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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종종 관찰과 경험의 눈으로 볼 때 위대한 힘을 인간에게 더해준다. 어부들은 오랫동안의 경험으로 조석시간과 높이는 물론, 풍랑과 고기떼의 이동까지도 파악한다. 모세나 제갈공명 또한 남다른 관찰력으로 바다가 열리고 동남풍이 부는 시점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어민대 여호와께서 큰 동풍으로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땅이 된지라…”(출애굽기 14) 이집트에서 노예생활로 고통받던 히브리 백성들을 구해 가나안으로 인도하던 모세가 바다에 길을 연 기적을 묘사한 대목이다. ‘십계’나 ‘이집트의 왕자’ 같은 영화에서는 모세가 지팡이를 들어올렸다 수면에 내리 박는 순간, 순식간에 물길이 열린 것으로 극적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사실 모세의 바닷길은 밤새 강하게 분 동풍을 동반한 상당히 천천히 일어난 기적이었다.

썰물 때 드러나는 해저지형

우리나라 남서해안에서는 바다가 갈라지는 기적이 종종 관찰된다. 그 중에서도 전남 진도군 고군면 회동리와 의신면 모도(띠섬)사이의 바다는 해마다 음력 3월 보름을 지난 대사리 때 바닷길이 드러나는 신비한 현상이 펼쳐져 현대판 모세의 기적으로 불린다 이것을 해할(海割)이라 하는데, 원리적으로 보면 퇴적으로 쌓인 모래톱이 썰물 때에 드러나는 아주 단순한 현상이다. 경기도 화성군 제부도, 전남 영광의 상하낙월도, 완도의 노화도와 노록도, 전남 여수의 사도, 충남 보령시 무창포, 전북 변산의 하섬 등에서도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너무나 자주 일어나서 진도만큼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을 따름이다.

연구에 따르면, 진도의 해할현상은 밀물과 썰물의 차가 4m 이상일 때에 일어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지역의 평균 수심은 5-6m로, 특히 음력 2, 3, 4월과 9, 10, 11월 등 봄가을에 간만의 차가 심할 때 그 현상이 나타나는데, 가을에는 바닷길이 열리는 때가 이른 새벽이어서 일반인이 관찰하기 쉽지 않다. 드러난 바닷길의 너비는 30-40m이며 지속시간은 1-2시간 정도로 모세가 이끌었던 수만명 정도의 히브리인들도 쉽게 지나갈 수 있는 규모다. 해할은 육지에서 바다로 바람이 강하게 불면 바다가 열리는 기간이 길어지고 반대방향으로 불면 짧아진다.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얘기다.

홍해가 아닌 갈대 바다

그렇다면 모세의 기적도 해할현상이었던가. 가능성은 충분하다. 여호와가 내린 10가지의 재앙으로 이집트가 초토화되자, 람세스는 마침내 히브리인들을 해방하기로 약속한다. 모세는 히브리인들을 이끌고 가나안을 향했다. 그들이 얌수프(yam suph)에 이르렀을 때, 모세는 바닷물을 가르는 기적을 행했다. 후대의 유대교 전승에는 통상 얌수프를 홍해라고 하는데, 이는 잘못된 해석이라고 한다. 얌수프는 원래 ‘갈대(파피루스)바다’로 번역된다. 이 갈대바다의 정확한 위치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으나, 많은 학자들은 수에즈 만과 지중해 사이에 있는 얕은 호수나 늪지대였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얕은 바닷가의 호수에 강한 바람과 썰물이 겹쳤을 때 평소에 잘 일어나지 않던 해할현상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더구나 이 일은 후세에 다시 일어나 해할현상이었을 가능성을 더하고 있다. 1789년 나폴레옹은 이집트 원정 때 모세와 마찬가지로 육로를 통해 홍해를 건넜다고 전해진다. 물론 이 때도 강풍이 불었다. 나폴레옹이 홍해를 건넌 지점이 바로 수에즈와 가까운 얌수프(갈대바다)로 불리는 곳이었다고 한다. 이 곳에서 다른 쪽 해안까지는 1.6km이며 1.5-2.1m에 이르는 조차로 모래톱이 발달해 깊이가 아주 얕다고 한다. 또한 1년 가운데 9개월은 강한 서북풍이 불어 바람의 강도에 따라 간만의 차가 평소보다 90cm 이상 차이가 나기도 한다.

모세는 아마 갈대바다의 지형과 조석주기, 기상 특성들을 잘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모세가 이집트인 감독관을 죽이고 미디안(아라비아 북서부지역)으로 도망치면서 통과한 곳이 나일강 유역의 수에즈만 부근이었다. 그리고 망명 기간에 이곳의 자연현상에 대해 많은 지식을 쌓았을 가능성이 있다. 그는 언제 해할이 일어날지 미리 알고서 히브리인들을 이곳으로 데리고 왔을 것이다. 히브리인들을 가나안까지 인도하는데 그가 가장 짧은 경로를 택하지 않고, 이리저리 돌아갔던 것도 적당한 고난 후에 기적을 보여줌으로써 히브리인들의 믿음을 강하게 하려고 했다는 주장도 있다.

제갈공명의 연기

사람들이 눈여겨보지 않는 것을 세밀하게 관찰하는데서 종종 신비한 힘이 생긴다. ‘삼국지’의 적벽대전에서 바람을 마음대로 부렸던 제갈공명의 일화도 이런 예에 속한다. 적벽에서 오군과 촉군은 위나라 조조군을 화공으로 격퇴하고자 했으나 조조의 군대 쪽으로 불길을 몰아줄 강력한 동남풍이 없었다. 공명이 길일을 잡아 남병산에 칠성단을 쌓아놓고 주문을 외우자 바라던 동남풍이 불기 시작하고 잠깐 사이에 바람은 더욱 거세졌다. 연환계에 속아 배들을 잇대어 묶어놓고 싸움을 벌이던 조조군은 불길로 초토화되고, 이후 3국의 대결은 소강상태에 접어들게 된다. ‘삼국지’에는 동남풍이 분 것을 자연현상마저 마음대로 부리는 공명의 신비한 능력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역사가들은 이때 공명의 행동이 다분히 연출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공명이 남쪽 지방에 오래 살면서 계절과 기후를 세밀하게 관찰했고, 동짓달 어느 날에는 이례적으로 동남풍이 분다는 것을 미리 알았다는 것이다. 바람의 방향이 바뀔 것이라는 확신 없이 나라의 명운이 걸린 일대전투에서 화공을 생각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앞뒤에 생기는 물덩어리

심오한 과학이론 없이도 본질을 정확히 꿰뚫을 수 있는 것이 관찰의 힘이다. 19세기 초 다산 정약용은 중력과 조석력의 작용을 전혀 모른 채 관찰만으로 조석현상의 본질을 알아냈다. “물의 실제 모습은 항상 두 개의 덩어리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는 산덩어리 같고 다른 하나는 얼음덩어리 같다. 이 두 가지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항상 달과 함께 대지의 허리 부분을 끝없이 잇따라 돌고 돌아 그치는 때가 없다. 산덩어리의 형세와 얼음덩어리의 광채는 그 길이가 몇천리나 되어서 언제나 대지의 허리부분을 감돌고 있다. 그런데 대지의 허리부분에서 멀어질수록 그 여파가 점차 줄어들어 사람들이 살고있는 항구에까지 이른다.” 정약용의 해조론(海潮論)에 나오는 조석현상에 대한 설명이다. 조석력에 의해 지구에서는 달을 보고 있는 면과 반대 면에 물이 부풀어오르는 만조가 생겨난다. 달은 24시간 50분만에 지구를 한바퀴 돌므로, 2개의 만조는 12시간 25분에 한 번씩 지구에 밀물을 만든다. 지구의 앞면과 뒷면에 생기는 만조는 천체의 조석력을 벡터 계산으로 해석해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정약용은 이러한 물리지식 없이도 조석의 주기를 관찰하고 지구의 뒷면에도 만조가 생긴다는 것을 정확히 파악했던 것이다.

아는 것이 힘

뉴턴의 천체역학 이후 많은 학자들이 조석현상을 연구한 결과 천체역학적으로는 조석현상이 거의 완전하게 설명된다. 여기에 특정 지역에서의 조석은 지형과 기압, 바람 등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현지에서의 지속적인 관측을 더해야 한다. 지금은 어느 지역이라도 조석을 2-3cm 이내에서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예측은 미묘한 자연의 변화와 변수들을 배제한 이론적인 값일 뿐 수시로 바뀌는 기상조건에는 상당히 무력하다.

어부들은 오랫동안 그 지역에 생활해 온 경험으로 조석시간과 높이는 물론, 풍랑과 고기떼의 이동까지도 파악한다. 경험과 관찰의 힘인 것이다. 모세나 제갈공명, 정약용이 위대한 것은 기본적으로 그들의 인간됨과 행적이 그러하겠지만, 그들이 남달리 지녀왔던 자연관찰의 깊은 눈 때문이 아니었을까. ‘아는 것이 힘’이라는 프란시스 베이컨의 말처럼 자연은 관찰과 경험의 눈으로 볼 때 그 위대한 힘을 인간에게 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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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전용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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