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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어] 지하 1000m 과학자들의 놀이터! IBS ‘예미랩’과학동아 랩투어

 

전국에 한파가 몰아쳤던 1월 24일, 강원도 정선에 위치한 예미랩 지상 오피스. 이곳에 맹추위도 막지 못한, 열정 넘치는 과학동아 독자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청량리에서 기차로 2시간 30분이나 걸리는 먼 장소였지만, 10명의 독자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집합 시간보다도 훨씬 일찍 도착해 기다리고 있었다. 노푸름 독자는 “좋은 기회를 더 뜻깊게 만들기 위해 랩투어 하루 전날 나름 열심히 공부했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소중호 기초과학연구원(IBS) 지하실험연구단 책임기술원은 설렌 표정의 독자들을 따뜻한 환영 인사로 맞이했다.

 

과학자들을 위한 놀이터 ‘예미랩’

 

“이곳은 암흑물질의 ‘발견’을 위해 더 잘 ‘관측’하려는 곳이죠.”

소 책임기술원은 예미랩을 한 문장으로 이렇게 설명했다. 이어 “여러 신호들과 암흑물질의 신호를 구별하기 위해선 더 조용한 곳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 답이 바로 지하 1000m에 위치한 실험실이다.

 

암흑물질은 은하의 내부에 가득 차, 은하의 질량을 이루고 있을 것으로 추측되는 물질로 다른 입자와 상호작용하지 않아 검출하기 어렵다. 지상은 그런 의미에서 암흑물질을 찾기 매우 어려운 공간이다. 우주방사선 뮤온과 같은 입자가 매 순간 다른 입자들과 충돌하며 검출돼 가뜩이나 찾기 어려운 암흑물질의 흔적을 더 찾기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하 깊숙이 내려올수록 이런 입자들이 토양에 걸러진다. 소 책임기술원은 “10cm×10cm 면적을 기준으로 검출기를 지나가는 뮤온 입자가 지상에선 하루에 8만 6400개지만, 예미랩에서는 고작 2개로 약 4만 분의 1 비율로 줄어든다”고 차이를 설명했다.

 

예미랩에서는 암흑물질 연구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현재 IBS 소속 연구팀을 제외한 5개 연구팀이 예미랩에서 연구 중이다. 미세 중력파 연구를 하는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지진파를 관측하는 기상청, 무중력 상태에서 약물에 대한 효과를 연구하는 스타트업 등이다. 소 책임기술원은 “지하실험실의 장점을 연구에 잘 활용하려는 연구단체가 여럿 들어와 있다”고 설명했다.

그의 간단한 소개가 끝나자, 랩투어에 참가한 과학동아 독자들은 앞다퉈 질문을 시작했다. 이동화 독자(인천 해원중 1)는 “지금까지 예미랩에서 발견한 유의미한 암흑물질이 있었냐”고 물었다. 소 책임기술원은 “아직 예미랩의 암흑물질 탐색은 준비 단계”라며 “암흑물질을 탐색할 ‘코사인 100U(COSINE-100U)’ 장비, 중성미자 미방출 이중베타붕괴를 연구할 ‘극저온섬광단결정검출기(AMoRE-2)가 마련되는 6개월 후부턴 본격적으로 가동을 시작해 5년 이상 데이터를 모으면 유의미한 발견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조서연 독자(경기 태전중 2)는 “예미랩의 앞으로의 목표가 무엇이냐”고 질문했다. 소 책임기술원은 미소를 띠며 “예미랩에 지금보다 더 많은 연구단체가 들어와, 예미랩이 연구 도중 티타임도 가지고 의견도 나눌 수 있는 과학자들을 위한 놀이터가 되는 것”이라고 답했다.

 

방진복 중무장하고 1000m 지하로

 

지상 오피스에서 열띤 질의응답을 마무리한 뒤, 독자들은 드디어 설레는 마음을 안고 예미랩으로 향했다. 방진 마스크, 안전화, 안전모까지 단단히 무장한 독자들의 모습은 사뭇 비장해 보였다. 검은 먼지가 폴폴 날리는 철광석 광산을 가로질러 도착한 곳엔 사람들을 1000m 지하로 옮겨줄 케이지가 있었다. 과학동아를 30년이나 읽고 있다고 말한 김순용 독자는 “케이지에서 내려 회색 먼지를 밟으며 실험실로 가는 길이 달 표면을 걷는 듯한 느낌”이라며 “카트를 타고 이동할 때는 꼭 월면차를 타는 것 같았다”는 감상을 남겼다.

 

지하 1000m 아래에 도착 후 카트를 타고 이동한 곳엔 ‘저배경 감마선 측정 실험실’이 있었다. 암흑물질을 관측하려면 매우 낮은 배경방사능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예미랩은 매우 낮은 배경방사능 환경을 만들기 위해 검출기를 구성하는 물질뿐만 아니라 지하실험실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사용된 모든 물질의 감마선 수치를 정밀하게 측정한다. 예미랩의 저배경 감마선 측정기는 먼지에 의한 배경잡음을 막기 위해 투명 부스 속에 필터까지 설치했다. 공기 중 라돈에 의한 연속 붕괴 과정에서 생기는 감마선도 배경잡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액체질소를 기화시켜 만들어진 깨끗한 질소를 계속 흘려 측정 민감도를 유지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저배경 감마선 측정기의 측정 민감도는 지상과 비교해 1000배 이상 높다.

 

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중성미자의 성질을 파악하는 ‘AMoRE-2 실험실’. 지면이나 영상으로만 보던 지하실험실을 두 눈으로 목격한 독자들의 입에선 탄성이 터져 나왔다.

 

중성미자는 베타붕괴현상에서 발생한다. 이중베타붕괴가 일어나면 중성미자 두 개가 발생하는데, 이때 중성미자가 스스로 반입자라면 이중베타붕괴 속에서 중성미자가 방출되지 않을 수 있다. 지하실험연구단은 중성미자 미방출 이중베타붕괴 현상을 관측해 중성미자가 스스로 반입자일 수 있는지 확인하려는 것이다. 이를 밝히면 소립자 물리학의 표준 모형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할 수 있다.

AMoRE-2 실험 장비는 이 중성미자를 방출하지 않는 이중베타붕괴 흔적을 찾는 것으로, 검출기 위에 우주방사선 뮤온을 거르기 위한 스테인리스 수조를 올려놓은 형태다. 1000m 지하까지도 내려올 수 있는 뮤온이 남기는 흔적은 이중베타붕괴 현상이 남기는 흔적과 비슷하다. 때문에 꼭 이 둘을 구별해야 한다. AMoRE-2 실험실의 스테인리스 수조 속에는 체렌코프 효과에 의해 뮤온이 도달하는 순간 빛을 내는 아주 깨끗한 물이 들어있다. 만약 어떤 신호가 검출기에 검출되고 스테인리스 속 수조에서 체렌코프 효과에 의한 빛이 측정된다면 검출기에 검출된 것이 중성미자가 아닌 뮤온이라고 해석해 해당 데이터는 버리는 식이다. 조서연 독자는 “비싸고 복잡한 기구들이 아닌 물로 뮤온을 거른다는 사실이 매우 신기하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액체섬광계수기(LSC) 실험 공간은 직경 20m, 높이 25m의 웅장함을 자랑했다. 이곳에는 중성미자와 상호작용할 물질로 LSC를 사용한 2500t(톤)의 중성미자 검출기가 들어설 예정이다. AMoRE-2 실험실에선 검출기 위쪽만 물로 막았다면, LSC는 검출기 주변 사방을 물로 채워 신호 잡음을 막는 원통형 검출기다. 소 책임기술원은 “2025년 초쯤 실험을 위한 연구계획서를 완성하고 심사를 받아 승인되면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한 시간 반가량 진행된 지하실험실 투어를 마치고 독자들은 벅찬 표정을 지었다. 노푸름 독자는 “지하 1000m로 내려가니 귀가 먹먹하고 숨이 답답한 신체적 증상들이 있었는데, 그런 환경에서 연구를 진행하시는 연구자분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신재호 독자(경기 평촌중 3)는 “아직 양양 지하연구실에서 가져오지 못한 실험 장비들이 예미랩에 갖춰지면, 더 멋진 실험실이 될 것 같다”며 “기회가 된다면 1년 뒤 다시 오고 싶다”는 소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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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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