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내가 지금도 말해요. 서울에 있는 양화대교 방호울타리를 제가 만들어서 사람 여럿 살렸다는 말에 반해 저와 결혼을 결심했다고요.”
교량(다리)을 연구하는 학자의 러브스토리다웠다. 김호경 교수는 서울 마포구에 있는 양화대교 방호울타리가 자신의 결혼을 도운 일등공신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방호울타리가 얼마나 대단했기에 결혼까지 성사시켰을까.
김 교수가 박사과정 학생이던 1990년, 양화대교에는 유독 자동차 추락사고가 잦았다. 다리가 급하게 꺾어지는 곳에서 자동차가 종종 난간을 뚫고 한강으로 떨어졌던 것이다. 김 교수는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이용해 차도와 난간 사이에 방호울타리를 설치하면 사고를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를 서울시에 제안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사고가 현저히 줄어들어 다른 교량에도 적용하는 사례가 늘어났다.

우리 사회의 공공재를 다루는 학문
김 교수는 건설환경공학부의 가장 큰 매력이 이처럼 사회에 바로 기여할 수 있는 점이라고 말했다. 특히 상하수도, 교량, 댐, 터널, 도로 등 도시의 사회기반시설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이런 보람을 더 크게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제가 있는 연구실은 인천대교 같은 큰 교량이 강한 바람에 쓰러지지 않도록 만드는 내풍 설계를 연구하고 있어요. 수많은 사람들의 안전과 생명에 직결되는 문제지요.”
그래서 김 교수는 학생을 뽑을 때 가장 먼저 공공성을 생각하는지 살펴본다고 했다. 학생들이 졸업 후 공무원이 되거나 공공기업에 들어가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종종 건축공학과 건설공학을 헷갈린 채 지원하는 학생들이 있어요. 면접 때 집을 짓고 싶어서 왔다고 대답하는 학생들을 보면 ‘이 친구도 전공을 잘못 찾아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건축과 건설은 규모가 달라요. 우리가 하는 일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발주한 대형사업인 경우가 많습니다. 해외 차관사업의 경우 도시 전체를 통째로 개발하는 프로젝트도 있어요. 도로와 상하수도 기반시설을 설치하고, 다리와 댐을 만들면서 그 지역에서 30년 간 사업권을 확보하는 식이지요.”
김 교수는 건축과 건설의 차이점을 명쾌하게 설명했다. 대형건설사업의 경우 투자비를 언제 어떻게 회수할 수 있을지 계산하는 것도 중요해서, 건설관리 전공에서는 경영이나 경제도 함께 공부한다고 했다. 내친 김에 어떤 학생이 들어왔으면 좋겠는지 다시 한번 물어봤다.
“요즘에는 옛날 선배들과 다른 능력이 필요해요. 예를 들어 우리 기술력이 우수하다보니 해외시장으로 진출하는 일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요. 아무도 시도해보지 않았던 해외 프로젝트에 겁 없이 도전하는 도전정신이 꼭 필요합니다. 그리고 외국인과 함께 일하는 데 거부감이 없는 학생이 들어왔으면 좋겠네요.”

창의성이나 미적 감각에 대한 요구도 높았다. 예전에는 시설물을 최대한 싸고 빠르게 짓는 게 목표였지만 지금은 경제성이나 기능 외에도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중요해졌다. 사람들의 눈높이가 확 달라진 것이다.
김 교수는 특히 “앞으로 여학생들이 점점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동안 건설은 거친 남자들만의 세계라는 편견이 있었고 실제 건설환경공학부 신입생의 대부분은 남자였다. 하지만 지금은 학부의 경우 신입생 5명 중 1명이 여학생이고 대학원은 4명 중 1명이 여학생이다.
“현장소장처럼 강한 리더십과 카리스마가 필요한 자리도 있지만, 연구소처럼 꼭 그럴 필요가 없는 자리도 많아요. 앞으로 점점 더 길은 다양해질 것이고요. 저부터 그렇지 않나요?”
부드럽고 온화한 표정을 가진 김 교수의 말은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다. 수십 km에 이르는 초장대교량도 연구실에서 섬세한 설계와 실험을 거쳐 나오는 것이다.
“건설환경공학을 연구하는 일이 위험하고 힘들 수도 있지만, 업무만족도는 가장 높아요. 우리 학부 교수님들은 자녀에게 추천할 정도로 자신의 일을 좋아합니다. 우리 딸도 올해 대학을 가는데, 토목이나 도시공학, 건설 관련 전공에 지원할 계획이에요. 아빠가 하는 일이 즐거워 보였나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