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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TI보다 정확한 유전자 검사 체험기

탈모 98점, 아토피 피부염 29점?

“탈모는 안심? 아토피는 주의?”

 

1월 3일 수요일, 조용하던 과학동아 편집부 사무실 한 구석이 시끌벅적해졌습니다. 과학동아가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HGP)’ 종료 20주년을 기념해서 쓴 유전체 특집기사(2023년 12월호)의 이벤트, 유전자 검사 결과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과학동아는 일상으로 부쩍 다가온 유전자 검사 기술을 체험하기 위해 유전체 분석 기업 마크로젠으로부터 유전자 검사 플랫폼 ‘젠톡(GenTok)’ 이용권을 제공받았습니다. 과학동아 기자 5명과 기사를 읽고 지원한 독자 15명이 유전자 검사에 참여했습니다.

 

‘과학동아 DNA’ 있을까?

 

젠톡 유전자 검사는 스마트폰 앱을 통해 진행됩니다. 유전자 검사 키트가 배달되면 설명대로 키트에 침을 넣어 밀봉한 후 키트를 반송합니다. 젠톡 측에서 침의 DNA를 추출하고, 실험한 후 분석 결과를 알리는 데는 열흘 정도가 걸립니다. 결과는 앱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자들은 “과학을 좋아하는 사람들만 가지고 있을 특별한 DNA 같은 게 있을까” 농담을 주고받으며 결과를 기다렸죠.

 

결론부터 말하면, 아쉽게도 그런 건 없었습니다. 2023년 젠톡 올패키지 유전자 검사는 ‘영양소’ ‘운동’ ‘피부와 모발’ ‘식습관’ ‘개인특성’ ‘건강관리’ 등 총 6개 분류의 69개 항목에 관한 유전자 검사 결과를 제공합니다. 130쪽에 달하는 유전자 검사 ‘캐해(캐릭터 해석)’를 읽고 있으려니, 훨씬 자세한 유전자 버전 MBTI를 읽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몇 가지 검사 예를 들어볼까요? 제 경우 ‘남성형 탈모’에 걸릴 확률은 거의 없고(98점), ‘아토피 피부염’은 상당히 주의해야 한다(29점)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카페인 대사 점수는 보통(75점)이니 커피는 적당히 마시고, 불면증(55점)이 있을 확률이 있으니 수면 환경을 잘 가꾸라는 조언을 들었습니다.

 

참가자 대부분은 유전자 검사와 본인의 경험이 일치해서 재밌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피선나 독자는 “아침형 인간으로 살고 싶었지만 항상 새벽에 일어나기 어려웠다”며, “그런 성향이 유전적으로 설명돼 후련했다”고 밝혔습니다. 황인주 독자는 “가족 중 나만 사춘기에 여드름이 올라왔는데, 유전적 특성이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는 소감을 남겼죠.

 

검사 방법   DNA칩으로 단일염기변이(SNP) 검사

 

어떻게 유전자 검사로 수십 가지 신체적 특징을 알 수 있을까요? DNA 돌연변이는 종류가 다양합니다. 이중 젠톡 유전자 검사에서 확인할 수 있는 돌연변이는 ‘단일 염기 다형성(SNP嘄ingle Nucleotide Polymorphism)’입니다. DNA는 이중나선 내부에 아데닌(A), 티민(T), 사이토신(C), 구아닌(G)이라는 네 종류의 염기가 이어진 구조입니다. 네 염기의 순서에 따라 단백질의 재료가 되는 아미노산의 종류가 정해지죠.

 

SNP는 이 염기 하나가 다른 염기로 바뀌는 돌연변이입니다. A가 T나 C, 또는 G로 바뀌죠. 그 결과 유전자를 통해 만들어지는 단백질의 구조가 바뀌면서 신체적 조건이 다양하게 달라집니다.

 

돌연변이는 ‘DNA 칩’이라고 알려진 ‘마이크로어레이’ 기술을 써서 찾습니다. DNA칩은 유리나 반도체 기판 위에 DNA 조각을 붙여놓은 형태입니다. 우선 칩 표면에는 돌연변이 DNA 가닥에 상보적으로 결합하는 DNA를 붙입니다. 그리고 피검사자의 침에서 추출한 DNA를 증폭해 DNA 칩 위로 흘려보냅니다. 만약 피검사자의 DNA에 돌연변이가 있다면 칩 위의 DNA와 결합할 겁니다. DNA칩은 DNA가 결합하면 형광을 내도록 만들어져 있어, 유전자 변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DNA칩에는 이러한 검출용 DNA가 종류별로 가득히 붙어있습니다. 여기에 DNA를 흘려보내주면, 한번에 다양한 돌연변이를 검사할 수 있죠. 예를 들어, ‘남성형 탈모’ 항목에서는 지금까지 탈모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진 3개 유전자(모낭 세포 파괴 유전자 ‘Chr20p11’ 등)의 5개 유전 변이를 확인합니다. 그리고 이 결과를 이전 유전자 검사 고객 통계 데이터와 비교해 보여줍니다. 데이터에 따르면 한국인은 탈모에 악영향을 미치는 유전변이를 평균 5개 정도 가지는데, 제게서는 2개의 유전변이만 발견됐습니다. 가족력을 생각해봐도 맞는 결과입니다.

 

결과 해석   점수와 유전율 함께 고려해야

 

예측과 달라서 인상적인 부분도 있었습니다. 권민경 독자는 “검사에서는 피부가 좋고, 알코올 분해를 잘한다고 나왔는데 실제 경험과 달라서 인상적이었다”는 소감을 남겼습니다. 왕진수 독자도 “생각과 다르게 느껴지는 부분이 예상 외로 많았다”는 감상을 들려줬죠. 제 경우에도 원형 탈모에 영향을 주는 10개 유전인자 중 4개만 발견돼 원형 탈모에 걸릴 위험에서 비교적 안전한 편이라고 나왔지만, 원형 탈모로 고생한 적이 있습니다.

 

유전자 검사와 실제 경험의 불일치가 일어나는 이유는, 현재 상태를 결정하는 데는 유전자만큼 ‘환경’ 요인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유전적 요인이 기여하는 비율을 나타내는 수치인 ‘유전율’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젠톡을 운영하는 마크로젠 측은 “유전율이란, 해당 특성이 나타나는 데 미치는 여러 요인 중 유전적 요인이 기여하는 영향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고 답했습니다.

 

‘아토피 피부염’의 유전율이 75%라면, 아토피 피부염에 미치는 다양한 환경 요인(스트레스, 식습관, 음주 등) 외에 유전자가 미치는 영향 정도가 약 75%라는 뜻입니다. 유전적 요인에 꽤나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뜻이죠. 원형 탈모의 경우 유전율은 매우 낮습니다. 유전자보다는 스트레스 등 환경적 요인이 더 큰 영향을 준다는 뜻입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원형 탈모를 앓았던 때 역시 스트레스가 큰 대학원 졸업 무렵이었고요.

 

유전자 검사 결과를 받은 후 며칠은 무슨 일만 생기면 ‘유전자 탓’으로 돌리곤 했습니다. “편집장님, 늦잠 자서 죄송합니다. 그런데 제가 유전자 검사 결과 저녁형 인간이라서 어쩔 수 없어요.” 같은 식이었죠(물론 실제로 지각을 하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모든 일을 유전자 탓으로 돌릴 수는 없습니다. 유전자 검사 결과는 오로지 유전자형에만 근거한 저의 ‘캐해’잖아요. 검사 결과가 ‘저녁형 인간’으로 나왔다 하더라도, 그것이 어제 새벽 늦게까지 유튜브를 보다 늦잠을 잤던 제 행동을 정당화해주진 않죠.

 

유전자 검사는 내 성향을 알아보고, 더 건강한 생활을 도와줄 훌륭한 참고서처럼 느껴졌습니다. 나아가 마크로젠 측은 “유전 변이에 관한 연구가 진행되면 현재의 결과 해석이 달라질 수도 있다”며, “2024년부터는 69종에서 60종 더 늘어난 129가지 항목의 유전자 검사를 진행할 수 있는 뉴 올패키지 검사를 시행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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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이창욱 기자
  • 디자인

    이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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