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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사 극장] 뉴턴은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떠올렸다?

‘과학자’ 하면 떠올리는 가장 유명한 인물 중 한 명은 17세기 영국의 자연철학자인 아이작 뉴턴이다. 우리는 그를 위대한 과학자로 알고 있지만, 뉴턴은 과학을 넘어 광범위한 분야를 연구한 지식인이었다. 뉴턴의 새로운 모습을 알아보자.

 

의혹 1 .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떠올렸다?

 

많은 위인전에서 뉴턴과 사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소개된다. 정말 뉴턴은 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떠올렸을까? 이에 대한 확실한 역사적 증거는 없다. 뉴턴이 스스로 그렇게 말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뿐이다. 말년에 뉴턴은 약 60년 전 학생 시절을 회상하며 떨어지는 사과를 친구에게 언급했다고 한다. 다시 말해, 사과나무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는 진위를 파악할 수 없는 ‘자전적 소설’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사과나무 이야기가 이토록 유명해진 이유는 무엇일까? 그러한 이야기가 뉴턴 당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뉴턴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유익’했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시기 그림에선 사과를 들고 있는 아기 예수가 종종 등장한다. 선악과를 따먹어 원죄를 지은 인간의 구원자로서 예수를 상징하는 그림들이다. 이러한 문화 속에서 사과나무 이야기는 신이 숨겨놓은 법칙을 뉴턴이 발견했다는 인상을 풍기기에 충분했다. 이렇게 사과나무 일화는 개인의 천재적 발상이 과학과 인류의 발전을 추동한다는 인식을 만들었다.

 

뉴턴의 사과나무 이야기가 스스로를 우상화한 꾸며낸 이야기라면, 그걸 믿는 것이 그렇게 나쁜 일일까? 뉴턴의 사과나무 이야기는 많은 이들에게 과학의 위대함을 알게 해주고, 과학자의 꿈을 불어넣지 않는가. 문제는 이 이야기가 과학을 바라보는 일반적 인식을 왜곡한다는 데 있다.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과학은 정말 뉴턴 같은 천재들의 번득이는 발상의 전환에 의해 발전했을까? 사과나무 이야기에 주목할수록 오히려 과학의 어떤 진정한 가치를 우리가 간과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사과의 우화는 만유인력의 법칙 발표를 가능하게 한 저변의 무수한 활동을 희미하게 만들었다. 만유인력의 법칙은 뉴턴이 당대 참조할 수 있었던 수많은 과학 활동이 축적되며 이뤄진 것이다. 예를 들어, 뉴턴의 동료 로버트 훅은 법칙 발표 전 뉴턴에게 두 천체가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힘으로 서로를 당길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편지로 전한 바 있다. 뉴턴의 하녀들이 은식기가 변색되지 않도록 막기 위해 알코올에 담갔던 것도 뉴턴이 망원경의 부품을 보관하는 데 도움을 줬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의 과학자들은 실험 증거를 수집하고 가설을 검증하는 데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다. 이들이 체계적으로 쌓아 올린 지식은 후일 또 등장하게 될 위대한 ‘발견’에 소리없이 지적 자원으로 활용될 수 있다.

 

사과의 우화를 한 과학자가 스스로를 멋지게 포장한 사례 정도로 받아들일 때, 인류의 진보를 가능하게 하는 체계적 활동으로서 과학을 이해하고, 이런 체계적 과학에 종사하는 우리 주변의 과학자들을 진정으로 바라볼 수 있다.

의혹 2. 뉴턴은 신이 없는 우주를 만들었다?

 

과학과 종교를 대립적으로 보는 관점에서 뉴턴은 종종 종교적 미신을 제거하고 과학적 법칙을 내세운 인물로 그려지곤 한다. 하지만 이는 뉴턴 개인에 대한 오류일 뿐만 아니라,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오해를 낳는다.

 

뉴턴의 신에 대한 관점은 그의 유명한 만유인력의 법칙에서도 발견된다. 만유인력의 법칙은 질량을 가진 물체들이 서로 끌어당기는 정도를 양적으로 계산하는 식으로 표현된다.

 

그런데 서로 연결되지 않은, 뚝 떨어진 두 물체가 어떻게 서로를 잡아당긴다는 걸까? 만유인력의 법칙을 처음 접했던 당대의 자연철학자들은 이 법칙이 신비주의적이라 비판하기도 했다. 우주를 거대한 기계의 작동으로 이해하고자 했던 당시 기계론자들이 보기에, 물체들이 연결되지 않고 ‘원거리 작용’만으로 움직이는 것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에 대해 뉴턴은 우주가 자동으로 움직이는 기계는 아닐 것이란 주장을 펼쳤다. 뉴턴은 오히려 신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창조주가 어디에서나 어느 순간에나 온 우주의 평안을 위해 개입한다고 생각했다.

 

“신은 영원하고 무한하며 전지전능하시니,
(중략) 그는 모든 것을 다스리고,
존재하거나 행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중략) 그는 항상, 모든 곳에 존재함으로써,
지속과 공간을 구성한다.”*

 

실제로 그의 대표적 저서,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이하 프린키피아)’에는 위와 같은 구절이 있다. 신에 대한 뉴턴의 이러한 언급은 당시 기독교인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한 말장난이 아니었다. 뉴턴에게 종교는 과학과 구별되는 별개의 영역이 아니라, 과학 활동의 근간이었다.

 

뉴턴은 오늘날 물리학자로서의 인상과 달리, 물리 연구보다 성서 연구에 더 많은 시간을 쏟아부었다. 그가 보기에 완전무결한 창조주가 설계하고 개입하는 자연은 수학적 원리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한 신의 역할을 “수학적 원리”로 설명해 낸 책이 프린키피아였다.

 

즉, 뉴턴의 입장에서 신의 존재는 과학과 대립적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신이 창조한 자연을 법칙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동기의 원천이었다.

 

의혹 3. 뉴턴은 사이비 과학인 연금술에 빠졌다?

 

‘금이 아닌 물질로 금을 만들고자 시도했다’는 것이 연금술을 매도하는 대표적인 어구일 것이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기 유럽의 수많은 자연철학자들은 현대인들의 입장에서 볼 때 ‘사이비 과학’으로 보이는 연금술에 매진했다. 연금술은 뉴턴이 성서 연구와 더불어 일평생 가장 많은 노력을 들인 분야였다. 현대 화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로버트 보일 역시 연금술을 40년간 연구했다. 그렇다면 뉴턴과 보일의 연금술 연구는 그릇된 믿음으로 시간을 허비한 사례에 불과한 것일까?

 

그렇게 단정짓기는 쉽지 않다. 여기서 말하는 ‘연금술’은 18세기 이전까지 화학의 주요 연구분야였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연금술사들이 금을 만들려는 시도를 한 것은 사실이나, 이는 연금술에서 수행된 연구의 일부일 뿐이다. 연금술사들은 금을 만드는 것 외에도, 광물에서 불순물을 제거하고 약제를 분류 및 처방하는 작업, 즉 오늘날 화학공학이나 의약학의 범주에 속하는 다양한 주제의 연구를 수행했다.

 

그렇다면 연금술은 현대 과학의 발전에 어떻게 기여했을까? 비록 연금술은 그 모습 그대로 현대 화학에 계승되지 않았지만, 연금술의 실험 결과 중 일부는 17세기 이후 원자론이 제안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나아가 연금술은 원자론과 같은 특정 이론의 출현뿐만 아니라, 오늘날 자연을 이해하는 핵심적인 방법인 실험의 물질적, 인식적 토대가 됐다. 연금술사들이 1000년이 넘도록 여러 재료를 혼합하고 정제하기 위해 고안하고 개량해 온 시험관, 삼각 플라스크 등과 같은 실험 기구들은 지금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기구들의 사용은 인간이 자연을 바라보는 방식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다줬다. 기구들을 이용해 물질을 조합하고 새롭게 만들어내는 활동은 ‘실험’이라는 새로운 과학적 방법론을 만들었다. 비록 금은 만들지 못했을지언정, 연금술은 인간이 자연을 수동적으로 관찰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변형을 가하거나 작용을 일으킴으로써 자연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활동으로서 ‘실험’이라는 전통을 현대 과학에 물려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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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유상운 국립한밭대 인문교양학부 교수
  • 에디터

    이창욱 기자
  • 일러스트

    김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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