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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가뭄의 숨겨진 원인을 찾아라

앞으로 하늘에 비를 내려달라고 기도할 때 좀 더 구체적인 대상에 빌어보는 건 어떨까.


“하늘에 떠다니는 에어로졸아, 제발 구름 입자가 강수 입자로 성장하는 걸 막지 말아줘~”


에어로졸은 구름의 생존시간을 늘려 빗방울이 만들어지는 것을 막는다. 그렇다면 혹시 이 에어로졸이 가뭄의 원인은 아닐까.

올봄 전국 곳곳에서는 메마른 눈물이 흘렀다. 지난해 가을부터 시작된 가뭄으로 강원도 태백시의 수돗물 공급시간은 ‘1일 3시간’으로 제한됐다. 지금껏 단 한 차례도 마르지 않았다는 한강 발원지인 검룡소도 겨우내 말라 버렸다. 도롱뇽과 개구리들도 메마른 계곡 바닥에서 집단 폐사했다. ‘홍수 끝은 있지만 가뭄 끝은 없다’는 말이 실감난다.


왜 이렇게 비가 안 온 걸까. 빈번한 가뭄 발생이 혹시 이상기후의 징조는 아닐까.

 



가뭄 원인의 새로운 가능성, 에어로졸


과학자들은 한반도의 가뭄을 특별한 기상 현상이 아닌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일반적인 현상으로 본다. 지난 3월 11일 서울에서 열린 가뭄 심포지엄에서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의 김현준 박사는 삼국사기를 비롯한 9개의 고문서를 분석한 결과 역사적으로 한반도에 가뭄이 반복됐다고 설명했다. 때에 따라 빈도와 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가뭄이 일반적인 현상이라는 말이다. 부경대의 변희룡 교수도 이번 가뭄의 원인은 “남부지방 장마가 조기 종료한 점, 가을장마가 실종된 점, 태풍이 한반도를 비껴갔다는 점”이라며 기압 배치와 태풍의 이동에 따른 기상 현상으로 분석했다.

하지만 기후학자들은 이러한 기상 현상이 일어나는 원인에 더 주목한다. 온실기체의 증가와 해수면 온도의 상승, 토양 수분 감소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은 익히 알려진 사실. 이 환경 인자들을 변수로 했을 때 대부분의 기후 모델들은 앞으로 한반도에 강수량은 늘지만 집중호우가 심해서 가뭄의 빈도는 줄지 않을 거라고 예측한다.

연세대 대기과학과 김준 교수팀은 최근 줄어든 강수량과 빈번해진 가뭄의 원인 중 하나로 대기 중 에어로졸 농도의 증가를 꼽았다. 김 교수팀은 1777년부터 2007년까지 기록된 230년간의 강수자료에서 가뭄의 정도가 평균의 최대 30%까지 변하고 있는데 이는 급변하는 기후 변화에 의한 것이라고 ‘리스크 와이즈’(Risk Wise)에 발표했다.

이 책은 인간의 활동과 그로 인해 유발되는 재난에 대해 토의하는 국제재난위험회의(IDRC)에서 발표된 결과들을 묶은 자료집이다. 같은 학과의 또 다른 김준 교수는 이렇게 된 이유에 대해 “에어로졸이 구름 입자와 빗방울을 만드는 데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에어로졸이 구름 입자량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인데 그 농도가 너무 높아지면 구름 입자가 강수 입자로 성장하는데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이름조차 생소한 에어로졸. 에어로졸의 정의와 구름에 작용하는 원리부터 알아보자.



구름 입자가 너무 많아지면 강수 입자는 줄어


에어로졸은 먼지, 황산염, 유기탄소, 검댕, 질산염처럼 대기 중에 떠다니는 고체나 액체 입자들을 총칭하는 말이다. 발생원으로 보면 지표에서 올라간 모래나 바다의 소금입자, 화산분출 때 나온 황산염처럼 출처가 자연발생적인 에어로졸도 있지만 자동차의 매연, 공장에서 소각되는 연기처럼 인간 활동에서 배출돼 오염물질로 분류되는 에어로졸도 있다.

에어로졸은 대기 상공에서 수증기가 구름 입자로 성장할 수 있는 일종의 ‘씨앗’이다. 최소반경이 1μm(마이크로미터, 1μm=10-6m) 이상인 액체 또는 고체 입자가 존재하면 수증기가 응결해 구름을 형성하는 ‘구름 입자’로 성장하기 쉽다. 기본적으로 에어로졸 입자들의 크기는 0.005μm에서 1μm 이상까지 다양한데 대부분 구름 응결핵에 적합한 0.2μm에서 1μm 사이에 분포하므로, 에어로졸은 구름 입자로 성장하는데 좋은 조건을 갖춘 셈이다. 따라서 에어로졸이 많아지면 구름의 양 또한 늘어난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다. 수증기 양이 일정한 상태에서 에어로졸의 수가 많아지면 구름 입자가 크게 성장하지 못한다. 응결핵들이 나눠가질 수증기의 양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구름 입자의 반지름은 10μm이고 강수 입자의 반지름은 1000μm이다. 구름 입자가 강수 입자가 되려면 더 많은 수증기와 결합해 몸집을 키워야 하는데, 이 역시 한정된 수증기량 때문에 강수 입자로 성장하지 못한다. 구름 입자의 크기가 작기 때문에 입자들끼리 충돌해 입자가 커질 확률도 낮아진다. 결국 구름 입자는 강수 입자로 성장하지 못하고 계속 상공에 떠 있게 된다. 비가 오지 않고 구름만 계속해서 떠 있게 되는 셈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IPCC)이 작성한 4차 보고서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일컬어 에어로졸의 ‘간접 효과’라고 부른다. 에어로졸이 직접 태양에너지를 차단시키는 ‘직접 효과’와 달리, 간접 효과는 구름이라는 새로운 도구를 만들어 반사도를 증가시키거나 강수량을 줄인다는 의미다.



불확실성만큼 가능성도 큰 에어로졸


실제로 대서양에서 발생하는 허리케인의 강도가 먼지의 양과 관련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미국 메디슨 위스콘신대의 아마토 이반 박사가 25년의 위성자료와 사하라 사막과 아프리카의 서부 해안에서 날아온 먼지 자료를 분석한 결과, 허리케인의 활동성이 강력했던 시기에는 먼지 양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반면에 강력한 먼지폭풍이 일 정도로 다량의 에어로졸이 대서양을 휩쓸었던 시기에는 허리케인의 수가 감소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렇다면 에어로졸이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 강수에도 영향을 미칠까. 국내 과학자들은 한반도에 대해서 같은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는 반응을 보인다.

공주대 대기과학과 김맹기 교수는 “동아시아지역에서 에어로졸 농도와 강수와의 관계를 입증할 뚜렷한 결과는 아직 없다”며 “에어로졸이 가뭄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기에는 아직까지는 불확실하다”고 밝혔다.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박록진 교수도 “오히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구름 입자가 강수 입자로 성장하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으므로 반대로 강수량이 증가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에어로졸의 영향을 정량적으로 규명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두 교수 모두 에어로졸이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서는 인정했다. 김 교수는 한 예로 에어로졸이 제트기류의 세력에 영향을 미치는 효과를 들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에어로졸이 대기 상공에서 태양에너지를 차단하면서 지표공기가 냉각되는데 전체적으로 공기가 차가워지면 저위도와 고위도 지역의 온도 차이가 작아지므로 중위도 지역의 순환 기류인 제트기류의 세력이 약해진다. 제트기류는 공기를 연직으로 섞는 중요한 원동력이다. 우리나라는 상승기류가 이뤄지는 제트 기류 입구의 남쪽에 위치해 있어 제트기류가 약해지면 강수가 만들어지는 역학구조에 변화가 생긴다. 에어로졸이 구름에 직접 참여하지 않아도 다른 메커니즘이 작용함으로써 강수에 영향을 미치는 셈이다.

박 교수는 “에어로졸로 이뤄진 구름입자는 크기가 작아서 오랫동안 구름 속에서 머무르는데 구름 안에서 대류하는 동안 입자에 수증기가 응결하고 이 과정에서 잠열이 발생한다”며 “이 잠열이 구름의 성장을 도와 집중 호우를 발생시킨다”고 말했다. 사실상 에어로졸은 모든 기상 현상에 참여하고 있는 셈이다.

에어로졸은 IPCC 보고서에서 수많은 메커니즘에 관여하면서도 그 영향력이 정량적으로 규명되지 못해 ‘불확실성이 많은 환경인자’로 분류돼 있다. 조만간 과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에어로졸의 정체가 밝혀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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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김윤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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