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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의 세상 만드는 마태복음 효과

물리학으로 풀어 본 성공의 비밀

한국·미국·영국의 스포츠 선수와 과학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성공의 법칙으로 통하는 마태복음 효과가 증명됐다. 정우성 포스텍 교수와 미국 보스턴대 유진 스탠리 교수 공동연구팀은 통계물리학을 이용한 이 연구를 지난해 12월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었다. 정우성 교수가 직접 성공의 비밀을 설명한다.







한국·미국·영국의 스포츠 선수와 과학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성공의 법칙으로 통하는 마태복음 효과가 증명됐다. 정우성 포스텍 교수와 미국 보스턴대 유진 스탠리 교수 공동연구팀은 통계물리학을 이용한 이 연구를 지난해 12월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었다. 정우성 교수가 직접 성공의 비밀을 설명한다.



얼마 전 축구 국가대표 주장이었던 박지성 선수가 은퇴를 선언했다. '새로운 캡틴 박'의 지위는 박주영 선수가 물려받았다. 올해부터 일본 프로야구에서 뛰는 박찬호 선수는 한때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도 손꼽히던 투수였다. 박지성, 박주영, 박찬호 선수처럼 걸출한 스포츠 스타가 되는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



미국의 작가 말콤 글래드웰은 성공 원인을 분석한 책 ‘아웃라이어’에서 ‘1만 시간의 법칙’이 성공을 위한 비결이라고 밝혔다. 1만 시간의 법칙은 스포츠 선수는 물론 컴퓨터 천재 빌 게이츠, 음악의 천재 모차르트 등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하기 위해 1만 시간 이상의 노력을 쏟아 부었다는 얘기다. 1만 시간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3시간씩 연습해도 10년이 걸린다. 전설의 록밴드 비틀즈는 미국에서 거둔 큰 성공을 위해 1960년부터 1962년에 걸쳐 일주일 내내 8시간씩 공연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3년간 무대에 선 결과 대중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수많은 밴드를 통틀어도 이만큼 공연한

밴드는 드물다.



결국 1만 시간 법칙은 성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노력만이 성공의 비밀이라고 단정 짓긴 어렵다고 말콤 글래드웰은 설명한다. 또 다른 성공의 비밀은 어떤 것일까.



기회가 있어야 성공한다



‘아웃라이어’에는 또 다른 성공의 조건이 ‘마태복음 효과’라고 한다. 이 효과는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라는, 성경의 마태복음에 나오는 한 구절에서 비롯됐다. 흔히 이 구절을 사회적 지위나 경제력을 얻어 성공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지위가 더 높아지거나 돈을 더 많이 벌 가능성이 크다는 뜻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성경에서 권력과 재력을 세습해 크게 성공한 사람을 칭찬했을 리 없다. 성경에서 말하는 맥락을 생각하지 않고 한 문장만을 떼어놓고 보면 실패의 원인을 주변 조건 탓으로 돌리기 십상이다. 성경의 의도는 주어진 능력을 열심히 갈고 닦은 자에게는 더 많은 능력을 주고, 자신의 능력을 활용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갖고 있던 능력조차 빼앗아 버린다는 것이다.



필자와 미국 보스턴대 유진 스탠리 교수의 공동연구팀은 물리학적으로 마태복음효과를 검증했다. 연구팀은 한국, 미국, 영국의 야구, 축구, 농구 선수 2만 명의 기록을 모두 조사했다. 이 결과 놀랍게도 프로에 입문한 초기에 보다 많은 출전기회를 얻은 선수들이 더 오랫동안 좋은 성과를 냈다. 경력의 초기부터 기회가 많이 주어져야 성공에 더욱 가까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결국 ‘마태복음 효과’가 전하는 정확한 의미는 ‘성공을 위해 자신이 가진 능력을 부지런히 갈고 닦으며 활용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일찍 주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결과는 과학자들의 연구 성과에서도 찾을 수 있었다. 네이처, 사이언스, 셀과 같은 저명 과학학술지에 논문을 실은 과학자 40만 명의 논문 성과를 분석하면, 연구에 발을 들여놓은 지 5~10년 정도 되는 초기에 논문을 많이 쓴 과학자일수록 꾸준히 좋은 성과를 냈다. 또 노벨상 수상자들은 20~30대에 발표한 뛰어난 연구 성과가 이후 확산되고 발전해 수십 년 후 노벨상으로 이어지곤 했다. 노벨상 수상자들 역시 ‘마태복음 효과’를 충실히 따랐던 것이다.




 
 
100점이 정규분포보다 많은 이유



그런데 왜 물리학자들이 이런 사회현상에 관한 연구를 하는 것일까. 우선 분석할 자료의 양이 많기 때문이다. 프로스포츠 선수와 과학자의 수 자체도 굉장히 클 뿐 아니라, 이들이 만들어낸 홈런과 삼진, 논문의 수도 어마어마한 양이다. 따라서 이런 자료의 분석은 컴퓨터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고, 자연과학자와 공학자의 도움이 필요하다.



방대한 자료를 분석하고 모델링해 미래를 예측하는 데 수학자와 물리학자의 역할이 커지면서 최근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경계가 많이 허물어지고 있다. 특히 물리학자들은 자연을 설명하는 단순명료한 법칙을 찾으려 노력한다. 이제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법칙을 찾는 노력도 함께하고 있는 셈이다.



사회 현상을 물리 이론으로 분석하려는 시도를 하는 사회물리학자들은 다양한 자료로부터 팻 테일(두꺼운 꼬리)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팻 테일을 스포츠 선수에 비유하자면 피겨여왕 김연아 선수와 같이 특출한 선수가 수십 년 만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할 것 같지만, 실제 더 많은 김연아 선수가 나온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통계분포는 팻 테일과 달리 평균값에 많은 값이 몰리는 종 모양의 정규분포가 나타난다. 즉 시험을 보면 100점 맞는 사람은 거의 없고 평균에 비슷한 점수를 받는 학생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의외로 우리 주변에는 이런 정규분포와 전혀 다른 팻 테일을 쉽게 관찰할 수 있다. 다른 도시로 연결되는 항공편을 많이 가진 인천공항과 같은 허브공항 역시 정규 분포보다 많이 나타난다. 정규분포를 따른다면 허브공항은 세계에 하나 정도 있을까 말까 해야 하지만, 아시아 지역만 해도 한국, 싱가포르, 일본 등에 여러 개의 허브공항이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친구들 사이에서 소위 ‘마당발’이라고 불리는 인맥 넓은 친구가 생각보다 많다.



이런 팻 테일 현상이 물리학자의 주목을 받는 것은 복잡계 과학에서 이야기하는 ‘양의 되먹임 현상(positive feedback)’과 관계가 깊다. 이는 시스템 내부의 변화만으로 힘이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현상이다.



보통 힘은 외부의 힘이 더해졌을 때 커지는 것이 상식이다. 놀이터에서 그네를 탈 때, 뒤에서 밀어주는 사람이 정확하게 힘을 줘야만 그네가 더 빠르게 움직이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그네를 밀어주는 사람이 없어도 그네가 더 빨리지는 현상이 바로 양의 되먹임 현상이다. 2002년 월드컵 당시 거리에 쏟아져 나왔던 붉은 악마의 거리 응원단이 좋은 예다. 그 누구도 광장으로 모이라고 시키지 않았지만 수십, 수백만 인파가 모였다.



양의 되먹임 현상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것을 ‘창발(emegence)’이라고 한다. 양의 되먹임은 의외로 수많은 물리 현상에서 발견되는데 얼음이 물로 바뀌는 순간, 새로운 물질이 생성되는 순간 등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만약 시스템을 양의 되먹임이 나타나도록 잘 설계해준다면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사회 시스템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프로야구 2군 선수의 훈련 모습. 우리나라에도 미국의 마이너리그와 같은 2군 훈련 시스템이 있다. 미국보다 나뉜 단계가 적고 체계적이진 못하지만 2군을 거쳐 많은 스타 선수들이 배출됐다.]



될성부른 떡잎 모두 키우는 마이너리그



마태복음 효과는 선수와 과학자를 지원하는 체계가 ‘선택과 집중’이 아닌 ‘풀뿌리’식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교훈을 전한다. 과거 우리나라는 소수의 엘리트 선수들만 집중지원해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휩쓰는 방식을 택했다. 하지만 가능성 있는 떡잎이 훨씬 많았는데, 그동안의 잘못된 선택으로 사라진 재목이 많았을 것이다. 여기에 양의 되먹임이 더해질 수 있었다면 우리가 놓쳐버린 인재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할 지도 모른다.



미국의 프로 스포츠 역사는 우리나라와 비교되지 않을107만큼 길다. 그래서인지 더 많은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축적했고,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최적의 시스템을 구축했다. 최대한 많은 떡잎을 나무로 길러내는 미국 프로야구의 시스템이 바로 ‘마이너리그’다. 마이너리그는 최고의 선수들이 출전하는 메이저리그보다 아래 단계의 리그다. 선수 수준에 따라 AAA, AA, A, 루키리그 등으로 세분화돼 있다. 각 단계에서 선수들은 계속 기회를 얻고, 성공의 경험을 쌓는다.



일례로 박찬호 선수가 미국에 진출했을 때, 몇 년 간 메이저리그에 오르지 못했다. 이때 박찬호 선수는 마이너리그에서 계속 경기에 출전했고, 계속 공을 던질 기회를 갖게 되었다. 박찬호 선수는 마이너리그라는 떡잎 양성 시스템 속에서 계속 더 많은 삼진을 잡을 기회를 가졌고, 이를 통해 지속적으로 기량이 성장했다. 결국 마이너리그를 벗어나 메이저리그로 진출해 그곳에서 정상급 투수로 우뚝 섰다.



성공하기 위해선 한 번의 실패로 주저앉지 말고 계속 기회를 얻어 자신을 갈고 닦아야 한다. 한 번의 시험에서 실패했다고 좌절하고 더 이상 노력하지 않는다면 신은 있는 것마저도 앗아버린다. 그리고 그만큼 중요한 것은 주변에서 성공할 수 있는 기회와 환경을 끊임없이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물리학이 이야기하는 '성공의 법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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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정우성 포스텍 교수 |에디터 김종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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