화부와 신문부 활동을 하며 만화에 대한 꿈을 갖고 있었다”고 했다. 

 

꿈을 실현하게 된 건 아이러니하게도 대학교 재학 시절 찾아온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때였다. 별다른 계획없이 휴학하고 집에서 뒹굴뒹굴하며 스마트폰만 보며 지내던 그를 보다 못한 어머니가 “제발 뭐라도 좀 해라, 뭐라고 안 할 테니 좋아하던 그림이라도 그리던가 해라”라고 한 말이 기폭제가 됐다. “그 길로 바로 세이브 원고 하나 없이 연재를 시작했어요.” 무작정 시작한 연재였지만, 막상 시작하고 나니 체계가 잡혔다. 우선 웹툰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전할지 정하기 위해 과학고 동창과 날을 잡고 실컷 수다를 떨었다. 그렇게 학창 시절 에피소드를 떠올리고 시간순으로 정리해서 에피소드 체크리스트를 만들었다. 이 체크리스트를 하나씩 지워나가며 연재하고 있다. 중요한 이야기를 빼놓지 않고 전하기 위한 윤찐빵 작가만의 노하우다. 

 

이렇게 정해둔 각각의 에피소드를 몇 화로 구성할지, 각 회차에는 어떻게 컷 구성을 할지, 각 컷 안에는 어떤 대사와 나레이션을 담을지 정하는 것도 필수다. 윤찐빵 작가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웹툰이 연재되고 나서 새로 유입된 독자들도 흥미를 느끼고 정착하게 만들기 위해서 고민했다”면서 “인스타그램에 올릴 수 있는 이미지 수는 한 번에 10장으로 제한되므로, 그 안에 기승전결을 담으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네이버의 독자들을 인스타그램으로 유입시키기 위해 인스타그램 연재분을 네이버 연재분보다 한발 빠른 호흡으로 공개하는 등 전략도 고안했다. ‘독자 수 늘리기’란 정해둔 문제를 풀기 위해 최적의 알고리즘을 짜고, 이걸 작업 방식에 적용한 것이다. 어딘가 공대생의 냄새가 난다. 

 
윤찐빵 작가는 주로 태블릿 PC를 이용해 작업을 진행한다. 그는“손이빠른것이학업과만화연재를 병행할 수 있는 비결”이라고 전했다.

이공계란 정체성이 ‘윤찐빵’만의 차별점이 되도록

 

윤찐빵 작가의 만화에는 감정 상태를 과학 개념에 비유하는 표현들이 종종 등장한다. 입시에 집중해야 할 시기에 첫사랑을 시작하게 된 불안한 감정을 전자의 들뜬 상태로, 매 순간 내리는 선택이 미래의 내 모습과 연결됐다는 생각을 함수의 미분과 적분으로 표현하는 식이다. 이공계 출신이라면 알아들어서 재미있고, 이공계가 아니더라도 ‘이과 녀석들 또 못 알아들을 이야기 한다’며 놀릴 수 있어서 재미있는 표현들이다. 

 

“과학 개념에 빗대면 표현하기 어려웠던 감정이나 상태를 좀 더 명료하게 표현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삶을 함수의 그래프에 빗대 생각한다면 매 순간 내리는 선택은 마치 그래프의 기울기, 즉 미분값으로 보이죠. 순간순간의 선택이 모여 만드는 미래의 나는 적분의 개념에 비유할 수 있고요. 같은 ‘순간의 선택’에 대한 이야기라도, 하루살이, 피었다 지는 꽃 등에 빗대는 건 진부하지만 미적분에 비유하면 더 새롭잖아요? 과학 개념에 비유한 표현은 신선한 재미로 느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연인과의 이별을 블랙홀에 빗댄 가수 윤하의 노래 ‘사건의 지평선’이나, 귀신의 운동에도 지평 좌표계를 적용해야 하므로 귀신을 만나면 “지평 좌표계는 어떻게 고정하셨나요?”라고 물어보라는 과학커뮤니케이터 궤도의 농담이 온라인 커뮤니티나 SNS에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윤찐빵 작가는 “더 이상 ‘이과 농담’이 이공계 사람들만의 영역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의 만화를 보는 만큼 이과 농담이 적당히 이해하기 쉬우면서 유쾌할 수 있는 선을 항상 고민한다”고 덧붙였다.

 

과학을 사랑하고 동경하는 마음 계속 전하고파

 

과학고, 과학기술원을 거쳐 현재는 KAIST 산업디자인학과에서 대학원 생활을 갓 시작한 윤찐빵 작가. 과학과 과학 하는 사람들은 작가의 삶 속에서 때로는 정체성으로, 때로는 동경으로 다가왔다. “과학은 닿을 듯 닿지 않을 듯 항상 눈길이 가고 멋있어 보이는 학창 시절 선배 같다”는 것이 그의 표현이다. 산업디자인이라는, 과학과 세상 사이의 교집합에 위치한 전공을 선택하면서도 윤찐빵 작가는 과학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았다. 

 

“과학기술 이슈에 관심이 많고, 이런 이슈를 소재로 이야기 나누는 걸 좋아해요. 최근에는 영상을 만드는 생성형 인공지능(AI) ‘소라’가 특히 제 관심을 끌었죠. AI의 기술 발전 과정에서 사람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AI가 바꿔놓을 노동의 가치는 무엇일지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너무 무거운 이야기들은 제 웹툰의 성격을 고려해 업로드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때론 이런 이야기를 웹툰으로 그려 독자들과 나누기도 해요.”

 

이처럼 과학으로 이야기하길 좋아하는 그는 과학고 생활에서 가장 좋았던 점도 “같은 관심사를 가진 친구들끼리 토론할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윤찐빵 작가는 “어떤 이슈든지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멋있는’ 친구가 많아 즐거웠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과학고 생활이 마냥 멋있는 친구들을 보며 즐거워할 수 있는 날의 연속은 아니었다. 친구들은 동경의 대상이자 경쟁자였다. 열등감과 질투의 감정이 느껴진 시절도 있었다. 당시의 감정은 과학고 생존일지 ‘과학고, 떠나는 자와 남는 자’ ‘나를 미워하는 나에게’ 등의 에피소드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비교와 경쟁이 자아낸 강박 속에서 윤찐빵 작가를 구해낸 건 ‘내겐 뒷배가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에겐 글을 잘 쓰고 그림을 잘 그리는 그만의 장점이 있었다. 다른 학생들은 선택하지 않는 자신만의 공부 방식, 자신만의 길이 있었다. ‘내가 학원을 그만둔 이유’ 에피소드에는 대부분 학생이 학원에 다니는 과학고에서 학원을 가지 않고 공부하는 길을 선택한 과정을 소개한다. 작중 주인공 찐빵이는 “불안감이 찾아올 때면 나를 믿고, 내가 했던 고민과 그 시간을 믿으려 애썼다. 그것만이 온전한 내 것이니까”라고 말하는 대목이 있다. 남과 비교하며 불안해하는 독자들에게 전하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응원이다. 

 

윤찐빵 작가는 “다시 (중학교 시절로) 돌아간다고 해도 과학고 진학을 선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로 다시 돌아가고 싶진 않은데그래도 만약 간다면 과학고 시절 벌어진 사건에 대해 메모를 더 해놓을 것 같네요! 만화 소재가 될 수 있을 테니까요. 사실 요즘은 친구들에게 만화 그리려고 과학고에 3년간 잠입 취재한 게 아니겠냐는 이야기도 해요.” 

 

과학고 생존일지의 주인공 찐빵이는 아직 고등학생이다. 인터뷰를 끝내며 윤찐빵 작가는 “만화 속의 찐빵이도 올해 안에 고등학교를 졸업 해야죠”라며 웃었다. 앞으로 만화 속 찐빵이의 행보에 대해서는 여전히 고민이 많다. 과학고 생활이라는 희귀한 소재 밖에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연구 분야를 산업디자인으로 정하면서 점점 과학적 색채가 옅어지는 건 아닐지.

 

꽤 심각한 고민이지만 윤찐빵 작가의 표정은 담담했다. “어떤 선택을 하던, 여전히 과학을 사랑하고 동경하는 마음을 가진 이야기들을 전할 것 같아요. 이제 제 이야기에 공감하며 저를 좋아해 주시는 코어팬 ‘앙꼬단’도 많이 생겼고요. 생각보다 제 일상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는 분들도 많이 계시더라고요!” 날이 갈수록 성장하는 찐빵이는 앞으로 어떤 과학 이야기를 전해올까. 익숙한 일상에 과학을 한 스푼 넣은 그의 만화가 앞으로도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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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글 및 사진

    대전=갈민지 인턴기자
  • 디자인

    박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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