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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스트 융복합파트너] 행동 제어 스위치 찾아 뇌질환 치료하는 그날까지

 

 

당신은 오늘따라 기분이 좋다. 배는 적당히 부르고 햇살은 따사롭다. 콧바람을 흥얼거리던 그때, 평소 갖고 싶었으나 망설이던 물건이 눈에 띈다. 가방일 수도, 전자기기일 수도, 혹은 자동차일 수도 있겠다. 유독 기분이 좋던 당신은 평소라면 더 고민했을 그것을 단번에 구매하기로 선택한다.

 

‘선택’이라는 행동은 이처럼 기쁨과 불안감 같은 우리 뇌 내부 상태의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뇌 내부 상태를 제어하는 스위치가 잘못되면, 강박이나 우유부단함을 보이는 등 문제가 생긴다. 해결의 단추는 각각의 감정이 어떤 스위치의 문제인지 알아내는 것부터 시작한다. 흔히 뇌의 신경과학적 메커니즘을 연구한다고 말한다. 추론과 행동, 기억과 감정 등 인지기능의 신경과학적 메커니즘을 연구하고 있는 현정호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뇌과학과 교수를 5월 22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기억 행동의 스위치를 찾는 방법

 

“우리 뇌 안의 수많은 신경세포들 중 어떤 세포가 어떤 기억을 담당하는지 알 수 있다면, 경험하지 않은 기억을 심거나 삭제할 수 있죠.” 현 교수는 영화 ‘인셉션’에서나 일어날 것 같은 일들을 현재 연구실에서 실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에서 박사후과정을 밟던 시기인 2017년, 현 교수는 청색광과 칼슘을 이용해 특정 행동 시 활성화되는 신경세포를 정확하게 표지(label) 할 수 있는 기술인 ‘캘라이트(Cal-Light)’ 개발에 참여했다.

 

뇌가 학습, 기억, 인지와 같은 활동을 하면 평소보다 더 많은 칼슘이 세포 내로 들어온다. 이때 청색광을 뇌세포에 조사하면 캘라이트 단백질이 칼슘, 청색광과 반응해 리포터 유전자가 발현된다. 리포터 유전자 발현 시 녹색 형광 단백질이 나오는데, 이를 통해 행동에 따른 특정 신경세포 위치를 알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의사결정을 하고 행동을 할 때, 뇌의 신경세포에서는 활동 전압이 발생한다. 활동 전압은 전기적 형태를 띠며 한쪽 신경세포에서 다음 신경세포로 전달된다. 이러한 활동 전압이 어떤 신경세포에서 발생했는지 특정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세포 내 칼슘 농도를 측정하는 것이다. 현 교수는 “세포에서 칼슘이 발생했다는 건 무언가 활성화됐다는 것”이라며 “칼슘 유입에 따른 세포 내 활동 전압에 집중하면 특정 행동과 연관된 신경세포를 찾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 교수는 이제 캘라이트 기술로 특정 행동과 연관된 신경세포를 찾아내는 데에서 한발 더 나아가, 해당 신경세포의 활성을 켜거나 끄며 여러 감정과 행동을 조절하는 방법을 찾고자 한다. 기존의 캘라이트 기술은 잡음비가 상대적으로 높다는 단점이 있었다. 활동 전압과 상관없이 발생하는 여러 다른 칼슘 변화도 있는데, 기존의 캘라이트 기술이 다른 칼슘 변화에도 반응을 해서 알아내고자 하는 행동과 관계없는 신경세포가 표지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현 교수는 이런 단점을 보완한 ‘세포체 표적 캘라이트(ST-Cal-Light)’ 기술을 개발해 2022년 12월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발표했다. 세포체 표적 캘라이트 기술에선 캘라이트 단백질의 칼슘, 청색광 반응 정도를 더욱 높였다. 덕분에 활성화된 신경세포를 기존보다 더 정확히 표지할 수 있다.

 

 

인지 유연성 높여 뇌 질환 치료

 

세포체 표적 캘라이트 기술은 앞으로 뇌 질환을 치료하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세포체 표적 캘라이트 기술로 각각의 정확한 신경세포 위치를 알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해당 신경세포의 활성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 교수팀은 뇌전증을 앓고 있는 쥐에게 해당 기술을 적용해 뇌의 해마 영역에서 카이닌산(흥분성 아미노산의 일종)에 민감한 신경세포 집단을 찾아내고, 이를 표적으로 삼아 발작 증상을 억제했다.

 

그의 다음 목표는 추론 행동의 신경과학적 메커니즘을 밝혀 뇌 질환 치료에 도움을 주는 것이다. 추론은 과거의 경험이나 기억을 바탕으로 한 번도 풀어보지 못한 문제를 풀 수 있는 능력이다. 이는 새로운 사실을 받아들이거나 생각의 흐름을 전환하는 인지 유연성과 관련이 깊다. 정신과 질환 환자들은 공통적으로 인지 유연성이 낮은 경향을 보인다. 그는 “추론에 대한 연구를 이어가, 궁극적으로 뇌 질환 환자의 인지 유연성을 증가시킬 수 있는 신경과학적 메커니즘을 찾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물론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다른 신경과학 연구들과 마찬가지로 세포체 표적 캘라이트 기술 역시 침습적 방식을 사용한다. 청색광을 뇌세포에 쏴 신경세포의 활성을 조절하기 위해서는 뇌에 광섬유를 삽입하는 외과적인 수술이 반드시 필요하다. 사람을 치료하는 데 사용하려면 비침습적 방법이 개발돼야 한다.

 

“광섬유를 사용하지 않고 비침습적으로 캘라이트 기술을 구현하는 일도 언젠가는 실현될 수 있을 거라 봅니다. 훗날 우울증, 치매, 뇌전증 등 뇌 질환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이 적절한 치료를 받고 평온한 일상을 누리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제작지원. 이 기사는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의 제작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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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대구=이수린 기자
  • 사진

    남윤중
  • 디자인

    이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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