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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위는 멀쩡 개펄은 기름먹은 스펀지

광양만 기름유출사고 현장

한국 일본 등지의 연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게의 하나인 쏙들이 기름에 오염돼 비틀거리고 있다.


포구주변의 모래사장은 겉으로 기름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삽으로 파내려 가자 기름은 수 ㎝ 아래에 검은층을 이루며 침투해 있었다. 깨끗해 보이던 표층의 모래도 30㎝ 아래의 모래에 비하면 검은 빛깔을 띄고 있었다.

지난 9월 27일 밤 7시 20분경. 전남 광양만에서 선박 충돌사고가 발생했다. 광양항 부근 지진도 북서방 0.8마일 해상. 호남정유가 벙커C유 2천t을 실은 유조부선 제5금동호를 광양제철로 예인하던 중이었다. 광양항을 떠나 중국으로 출항하던 파나마 선적 9천t급 화물선 비지아샨(Bi Jia Shan)호는 시야 불량으로 인해 제5금동호를 발견하지 못하고 들이박고 말았다.

파손된 제5금동호는 피를 흘리듯 벙커C유 1천t을 바다로 토해냈다. 신고를 받고 긴급출동한 해양경찰청의 방제선과 각종 선박들이 흘러나온 기름을 오일펜스로 가두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기름은 조류를 타고 동쪽으로 확산돼 남해도의 어촌마을들을 차례로 덮치기 시작 했다. 다음날부터 광양만에서는 인간과 검은 기름의 전투가 시작됐다.

개펄 게구멍 통해 20㎝ 이상 오염

사고가 발생한 지 20일이 경과한 광양만은 외견상으로는 예전의 모습을 되찾은 것처럼 보였다. 해변의 바위마다 검게 남아 있는 기름의 흔적도 평온해 보였다. 포구마다 기름 푸대와 유처리제 깡통만이 처절한 잔해처럼 쌓여 있었다. 그러나 아직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고기잡이를 나가야 할 배들이 포구에 묶여 있고 마을 사람들은 아직도 해변마다 줄지어 앉아서 기름 묻은 바위를 닦아 내고 있었다. 바다 위에서는 이제 더 이상의 기름을 발견 할 수 없었고, 방제 작업도 거의 종결단계에 있었다.

1천t의 기름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남해도로 내려간 조사팀은 우선 오염 피해가 가장 심했던 염해 마을을 찾았다. 포구 주변의 모래사장은 겉으로 기름의 흔적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삽으로 파내려가자 기름은 수 ㎝ 아래에 검은 층을 이루며 침투해 있었다. 깨끗해 보이던 표층의 모래도 30㎝ 아래의 모래에 비하면 검은 빛깔을 띄고 있었다. 유기용매로 모래 속의 기름을 추출하자 유기용매는 금방 시커멓게 기름 빛깔로 변했다.

조사팀은 간조시간에 맞추어 해변의 위쪽부터 아래쪽으로 3군데의 단면을 조사하고 시료를 채취했다. 1개월 후에 다시 같은 장소에서 채집할 수 있도록 표시해 두었다. 앞으로 주기적으로 채취될 퇴적물 시료를 분석하면 탄화수소의 성분별로 분해되는 과정을 규명할 수 있게 된다. 벙커C유 중에는 분해속도가 아주 느린 방향족 탄화수소들이 많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이런 성분들의 지속성과 만성적인 독성작용의 영향을 규명해 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연구 과제다.

조사팀은 기름오염에 가장 취약한 환경인 개펄지역의 조사에 나섰다. 개펄은 많은 생물들의 서식처이며, 어린 생물들의 생육장이므로 매우 민감한 환경이다. 그러나 개펄을 오염시킨 기름은 제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오염 피해는 10년에서 20년 이상 지속될 수도 있다. 바지락 양식장인 정포리의 개펄은 밟으면 기름 먹은 스펀지처럼 시커먼 기름이 스며 나왔다. 조사팀은 오염된 퇴적물 시료를 채취하고 깊이별로 오염도를 측정하기 위해 채취관을 박았다. 여수 수산대의 조사팀은 일정한 면적의 개펄을 조사해 서식생물들을 채집했다.

개펄 속에는 밀려온 기름이 게구멍이나 갯지렁이 구멍 등을 타고 20㎝이상 침투해 있었다. 아직도 침투한 기름은 기름덩이 그대로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름덩이들은 주변의 퇴적물로 천천히 스며들어가게 될 것이고, 오염된 퇴적물을 먹는 패류나 여과섭식을 하는 패류, 갯지렁이, 저서 어류 등은 직접 오염물질에 노출되거나 먹이사슬을 통해 독성물질을 체내에 받아들여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이러한 영향은 각 생물들의 생물유효성(bioavailability)에 따라서 영향의 정도가 크게 다르게 나타난다.

다음날 조사팀은 여수에서 해양경찰청의 방제선에 탑승했다. 사고지점에서부터 남해대교까지와 남해대교에서 여수항까지 물속에 남아 있는 기름 농도를 연속 관측했다. 항해중인 방제선의 선상으로 끌어올려진 해수는 기름의 농도를 측정하는 형광분석기를 통과한다. 기름의 농도는 기록지와 계기에 나타날 뿐만 아니라 디지털 신호로 변환돼 컴퓨터에 계속 저장됐다.

사고지점에서 남해대교로 갈수록 수중의 기름 농도는 약간 증가하는 경향을 나타냈고, 남해대교에서부터 외해쪽의 여수항으로 갈수록 기름의 농도는 감소해 거의 0으로 떨어졌다 (표 1-2). 광양만 안쪽의 해수중 기름농도는 약 20ppb에서 60ppb의 범위에 있었다. 유분산처리제를 사용함에 따라 수중에 미세한 기름방울로 분산된 기름은 서서히 외해수와 희석되거나 입자상에 흡착돼 침강, 제거되고 있는 중임을 알 수 있었다.
 

(표1) 선박을 이용해 해수중의 기름농도를 연속관측한 결과(사고현장에서 남해대교까지)
 

이튿날 아침 조사팀은 다시 남해도로 돌아왔다. 오염이 심했던 화전마을의 간조선에서 기름에 범벅이 된 고둥들을 채집했다. 또한 바지락 양식을 하고 있는 10개의 어촌계에서 바지락을 50개체씩 채취했다. 바지락은 깨끗한 해수에 12시간동안 담가 두었다가 조직을 제거해 탄화수소 함량을 분석하게 된다. 섭취된 기름의 성분중에서 체내에 잔류하는 독성물질들을 분석해 보면 바지락이 기름을 얼마나 섭취했으며, 어떠한 영향을 받게 될지를 예측할 수 있다.

기름오염에 의한 생태계 피해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계속적인 오염 모니터링이 필수적이지만 실제로 이러한 연구는 한두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엑슨발데즈호 유출사고가 있었던 알래스카에서는 지금도 많은 과학자들이 주기적으로 조사를 실시해 환경이 회복되는 정도를 추적하고 있다.

기름의 방제작업이 끝나고 눈에 보이는 기름이 치워지면, 사람들은 그날밤의 검은 파도를 잊게 될 것이다. 하지만 기름으로 오염된 개펄 속에서 서서히 병들어 죽어 가고 있는 생물들에게는 앞으로의 살아가야 할 세월이 막막하기만 할지도 모른다.
 

(표2)선박을 이용해 해수중의 기름농도를 연속관측한 결과(남해대교에서 여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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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강성현 선임연구원
  • 사진

    정경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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