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과학의 힘으로 장애를 뛰어넘다

마이너리티리포트


01강미현·가치 있는 나무의 충고 비가 와서 그럴까. 밤이 깊었는데도 이상하게 하늘이 새카맣지 않다. 하늘 사이로 시커먼 나무 한그루가 보인다.


지난 8월 ‘마음으로 보는 세상’이란 사진전이 동아일보 일민미술관에서 열렸다. 2007년 동아미술제 전시기획공모전에서 당선된 작품을 전시했는데, 모든 사진의 제목 위에는 올록볼록한 점자를 함께 써놓았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제법 많은 사람이 거쳐 갔는지 살짝 손때가 탔다.

어떤 사진은 초점이 뿌옇게 흐려있고 어떤 사진은 피사체가 화면 귀퉁이로 밀려나있다. 언뜻 보기에도 잘 찍은 사진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전시를 기획한 상명대 사진학과 양종훈 교수의 말을 듣고 나자 낮은 탄식이 입가로 새어나왔다. 다소 특별해 보이는 사진의 작가는 모두 시각장애우였기 때문이다.


02조현대·달리고 싶다 시각장애가 있는 나는 말을 좋아한다. 이 말의 도움을 받아서 세상을 힘껏 달리고 싶다.


복지관에서 일하는 이상현 씨, 대학에 다니고 있는 강미현 씨, 말을 타고서라도 힘차게 달리고 싶다는 조현대 씨까지 이들은 실명했거나 색각장애, 고도근시를 가졌다는 사실만 빼면 평범한 이웃들이다. 카메라를 들게 된 계기도 그랬다. ‘남들 다 찍는 사진인데 나도 한번 찍어보자’고 결심을 굳히자 시각장애는 큰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상명대 사진과 학생들의 도움을 받아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세상으로 나갔다. 그리고 동물원의 얼룩말과 다정한 아내, 쓸쓸한 밤거리를 사진 속에 담았다. 카메라는 자동으로 초점을 맞추며 제2의 눈이 돼줬다.

과연 이들의 눈에 비친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하지만 극소수의 사람이 앓고 있는 병이나 장애를 연구하며 수년간 땀 흘리는 과학자도 있다. 카메라가 앞을 잘 못 보는 장애우의 시각을 확장시켜준 것처럼 이들의 노력은 눈에 보이는, 또는 보이지 않는 열매로 한창 영글어가고 있다.


03박규민·친구 9년 만에 친구를 길에서 만났다. 기분 좋고 반가운 마음을 사진에 담았다.


Report 1 色다른 세상에서 살아가는 법 색각장애


색상변환기술의 원리


내년에 스무 살이 되는 A군은 요즘 고민이 많다. 초등학교 때 신체검사에서 우연히 자신이 색각장애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당시 동그라미 속 숫자를 맞히는 ‘이시하라색각검사’를 했는데, 노란색이나 연두색을 다른 색과 구별하기가 쉽지 않았다. 대학에 가면 운전면허도 따고 싶고 웹디자이너도 되고 싶지만 색각장애가 발목을 잡는다. 아예 색각검사표를 달달 외워서라도 시험에 통과하고 싶은 심정이다.

18세기 영국의 물리학자이자 화학자인 존 돌턴과 한국을 대표하는 만화가 이현세의 공통점은? 바로 색각장애를 지녔다는 점이다. 돌턴은 빨간색과 초록색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적록색맹이었고, 이현세는 색약 때문에 미대 진학을 포기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색각장애는 빛을 인식해 색을 느끼는 감각인 색각에 이상이 생기는 병인데, 색맹과 그 정도가 색맹보다 약한 색약이 있다. 대한안과학회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색각장애를 가진 사람의 비율은 남자 5.9%, 여자 0.4%. 색맹을 일으키는 유전자가 X염색체에 존재하므로 남자에게서 발생빈도가 더 높다.


색상변환기술을 탑재한 USB메모리카드를 컴퓨터에 꽂으면 웹사이트의 색을 자동으로 조정해준다. 사진은 녹색약장애우가 보는 과일(위)과 이를 변환해 정상적으로 보이도록 만든 화면(아래). 보통 사람의 눈에는 조금 붉게 보인다.


눈의 망막에는 빛의 밝기를 감지하는 간상세포와 형태와 색을 구분하는 추상세포가 존재한다. 우리는 수많은 색을 볼 수 있지만 추상세포가 가장 잘 느끼는 색은 빛의 삼원색인 빨강, 녹색, 파랑이다. 이 세 가지 빛을 적절한 비율로 합성해 서로 다른 색으로 인지하는 것. 서울대 의대 안과학교실 이진학 교수는 “색각장애는 유전적으로 또는 사고나 약물 때문에 추상세포가 손상돼 생긴다”면서 “세포가 모두 손상돼 색을 전혀 보지 못하고 명암만 느끼는 전색맹과 한 가지 세포만 손상된 적색맹, 녹색맹, 청색맹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03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방송미디어연구그룹은 한국정보통신대, 소프트웨어회사인 코아브리드, 서울대병원과 공동으로 색상변환기술을 개발했다. 색각장애의 종류와 경중에 따라 사진이나 동영상 같은 디지털콘텐츠의 색을 자동으로 변환해주는 기술이었다. 당시 삼성전자는 이 기술을 TV에 적용해 색각장애우를 위한 화면 색상조정 메뉴를 만들기도 했다.

지난달부터 코아브리드는 색상변환기술을 탑재한 USB메모리카드를 개발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컴퓨터에 메모리카드를 꽂으면 자신의 색각장애를 진단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실행되고 검사 결과에 따라 웹사이트의 색을 자동으로 조정해준다. 이 덕분에 인터넷쇼핑을 할 때 색을 구분하지 못해 여러 번 환불하고, 구분하기 어려운 색을 함께 쓴 웹사이트 디자인 때문에 혼란을 겪는 일이 줄어들 전망이다.


서울시가 운행하는 간선버스의 색깔은 선명한 파랑색. 하지만 심한 적색약을 가진 사람에게는 보라색으로 보인다.


IT기술의 발전으로 모든 디지털기기가 개인화되고 있는 추세다. ETRI 방송미디어연구그룹 남제호 박사는 “숫자나 기호 같은 매우 중요한 정보뿐만 아니라 방송이나 영화의 콘텐츠에도 개인용 PDA나 휴대전화를 이용해 색상을 변환하는 기술이 널리 적용될 것”이라며 “미래에는 색각장애우 스스로가 남들에게 어떻게 비칠지 모니터링해주는 시스템도 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신의 색각정보를 담고 있는 칩 하나만 있으면 지하철 노선도의 색을 구분하는 일도, 지도를 보는 일도, 홈쇼핑으로 잘 익은 사과를 구매하는 일도 가능해진다. 웹디자이너라는 직업도 도전해볼 만하다.

미국 컬럼비아대 메디컬센터 올리버 색스 교수의 ‘색맹의 섬’이란 책에는 이런 글이 실려 있다.

“색맹이란 말은 우리에게 없는 것만 강조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것, 우리가 보고 느끼는 세계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죠. 저에게 해질녘은 마법 같은 시간입니다. 극명한 명암대비가 없어 시야가 확장되고 시력도 좋아집니다.”

색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색상변환기술이 디지털세상을 넘어 실제 세상에서도 널리 적용되길 기대해본다.


색맹 검사


Report 2 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 광과민성질환


다형일광발진의 발생 메커니즘^자외선이 표피의 각질형성세포(01)를 자극하면 신호전달물질인 사이토카인(02)이 분비된다. 사이토카인은 혈관 속 T세표(03)를 활성화시켜 진피 쪽으로 이동시킨다. 이와 동시에 표피층의 단백질(04)이 자외선을 쬐면 항원(05)으로 돌변한다. 피부의 면역세포인 랑게르한스세포(06)가 항원을 T세포로 전달해 완전히 제거하고 그 결과 피부에 발진이나 수포가 생긴다.


올해 중학교 3학년인 B양은 체육시간에 운동장을 뛰고 나면 목과 팔, 다리가 미치도록 가렵다. 긁으면 두드러기가 돋아나고 꾹 참고 긁지 않아도 피부가 벌겋게 변한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걸어오는 15분 정도의 시간도 괴롭긴 마찬가지. 여름에는 슈퍼마켓만 다녀와도 두드러기가 생기고 많이 긁어서인지 피부도 상했다. B양의 작은어머니도 이런 증상이 있었는데 산에 열심히 다니면서 좋아졌다며 B양에게 등산을 권했다.

한 조각의 햇빛은 절망의 농도를 묽게 만든다. 햇빛을 쬐면 뇌에서 세로토닌이 분비되며 우울한 기분이 가라앉는다. 체내에 비타민D가 만들어지면서 뼈도 튼튼해진다. 그러나 눈부신 햇빛이 고역인 사람도 있다. 흔히 햇빛알레르기라고 불리는 광과민성질환 탓이다. 백인의 경우 전체 인구의 10~20%가 이 병을 앓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발생비율이 0.5%를 밑돈다.

“햇빛에 유난히 예민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피부 단백질이 자외선을 쬐면 변성이 일어나면서 항원으로 변하죠. 몸은 이를 외부의 침입이라고 간주하고 공격을 퍼부어요.”

화이트라인하얀피부과 김태흥 원장의 말이다. 그는 경상대 피부과 교수로 재직하던 1991년부터 9년간 병원을 방문한 환자 2만3291명을 대상으로 광과민성질환을 앓고 있는지 조사했다. 그 결과 전체 환자의 0.5%가 광과민성질환의 증상을 보였고 이러한 증상은 남자보다 여자에게 더 빈번하게 나타났다. 연구방법으로 가시광선, 자외선A, 자외선B*를 방출하는 인공광원을 피부에 쪼인 뒤 홍반이 나타나게 하는 빛의 세기를 조사하는 광검사, 원인으로 추정되는 물질을 피부에 접촉시켰다 뗀 뒤 자외선을 쪼여 반응을 살피는 광첩포검사를 이용했다.

광과민성질환 가운데 가장 흔한 증상은 다형일광발진이다. 피부의 비정상적인 면역반응 때문에 일어나며 30분 정도 햇빛을 쬐면 발진과 수포가 생긴다. 환자는 여름보다 봄에 많다. 일사량이 적고 실내 활동이 많은 겨울 동안 피부가 빛을 못 보고 지내다가 갑자기 빛에 노출되면 적응하지 못하는 탓이다. 얼굴은 늘 노출되는 부위이기 때문에 햇빛에 대한 역치가 목이나 팔보다 커 덜 민감하다.


01심각한 광과민성질환을 앓고 있는 한 소녀는 햇빛을 막아주는 두꺼운 옷과 장갑, 마스크의 도움 없이는 자전거조차 맘껏 탈 수 없다.


다형일광발진이 일어나는 과정은 이렇다. 자외선의 영향으로 피부 표피에 위치한 세포가 신호전달물질을 내뿜으며 혈관 속 T세포를 진피로 이동시킨다. 동시에 자외선을 받아 변형된 피부 단백질이 항원으로 돌변하고, 표피에 존재하던 랑게르한스세포가 항원을 잡아 T세포에게 운반한다. 세포의 면역기능을 담당하는 T세포는 항원에 독성물질을 주입해 제거하는데, 끔찍한 ‘전쟁’의 잔해가 발진이나 수포로 피부에 돋아나는 것.

다형일광발진 다음으로 흔한 증상이 만성일광피부염이다. 야외활동이 잦은 50대 이후의 남성에게 흔히 발병한다. 얼굴, 목, 어깨 같은 햇빛 노출부위에 홍반성 습진이 나타나고 심한 가려움을 느끼는데, 증상이 온몸으로 확대될 수도 있다.

지난 9월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세계피부과학회 광의학분과모임에서 동아대 의대 피부과 김기호 교수는‘2000~2005년 사이 한반도의 일조시간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면서 만성일광피부염 환자 수도 늘었다’는 연구논문을 발표했다. 극지방 못지않게 지구온난화의 영향을 크게 받는 동아시아지역도 이제 햇빛안전지대는 아니라는 얘기다. 만성일광피부염은 자외선A를 쪼였을 때 피부에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물질이 활성화되며 생긴다. 따라서 광첩포검사로 니켈, 염화수은, 크롬, 포름알데히드 같은 원인물질을 밝히면 피할 수도 있다.

국내에는 아직 광과민성질환 환자가 희귀해 연구 속도가 더디다. 건국대병원 피부과 최용범 교수는 “병원을 찾은 한 여학생이 햇빛을 받으면 두드러기가 나는 증상을 보여 정밀검사를 권했지만 거부했다”며 “두드러기 치료제인 항히스타민제를 먹거나 햇빛에 익숙해지도록 인공광원을 쪼이는 광선치료를 받으면 증상이 완화될 수 있다”고 조기치료를 당부했다.

최 교수는 “광과민성질환이 발생하는 메커니즘이 드러나면서 멜라닌을 합성하는 호르몬을 인위적으로 투여해 피부에서 일어나는 면역반응을 억제하는 연구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멜라닌은 자외선으로부터 피부를 지키고 비정상적 면역반응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02 파장이 다른 인공광원을 등에 쪼인 뒤 홍반이 나타나는 최소 빛의 세기를 조사하면 빛에 대한 민감도를 알 수 있다.


Report 3 귀가 안 들리다 눈이 안 보이고 CMTX5


01희귀유전병의 원인유전자를 밝혀 그 데이터를 유전자칩 속에 저장해두면 유전질환을 진단하고 발현가능성까지 예측할 수 있다.


“김 교수. 내 환자 중에 난청을 앓고 있는 환자가 있는데, 아무래도 유전질환인 것 같아.” 성균관대 의대 삼성서울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김종원 교수는 시간이 날 때마다 가족력*이 있는 질병을 접하게 되면 자신에게 꼭 얘기해달라고 주위 교수들에게 부탁해뒀다. 어느 날 이비인후과 홍성화 교수는 난청환자인 C씨의 가족 중 비슷한 증상을 가진 사람이 더 있다며 김 교수에게 따끈한 ‘제보’를 건넸다. C씨 집안을 대상으로 3대에 걸친 가계조사를 한 결과 비슷한 병을 앓는 환자가 모두 6명. 모두 남자였고 난청을 가지고 태어나 10살쯤 시력이 떨어졌다. 또 다리의 신경세포와 근육세포가 위축되면서 기형으로 변했다.

김 교수는 CMT(샤코-마리-투스)병을 떠올렸다. 미국인 2500명 중 1명 꼴로 발생하는 비교적 흔한 유전질환으로 말초신경계에 이상이 생겨 운동장애를 겪는 병이다. 원인유전자가 상염색체 위에 있는지, 성염색체 위에 있는지에 따라 이름을 달리 붙이는데, 성염색체와 관련된 CMT병은 X를 붙여 CMTX라고 한다.


02 CMTX5병에 걸린 환자의 다리. 신경세포와 근육세포가 위축돼 잘 걷지 못한다.


“환자가 앓는 병이 색각장애와 마찬가지로 성염색체의 열성유전 때문에 생기는 것은 확실한데, 이제껏 알려져 있던 CMTX1부터 CMTX4의 증상과 달랐어요. 그래서 원인유전자를 찾기로 했죠.”

2005년 6월 김 교수가 이 질병에 CMTX5라는 이름을 붙이고 미국 국립보건원에 등록했을 때는 열렬한 찬사가 쏟아졌다. 1976년 이호왕 박사가 유행성출혈열의 원인병원체를 발견해 ‘한탄바이러스’라고 이름 붙인 이래로 한국인이 지은 병명이 국제적으로 인정받기는 처음이었다. 그러나 다음부터가 가시밭길이었다. 우리나라에서 CMTX5병을 앓는 환자는 단 한 가족. 세계적으로 발병기록조차 드물었다. 어쩌면 평생을 걸어야할 모험이 될지도 몰랐다.

과거에는 질병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특정 후보유전자를 정해 그 안에서 원인유전자를 찾는 방법을 주로 썼다. 그러나 요즘은 하나의 염색체 위의 모든 유전자를 대상으로 질병과의 연관성을 순차적으로 계산해 질병을 일으킬 확률이 높은 유전자를 찾아낸다. 이 방법을 연관분석(linkage analysis)이라고 하는데, 분자유전학과 생물정보학이 융합된 고난도의 작업이다.

일단 김 교수팀은 환자와 가족의 혈액에서 DNA를 추출한 뒤 일정한 간격으로 마커를 표시했다. 마커는 이정표 역할을 하는 유전자로 X염색체에만 수백 개가 존재한다. 한국인의 X염색체 위에는 교차빈도*가 알려진 마커 48개가 존재해 이를 분석하면 환자 사이에는 공통적으로, 환자가 아닌 사람과는 다르게 나타나는 부분을 찾을 수 있다. 김 교수는 이 영역에 속한 유전자 200개를 놓고 범위를 좁혀가며 분석해 원인유전자를 찾아냈다. CMTX5병을 처음 발견하고 거의 2년 만에 얻은 성과였다.

김 교수는 “원인유전자인 PRPS1은 DNA나 RNA의 핵산을 만드는 유전자”라며 “말초신경계 유전질환과의 관련성은 처음 드러났기 때문에 앞으로 이 유전자의 대사과정을 연구하면 치료제도 개발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실제로 CMTX5 환자의 몸에서는 PRPS1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일어나 특정 체내대사물질이 잘 만들어지지 않았는데, 김 교수는 이를 병의 원인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는 곧 부족한 체내대사물질을 환자의 몸에 투입하는 임상시험을 할 예정이다.

이름 없는 유전병이 CMTX5라는 정식명칭을 갖고 원인유전자까지 밝혀지자 세계 곳곳에서 감춰져 있던 환자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1967년 미국에서 CMTX5병을 가진 가족에 대한 논문이 발표된 적 있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병명조차 몰랐기에 그저 증상을 꼼꼼히 기록해둘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 김 교수의 연구결과가 세계적으로 알려지며 DNA샘플 한개가 배달됐다. 1967년 논문을 쓴 의사가 여전히 살아있는 자기 환자의 DNA샘플을 보낸 것. 분석 결과 그 환자의 PRPS1 유전자에서도 돌연변이가 발견됐다. 40년이 지난 뒤 한국의 한 의사 덕분에 자신의 병명을 알게 된 환자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현재 CMTX5병을 앓는 가족은 미국의 가족을 포함해 네덜란드, 호주, 우리나라까지 모두 4가족이 알려져 있다.

보건복지부는 인구 10만명당 43명 이하의 비율로 발생하는 병을 희귀난치성 질환으로 분류한다. 지난 9월 추가된 다제내성결핵, 활동성 구루병을 포함한 111종의 희귀난치성질환자에게 의료비를 지원해주고 있다. CMTX5 환자들은 아직 의료비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병명도 모른 채 병원을 전전하며 끔찍한 시간을 보내는 환자보다는 훨씬 행복한 경우에 속한다.

왜 하필 희귀질환을 연구하냐는 질문에 김교수는 “CMTX5병을 연구하며 의사로서 보람을 처음 느꼈고 지금은 환자에게 오히려 고맙다”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희귀질환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의 한숨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묵묵히 연구에 매진하는 그의 모습이 믿음직스러워 보였다.


03희귀질환을 앓는 사람들은 정부와 의료진의 소외를 받기 일쑤다. 사진은 희귀질환을 앓는 프랑스 장애우와 부모들의 시위.


가시광선/자외선A/자외선B
가시광선은 파장이 400~760nm(나노미터, 1nm=10-9m)이고 자외선A는 320~400nm, 자외선 B는 290~320nm다. 파장이 긴 가시광선은 피부 지방조직까지 깊숙이 침투하고 파장이 짧은 자외선A, B는 진피조직까지 투과할 수 있다.

가족력
환자의 가족이나 가까운 친척의 의학적 내력. 이들의 건강상태를 살펴 질병과 유전병 여부를 밝히고 사망원인을 조사해 환자의 치료에 이용한다.

교차빈도
염색체 위에 일정한 순서로 배열돼있는 유전자가 감수분열 때 교차를 일으키는 빈도. 이를 알면 염색체 위의 특정유전자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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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신방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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