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과학동아의 ‘최애은하’ 연재로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은 지웅배 박사(연세대 은하진화연구센터)가 신간 ‘날마다 우주 한 조각’으로 돌아왔다. 365장의 다채로운 천문 사진과 이 우주의 풍경들에 착 붙는 설명들이 담겼다. “독자들이 책을 통해 우주의 다양성을 느낄 수 있길 바란다”는 저자를 2월 21일 인터뷰했다.
날마다 우주 한 조각
지웅배 지음│김영사 452쪽│2만 8000원
“우리가 보는 우주는 달 정도를 빼면 매일 똑같아 보이죠. 그래서 우주는 정적이고 지루하다는 오해를 받습니다. 하지만 실제 우주는 역동적으로 진화하고 있어요. 천문학자들이 항상 지켜보는 우주의 다양한 변화를 함께 보기 위해 이 책을 썼습니다.”
우리가 천문학자의 눈으로 우주를 본다면
우주의 경이를 좀 더 많은 사람과 나누는 것이 큰 즐거움인 지 박사에게 ‘날마다 우주 한 조각’의 출간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처음 이 책의 기획을 들었을 때 천문학자의 1년을 고스란히 담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모든 천문학자는 매일 자신만의 우주를 생각하거든요. 아침에 논문들을 읽을 때부터 연구를 할 때는 물론, 쉬며 SNS를 하거나 흥미로운 천문 사진을 업로드할 때도 항상 우주가 곁에 있죠. 그 일상을 독자 여러분과 함께 나눌 수 있어서 기쁩니다.”
인스타그램 같은 SNS에 미국항공우주국(NASA)을 비롯한 다양한 계정이 있는 덕분에 온갖 아름답고 거대한 천문 사진을 접하기는 쉽다. 우주의 무수한 모습들 중에서 365장의 의미 있는 사진을 선택하고 그 의미와 가치를 찾아내는 시선이 더 중요한 이유다. 지 박사는 어떤 눈으로 이 책의 사진들을 골랐을까? “천문 사진들은 모르고 봐도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우주에 대해 알수록 이 사진들 속에서 더 많은 아름다움과 놀라움을 느낄 수 있죠. 천문학자들이 무엇이 알고 싶어서 지금 우리가 보는 이 우주를 포착했는지, 그 다양한 호기심과 목적들을 많은 분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볼 수 있는 우주, 볼 수 없는 우주
그렇다면 지 박사가 선택하며 특히 뿌듯했던 사진은 뭘까. “10월 4일 사진으로 다룬 감마선 별자리를 소개하고 싶어요.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는 빛의 파장인 감마선으로 우주를 관측하는 페르미 우주망원경 발사 10주년을 기념해 2018년에 진행한 이벤트입니다. 감마선으로 관측한 광원(별) 3000개의 천문도로 새로 만든 별자리 21개 중 일부를 담은 사진이죠.”
‘어린왕자자리’ ‘슈뢰딩거의 고양이자리’ 등 천문학자들 특유의 감성과 가시광 별자리 속 신화와 대칭을 이루는 듯한 현대 문화의 아이콘을 담아낸 점도 이 감마선 별자리만의 매력이다. 게다가 지 박사는 이 감마선 별자리 사진에서 별을 바라보는 인간들의 특징까지 짚는다.
“추상적인 형태, 무늬 등을 볼 때 누군가의 얼굴과 같은 자신에게 익숙한 대상을 상상하고 대입하는 변상증(파레이돌리아)은 인류 문화의 중요한 특징입니다. 감마선으로 본 별에서도 자연스럽게 그런 상상을 하는 오늘날의 천문학자와 우리 자신의 감수성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감마선 별자리 사진은 흥미롭습니다.”
천문학자들이 ‘날마다 우주 한 조각’에 실린 이 탁월한 천문사진들을 촬영하도록 도운 핵심 도구는 무엇일까. 여기서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을 빼놓을 수 없다.
“지난 몇 년간의 천문학은 이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 덕분에 크게 바뀌었습니다. 이전엔 보지 못했던 먼 우주까지 치밀한 고해상도 이미지로 보기 시작했으니까요. 그동안은 비교적 가까운 우주, 은하를 주로 관찰했던 까닭에 우리 은하에서의 거리와 상관없이 우주의 현재 상태, 성장 과정 등은 모두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제임스 웹이 본 먼 우주의 모습은 기존의 인식과 달랐다. “먼 우주에선 여전히 활발하게 별들이 탄생하거나, 성장의 초기 단계에도 큰 은하를 품은 우주도 있습니다. 이 먼 우주의 사진들은 초기 우주가 지금보다 훨씬 역동적이었을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 덕분에 우리는 현재와 다른 우주의 과거와 미래를 직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우주라는 미술관의 다채롭고 경이로운 걸작들을 소개하는 도슨트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꼭 소개하고 싶지만 아직 걸리지 않은 걸작이 있는지 물었다.
“우리은하 밖에서 우리은하를 찍은 사진이죠! 우리들은 결코 볼 수 없는 사진이기도 합니다. 우리은하의 셀카인 셈이죠. 안드로메다에 사는 천문학자가 본 우리은하는 어떨지 가끔 궁금합니다.”
지금 우리 인간은 바다에 살지 않는다. 땅에 산다.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은 이들이 물론 많지만, 그들조차 바다의 속보다 위에서 보내는 시간이 훨씬 길다. 결국 바다라는 짠물 그 자체는 인간이 숨쉬며 생활하는 공간은 아니다. 인간은 바다에서 주인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손님일 뿐이다. 바다에 사는 그곳의 주민은 따로 있다. 지금 이 시간 바다에 어떤 생물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우리 모두가 좀 더 잘 알아야할 이유는 모든 인간이 바다의 손님이어서다.
이 책 ‘사랑海(해) 만타’의 저자인 장재연 작가는 예방의학을 전공한 의사이자 1980년대부터 환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온 활동가다. 그리고 저자는 지난 10여년간 무려 800번 이상 전 세계 곳곳의 바다에서 스쿠버 다이빙을 한 바다 마니아이기도 하다. 그야말로 바다의 단골인 셈이다.
그래서 ‘사랑海 만타’ 속 바다는 단순히 멋지고 눈부신 바다 사진 몇 장을 찍기 위해 한 번 다녀온 장소가 아니다. 오히려 책엔 인간 손님인 저자가 찾기 전 바다와, 생물의 일상적인 시간 속으로 최대한 다가간, 자연스러운 수중사진들이 가득하다. 도감이나 백과사전 속의 추상적인 생물들이 아닌, 저자 자신이 바닷속에서 자주 만난 바다 친구들을 독자들에게 하나하나 소개하는 다정한 메시지들이다.
작가는 책을 통해 임신, 출산, 양육에 이르는 전 과정을 암수가 공평하게 분담하는 해마부터, 바닷속을 무대처럼 누비는 우아한 자태에 다이버들도 매료되는 만타레이까지 다양한 바다생물을 소개한다. 그 배경엔 바다에 대한 깊은 애정뿐만 아니라 환경보호를 실천해온 오랜 경험이 있다. 바다와 바다생물의 보호는 일방적인 교육과 경고만으로는 계속되기 어렵다. 저자는 우리 인간들이 바다와 바다생물을 자발적, 지속적으로 보호하는 흐름이 만들어지려면, 먼저 바다와 바다생물을 더 구체적으로 알고 가까워져야 한다고 본다. ‘사랑海 만타’ 속의 다채로운 이야기와 사진들은 우리와 바다의 긴 동행을 위한 훌륭한 첫 만남이 될 것이다.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 직접 보고 만질 수 있는 것보다 그럴 수 없는 것이 훨씬 많다는 사실 자체는 더 이상 놀랍지 않다. 이미 자주 듣고 또 놀랐기 때문이다. 즉 이젠 우리가 흔히 보기 어려운 이미지라는 점만으로는 충분히 경이롭지 않다. 그 희귀한 이미지에 담긴 의미와, 그동안 볼 수 없었고 이제는 볼 수 있게 된 맥락까지 짚어줘야한다. 감각할 수 없었던 이미지가 경이롭기 위한 필요조건인 셈이다.
‘과학의 눈’이야말로 이 필요조건을 가장 잘 충족시킨 책이다. 가시 스펙트럼 너머의 복사선은 빛의 속도로 지나가고, 지구 밖에서 온 입자들은 버터를 자르는 뜨거운 칼보다도 쉽게 우리 몸을 관통한다. 전기장과 자기장이 우주의 모든 공간을 가득 채운 까닭에 무수히 많은 과정이 너무 빨리 일어나거나, 반대로 너무 느리게 일어난다. 어느 쪽이든 인간은 인지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보이지 않는 사물과 상황을 이미지로 구현하려면 현미경, 망원경, 적외선이나 고속 카메라 등의 기술이 필요하다. ‘과학의 눈’은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게 된 과학적 배경을 놓치지 않는다.
지식은 가설을 세우고 검증해서 얻는다. 가설을 세우려면 정보가 필요하고, 정보를 생산하고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서는 데이터가 필요하다. 데이터는 대개 숫자인데, 이 데이터를 이해하고 전달하려면 그것을 ‘시각화’해야 한다. 그래서 현재의 모든 과학자는 동료 및 대중과 공유하기 위해 다양한 기술을 활용해 명확하고 매력적인 시각 자료를 만든다. 또한 과학 논문들엔 데이터를 해석한 이미지가 꼭 실린다.
이 시각화 이미지들의 기반과 정점을 ‘과학의 눈’에서 볼 수 있다. 우주 팽창의 증거를 최초로 제시한 허블의 선그래프, 지구 온난화 실태를 한눈에 보여준 줄무늬, 코로나바이러스 2(SARS-CoV-2)의 주사전자현미경 사진, 뇌 구조를 개별 뉴런 단위로 그린 트랙토그램(tractogram)은 ‘과학의 눈’으로 포착한 경이로운 이미지 150여 개의 일부다. 이 이미지들에서 시작된 과학적, 사회적 변화까지 함께 읽으면 ‘과학의 눈’은 우리의 눈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