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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학기술

'자력갱생' 큰 좌절

핵문제, 남북정상회담, 김일성 주석 사망 등 일련의 사태로 북한에 대한 관심이 높다. 폐쇄성으로 인해 아직도 '미지의 세계'에 머물고 있는 북한의 과학기술은 어떤 모습일까. 그 비밀의 문을 열어본다.

세계의 과학기술 환경은 오직 하나의 독특한 기술, 또는 그 분야의 가장 경쟁력 있는 제품 하나만이 살아 남는 현실에 처해 있다. 더욱이 산업 사회의 과학기술 패러다임은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면서도 인접 학문과 연관돼 복합화, 개방화를 요구한다. 이런 관점에서 북한이 지금까지 고수해 온 이른바 '자력 갱생에 의한 과학기술 정책'은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려운 한계에 다다른 것으로 보인다.

동구 공산주의의 붕괴는 사회주의 체제가 과학기술발전을 위한 모델로서 부적합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생생한 실례다. 다시 말해 폐쇄된 사회의 기술 발전 정체가 곧 경제와 직결돼 체제의 붕괴로 진행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북한이 두만강 특구 개발사업에 외국의 자본과 기술을 유치하려 노력하는 것도 이같은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김일성 북한 주석 사망 이후의 남북 관계를 논의하면서 과학기술 교류 협력이 거론되고 있다. 이 협력은 남북간의 상호 이익과 평화적인 통일기반 조성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하지만 이 교류에 앞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북한의 정확한 과학기술 실상을 알아보는 일이 그것이다.
 

평남 순천에 건설중인 비날론연합기업소 현장 청진지역의 김책제철소.
 

과학도 예외 없이 '우리 식으로 살자'

북한은 분단 초기 우리보다 과학기술 분야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1946년 현재의 '조선과학기술 총연맹' 전신인 '북조선 공업기술 연맹'을 창립해 과학기술이 경제발전의 최대관건임을 강조하면서 적극적인 과학기술 개발 정책을 서둘러 왔다. 하지만 이들이 관심을 본격화하기 시작한 것은 1952년 '과학원'을 발족시킨 이후 60년대 초부터로 볼 수 있다.

전반적으로 초기에는 과학기술정책의 연구방향, 수법, 연구기관의 편성과 운영 등이 소련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자력 기술개발을 통한 공업 건설을 기본 목표로 설정하고 생산과 직결되는 실용적 연구에 치중했다.

북한은 주체 사상에 입각한 정치적 자주, 경제적 자립, 군사적 자위를 위해 현대화 주체화 과학화를 내세우면서 ▲자력 갱생의 원칙 ▲대중의 원칙 ▲사회주의 경쟁의 원칙이란 세 가지 원칙의 기조를 오랫동안 유지해왔다.

자력 갱생의 원칙이란 모든 경제분야와 마찬가지로 과학기술분야에도 외국, 또는 선진 제국의 도움 없이 자체의 자원과 기술 인력으로 과학기술을 개발해 이용한다는 것이다. 대중의 원칙이란 특정 과학자, 소수 엘리트에 의한 과학기술 향상을 배격하고 모든 노동자들이 기술자 과학자가 돼야 참된 과학기술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인식에서 수립된 방침이다. 그리고 사회주의 경쟁의 원칙은 대중의 경쟁운동을 통해 과학기술을 향상시킨다는 것으로, 과학기술자 뿐만 아니라 일반노동자까지도 창의 고안 기술혁신안을 경쟁적으로 창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은 지금까지 풍부한 지하자원과 일제시대부터 구축된 중화학공업의 기반위에다 구소련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기술제일주의와 구소련 및 동구 제국의 기술이전으로 중공업 우선 정책을 내세워 기술혁신활동을 활발히 전개해왔다.

북한 과학기술정책의 집행은 각급 연구소 대학 및 기타 교육기관, 그리고 공장과 농장 등의 일선기관에서 맡고 있다. 그리고 각급 연구소, 대학 및 실업고등학교는 과학원에서 배당한 연구과제를 우선 수행하면서 자체 연구계획 역시 과학원의 심의를 거쳐야만 실행한다.

주요 연구소로는 중앙전기, 중앙광업, 중앙수산시험, 중앙규격계량, 동력설계, 기술설계, 기계공장설계, 건재공장설계, 농업건설설계 등이 있으며 주요 대학연구기관으로는 김일성종합대학, 김책공업, 평양건설, 평양운수, 함흥수리, 신의주 경공업, 사리원농업, 원산농업, 혜산농업, 강계농업, 원산수산, 함흥과학공업, 평양의학, 청진의학, 평양기계, 청진광산금속, 함흥약학, 회천공업, 순천수의축산, 해주농업대학 연구소 등이 있다. 북한의 과학기술정책 평가 방법은 소련방식을 일부변형해 기본 체제로 삼고 있지만 정책 결정과정과 통제가 지나치게 당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각종 과학원이 있어도 이에 대한 종합조정기능은 미약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연구의 자율성이 결여돼 의욕적인 자기 향상을 위한 연구노력이 부족한 실정이다.

신업과 직결되는 기술자 양성 목표

북한 과학기술 교육의 목표는 고도의 과학 이론을 습득시키고 풍부한 경험과 기술적 원리를 생산에 직접 응용할 수 있는 실력을 배양하는 것이다. 산업 분야에서 야기되는 기술적 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기술인력을 양성하려는 과학교육을 위해 북한은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북한의 과학기술 교육은 당 과학교육부에서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교육위원회에서 구체화한다. 교육위원회 고등교육부의 1·2부 기술대학 지도국과 과학방법 지도국은 과학 교육의 방법과 기술대학의 운영방침을 세워 중앙 규모의 기술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김책 공대 평양의대 등에 대한 기술교육 지침을 하달한다. 그리고 동시에 도나 직할시, 행정위원회에서 주로 담당하는 지방의 농수산대 의대 공장 농장 등에도 그 지침을 지시하고 있다.

과학자와 고급 기술자를 양성하는 기관으로는 2년제의 박사원과 2-4년제의 연구원이 있는데, 이들은 과학원 김일성종합대학 고등교육부 보통교육부 보건부 등의 산하 연구소 및 대학에 설치돼 있다(표1).

북한의 연구 기관은 공업 농업 의약 등 각 분야에 국가 정책에 부응하는 연구개발, 즉 연구소 본연의 사명 이외에도 우리의 대학원 교육에 해당하는 고급 연구 인력 양성 책임을 지고 있다.

학사(우리의 석사과정) 및 박사과정은 남한의 제도와 달리 선택된 대학과 연구소의 양 기관에 설치돼 있으며 학위 소지자는 대학 및 연구소에 전임 연구생으로 취학할 수도 있고 공장이나 기업소에서 생산에 종사하면서 통신연구생으로 과정을 이수할 수도 있다.
박사원과 연구원에는 각각 박사과정과 학사과정을 두고 있다. 연구원은 김일성 대학이 창립된 초기부터 대학교원을 양성하기 위해 설치됐는데, 59년까지는 3년제였으나 64년부터는 2-4년제로 고쳐졌다. 대학졸업 후 학사논문 제출 자격시험을 통과하면 2년, 통과하지 못하면 4년이 되도록 조정하고 있다.

연구원은 박사 연구생 외에 통신 연구생도 모집하고 있으며 박사원은 대학교원, 과학기술분야의 지도자, 연구소의 고급 연구원 등 고급 인재를 양성할 목적으로 61년 3월 '내각 결정 124호'에 의해 설치됐는데, 통신연구생은 없고 전임연구생만 모집한다.

이외에 5-6년제의 이공계 및 농수산계 대학이 있는데, 이공계대학은 농업 건설 운수 경공업 기계 석탄 지질 체신 식료 해운 철도 등 16개 대학으로 구분되고 농수산계 대학은 농업 농림 수의 축산 과수 수산 등 6개 분야로 나뉜다. 최근에는 일하면서 배우는 교육체계로서 5-6년제의 공장 농장 어장 대학이 다수 설치돼 산업현장과 직결되는 기술자의 대량 양성을 시도하고 있다.
 

북한의 과학기술 교육체계
 

엘리트 과학자들의 산실 김일성 종합대학

북한에는 89년말 통계로 모두 2백70여개의 과학기술 관련 대학이 있는데, 종합대학은 김일성 대학 하나뿐이다. 북한의 과학자는 평양의과대학을 제외하고 거의 김일성 대학에서 양성되는 것으로 판단된다. 1946년 세워진 김일성대학에는 수학과를 위시해 19개의 과학계 학과가 있다.

68년 건립된 평양이과대학은 엘리트 과학자를 양성하기 위한 특수단과 대학으로, 핵물리학 화학 수학 생물학 전자공학의 5개 학과가 편성돼 있다. 이외에도 평양에 평양고등물리학교와 백두산에 김일성 고등물리학교가 따로 있어 엘리트 과학자를 양성한다. 평양고등학교와 평양이과대학은 평양교외에 과학단지를 형성하고 있는데, 특히 이과대학은 남한의 과학기술원과 유사점이 많다.

이들 연구 기관의 연구과제는 국가적 필요에 의해 국가 계획위원회에서 연구계획이 승인돼 필요한 연구자료와 경비를 지급받는 국가 과제, 당국의 위탁으로 계약을 맺고 필요한 자료와 연구비를 받아 추진하는 계약 과제, 그리고 대학 또는 연구평의회에서 승인된 과제로 연구자 자신이 자료를 구해 연구비를 지원받지 않고 진행하는 자체 과제의 세 종류가 있다.

이렇듯 공장이나 각종 기업소, 연구기관 및 대학이 유기적으로 연관돼 기술 개발 사업을 촉진하고 있는 것은 북한의 폐쇄적 정책이 자체에서 기술을 개발하지 않으면 안되도록 강제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현재 북한은 1백여개의 정부소속 주요 연구기관이 당과 정부 통제하에 분야별 과학기술 연구활동을 추진하고 있다. 국가적으로 적극 지원하고 있는 수학 물리 기계 금속 화공 분야와 달리 전자 농학 첨단 과학기술 분야는 낮은 연구수준에 머물러 있다. 단 지질학 분야는 남한과 비교적 비슷한 수준의 연구기자재를 사용하고 있고, 특히 자원개발작업 현장에서 사용되는 기자재는 잘 갖추어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산업기술 수준은 대체로 남한에 비해 10-20년 정도 낙후된 것으로 평가된다. 최근에 알려진 바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 91년 10월 '2000년까지의 과학기술 발전 계획'을 수립하고 전자·자동화공학, 기계공학, 연료·동력 등 3개 부문으로 나눠 목표를 제시하고 있는데, 전자·자동화 부문에서는 16메가급 직접 회로 및 64비트 컴퓨터의 개발, 소형 로봇의 제작을, 기계공학 부문에서는 기계설비의 자동화 대형화 고속화를, 연료·동력 부문에서는 주요 광물 다량확보, 태양열 등 자연 에너지 확보 등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농·임·축산에 관한 연구를 보면 남한에서는 품종의 개발과 더불어 생명공학, 생산성의 향상 및 안정화, 생력 기계화 및 생산물의 품질 고급화 등에 관련된 연구가 많은 편이나 북한에서는 선진농업기술을 도입하기 위해 국제적 협력 증대에 힘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의 근래 중점 연구분야 중에는 벼와 옥수수를 대상으로 한 연구가 많은 것도 특징이다.
 

북한의 전자산업은 우리의 80년대 초반 수준에 머물고 있다.
 

에너지, 기초소재 산업 분야 정체

1945년 남북한이 분단될 당시 중공업의 80% 정도가 북한에 편재돼 있었고 이후에도 북한은 유리한 중공업 자원을 기반으로 60년대까지 금속공업을 비롯한 대부분의 분야에서 남한보다 우세를 점하고 있었다. 하지만 북한은 우위를 점했던 공업기반시설과 풍부한 부존자원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70년대 들어 남한의 경제개발계획이 성공적으로 추진되면서 우열이 바뀌게 됐다.

북한은 1947년부터 현재까지 약 반세기에 걸쳐 총 9회의 경제발전 계획을 추진해 왔다. 이 기간중 시종일관 중공업을 우선으로 하여 근대공업화 체계의 확립을 통해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과시하려 시도했으나 결론은 실패로 났다. 특히 80년대 이후 북한의 극심한 경제 침체는 전력과 철강같은 에너지 및 기초소재 산업 분야의 정체와 깊은 연관이 있다.

지난 45년 해방 당시 북한에는 수풍 장진강 부전강 허용강 등 거대한 수력발전소와 40여 개의 중소발전소가 1백50만kW의 발선설비용량을 가지고 한반도 전역은 물론, 남만주의 공업지대에 까지 전력을 공급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전쟁 당시 모든 발전소들은 극심한 피해를 입었으며 휴전 후 북한은 공업 투자의 13%를 전력시설 복구작업에 투입했다. 여기에 소련 중국 등 선진 사회주의 국가들의 원조과정에서 얻은 경험과 기술을 토대로 북한의 기술진은 중소형 수력발전소의 건설과 고압 송전기술을 습득, 60년대에는 발전량을 1백90만kW까지 증가시켰다. 또한 북한은 한때 세계 여러 나라에 중소규모의 발전소 플랜트와 개별 설비를 수출할 정도였다.

하지만 요즘 북한의 극심한 전력난은 경제 계획의 실행에 큰 차질을 빚을 정도로 심각하다. 이와 같은 전력부족 현상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수력과 화력발전소에서 발생하는 극심한 감소현상이 가장 치명적이다.

북한은 식량 자급자족을 타결하기 위해 '전 국토의 계단식 밭화'라는 정책을 펼쳤다. 이에 따라 임야가 황폐돼 수자원의 고갈은 물론 토사의 퇴적에 따른 저수지의 저수능력 감소를 유발했고 여기에 수력발전 설비의 노후화가 더해져 수력 발전의 감소를 초래했다.

화력발전에 있어서도 급속한 발전량의 감소 현상은 뚜렷하다. 남한에서는 다양한 에너지원, 즉 원자력이나 석탄, 유류 LNG 등을 발전에 사용하고 있는데 비해 북한에서는 자급할 수 있는 에너지원인 석탄에만 집착하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고품질의 석탄은 이미 고갈돼 저질의 무연탄에 이탄을 혼합한 분탄을 발전용 연료로 사용하고 있어 소기의 발전량을 생산할 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북한 산업기술수준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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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정조영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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