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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밤이면 두 눈이 별이 되는 길고양이, 매력냥이랍니다.
달과 별이 뜨는 뒷골목에서 살고 있고요,
팍팍한 도시에서 사람들의 생선가게나 털면서 힘들게 살고 있어요.
생선을 훔치다가 야단을 맞는 것이 일상인 힘겨운 삶이랍니다.
그래도 어르신 고양이들은 도둑 고양이라고 불리며 사람을 무조건 피해다니던 시절보단 많이 좋아진 거라고 말씀하세요.
이제는 미래를 꿈꿀 수도 있어요. 언젠간 제가 좋아하는 생선이 가득한 바다로 떠날 거예요.
제가 좋아하는 대장냥이와 같이요!
미녀 기자님의 손을 빌려 과학동아 독자 여러분께 우리 뒷골목 고양이들이 사는 이야기를 들려 드릴게요.



매력냥이가 뒷골목에서 살아가는 법

대장냥이는 이 근방에서 제일 센 수고양이에요. 반경 500m 안에서는 당해낼 고양이가 없어요. 얼마나 힘이 세냐면요, 1년 전 대장냥이가 처음 나타났을 때 골목대장이었던 춘식이가 대장냥이의 앞발 휘두르기 한 방에 옆동네로 도망갔어요. 한 달도 안돼서는 뒷골목 모든 고양이를 제압했지요. 그 뒤로 뒷골목 암고양이는 모두 대장냥이의 노예♥가 되었어요.

대장냥이가 지배하는 이 동네에 얼마나 많은 고양이가 살고 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대부분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서 숨어 살고 있거든요. 뭐 간혹 대장냥이 주변에서 얼쩡거리며 아부하는 수컷들이 있긴 한데 매번 얼굴이 바뀌더라고요. 각자 먹고 살기도 바쁜데 어떻게 다른 고양이까지 신경쓰겠어요. 그래도 소문은 굉장히 빨리 돌아요. 얼룩이네가 이번에 새끼를 5마리를 낳았다더라, 지난 주에 차에 치어서 세상을 뜬 옥상댁이 살던 곳에 뉴페이스가 들어왔다더라, 이런 소문들 말이에요.

사실 이 동네 고양이 중에서 전 매우 어린 편이에요. 태어난 지 6개월 정도 밖에 안됐어요. 그래도 길고양이 사회 안에서는 충분히 어른으로 대접받아요. 이미 어른이 되는 과정도 거쳤고요! 어른이 됐던 그날은 지금도 기억해요. 몸이 평소와 달랐거든요. 식욕도 없고, 뱃속 깊은 곳에서 열이 홧홧하게 올랐어요. 온몸이 간질간질한데 정확히 어디가 간지러운지 모르겠고, 바닥과 벽에 비비고 뒹굴었지만….

참아보려고 소변도 자주 봤지만 소용이 없었고요. 이 이상한 느낌을 해결해주는 고양이가 있다면 뭐든 해줄 수 있을 것 같아서 제가 추구하던 새침한 이미지고 뭐고 없이 되는 대로 소리를 지르고 울었어요. 제가 우는 소리를 들은 길건너 신입냥이가 와서야 이 힘든 과정이 해결이 됐어요. 그 결과로 지금 제 뱃속에서는 예쁜 아기가 자라고 있답니다. 신입냥이는 두 달 전에 우리 영역에 들어온 수고양이에요. 대장냥이가 와주길 바랐지만…, 대장냥이는 어떤 암컷에게도 눈길을 주지 않는 차가운 도시 고양이인가봐요.
 

인간도, 고양이도 힘들다

요즘 대장냥이가 신경이 날카로워졌어요. 대장냥이의 명성을 듣고 찾아온 고양이가 늘어나 먹을 것이 부족해졌거든요. 우리가 비록 길고양이지만 사냥 실력 하나는 끝내줘서 쥐나 작은 새를 잡아 먹었는데 고양이가 많아지니까 쥐들이 다 도망갔는지 눈에 안 보일 정도로 사라졌지 뭐예요. 게다가 고양이가 하도 많아지니까 제가 가끔 생선 가게를 털 때 눈감아주던 사람들이 이젠 눈에 불을 켜고 고양이를 쫓아내기 시작했어요.

고양이 사이에서도 묘(猫)심이 흉흉해 지고 있어요. 대장냥이 눈을 피해 발정이 온 수고양이들이 싸움을 벌이거든요. 남는 것은 상처 뿐이고, 운이 나쁘면 인간이 휘두른 작대기에 맞을 수도 있는데…. 같은 고양이가 싸우는 것을 보면 참 슬퍼요. 저 친구들도 사실은 힘들게 살아남았을 텐데 말이에요.
 
길고양이는 집에서 사람의 보호를 받고 사는 고양이보다 수명이 훨씬 짧아요. 집고양이는 평균 15년이나 사는데 비해서 우리 길고양이들은 3~4년 정도가 한계거든요. 거기다…, 갓 태어난 아기 고양이는 태어난 지 6주 안에 절반 이상이 죽어요. 범백혈구감소증이라고 바이러스로 인한 전염병이 치명적이고요, 자동차에 치이기도 하고, 요즘처럼 먹을 것이 부족하면 영양실조로도 죽지요.

이렇게 살기 힘들어지면 결국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밖에 없어요. 음식물 쓰레기 봉투는 배고픈 길고양이를 유혹하는 강력한 도구예요.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로 뜯기도 쉽고요. 잘 보이지도 않고 힘들게 사냥해야 하는 쥐에 비하면 아주 진수성찬이지요. 사람에겐 좀 미안하지만 저희도 일단 태어났으면 먹고 살아야죠.

밤마다 힘들기도 엄청 힘들어요. 이제 아기도 낳았겠다, 어엿한 어른이지만 본능이 억제가 안돼요. 고양이가 주변에 많아지니까 당연히 발정하는 고양이도 많아졌어요. 문제는요, 저 분명히 아기 낳은 지 얼마 안됐는데 왜 또 몸이 달아오르는 걸까요? 밤마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요상한 울음소리가 어느덧 제 목에서도 나오는 것을 깨달으면 눈물이 나요. 저도 이렇게 힘든데 밤마다 이걸 듣는 사람들은 어떤 기분일까요? 미안해요, 하지만 이렇게 태어난 걸요.
 

평화를 찾은 뒷골목

대장냥이가 동네 암고양이 인기 No.1이라고 이야기했던가요? 커다란 덩치, 날카로운 눈빛, 다부진 근육 위로 보이는 자잘한 상처…. 대장냥이 매력의 화룡정점은 왼쪽 귀랍니다. 어디서 싸우다 그랬는지 왼쪽 귀 윗부분이 잘려있거든요. 게다가 어떤 암고양이에게도 눈을 돌리지 않는 그 시크함! 대체 대장냥이의 애정을 한몸에 받을 암고양이는 누가 될까요?

대장냥이가 처음부터 암컷에게 관심이 없었던 건 아니에요. 뒷집 할매냥이가 하는 말이 소싯적에 대장냥이는 온 동네 암컷을 울리고 다니는 난봉꾼이었다고 해요. 그러던 어느 날, 인간이 가져다 둔 이상한 장치에 호기심으로 다가갔다가 하루 동안 사라졌던 사건이 있었대요. 그 이후로 귀에 상처도 생기고, 더 이상 암고양이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되었다고 해요. 혹시 그 때 운명의 상대라도 만났던 걸지도 모르겠어요.

생각해 보면 요즘들어 이성에게 관심이 없는 고양이가 늘어나고 있긴 해요. 바로 옆에 발정한 고양이가 있는데도 닭이 소 보듯 보기만 한대요. 인간들 사이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보고 ‘초식남’이니 ‘건어물녀’니 하는 별명을 붙이는데 육식 동물인 우리를 ‘초식묘’ 이렇게 부를 수도 없고, 거참.

이상한 고양이가 늘어나면서 살기 좀 편해지긴 했어요. 일단 새끼를 잘 안 낳으니 먹이가 충분해져 사냥감을 다툴 일이 없고요. 주변에 발정하는 고양이가 없으니 저도 좀 편해졌어요. 시도때도 없이 달아오르지도 않고, 우아한 밤의 숙녀로 돌아다니고 있거든요. 사방천지 발정음으로 난무하던 동네가 조용해지니까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인간들도 좋은가봐요. 예전에 저만 보면 쫓아내지 못해 안달이었는데 이젠 가끔 맛있는 것도 가져다 주거든요! 이 평화가 얼마나 갈진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렇게 말할래요. 카르페디엠(Carpediem), 지금 이 순간을 즐기라고요.



김재영

김재영 대한수의사회 부회장은 길고양이가사회적이슈로 떠오르기 전인 2000년부터 고양이 복지를 위해 운동해왔다.
도둑 고양이대신 길고양이라는 단어를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했으며, 길고양이와 사람이 함께 공존하기 위한 방안을 찾고 있다.
김 부회장은 TNR은 단순히 개체 수조절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광견병 예방 등 인간에게도 퍼질 수 있는 인수공통질병을 예방하는 데도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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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오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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