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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책] 재난에 맞서는 과학: 오늘의 과학 탐구

재난에 맞서는 과학: 오늘의 과학 탐구

박진영 지음│민음사│216쪽│1만 7000원

 

재난 앞에서 분노하기는 생각보다 쉽다. 분노 이후의 단계가 어렵다. 누군가는 재난에 머무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며 자신만의 정의에 빠지지만, 누군가는 재난과 분노가 휩쓴 자리에서 이것이 반복되지 않을 방법을 생각한다. ‘재난에 맞서는 과학’은 누구나 손 들고 참여해 함께 재난을 막는 과학을 제안한다.

 

‘재난에 맞서는 과학’의 중심엔 과학이 맞서지 못했던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십수 년 동안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전국 수만 가정에서 폐질환 환자가 발생한 화학물질 사고다. 저자는 이 엄청난 참사가 사회적 재난이라는 사실부터 설명해야하는 현실을 문제의식에 아우른다.

 

저자는 “아무리 자명한 근거가 있더라도 과학 그 자체만으로 사람들의 인식을 바꿀 수 없다.”고 지적한다. 위험성을 충분히 검증하지 않은 채 가습기살균제를 판매한 기업의 과학, 가습기살균제의 유해성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기업의 요구대로 조작한 ‘청부과학자’를 처벌하는 과학, 그리고 이런 재난에 맞서기 위한 과학이 나뉘는 경계를 예민하게 짚는 시도다.

과학이 여러 개란 사실이 많은 사람에겐 여전히 낯설다. 과학은 구체적인 상황을 초월한 절대적인 체계이며 그 자체로 수용해, 자신의 인식을 과학에 맞게 바꿔야한다는 주장이 우리에게 더 친숙하다. ‘재난에 맞서는 과학’은 이 객관적이며 확실한 과학적 근거라는 확신에 의문을 던진다. 위험성이 ‘불확실한’ 가습기살균제의 판매, 긴 시간이 걸렸으나 피해자 상당수가 납득하지 못한 피해 및 진상 규명 과정의 한계는, 이미 완성된 자명한 과학을 적용하면 된다는 인식에 의존한 까닭이다.

 

‘재난에 맞서는 과학’을 위해 저자는 과학적 사실이 “신뢰를 얻기 위해 합의하고 소통하는 과정”과 그 사실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사회”를 강조한다. 나아가 재난 피해자들을 구제하고 새로운 재난을 막는, ‘누구나 손 드는 과학’을 제안한다. 피해자들, 피해자들과 연대하는 전문가 및 활동가가 직접 만드는 과학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누구나 손 드는 과학은 연구되지 않았거나 연구가 불충분한 영역에서 닥칠 재난에 맞선다.

 

더 확실한, 더 많은 근거로 상대를 압도하는 방식은 과학과 멀어지고 있음을, 저자는 깊고 낮은 지점부터 단단하게 설득한다. 재난에 맞서는 과학은 다양한 과학에서 출발할 것이다.

다른 어느 과학자도 아닌 로버트 M. 새폴스키가 ‘행동’을 쓴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 중 하나다. 누구나 쓰기 어려운 주제인 데다, 새폴스키야말로 이 주제의 적임자여서다.

 

“왜 그러고 살아?” 영화나 드라마에 종종 나오는 대사다. 좋거나 바람직한 장면에서 나오는 경우는 물론, 없다. 최악의 행동을, 그것도 반복하는 인물들이 이 말을 듣는다.

 

대부분 저 질문의 의도는 최악의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훈계다. 최악의 인물을 보는 사람들도 그 의도에 동조한다. 행동의 모든 것은 이미 명확하다고 믿는 까닭이다. 최선과 최악의 행동의 정의와 동기, 하거나 하지 말아야하는 이유 말이다.

 

새폴스키는 행동의 명확함 속으로 새삼스레 파고든다. 세계적인 신경과학자인 그는 이미 알았을 것이다. 최악과 최선의 행동 사이의 경계나 그것들이 일어나는 이유는 물론, 하거나 하지 않는 방법까지 무엇도 간단, 분명하지 않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는 ‘행동’에서 생물학과 신경학이 결합한 그의 신경과학 지식과 뇌의 신경생물학, 뇌를 자극하는 호르몬의 내분비학, 인간 개체의 유전학, 인간들이 모인 역사학, 도덕철학을 아우른다.

 

행동이란 거대한 주제를 적확한 구성으로 분석한 통찰력에, 흥미를 잃지 않고 계속 읽도록 이끄는 필력이 더해졌다는 점도 ‘행동’의 큰 장점이다. “(협동성을 촉진한다고 알려진 호르몬인) 옥시토신은 나와 같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친사회성을 높이지만 타자들에 대해서는 자발적으로 고약하게 굴도록 만든다.” 같은 문장은 예리해서 훨씬 재밌다. ‘자발적으로 고약하게’는 20년 넘게 개코원숭이와 동고동락한 영장류학자이자 인간 뇌를 혁신적으로 연구한 신경과학자인 새폴스키여서 가능한 표현이다. 인간의 이런 한계가 그를 괴롭히며 ‘행동’을 쓰게 했다.

 

‘행동’은 우리 행동의 한계를 직시하고, 스스로 더 나은 행동을 하며, 가장 나쁜 행동은 피하도록 도와줄 것이다. 그리고 무려 1000쪽 넘는 책을 쓴 새폴스키의 행동을 웃으며 이해할 것이다. 이 모든 경험을 돕는 탁월한 번역도 함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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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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