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 AI를 주제로 기사를 쓰다 보면 주목할 수밖에 없는 기업이 있습니다. 다양한 국내 스타트업 중에서도 큰 두각을 드러내는 뤼튼테크놀로지스입니다. 뤼튼테크놀로지스는 2021년 또래 청년들이 함께 창업한 생성 AI 회사로 3년 만에 200만 사용자 가입이라는 실적을 올리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과연 어떤 사람들이 이런 회사를 이끌어 갈까 궁금해하던 중, 경영진 가운데 과학동아 독자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1월 29일 한달음에 뤼튼테크놀로지스 본사로 찾아갔습니다.
호기심 만수르 물리학도, 컴퓨터공학과 경제학에 빠지다
“동네 구립 도서관에 들어가면 항상 오른쪽에 과학잡지들이 있었어요. 특히 물리 이야기가 담긴 과학동아를 기다렸죠.”
박민준 뤼튼테크놀로지스 에이전트 연구 수석은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 처음으로 과학동아를 접했다고 회상했습니다. 물리를 좋아해 어린 시절부터 과학잡지 읽는 것을 즐겼다고요. 그는 잡지에 이해하기 힘든 ‘양자역학’ ‘상대성이론’과 같은 물리 이론이 나와도 허투루 넘긴 적이 없었다며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뉴턴 역학과 라그랑주 역학을 이해하고 싶어졌어요. 그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이 무엇인지 확인했는데, 대학교 수준의 지식이 필요하더라고요. 호기심 앞에서 지식의 난이도는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으로, 여러 서적을 찾아보며 혼자 그 개념을 이해했죠.”
중학생 시절까지는 이른바 ‘문과 학생’에 가깝던 그는, 고등학생이 되면서 급격히 물리학에 애정을 품었습니다. 서울대 물리천문학부로 진학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죠. 하지만 물리학에서 그치지 않고 컴퓨터공학, 금융경제학까지 내리 3개의 전공과목을 공부합니다. 복수 전공도 힘든데 어떻게 3개 전공을 할 생각을 했을까요. 기자의 질문에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아니었다”고 그는 웃으며 답했습니다.
박 연구 수석은 여느 이공계 대학생처럼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가 되는 길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군복무 시절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특정 분야를 깊게 공부하는 학자의 길보다, 더 넓은 눈을 가질 수 있는 시장 쪽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됐죠. 그러던 2019년, 군복무 시절에 편하게 법조문을 찾을 수 있는 앱을 만들었고 그때 코딩에 관심이 생겨 제대 후 컴퓨터공학과를 부전공으로 택했습니다. 새로운 배움에 재미를 붙인 박 연구 수석은 “평소 관심 있었던 경제도 배우기 시작했다”고 덧붙였습니다.
퀀트 연구 거쳐 창업하기까지
대학 시절까지의 이야기를 다 들은 후 좀 의아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물리, 컴퓨터공학, 금융경제학을 공부한 그의 앞길에 창업이란 선택지가 나타난 게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뤼튼테크놀로지스 창업의 시작은 아름다운 이유는 아니었어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격동기에 큰 좌절을 맛보며 탄생하게 됐죠.”
그가 설명한 창업의 과정은 이랬습니다. 뤼튼테크놀로지스의 이세영 대표는 고등학교 시절 100개 학교가 모인 한국 청소년학술대회(KSCY)를 만들었습니다. 이때 힘을 함께한 또래 친구 중 한 명이 바로 박민준 연구 수석이죠. 그때부터 이어진 KSCY는 13개국, 3000여 명의 청소년이 참가하는 아시아 최대 청소년 콘퍼런스로 자리 잡았습니다.
2020년에도 대규모 KSCY 행사가 기획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가 닥치며 이 행사가 취소되고 맙니다. 그들은 결국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어려운 1억 원이라는 큰 빚을 집니다. 그들은 좌절하지 않고 각자 그 빚을 갚으려고 매일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지냈다고 해요.
“결국 3달 만에 다 갚고도 돈이 조금 남았어요. 그 돈으로 무엇을 할지 고민하다 ‘우리가 잘하는 네트워크 커넥팅이라는 강점에 기술까지 더해지면 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이르렀고, 결국 이세영 대표가 창업을 결심했어요. 그렇게 2021년에 뤼튼테크놀로지스가 설립되게 됐죠.”
심상치 않은 창업 과정을 듣다 보니 글로번 퀀트해지펀드 회사인 월드퀀트에서 퀀트 연구자로 일하게 된 이유도 궁금해졌습니다. 그는 “새로운 회사를 운영하기에 앞서 큰 시장을 경험할 필요가 있다는 이세영 대표의 제안을 받았다”고 답했습니다. 퀀트 연구자는 시장 속 흐름을 숫자로 파악해 그 흐름에 맞게 투자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만듭니다. 그는 월드퀀트에서 숫자라는 명확한 데이터를 다루며 조금 더 과학적으로 생각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했습니다.
“퀀트 연구자가 하는 일은 좋은 주식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수치적 데이터로 바꾸는 거예요. 수치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선택은 틀릴 가능성을 낮추죠. 회사를 운영할 때도 데이터를 기반해 의사결정을 하려 해요. 데이터로 최선의 선택을 내리고, 그 선택의 오류는 다시 바로잡으며 올바른 의사결정 알고리즘을 만드는 겁니다.”
나의 경험에 꼭 맞는 직업을 만들다
그가 말한 과학적으로 생각하는 법은 일상생활에서도 적용됩니다. 그는 일상에서도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을 때 그 이유를 개인적인 이유에서 찾지 않습니다. 자신이 움직이는 시스템을 분석하죠.
“무언가가 실패했을 때 ‘더 열심히 해야지’라는 해결책을 내리는 건 의미 없다고 생각해요. 왜 게으르게 행동했는지 제가 처한 환경을 분석하고, 게으르지 않게 움직일 수밖에 없는 시스템을 만드는 식으로 고쳐나가죠.”
현재 박 연구 수석은 뤼튼테크놀로지스의 ‘AI 에이전트’를 개발하는 총책임자의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AI 에이전트는 그의 팀에서 최근 발표한 생성 AI 기술로 빅테크 기업의 대규모언어모델을 종합해 가장 좋은 대답을 내놓는 기술입니다. 이런 서비스에는 과학적 사고, 알고리즘 개발, 코딩, 의사결정, 사업 운영을 위한 경제적 지식까지 그의 경험들이 모두 녹아 있습니다. 꼭 맞는 옷처럼 딱 맞는 업무를 하는 것이 신기하다는 기자의 말에 그가 입을 열었습니다.
“저와 완전히 똑같은 능력과 경험을 가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어요. 그 경험을 관통하는 일을 찾을 수 있다면, 그 분야에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제 경험을 관통하는 직업을 잘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직업을 만들어내는 시대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