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를 연습할 때, 야외 페스티벌에서 공연을 즐길 때, 도서관에서 누자베스(Nujabes)의 로파이(Lo-Fi) 힙합을 들으며 공부할 때 음악은 늘 일상 속 가까이 있다. 하지만 음악의 신경과학적 기작이 밝혀지기 시작한 건 비교적 최근이다. 세계의 다양한 음악을 들으며 음악과 뇌에 관한 네 가지 궁금증을 풀어보자.
01.
음악은 진짜 마약만큼 좋을까
음악 페스티벌에서 땀흘리며 ‘떼창’해본 경험이 있다면, 누구도 음악의 즐거움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오죽하면 ‘음악만이 나라에서 허락하는 유일한 마약이니까’라는 밈이 있을까. 2011년 로버트 자토레 캐나다 맥길대 교수팀은 음악을 듣는 뇌를 양전자단층촬영(PET)과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 촬영으로 관찰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doi: 10.1038/nn.272 그 결과 실험 참가자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때, 음악이 가장 고조되는 대목에서 보상 반응을 담당하는 뇌 기저핵의 ‘선조체’에서 도파민이 나왔다. 선조체는 음식 섭취나 성적 자극, 마약 흡입 등의 자극에서도 도파민을 방출한다.
뇌에서 음악의 즐거움은 두 단계로 진행된다. 도파민은 노래를 들으면서 좋아하는 부분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기대’ 단계에서 중뇌에 작용한다. 실제로 좋아하는 부분이 나오는 두 번째 단계에서는 도파민과 함께 μ-오피오이드 수용체가 활성화된다. 오피오이드는 뇌내 수용체에 작용하여 행복감을 유발하는 물질로, 신경전달물질인 엔돌핀, 마약성 진통제 모르핀 등이 있다. 2017년 같은 대학교의 대니얼 레비틴 심리학과 교수팀은 이런 오피오이드가 음악의 즐거움에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했다. doi: 10.1038/srep41952 그는 15명의 실험 참가자를 대상으로 좋아하는 음악을 들려주고 반응을 관찰했다. 이때 한 번은 그냥, 한 번은 뇌에서 오피오이드 수용체를 차단하는 날트렉손을 투여한 뒤 음악을 들려줬다. 그리고는 안면 근육, 심박수, 호흡수 등을 측정하고 설문조사로 참가자들의 기분을 평가했다.
그러자 날트렉손을 투여받은 참가자는 음악에 감정적 반응을 덜했다. 즐거움을 덜 느꼈으며, 부정적 감정도 덜 느꼈다. 연구팀은 날트렉손을 투여받은 실험 참가자 한 명이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내가 정말 좋아하는 노래인데, 평소에 느끼는 것처럼 흥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는 오피오이드가 음악을 들을 때 즐거움을 느끼는 것과 관련이 깊고, 음악의 즐거움이 음식 섭취, 마약 복용, 성적 쾌락을 느낄때 사용하는 뇌의 보상 회로를 같이 쓴다는 의미다. 적어도 뇌 안에서는, 음악은 정말로 마약일지도 모른다.
02.
음악가의 뇌는 일반인과 어떻게 다를까
열정적으로 연주하는 조성진 피아니스트를 보고 있으면 음악가와 나의 뇌는 뭔가 다르겠구나 싶다. 이경면 KAIST 음악신경과학 연구실 교수는 “전문가와 일반인의 신경적 차이는 음악신경과학에서 가장 많이 연구하는 질문”이라고 설명했다. 음악가와 일반인의 뇌는 음악 인지 단계에서 전반적으로 다르게 작용한다. 이 교수는 직접 진행한 뇌간 연구를 예시로 들었다.
음악가의 뇌는 뇌간 단계에서 이미 일반인보다 더 ‘음악적으로’ 작동한다. 이 교수는 “피아니스트는 피아노 소리, 기타리스트는 기타 소리 등 자신이 맡은 소리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설명했다. 두 음을 동시에 화음으로 들려줄 경우 음악가의 뇌간은 더 높은 음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음악에서는 대개 높은 음이 멜로디 같은 중요한 역할을 맡는 경우가 많은데, 음악가의 뇌는 이에 관한 훈련이 돼있는 것이다. doi: 10.1523/JNEUROSCI.6133-08.2009 마찬가지로, 음악가의 뇌는 리듬에서도 중요하다고 알려진 첫번째 강한 박에서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음악가의 뇌는 무의식적으로 소리 신호를 처리하는 과정부터 일반인과 다른 셈이다. doi: 10.1038/s41598-020-72714-z
한편, 뇌간에 문제가 있으면 음악을 인지하는 데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실음악증이 한 사례다. 실음악증은 리듬, 박자, 템포 등 음악의 구성 요소를 인지하지 못하는 증세다. 이 교수팀이 실음악증을 가진 사람의 뇌간 뇌파를 분석한 결과, 이들은 외부에서 들려오는 음악을 정확하게 처리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뇌에 음악이 제대로 입력되지 않는 것이다.
03.
음악은 문화에 관계없이 보편적일까
몽골 전통 음악가인 ‘훙후르투(Huun Huur tu)’는 동시에 두 음의 목소리를 내는 ‘흐미’ 창법으로 노래한다. 처음 들으면 이질적인 소리에 당황하지만, 듣다 보면 적응이 돼 음악을 즐기게 된다. 아마 한국의 전통 음악인 판소리를 듣는 외국인들도 비슷한 감정을 느낄 것이다. 그렇다면 음악에는 문화에 관계없이 보편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요소가 있는 것일까.
이 질문은 음악학의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다. 음악학자들은 오래 전부터 음악이 보편적이라 주장했으나, 이를 보여줄 증거는 최근에야 쌓이기 시작했다. 새뮤얼 메어 미국 하버드대 음악연구소 소장이 이끄는 국제 공동연구팀은 5년 넘게 세계 60여 그룹에서 4709개의 음악 기록을 모아 유사성을 분석한 뒤 그 결과를 2019년 발표했다. doi: 10.1126/science.aax0868
연구팀은 문화에 관계없이 보편적인 음악의 특성을 발견했다. 우선 음악은 연구팀이 관찰한 모든 사회에 존재했다. 그리고 사회 내에서 대개 자장가, 춤, 사랑, 치유 등 비슷한 목적을 갖고 있었다. 나아가, 음역대나 템포를 분석하면 어떤 노래가 자장가인지, 춤 노래인지 그 목적도 파악할 수 있었다. 문화권에 관계없이 음악의 기능이 비슷하며, 음조, 화음, 속도, 리듬 등의 특징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형태가 있다는 뜻이다.
음악의 보편성만큼 중요한 것은 음악의 다양성이다. 노리 자코비 독일 막스플랑크 경험미학연구소 계산 청각인지 그룹장의 국제 공동연구팀은 음악 인지 능력의 다양성을 리듬을 중심으로 살펴봤다. KAIST 이 교수팀도 참여한 이 연구는 전 세계 923명의 사람에게 한 마디의 박자를 무작위적인 길이로 3등분해 들려준 뒤, 사람들이 어떤 리듬으로 인식하는지 알아봤다. doi: 10.31234/osf.io/b879v 그 결과, 실험 참가자들은 1:1:1이나 1:1:2 같이 단순한 리듬에 가까울수록 리듬을 쉽게 인식했다. 어쩌면 여기까지는 당연하게 들린다.
재밌는 결과는 리듬이 복잡해질 때 나타났다. 문화권에 따라 특정한 리듬을 인식하는 비율이 확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예를 들어 우루과이 사람들은 3:3:2 리듬을 세계 평균보다 잘 인식했다. 우루과이의 전통 음악인 칸돔베 음악의 주 리듬이 3:3:2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연구팀은 문화권에서 나타나는 특별한 리듬이 리듬 인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를 발견했다. 불가리아 사람들은 2:2:3 리듬을, 말리 사람들은 말리 음악에 나타나는 7:2:3 리듬을 잘 인식했다.
한국에서는 2:1:2 리듬을 잘 인식하는 그룹이 발견됐다. 바로 국악 전공자들이다. 이 교수는 “2:1:2로 진행되는 5박 리듬은 국악에서 ‘엇모리 장단’이라는 이름으로 쓰인다”며, “5박 리듬에 익숙하지 않은 서양 음악 전공자는 한국인 일반인보다도 이 리듬을 잘 인식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처해 온 음악 환경에 따라 리듬을 인식하는 능력도 달라지는 셈이다.
19세기 미국의 시인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는 “음악은 인류의 만국 공통어”라고 말했다. 그의 통찰력 넘치는 말에 과학자들의 연구를 덧붙이면, 음악은 보편적이며, 보편적인 만큼 다양하기도 하다.
04
음악의 기원은 무엇일까
그러면 애초에 인간이 음악을 즐기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 문제는 인지심리학자인 스티븐 핑커가 1997년 한 학회에서 “음악은 청각의 치즈케이크”라고 발언하면서 갑자기 유명해졌다. 그는 음악이 언어 능력이 진화하면서 부수적으로 생긴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치즈케이크가 생존에 필수적이진 않지만 미각을 즐겁게하듯, 음악도 우연히 뇌를 자극해 쾌락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핑커가 보기에 음악은 인간의 생존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핑커의 도발적인 주장에 많은 학자들이 반론을 제기했다. 치즈케이크 정도로 치부하기에 음악은 인류의 생존에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꼽은 역할은 세 가지. 첫 번째는 성선택이다. 진화론의 주창자 찰스 다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이 주장은 음악 활동이 이성에게 매력을 어필하는 행위라고 해석한다. 수많은 음악이 사랑 노래이며, 많은 사람들이 이성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음악을 시작하지 않는가.
두 번째는 음악이 사회적 유대 관계를 굳게 해준다는 주장이다. 모두가 같은 노래를 떼창하는 콘서트장이나 한 마음으로 노래하며 결속을 다지는 시위대처럼, 인류의 진화 초기에 음악이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역할을 했으리라는 주장이다. 마지막으로 자장가처럼, 음악이 말이 통하지 않는 시기의 아기를 달래는 데 중요하게 쓰였으리라는 주장도 있다.
이중 무엇이 유일한 정답이라고 결론내리기는 어렵다. 초기 인류의 음악에 관한 증거가 딱히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답을 추측해 볼 수는 있다. 2020년, 메어 소장은 다른 공동연구팀과 함께 음악의 기원을 탐구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doi: 10.1017/S0140525X20000345
연구팀이 손들어준 주장은 ‘자장가 이론’이다. 성선택 이론에 대해서는 “음악의 핵심 특징, 즉 음악이 그룹으로 연주된다는 점을 설명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사회적 유대 관계에 대해서도 음악보다 더 효율적인 방법이 많다고 반론했다. 추가로 연구팀은 전쟁 춤이나 군악대처럼, 전쟁의 용도로 음악이 기원했으리라는 주장도 제기했다.
어쩌면 음악의 기원은 앞으로도 영원히 답을 찾기 어려울 지 모른다. 그러나 탐구할수록 인간 자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음악의 기원은 앞으로도 계속 탐구할 가치가 있는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