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 노화(senescence)는 나이가 듦에 따라 증가하는 스트레스와 손상에 대한 세포들의 반응입니다. 노화된 세포들은 성장을 억제하고 노화와 관련한 여러 인자를 발현하게 됩니다. 이런 변화는 주변 세포에 영향을 미쳐 노화를 지속적으로 진행시키고, 질병과 같은 형태로 발전합니다. 이와 같은 노화의 과정과 그 영향에 대한 연구는 꾸준히 진행됐으며, 이를 토대로 노화 현상을 관리하려는 노력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시간을 연결하는 실험, 병체결합
쥐의 이질성 병체결합(heterochronic parabiosis)은 나이가 다른 두 쥐의 혈관을 연결해, 두 개체의 혈액이 서로 이동할 수 있게 하는 시술입니다. 병체결합은 1864년에 프랑스의 생리학자 폴 베르가 최초로 제안했습니다. 초기 병체결합 수술은 짧은 피부 절개와 옆구리 봉합으로 시행됐지만, 수년에 걸쳐 시술 방법이 발전했습니다. 요즘 피부 절개는 일반적으로 몸의 옆구리를 따라 확장됩니다. 또한 일부 모델에선 팔다리의 관절을 서로 봉합하고 복벽을 결합해 접촉 표면을 증가시킴으로써, 안정성을 높이고 혈관 형성이 더 잘 이뤄지도록 합니다.
쥐와 같은 설치류는 병체결합 실험에 가장 적합한 동물입니다. 멕시코도롱뇽(axolotl)을 포함한 다른 종도 병체결합 실험에 성공한 바 있지만, 설치류는 수술 후 회복이 빠르고 고등 포유류와 달리 상처 감염에 대한 저항성도 높습니다. 그런 까닭에 대부분의 병체결합 연구는 쥐를 이용해 이뤄지고 있습니다.
병체결합의 선구적 연구로 베르는 1866년 프랑스 과학아카데미의 실험생리학상을 받습니다. 이후 병체결합 모델은 1966년 프랜시스 라우스가 종양 발생 바이러스를 발견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는 데, 더글러스 콜먼과 제프리 프리드먼 미국 록펠러대 교수가 식욕과 체중을 조절하는 호르몬인 렙틴을 발견해 2010년 래스커 기초의학상을 받는 데에도 기여했습니다. 하지만 이 기술을 이용한 논문이 많지 않고, 윤리적인 문제 등이 있어 20세기 말까지 노화 연구에는 많이 쓰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어빙 와이스먼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 에이미 웨이저스 미국 하버드대 교수 등이 줄기세포의 분화와 노화된 유기체의 조직재생 연구에 병체결합 기술을 사용해서 이 기술이 주목받게 됐습니다. 2005년엔 지금 살펴보는 논문의 교신저자인 이리나 콘보이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교수가, 어린 쥐의 몸에서 파생된 인자가 노화된 근육 줄기세포의 활성화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살펴보기 위해 병체결합 기술을 사용했죠.
이처럼 병체결합 실험은 노화에 관한 많은 정보를 줬습니다. 하지만 실험 대상들의 스트레스, 순환계 결합의 부정확한 타이밍 등 복잡한 외과 수술의 부작용들도 파악됐습니다. 또 관찰한 현상들이 혈액 이동에 따른 것인지, 수술로 신체가 결합한 상태의 영향을 받았는지도 불명확했죠. 그래서 콘보이 교수팀은 상대적으로 수술이 간단하고, 교환된 혈액의 양 등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혈액교환 실험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노화세포가 유입된 어린 쥐의 변화
앞서 간단히 언급했지만, 세포 노화는 DNA 손상, 텔로미어(telomere・염색체 끝부분에 있는 단순 반복 서열로 세포의 수명을 결정함) 단축, 산화 스트레스, 단백질 무질서 증가, 대사 불균형 등 다양한 변화에 대한 반응으로 발생하는, 돌이킬 수 없는 성장 정지 상태입니다. 노화된 세포는 염증, 조직 손상, 노화 등을 촉진할 수 있는 노화 관련 인자들을 분비하며, 이것들이 다양한 조직에 축적돼 노화 관련 질병을 유도합니다.
이번 논문을 작성한 연구팀은 세포 노화를 증가시키는 전신의 노화 환경이 어린 쥐의 노화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기 위해 먼저 다음과 같은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사람과 쥐의 조직에서 채취한 세포에 각각 어린 사람과 노화된 사람, 어린 쥐와 노화된 쥐에서 분리한 혈청을 처리했습니다. 그 결과 폐 섬유아세포 같은 몇몇 종류의 세포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세포에서 노화된 혈청이 젊은 세포의 노화를 빠르게 유도했습니다.
연구팀은 그다음 순서로 젊은 쥐와 노화된 쥐의 혈액교환 실험을 시도했습니다. 실험 결과는 앞서 진행한 실험과 동일했습니다. 노화된 쥐와 결합한 어린 쥐가, 어린 쥐와 결합된 젊은 쥐보다 노화 지표들을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연구팀은 노화된 쥐에서 전해진 노화된 혈청 속 노화 인자들이 어린 쥐의 조직에서 세포 노화를 유도한다는 사실도 확인했습니다.
신체의 노화를 보여주는 지표들
그럼 이렇게 유도된 세포 노화는 어린 쥐의 생리 과정에 어떤 영향을 줄까요? 어린 쥐의 골격근, 특히 근육 재생과 복구에 중요한 근육 줄기세포(위성세포)와 근육 간질세포의 노화를 촉진했습니다. 이는 근력과 지구력의 감소로 이어져 골격근 조직의 기능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신장에선 세뇨관 상피세포의 괴사, 사구체 이상 등의 구조적 이상이나 혈액 내 요소질소(BUN), 혈청 내 크레아틴 등의 수치 변화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신장의 근위 세뇨관에서 손상 지표가 증가하고, 건강한 신장 세뇨관 지표는 감소한 것으로 볼 때, 노화된 쥐의 노화된 혈액은 어린 쥐의 신장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쳤을 수 있습니다.
그밖에도 노화된 혈액을 받은 어린 쥐의 간에선 섬유화가 증가했으며, 간에 이상이 있을 때 상승하는 빌리루빈(bilirubin・쓸개즙 색소를 이루는 황색 또는 갈색의 물질. 노화된 적혈구가 붕괴될 때 헤모글로빈이 분해돼 생김) 수치도 올라갔습니다.
세포의 시간을 거스르는 방법이 있을까?
노화된 쥐에서 노화세포를 제거하면, 앞선 실험에서 어린 쥐에게 노화를 유도했던 인자들도 제거될까요? 이를 확인하기 위해 노화세포를 선택적으로 제거하는 세놀리틱(senolytic) 약물들과 임상시험 중인 ATB263 등을 투약한 늙은 쥐의 혈액을 어린 쥐와 교환하는 실험이 진행됐습니다. 세놀리틱을 투약하지 않은 늙은 쥐와 어린 쥐의 혈액교환과 비교했습니다. 그 결과 세놀리틱 약물을 투여한 늙은 쥐와 혈액교환을 한 어린 쥐는 간과 신장 등에서 노화 인자들이 현저히 낮아졌고, 장기 기능도 개선됐습니다. 또 트레드밀에서 더 오래 달렸으며, 근력이 증가했고 밤에 에너지 소비가 더 많아졌습니다. (쥐는 야행성이죠.)
연구진은 어떤 세포가 이런 변화에 관여했는지 알기 위해 근육을 좀 더 자세히 연구했습니다. 그 결과 근육 줄기세포의 노화 지표가 매우 낮아졌음을 확인했죠. 재밌게도 세놀리틱을 투약한 어린 쥐와 혈액교환을 한 어린 쥐를, 세놀리틱을 투약하지 않은 어린 쥐와 혈액교환을 한 어린 쥐와 비교했을 때도 전자가 골격근, 간, 신장 등에서 노화 지표가 낮게 나타났습니다.
전반적으로 이 논문은 노화를 유도하는 메커니즘과 노화세포를 제거했을 때 조직 기능이 개선된다는 장점을 함께 보여줍니다. 놀랍게도 늙은 쥐가 가졌던 노화된 혈액은 실제 스트레스나 시간에 따라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세포 내 단백질과 DNA 의 손상 없이도, 어린 쥐에게 노화 현상을 발생시켰습니다. 또한 노화세포만 선택적으로 제거하는 세놀리틱 약물은 노화 관련 질병들을 치료할 수 있는 잠재력을 보여줬죠.
이 연구는 노화와 관련된 신체 변화의 전달 원리를 더 깊이,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또한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노화 관련 질환의 예방, 치료법도 더 구체화될 것입니다.
물론 동물 연구에선 결과를 확대 해석하지 않도록 주의해야하고, 인간에게 세놀리틱 약물 등을 적용하려면 그 안전성과 효능을 결정하기 위한 임상시험도 철저히 이뤄져야합니다. 현재 알츠하이머 등 여러 질병의 치료 목적으로 개발된 20여 개 세놀리틱 약물의 임상시험이 세계 곳곳에서 진행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