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보안벨 한번 울렸다고 출동하지는 않아요. 오작동일 수도 있고 바람만 불어도 울릴 수 있으니까요.” 도둑이 집을 다 털고 난 뒤에서야 출동한 보안경비업체 직원이 이렇게 대답한다면 우리는 매일 밤 편안히 잠들 수 없을 것이다.
KAIST 전자전산학과 고주파집적시스템 연구실의 홍성철 교수는 “해결책이 있다”고 답한다. 레이더로 고주파를 발사해 돌아오는 신호를 탐지하는 기술이다. 24기가헤르츠(1GHz=${10}^{9}$Hz) 이상의 고주파를 이용하면 사람의 미세한 움직임도 포착할 수 있다. 레이더에서 정지한 물체에 전파를 쏘면 쏠 때와 물체에 부딪혀 돌아올 때의 주파수가 동일하다. 그러나 물체가 움직이면 주파수가 달라져 물체의 방향과 속도까지 파악할 수 있다.
기존의 보안기기는 사람이 호흡할 때 따뜻한 공기를 내쉬는 것에 착안해 열을 감지하는 적외선 센서로 도둑을 탐지했다. 그러나 따뜻한 바람이 갑작스레 불어와도 벨이 울리곤 했다. 개나 고양이 같이 숨을 쉬는 동물도 인간과 구별할 수 없다.
홍 교수팀이 개발한 고주파 레이더는 열이 아니라 심장박동수와 호흡을 감지해 도둑을 알아챈다. 온몸에 혈액을 공급하기 위해 펌프질하는 심장의 움직임은 심장박동수로, 숨을 내쉬고 들이쉬는 동작은 호흡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인간의 심장박동수는 1분에 50~100번 정도이지만 몸집이 작은 개나 고양이의 심장은 훨씬 빨리 뛰기 때문에 둘을 구별할 수 있다.
현재 홍 교수팀이 개발한 레이더는 인체와 최대 5m 떨어진 거리에서 심장박동수와 호흡을 탐지할 수 있다. 앞으로는 최대 20m거리에서 탐지하는 것이 목표다.
이 기술은 의료분야에도 적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중풍은 발병 10일전부터 심장박동수에 변화가 생긴다. 집안에 레이더를 설치하면 수시로 심장박동수와 호흡 정보가 병원으로 전달된다. 이를 분석하면 중풍을 사전에 예방하는 것도 가능하다.
삼풍백화점처럼 건물이 붕괴되거나 스키장에 눈사태가 발생하거나 등산 중 실종됐을 때도 레이더 기술은 위력을 발휘한다. 초소형으로 제작된 레이더를 헬기에 부착하면 실종자의 심장박동수와 호흡 정보를 탐지해 신속한 구조가 이뤄질 수 있다.
95% 효율 부족, 우리가 채운다
연구팀은 레이더 기술을 이동전화에도 적용하고 있다. 전자기계가 갈수록 작아지지만 휴대전화에는 송신과 수신 안테나가 따로 달려있어 많은 부피를 차지하고 있다. 홍 교수팀은 ‘원형편파레이더시스템’을 개발해 국내와 미국에 특허를 출원한 상태다. 이 시스템은 송수신 안테나를 하나로 만들어 기존 안테나에 비해 부피를 반으로 줄였다.
안테나 하나로 송수신이 가능한 기술은 이미 개발됐지만 전력효율이 낮은 것이 문제였다. 원형편파레이더시스템은 전자회로를 새롭게 배치해 문제를 해결했다. 그 결과 전파를 보낼 때와 받을 때 전력 소모를 각각 1/2로 줄여 전력 효율을 4배나 높였다. 배터리는 통화할 때보다 평상시 기지국과 위치를 파악하고 기기 자체의 열을 방출하는데 전력을 더 많이 쓰고 있다. 홍 교수는 “현재 5%에 불과한 평균 효율을 50%까지 높이면, 한번 충전해 열흘까지 쓸 수 있다”고 말한다.
“광통신 분야에서 개인의 아이디어는 대부분 정부나 대기업을 통해서 상품화가 가능하지만 고주파집적시스템 분야는 아이디어만 좋으면 혼자서도 벤처기업을 만들 수 있고 상업화가 가능합니다.”
삼성전기와 KAIST는 지난해 5월 홍 교수를 센터장으로 ‘무선기술연구센터’를 공동 설립했다. 기업이 홍 교수의 기술력을 인정한 셈이다. 연구팀은 텔트론, 휴메이트, 에이티엔과 같은 벤처기업과 손잡고 도로의 유효통신거리를 확대하고 음영지역을 없애기 위한 핵심부품을 개발하고 있다.
현재 연구실에는 박사과정 14명, 석사과정 6명의 학생들이 있다. 박사과정의 엄준호 씨는 “졸업생 각자가 벤처기업을 창업하는 것이 목표”라며 당찬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