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쓰는 물은 담수다. 담수는 바다에서 대기, 구름, 강, 다시 바다로 순환하며 지구에 생명체가 살 수 있게 해준다. 이런 물 순환이 호수와 댐, 수원을 끊임없이 채우는 불변의 과정이라 여겨왔을 것이다. 언제라도 수도를 틀면 깨끗한 물이 콸콸 나오듯이 말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전 지구적 물 순환 시스템에 문제가 생겼다. 어떤 곳엔 폭우가 퍼붓고, 건조한 지역은 더욱 메말라 간다. 과학자들은 물 순환의 변화가 극단적인 기후 재앙으로 돌아올 수 있음을 경고한다.
지구의 물은 육지와 바다, 대기를 통해 이동하며 순환한다. 물 순환은 토양을 비옥하게 유지하고 바다에서 육지로 물을 이동시키는 섬세한 시스템이다. 그런데 최근 지구 온도가 상승하면서 이런 시스템이 극단적으로 변하고 있다. 수십 년 동안 강수량과 증발률이 전반적으로 증가하며 물 순환이 강화된 것이다. 여러 요인이 있지만, 기온 상승으로 공기 중에 포함된 수분량이 늘어난 것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전 세계 물 순환 최대 7.4% 강화돼
지구의 물 순환 과정이 제대로 진행되는지 어떻게 조사할 수 있을까? 스페인 해양과학연구소(ICM-CSIC)는 위성으로 해수면의 염분 농도를 측정해 바다의 강수와 증발 사이의 균형을 분석한 연구결과를 2022년 4월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발표했다. doi: 10.1038/s41598-022-10265-1 해수면 염도를 분석하는 이유는 염도가 바다의 상호 작용에 따라 민감하게 변화하기 때문이다. 비가 내리면 바닷물이 희석돼 염도가 낮아지고, 해수면에서 물이 증발하면 염도가 높아진다. 이런 데이터는 물의 순환 변화를 감지하는 ‘우량계’처럼 활용할 수 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를 통해 일부 지역에서 해수면 온도가 증가하고 해저 혼합층의 깊이는 감소하는 현상을 포착했다. 바람이 약해지고 해수면의 온도가 상승하는 수역에 수심 수 m 이내에만 따뜻한 층이 형성되는 것이다. 그 결과로 바닷물이 수직 방향으로 섞이지 않는 성층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해수면으로부터의 증발이 심화돼 물 순환이 더욱 강화된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전 세계 물 순환이 최대 7.4%까지 강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전의 기후 모델링에서 추정한 값인 2~4%에 비해 훨씬 심각한 결과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 연구팀 또한 해양 염분 패턴을 측정해 시간에 따라 물 순환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추적했다.
그 결과 1970년~2014년에 적도에서 극지방으로 4만 6000~7만 7000km3 가량의 담수가 이동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전 기후 모델에서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담수가 극지방으로 밀려나며 물 순환이 강화됐다.
연구팀은 ‘사이언스 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물 순환의 변화는 도시 인프라, 농업, 생물 다양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강수량・강수확률↑… 전 세계 폭우 피해
물 순환이 강화되면 더 많은 양의 비가 자주 내린다. 지구의 온도가 상승하면 바닷물의 증발이 늘어나 더 많은 수분이 대기 중에 순환한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 따르면, 대기 온도가 1℃ 증가할 때마다 대기가 머금을 수 있는 수증기의 양은 약 7%씩 증가한다. 대기 중에 물이 많으면 강수 확률이 높아지고, 바다와 대륙에서 폭풍이 더 강해질 수 있다.
피해는 이미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2022년 8월 공개된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6차 평가보고서를 보면, 지난 한해 브라질, 나이지리아, 남아프리카 공화국, 인도, 파키스탄에 이르기까지 폭우가 전 세계를 강타했다. 호주, 서유럽, 중국 등지에서도 지난 몇 년 사이 기록적인 홍수가 발생했다. 최근 극지방의 강우량이 증가한 것도 대기 중 순환하는 물의 양이 증가한 결과로 추정된다.
기후변화로 겨울이 따뜻해지면 고위도, 산간 지방에서는 눈 대신 비가 내리며 더 큰 홍수가 발생하기도 한다. 비로 인한 홍수는 눈이 녹아 발생한 홍수보다 피해가 훨씬 더 클 수 있다. 눈은 일반적으로 늦은 봄이나 여름에 천천히 녹지만 비는 더 빨리 강으로 흘러가버려 강을 범람시키기 때문이다.
증발 많으면 ‘돌발 가뭄’ 일어나기도
무엇보다, 달라진 물 순환은 건조한 지역을 더 건조하게, 습한 지역을 더 습하게 하는 극단적인 기후를 만들고 있다. 물 순환이 달라진 여파는 전 세계적으로 균일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대체로 육지에서는 강우가 증가하는 추세이지만, 물 순환의 불균형으로 인해 극심한 가뭄을 겪는 지역도 생긴다. 증발이 가속화되면 물이 필요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대기 중으로 빠져나가 가뭄에 취약한 지역의 건조 상태를 더 심화시키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2년 유럽과 중국에는 극심한 폭염 끝에 ‘돌발 가뭄’이 닥쳤다. 돌발 가뭄이란 따뜻하고 건조한 공기가 토양과 내수 시스템에서 물을 빠르게 증발시키는 현상을 말한다. 육지에서 대기로 이동할 수 있는 물의 양인 ‘증발 요구량’은 대기가 얼마나 목마른지를 나타내는 척도인데, 온도가 높을수록 증발 요구량이 커져 물이 더 빨리 증발한다. 토양의 수분이 고갈되면, 지표면은 수분 감소로 더 뜨거워지고 이로 인해 더 건조해진다. 이 과정이 증폭되면서 해당 지역은 더욱 메마른다.
기온의 변화 외에 다른 환경적인 요인도 작용한다. 최근 한 연구에서는 인간 활동으로 배출되는 초미세 입자가 강우 패턴을 변화시킨다고 지적했다. 구름 응축 핵(CCN)으로 작용하는 초미립자(UFP)는 구름 속 수증기 방울의 크기를 바꾸고 빗방울 형성을 지연시켜 강우를 억제한다. 이로 인해 물 순환의 변화를 일으켜, 물이 부족한 지역에서 더 긴 가뭄을 야기할 수 있다.
‘스펀지 도시’가 해결책 될까
물 순환을 정상화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대책은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것이다. 기후변화의 영향을 줄이면 물 순환도 예전 수준으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추가로 토양의 능력을 회복시키는 방법도 있다. 인간이 농업과 산업 또는 가정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땅과 강에서 물을 관개하고 추출하는 것 또한 물 순환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대지가 물을 흡수, 정화, 저장하는 능력을 되찾도록 토양 침식을 조절하고, 잡초와 해충을 억제하고, 식물 뿌리 시스템을 안정화 하는 등 토양을 보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인간이 토지를 이용하는 방식이 지표면의 에너지와 물 균형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인식의 개선도 필요하다. 한 예로 유럽은 오래된 댐을 철거해 강의 자연 기능과 생태계를 복원하려 노력 중이다. 실제로 댐은 유해한 온실가스를 배출할 뿐만 아니라, 홍수와 가뭄을 모두 악화시킨다는 연구 사례가 있다. 2022년 6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댐을 설치하면 물에서 미세한 입자가 제거되고 강바닥이 거칠어져 강의 흐름을 방해하고 홍수를 악화시킬 수 있다. 강바닥에 형성된 거친 퇴적물이 물의 흐름을 방해해서 물이 역류하고 범람할 위험이 커진다는 것이다.
많은 생태학자들은 습지를 보호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습지가 물을 흡수하고 유지하는 ‘스펀지’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원리로 2018년 중국 정부는 도시의 물 순환을 원활히 지원하기 위해 ‘스펀지 도시’를 만드는 아이디어를 내놨다. 스펀지 도시는 콘크리트 대신 구멍이 많은 다공성 토양을 활용해 도시를 건설하는 개념이다. 물이 토양을 잘 통과하면 자연 정화 기능이 살아난다. 또 가뭄 때는 사용할 물을 저장하고, 홍수 때는 고인 물을 제어하기가 용이하다. 나아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녹지 공간을 확장하는 데도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doi: 10.1016/j.landusepol.2018.03.005
※ 이종림
마이크로소프트웨어와 과학동아에서 기자로 일했다. 현재 프리랜서 과학기자로 활동하며 다양한 매체에 IT 신기술, 흥미로운 과학 연구, 우주, 환경, 암호화폐 등을 주제로 기고하고 있다. 미국캠핑여행기 ‘그것은 하나의 여행이었다’를 펴냈으며, 유튜브 과학채널 ‘위클리사이언스(WeeklyScience)’를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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