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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그노벨상] 좋은 과학은 웃긴 과학 (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올 한 해, 수많은 이그노벨상 수상 연구들을 둘러봤다. 연구들을 보고 있자면, 도대체 이 많은 연구에 상을 주자는 발상을 떠올린 사람은 누구였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주인공은 ‘황당무계 연구 연보’의 창간자이자 편집자인 마크 에이브러햄스다. 10월 25일, 화상 인터뷰를 통해 이그노벨상을 만든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었다.

 

신생 이그노벨상, 협박(?)을 당하다

 

잿빛 머리에 또박또박한 말투. 한없이 진지한 표정을 짓다가도 이야기를 할 때면 반짝이는 눈동자. 뒤로 보이는 벽에 걸린 ‘이그노벨’ 현수막. 이그노벨상의 창시자, 마크 에이브러햄스(사진)를 드디어 만났다. 1991년부터 올해까지 햇수로 33년째. 이그노벨상이 이렇게 계속될 줄 알았느냐는 질문에 그는 놀랍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첫해 시상식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어요. 입소문을 탄 덕에 다음 해 시상식도 치를 수 있었죠. 금방 잊혀질 줄 알았는데 운이 좋았어요.”

이그노벨상이 만들어진 이유는 여러 인터뷰와 책을 통해 이미 널리 알려졌다. 미국 하버드대 응용수학과를 졸업하고 컴퓨터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일하면서 과학 농담을 쓰는 걸 즐겼던 그는 자기의 농담을 실어줄 과학 유머 잡지를 찾았다. 정신차려보니 본인이 ‘황당무계 연구 연보(AIR)’라는 유머 잡지의 창간자이자 편집자가 돼 있었다. 이그노벨상은 이 잡지에서 시작됐다. AIR의 편집자들은 ‘다시는 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되는 업적’을 이룬 사람들에게 상을 주기로 했다.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95년, 에이브러햄스는 영국 옥스퍼드대 동물학 교수이자 당시 영국 정부의 최고 과학 고문이었던 로버트 메이 경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그해 이그노벨상 수상자 중에는 우유에 시리얼을 말았을 때 어떻게 눅눅해지는지를 탐구한 영국인 과학자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메이 경은 이 수상이 영국 과학자들을 웃음거리로 만들었다고 생각했어요.”

 

“솔직히 처음엔 그 편지가 농담인지 진지한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는 에이브러햄스는 가벼운 어조로 답장했지만, 더욱 심각한 내용의 답장이 돌아왔다. 메이 경은 이그노벨상이 영국 과학계를 모욕했다고 여기고 있었다.

이그노벨상은 모욕인가 농담인가

 

곧이어 국제학술지 ‘네이처’와 영국 언론에 이그노벨상에 대한 메이 경의 비판이 실리며 일이 커졌다. 메이 경은 네이처와의 인터뷰에서 “이그노벨상 수상 연구는 실제로 진지한 연구자들이 성실하게 진행했다”며, “이그노벨상이 진지한 과학 프로젝트를 비웃게 만드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메이 경이 염두에 둔 사례는 미국에서 수여되는 ‘황금 양털상’이었다. 황금 양털상은 미국 정부의 예산을 낭비한 사업에 수여되는 상이다. 그런데 이 상이 미국 정부에서 자금을 지원한 연구들에 주어지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과학자들이 세금으로 엉뚱한 짓을 하고 있다고 여기게 만들었다. 결국 황금 양털상은 과학 연구 지원을 축소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그노벨상의 목적은 다르다. 이그노벨상은 수상자를 모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수상자들이 한 연구의 즐거움을 함께 나누고 널리 알리기 위해서 수여된다. “그래서 이그노벨상은 과학자들이 직접 정하고 수여합니다. 혹시나 모욕으로 느낄까, 수상자들에게도 먼저 연락해 상을 받을 지 물어봐요.”

 

결국 메이 경의 비판은 영국 과학계가 얼마나 엄격하고 뻣뻣한 곳인지 보여주는 데 그치고 말았다. 이그노벨상은 그후로도 꾸준히 열렸고, 영국 과학자들도 꾸준히 이그노벨상을 받았다. 파티는 계속된다. 에이브러햄스가 덧붙였다. “논란이 된 이듬해에도 영국 과학자가 이그노벨상을 받았어요. 통화 중 수상자가 갑자기 본인이 로버트 메이의 친구라면서 저한테 묻더군요. ‘메이는 제 수상을 알고 있나요?’라고 말이죠. (웃음)”

 

과학애호가들의 축제, 이그노벨상 시상식

 

메이 경이 한 번이라도 이그노벨상 시상식에 참석했더라면 크게 걱정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최근 몇 년 동안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으로 온라인으로만 중계됐지만, 이그노벨상 시상식은 유머러스한 진행으로 유명하다. 시상식은 관중들이 종이비행기를 무대로 날리면서 시작된다. 수상 연구팀들은 각자의 연구 콘셉트에 맞게 옷을 차려입고 연구를 최대한 짧고 쉽게 설명한다. 지루해지는 순간 무대에서 쫓겨나기 때문이다.

 

과학은 대개 엄숙함과 딱딱함이란 인상으로 다가온다. 에이브러햄스는 지난 32년 간 이그노벨상이 과학계에 미친 영향을 묻는 질문에 “대중과의 과학 커뮤니케이션”이라 답했다. “이제 과학자들이 하는 중요한 일 중 하나는 대중에게 자신의 연구를 소개하는 것입니다. 이그노벨상은 잘 알려지지 않은 연구를 더 널리 퍼뜨릴 수 있게 도와줬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패트리샤 양, 알레산드로 플루치노, 박승민 등 과학동아가 지금까지 인터뷰한 많은 수상자들이 이그노벨상으로 본인의 연구를 널리 알릴 수 있었다고 밝혔다. 웜뱃의 똥을 연구했던 양 교수의 경우 2022년 12월9일 과학동아와 진행한 화상 인터뷰에서 “수상으로 연구가 유명세를 타며 교수 자리를 얻는 데도 도움이 됐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그노벨상이 널리 알려지며 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바뀌었습니다. 다들 시상식을 즐기기 시작했어요. 이그노벨상을 통해 과학을 진지하게만 생각하는 편견을 깨고 싶었습니다.” 에이브러햄스는 말했다.

 

어쩌면 좋은 과학은 재밌는 과학이다

 

이그노벨상 수상자들은 다들 유머감각이 넘치는 괴짜일까. 에이브러햄스는 “아니다”라고 답변했다. “재미있는 사람이 없지는 않지만, 대부분은 웃긴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연구든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상해보이는 부분이 있잖아요?” 라며 말이다.

 

그러면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이그노벨상을 받게 만든걸까. “제가 봤을 때, 그들은 사소한 문제에 좀 더 관심을 기울인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남들이 보기엔 정말 이상해 보이는 문제요.” 50년 동안 손가락으로 ‘뚜둑’ 소리를 내며 관절염과의 연관성을 찾아보려 한 시도도 유년기의 호기심을 꾸준히 실천한 결과지 않은가. 나아가 에이브러햄스는 “모든 과학 연구가 다 이렇게 미약하게 시작함에도, 사람들이 무엇이 ‘좋은 과학’인지 너무 섣불리, 빨리 정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결국 노벨상으로 이어진 안드레 가임의 그래핀 연구처럼, 웃겨 보이는 호기심이라도 조금 더 고민하다보면 좋은 연구로 이어질 수 있다는 말이다.

 

앞으로 한국 연구자들도 이그노벨상을 더 많이 받을 수 있을까? 에이브러햄스는 “단위 인구당 이그노벨상을 가장 많이 받는 두 나라는 영국과 일본”이라 밝혔다. “두 나라에는 엉뚱한 생각을 밀고 나가도 용인해주는 분위기가 있는 걸까요?”라며.

 

물론, 한국인 수상자가 적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 이그노벨상은 누구나 추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동아 독자 여러분들도 ‘처음에는 웃기고, 다음에는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연구’를 찾으면 언제든 저희에게 추천 메일을 보내주세요!” 에이브러햄스의 마지막 인사를 메일주소와 함께 전한다.

air@improbable.com

 

❋종이비행기 : 오랫동안 이그노벨상 시상식에서 빗자루로 무대의 종이비행기를 치우는 일을 해왔던 ‘청소부’, 로이 글라우버 미국 하버드대 물리학과 교수는 2005년 ‘광학 결맞음에 관한 양자론적 공헌’을 한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에이브러햄스는 인터뷰에서 그가 노벨상을 받으러 스웨덴에 갔을 때, 기자들이 노벨상 수상 연구 대신 이그노벨상과 종이비행기 치우는 일에 대해서만 질리도록 질문해 그가 장난스레 불평한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 호를 마지막으로 ‘이그노벨상’ 연재를 마칩니다. 함께 웃어주신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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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이창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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