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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이식 어디까지 가능할까

소장 이식 수술 성공스토리

 

인공장기도 연구가 많이 되고 있는 부분이나 인공소장이나 인공신장은 아직 만들 수 없다. 사진은 인공심장.


지난 4월 9일 가톨릭대 의대 강남성모병원에서는 8시간에 걸친 소장이식수술이 진행됐다. 환자는 창자로 가는 혈관이 막혀 못쓰게 된 소장 대부분과 대장 절반을 제거한 상태였다. 따라서 영양분을 소화·흡수할 소장이 모자라 음식을 입으로 먹어서는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우리는 환자에게 타인의 소장을 이식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키로 했다. 장기기증자는 환자의 딸로 소장 중 공장(空腸)과 회장(回腸) 총 5m에서 회장 1.5m를 떼어내 어머니에게 이식했다. 장기기증 후 2주만에 퇴원 한 딸은 현재 정상적으로 회복된 상태다.

타인으로부터의 장기이식은 이미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다. 골수이식이나 간, 신장, 심장이식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소장이식은 이번이 국내에서 두번째다. 게다가 3년 전에 시도됐던 첫 이식수술은 이식된 소장이 기능을 회복하기 전에 실패로 끝났기 때문에 사실상 최초라고 볼 수 있다.

소장이식수술이 어려운 까닭은 다른 장기에 비해 면역거부반응이 강해 면역억제제를 더 강하게 써야 하고, 그 결과 인체의 저항력이 극도로 떨어지는 상태에 처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식된 소장은 대변이라는 오염원에 노출돼 있기 때문에 감염의 위험성이 이식 장기 중 가장 높다는 역설적 입장에 놓여 있다.

이러한 경우 감염으로 자칫 패혈증까지 진행돼 심각한 위험에 처할 수 있다. 따라서 강력한 면역억제와 철저한 감염 관리의 균형과 조화가 바로 소장이식 성공의 관건이다. 필자가 속한 이식팀은 최신 연구결과와 그동안 축적된 면역영양학에 기초한 새로운 관리를 시도해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있다. 수술 후 6주가 경과한 현재 환자는 빠른 회복기를 맞아 퇴원을 앞두고 있다. 이번 수술을 계기로 장기이식에 관한 최근 연구동향을 살펴보기로 한다.

자가이식은 범위 제한돼 있어
 

000년 세계 최초로 양팔을 이식받은 프랑스인 데니스 샤틀리에가 수술 후 회복실에 누워있다. 그는 1996년 사고로 양팔을 잃었다.


장기이식은 크게 3가지가 있다. 자신의 신체기관을 이식하는 자가이식(autotransplantation), 다른 사람의 장기를 이식하는 동종이식(allotransplantation), 인간이 아닌 동물의 장기를 사람에게 이식하는 이종이식(xenotransplantation)이 그것이다.

자가이식은 면역거부반응이 없어 신체의 기능적 결함을 보완하는 재활수술이나 성형수술 등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화상 때의 피부이식이나 구강암수술 후 소장 일부로 잃어버린 구강점막을 대신해주는 것, 유방암수술 후 복벽 피부와 근육을 이식해 인공유방을 만드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이 경우 모두 환자 자신의 몸에서 필요 부분으로 옮겨 심는 것이다. 유전자가 1백% 같은 일란성 쌍둥이 사이의 장기이식은 자가이식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생명 유지에 직접 관계된 중요 장기는 자가이식을 할 수가 없다. 예를 들어 신장이 망가진 경우에는 다른 장기가 신장의 역할을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평생 신장투석을 받는 신세에서 벗어나려면 타인의 건강한 신장을 이식해 다시 정상적으로 피 속의 노폐물을 거를 수 있어야 한다. 심장, 간 혹은 골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결국 현재 장기이식을 대표하는 것이 바로 동종이식이다.

그런데 동종이식은 크게 두가지 난관이 있다. 하나는 건강한 장기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이식 후 나타나는 면역거부반응이다. 이 중 장기 확보는 의학기술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뇌사자 장기기증 운동 등 사회적 관념의 변화가 열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자를 비롯한 의료진이 할 일은 두번째 문제인 면역거부반응을 적절히 억제해 신체가 외부장기를 자신의 조직 일부로 받아들이게 유도하는 길을 찾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이 문제가 완벽하게 해결되지 못했지만 최근 의학의 눈부신 발전과 부작용이 적고 기능이 강력한 면역억제제의 개발로 면역거부반응의 어려운 점들이 많이 해결됐다. 그렇다면 면역거부반응은 왜 일어나는지,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거부반응을 피해나갈 수 있는지 살펴보자.

면역활동 통제가 성공 관건
 

피속에는 산소를 공급하는 적혈구(붉은색) 외에도 인체를 방어하는 백혈구(회색)가 포함돼 있다.


인간을 비롯한 개체가 세균 감염 등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조직이 아닌 외부의 이물질을 식별해 이를 몸에서 제거할 수 있는 능력, 즉 면역력을 갖춰야 한다. 만일 이런 능력이 없다면 세균이 침투해 몸속에서 번식해도 대책이 없어 결국 개체는 더 이상 생존할 수 없게 될 것이다. 후천성면역결핍증, 즉 에이즈 환자들이 말년에 바이러스, 박테리아 등 각종 미생물에게 온몸을 맡긴 채 비참하게 죽어가는 것이 한 예다.

면역체계란 세균을 비롯한 외부물질의 표면구조를 인식해 이를 공격해 제거하는 일련의 과정을 운영하는 인체방어시스템이다. 그런데 인간처럼 같은 종의 생물체 사이에서도 개인별로 세포표면구조, 즉 항원성이 조금씩 다르다. 따라서 타인의 세포가 체내에 심어지면 인체의 면역체계는 이를 이물질로 간주해 즉각 파괴공작에 들어가게 된다.

대표적인 면역반응은 혈액형이 다른 피를 수혈 받았을 때 피가 엉기는 현상이다. 혈액형은 적혈구 표면의 당단백질의 구조에 따라 결정된다. 만일 O형인 환자에게 A형이나 B형, AB형 혈액형을 공급할 경우 치명적인 결과를 낳게 된다. 이들을 외부항원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종이식에서는 우선 기증자와 수혜자의 혈액형이 수혈할 수 있는 관계여야 한다.

장기이식에서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주조직적합항원의 식별이다. 세포표면에 있는 주조직적합항원은 면역체계가 나인지 남인지를 판단하게 해주는 인식표다. 사람에서는 세포 중에서 주로 림프구 표면에 존재하는 항원, 즉 인간백혈구항원(human lymphocyte antigen, HLA)이 기준이 되고 있다.

HLA에는 여러 종류가 있어 계열별로 이름이나 번호가 매겨져 있다. 즉 HLA-A, B, C, DR 등으로 나뉘는데, 혈액형처럼 각 HLA의 형을 검사해낼 수 있다. 이를 HLA 타이핑(typing)이라고 한다. 혈연관계일수록 타입이 같은 HLA를 많이 공유한다. 자식은 유전자의 절반씩을 부모로부터 각각 받으므로 부모자식간은 기본적으로 절반이 동일하다. 유전자가 1백% 같은 일란성 쌍둥이 사이는 물론 동일하나, 전혀 남남 사이라도 동일한 경우가 아주 드물게 있을 수 있다.

수년 전 성덕 바우만의 예에서도 볼 수 있듯이 골수이식의 경우 HLA가 일치하는 제공자를 찾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성덕 바우만은 골수은행의 수많은 시료에서 혈연관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맞는 골수를 찾은 운이 매우 좋은 경우다.

그러나 조직적합항원이 모두 일치해야만 장기이식이 가능한 것은 아니며, 면역거부반응 또한 이식되는 장기에 따라 정도차가 있다. 세포마다 조직적합항원을 가지고는 있으나 나타내는 정도가 장기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피부, 소장, 골수 같은 장기는 항원성 표현이 아주 강한 반면 간은 약하고 근막 등의 조직은 아주 약하다. 약한 경우 거부반응도 작으므로 면역억제제를 약하게 써도 거부반응을 이겨낼 수 있다.

반면 주조직적합항원이 모두 일치해도 거부반응이 있는데, 이는 후천적인 영향이나 세포표면에 항원으로 인식되는 다른 구조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일어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일란성 쌍둥이 사이에도 경우에 따라서는 면역억제제를 소량 투여하기도 한다.

관용현상 유도가 목표

그렇다면 면역억제제는 어떤 과정을 거쳐 우리 몸의 면역체계가 작동하는 것을 제어할까? 먼저 거부반응이 일어나는 메커니즘을 살펴보자. 타인의 장기, 즉 외부 항원이 체내에 들어오면 대식세포가 이를 알아채고, 그 정보를 림프구에 전달해 림포카인(lymphokine)으로 통칭되는 여러 종류의 신호전달물질을 분비하게 해 그 항원에 특이한 T림프구와 B림프구를 증식시킨다. 한편 이들 림프구 사이에도 인터루킨-2를 비롯한 수많은 림포카인으로 서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면역계의 기능을 조정한다.

증식된 T림프구는 항원을 직접 공격하여 파괴하는데 이를 세포성 면역이라고 한다. 한편 증식된 B림프구는 그 항원을 중화할 수 있는 특이항체를 다량 생산해 항원을 분해하는데 이를 체액성 면역이라고 한다. 따라서 이들이 왕성하게 활동하는 한 이식된 장기는 파괴될 수밖에 없다.

다행히 이 분야의 연구가 축적되면서 현재 많은 면역억제제가 개발돼 있는데 면역반응의 어느 단계를 차단하는가에 따라 크게 3종류가 있다. 첫째는 림프구 증식을 명령하는 신호전달물질의 작용을 방해하는 약물이다. 둘째는 림프구의 DNA나 RNA의 증폭을 억제해 림프구의 증식을 방해하는 약물이다. 끝으로 스테로이드계 면역억제제는 대식세포, 다핵구, 림프구 등을 모두 감소시켜 면역반응을 전반적으로 억제한다.

그렇다면 장기이식을 받은 사람들은 평생 면역억제제를 투여받아야 하고 그 결과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약한 면역력으로 늘 질병의 공포에 시달리며 살아가야 할까? 면역억제제 투여기간 중에는 감염증도 잘 걸리며, 장기간 투여한 환자에게서 암 발생률도 증가하는 부작용이 있다.

그러나 다행히 우리 몸은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이 문제를 일부에서는 해결하고 있다. 관용현상(tolerance)이 그것이다. 즉 인체가 외부에서 이식된 장기를 더이상 이물질로 보지 않고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되는 현상이다. 실제로 골수이식 등 장기이식을 하고 수년이 지난 후 면역억제제를 끊을 수 있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때에는 자신의 골수 세포와 도입된 골수 세포가 서로 싸우지 않고 공존함을 직접 볼 수 있다. 관용현상은 특히 이식된 장기에 기증자의 면역세포가 많이 포함된 경우에 잘 일어난다.

이식된 장기 속에 포함돼 있는 기증자의 면역세포가 오히려 수혜자의 조직을 이물질로 보고 공격할 수도 있는데 이를 이식편대숙주반응(GVHD)이라고 한다. 골수이식이나 소장을 포함한 여러 장기를 동시에 이식할 때처럼 이식 장기 내에 림프조직이 풍부할 때 잘 일어난다.

결국 면역반응은 개체가 이식된 장기에 대해서만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이식장기 내의 면역세포도 수혜자의 조직을 공격할 수 있다. 이때 어느 쪽이 강하냐에 따라서 거부반응이나 이식편대숙주반응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두가지 현상을 균형있게 조절하면 그 어느 쪽도 일방적인 승리를 할 수 없어 휴전상태가 만들어져 공생의 길이 열릴 수 있는데 이것이 관용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장기이식분야의 최종 목표는 어떻게 효과적으로 장기이식 후 관용현상을 계획적으로 유도할 수 있느냐 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최근 이 분야의 연구에 많은 결과가 나오고 있어 장기이식의 성공확률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있다. 앞으로 관련 기술과 경험이 축적되면 뇌를 제외한 거의 모든 장기를 이식할 수 있는 날도 멀지는 않을 것이다. 일부에서는 뇌이식조차 시도되고 있으나 성공한다고 해도 뇌가 이식된 것인지 뇌를 제외한 인체가 뇌에 이식된 것인지에 대한 철학적·윤리적 논쟁이 불가피할 것이다.

동물장기이식, 아직은 먼 길
 

2001년 영국에서 태어난 장기이식용 돼지. 유전자조작으로 면역거부반응을 일으키는 항원이 제거된 상태다.


장기이식의 또다른 형태는 이종이식이다. 즉 동물의 장기를 대신 사용하는 것인데 주로 돼지나 개코원숭이처럼 인간과 장기의 크기가 비슷한 동물이 주된 연구 대상이다. 이종이식은 면역거부반응이 워낙 강하고 인체에는 없는 바이러스나 곰팡이 등 병균의 침투 문제 등 해결해야 할 난제가 많아 아직 연구단계다.

그러나 비록 일시적이기는 하지만 이종이식이 가끔 행해지는 경우가 있다. 위급한 상황에서 장기 제공자를 찾지 못할 경우 시간을 연장하는 수단으로 행해진다. 1964년에 원숭이 신장을 사람에게 이식했으나 초급성거부반응(hyperacute rejection)으로 실패했으며, 1988년 스타즐 박사팀은 개코원숭이의 간을 사람에게 이식한 후 강력한 면역억제제를 투여해 약 2개월간 생존시킨 예가 있다.

이종 간의 극심한 면역거부반응을 피해나가는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면역거부반응을 일으키는 관련 유전자 중 일부를 없애거나 사람의 유전자로 바꾼 형질전환동물을 만드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세계 수많은 연구자들이 형질전환동물을 만드는 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며, 일부에서는 불완전하지만 성과를 거두고 있기도 하다. 앞으로 면역거부반응에 관여하는 수많은 유전자의 종류와 구조가 정확히 규명되고 여기에 걸맞는 적절한 형질전환동물들이 개발되면 본격적인 임상적용도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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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이명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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