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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어] 세계에서 가장 센 레이저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IBS 초강력 레이저과학 연구단

“실험이 진행되고 있는 레이저 장비는 촬영하지 않는 걸 추천합니다. 카메라 내부가 타버리거든요. 지난번에 저희도 멋진 사진을 찍어 보려고 비싼 카메라를 들고 왔다가 망가뜨린 전적이 있습니다. 허허.”

 

따가운 가을볕이 내리쬐던 지난 8월 31일, 방진복으로 갈아입던 기자와 사진작가에게 성재희 기초과학연구원(IBS) 초강력 레이저과학 연구단(이하 레이저과학 연구단) 연구위원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경고했다. 그의 말에 한껏 긴장한 채 실험실로 향했다. 세계에서 가장 센 레이저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레이저는 쉽게 말해 한 방향으로 직진하는 세기가 증폭된 강한 빛이다. 레이저과학 연구단은 그런 강한 빛 중에서도 가장 강한 빛을 만들어 내고 있다. 2016년, 연구단이 설립된 지 4년 만에 4페타와트(PW1PW는 1000조 W) 출력 레이저를 개발하면서 세계 최고 출력 레이저 타이틀을 거머쥔 것이다. 4페타와트는 2021년, 전 세계 발전 용량의 약 360배에 해당하는 출력이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2023년까지 이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다. 덕분에 연구단에는 전 세계 과학자들이 모인다. 세계 최고의 장비를 이용하면 그만큼 더 높은 수준의 연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세계 수준의 장비로 실험하기 위해선 유럽, 미국 등지에 있는 연구소의 문을 두드려야 하지만, 레이저 연구는 상황이 반대다. 해외 연구자들이 레이저과학 연구단이 있는 한국 광주로 찾아온다.

 

강력한 레이저를 이용하면 초신성 폭발 등 우주에서 일어나는 천문현상과 비슷한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연구자들은 이런 환경을 이용해 우주와 같은 극한 환경에서 벌어지는 물리현상의 비밀을 밝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 밖에도 레이저를 이용한 핵융합, 전자의 움직임 관찰 등 초강력 레이저의 활용분야는 무궁무진하다.

 

남창희 연구단장은 “과학 연구에 있어서는 미국이 거의 항상 선두주자인데, 레이저의 경우 다르다”면서 “미국 미시간대가 올해 안으로 3페타와트 출력 레이저를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한 상황”이라고 했다. 미시간대의 레이저 개발이 완료되더라도 세계에서 가장 강한 레이저라는 타이틀은 여전히 IBS 초강력 레이저과학 연구단의 것이다. 남 연구단장은 “다음 달(10월)에는 미국과 유럽 연구팀이 이곳 광주에 방문해 실험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레이저 실험실에서 핏빛 보석이 빛날 때

 

성 연구위원의 안내를 받아 페타와트 레이저 실험실에 들어섰다. 연구단의 기함 격인 실험실로 세계 기록을 보유한 4페타와트 출력 레이저도 여기에 있다. 모두 방진복 위에 방진 부츠와 모자까지 단단히 중무장한 차림새였다. 실험실 앞까지 동행한 남 연구단장이 “우리의 적은 습도와 먼지”라고 한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공기 중에 떠 있는 수증기나 먼지는 레이저가 진행하는 데 방해가 된다. 이 때문에 실험실에 들어가기 전에 에어샤워를 거쳐 혹시나 몸에 붙어있을 먼지를 제거해야 한다. 실험실 내외부 벽에는 습도계가 붙어있었다. 그러고도 실험 장치 위에는 외부 공기의 영향을 막는 아크릴 상자를 한 겹 더 씌웠다.

 

운이 좋게도 기자가 방문한 날은 레이저 실험이 잠시 쉬는 기간이었다. 그 덕에 실험 장치 내부를 볼 수 있었다. 성 연구위원은 아크릴 상자를 열어 실험 장치를 보여주며 “이 안에서 레이저가 만들어진다”고 설명했다. 성 연구위원이 보여준 실험 장치 안에는 렌즈와 오목거울 등이 정교하게 늘어서 있었다. 이 렌즈와 오목거울 등의 위치를 바꿔가며 레이저가 지나가는 경로를 조정한다. 성 연구위원은 “우리처럼 레이저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얼라인(align가지런히 만드는 것)이 생명”이라고 말했다.

“일상생활을 할 때도 찬장에 컵이 나란히 배열되지 않으면 불편합니다. 마음속으로 ‘저렇게 하면 안 되는데’ 하면서 눈에 거슬려서 제가 맞춰버려요. 일종의 직업병이죠. 저희 연구단의 장비들은 모두 이렇게 연구원들이 직접 맞추고 배열하고 조정한 것입니다. 보시는 실험 장치에 연구원들의 피와 땀이 녹아 있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이렇게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장치지만 기본 원리는 “간단하다”는 것이 성 연구위원의 설명이다. 초강력 레이저의 핵심 원리는 ‘처프드 펄스 증폭(CPAChirped Pulse Amplification)’이다. 1985년 당시 미국 로체스터대 레이저에너지연구소에서 근무하던 제라르 무루 교수(현 프랑스 에콜 폴리테크니크 명예교수)와 제자인 도나 스트리클런드 연구원(현 캐나다 워털루대 교수)이 개발한 기술이다. 이들은 CPA 기술을 개발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8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CPA 기술의 핵심은 레이저의 출력, 즉 에너지를 바로 증폭하지 않는 데 있다. 레이저가 생성된 뒤, 그 에너지를 바로 증폭할 경우, 레이저가 거쳐 가는 증폭매질이나 거울 등 광학 장비가 에너지를 견디지 못하고 깨져 버리는 문제가 발생한다. CPA 기술은 이를 방지하기 위해 에돌이발(회절격자)을 이용해 레이저를 파장에 따라 분리한다. 파장이 짧은 빛은 에돌이발을 통과한 뒤 상대적으로 속도가 느려지고, 파장이 긴 빛은 속도가 빨라지는 식이다.

 

그다음 증폭기를 이용해 분리된 레이저의 에너지를 증폭한다. 전체 에너지가 증폭되긴 하나, 레이저 속 빛은 파장에 따라 분리된 상태라 세기가 약해 광학 장비에 미치는 영향이 줄어든다. 같은 위치에 딱밤 열 대를 동시에 맞는 것보다 시차를 두고 5분에 한 대씩 50분에 걸쳐 맞는 것이 덜 아픈 것과 같은 원리다. 레이저를 출력하기 전에 다시 에돌이발을 이용해 파장에 따라 분리된 레이저 속 빛을 합치면 높은 출력의 레이저를 안정적으로 만들 수 있다.

 

4페타와트라는 출력에 도달하기 위해 레이저는 증폭기를 여러 번 통과한다. 레이저의 에너지를 10배, 100배, 1000배 올려가며 최종적으로는 처음 만들어 낸 에너지의 수십억 배가 되기까지 에너지를 증폭한다. 에너지를 늘리는 증폭기는 보석이다. 말 그대로다. 증폭기 안에는 핏빛 보석인 티타늄 사파이어 결정이 들어있다. 티타늄 사파이어를 통과하는 레이저에 에너지를 더해주는 역할을 한다. 성 연구위원은 “어떤 증폭기에는 어른 주먹만 한 티타늄 사파이어 결정이 쓰인다”면서 “2~3억을 호가하는 가격도 가격이지만, 결정을 한번 합성하는 데 1~2년이 걸리는 탓에 아주 귀하게 다룬다”고 했다.

 

10억분의 1초 찰나에 무한한 가능성을 보다

 

“여기는 저희가 ‘작은 레이저’라고 부르는 150테라와트 레이저 장치가 있는 실험실입니다.”

 

‘작은 레이저’라고 했지만 이곳의 150테라와트(TW1TW는 10조 W) 레이저 장치는 한국에서 두 번째로 강력한 레이저를 만든다. 소규모 실험을 보다 쉽고 빠르게 진행할 수 있다는 장점 덕에 이곳은 대학원생들이나 외부 연구자들이 자주 찾는다.

 

박태규 레이저과학 연구단 연구원은 “학생들이 새벽 12시, 1시까지도 이곳에 붙어 실험을 하곤 한다”면서 “레이저 핵융합을 연구하는 방우석 GIST 물리광과학과 교수도 이곳에 있는 고체 타깃 레이저로 연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작지만 잽싼 레이저과학 연구단의 ‘구축함’에 언젠가 또 하나의 태양이 떠오를지도 모를 일이다.

 

이어 찾아간 페타와트 레이저 응용실험실은 레이저를 이용한 응용 실험이 이뤄지는 공간이었다. 레이저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빛이 연속적으로 나오는 연속파 레이저와 빛이 일정한 주기로 끊어 나오는 펄스 레이저다. 특히 펄스 레이저는 짧은 시간 동안 큰 에너지를 가진 레이저를 효율적으로 출력한다는 장점이 있어 다양한 분야에 활용된다. 레이저과학 연구단에서 활용하는 펨토초 레이저도 펄스 레이저의 일종이다. 수 펨토초(1펨토초는 1000조 분의 1초)의 펄스폭을 갖는 레이저 펄스를 만든다.

 

페타와트 레이저 응용실험실에는 연구 목적에 따라 전자가속 챔버, 원형 챔버, 사각 챔버 등 여러 실험장비가 공간 가득 들어서 있었다. 실험장비들이 얼마나 거대한지, 연구자들은 실험장비 위에 놓인 다리를 통해 이동해야 할 정도였다.

 

이곳에서 전자가속 챔버로 지구상에서 구현하기 어려운 아주 강한 전기장을 만들고 있는 김도연 레이저과학 연구단 연구원을 만났다. “12m 떨어진 곳에서 머리카락 하나 정도 두께의 표적을 향해 펨토초 레이저를 쏩니다. 반대쪽에서는 15~30cm 정도 떨어진 곳에서 전자를 던지죠. 레이저와 전자가 실험장치를 지나가는 시간은 약 20펨토초. 그 시간 안에 이 둘이 허공에서 딱 만나도록 하는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실험이 잘 안됐을 때는 10% 정도 성공하고, 실험이 잘 됐을 때도 50%만 성공하는 어려운 실험이죠.”

 

초강력 레이저 빔이 지나가면 그 주위로 전기장이 형성된다. 이렇게 형성된 전기장 안에 전자를 넣으면 전자는 수 GeV(기가전자볼트1GeV는 10억 eV, 1eV는 전자 하나가 1V의 전위를 거슬러 올라갈 때 드는 에너지)의 에너지까지 가속된다. 이렇게 가속한 전자에 다시 펨토초 레이저를 쏘면 도플러 효과에 의해 전자가 레이저 속 광자를 매우 큰 에너지의 엑스선 광자로 느끼게 된다. 이런 특별한 조건에서 벌어지는 현상은 ‘강력장 양자 전기동역학’이라는 별도의 학문 범주로 다룬다.

 

도플러 효과에 의해 형성된 강한 전기장을 이용하면 전자와 전자의 반입자인 양전자를 생성하는 등 지구에서 쉽게 관찰할 수 없는 현상을 만들 수 있다. 김 연구원은 “그간 아무도 할 수 없었던 실험이고, 현재 이 같은 실험을 할 수 있는 실험실도 이곳(레이저과학 연구단)밖에 없기에 해외에서도 이 실험을 해보기 위해 연구자들이 많이 찾아온다”고 설명했다.

 

세상에 없던 레이저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

 

가장 강력한 레이저를 가지고, 그간 실험할 수 없었던 물리현상을 연구하는 일. 남 연구단장은 이를 “새로운 과학을 하는 일”이라고 표현했다. 레이저과학 연구단은 벌써 10여 년간 그 일을 묵묵히 해내고 있다. “레이저과학 연구단이 생기기 이전에는 극초단 광양자빔 사업이 9년간 진행됐으니 페타와트 레이저의 역사가 이제 20년이 된 셈입니다. 2~3년 만에 이룩한 성과가 아닌 거죠. 처음부터 우리 손으로 레이저 장치를 만들었습니다. 연구단을 거쳐간 인력들이 꾸준히 양성되고, 기술 개발도 계속 이어졌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20여 년에 걸쳐 키워낸 아름드리나무는 앞으로 수많은 열매를 맺을 전망이다. 중성자별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연구하거나, 원자력 폐기물을 핵 변환해 그 위험성을 낮추거나, 반도체, 의료 등의 분야에서도 활용될 수 있다. 남 연구단장은 “기본적으로 레이저 기술은 산업적으로 매우 널리 쓰이는 기술”이라며 “첨단 연구를 하며 나온 산물을 산업에 활용할 수 있다는 얘기”라고 했다. 그러면서 “첨단 연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중요한 것은 기술뿐만이 아니다”라며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연구인력)”이라고 덧붙였다.

남 연구단장은 그렇기에 “더 강력한 레이저를 위한 연구가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강력한 레이저를 만들기 위해서는 에너지를 가능한 한 짧은 시간 동안, 좁은 공간에 압축해 순간적으로 최대의 에너지를 내야 한다. 레이저과학 연구단은 2021년 4페타와트 레이저 빔을 직경 1마이크로미터(痠・1痠는 100만 분의 1m)의 좁은 공간에 모으는 데 성공하면서 또다시 레이저 세기의 신기록을 세웠다. 이를 통해 초신성 폭발 등 우주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비슷한 환경을 만들 수 있다. 새로운 가능성의 장이 열린 것이다.

 

하지만 경쟁자는 있다. 중국은 현재 100페타와트 출력 레이저를 2026년~2027년경까지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개발을 이어가고 있다. 남 연구단장은 “한국도 그 정도 규모의 연구시설을 만들어 한 단계 나아간 연구를 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현재 전라남도에서 유치하기 위해 노력 중인 초강력 레이저 연구시설의 규모가 당초 논의되던 200페타와트 출력에서 100페타와트, 50페타와트로 축소되고 있어 아쉽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재 우리의 성과는 하루아침에 생겨난 것이 아니라 20년의 연구가 바탕이 됐기 때문임을 기억해야 한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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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광주=김소연 기자
  • 사진

    남윤중
  • 디자인

    박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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