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 길이가 약 2cm도 안되는 조그만 직사각형 금속 조각이 갑자기 둥글게 구부러지더니 앞으로 기어가기 시작한다. 구부러졌을 때의 모습이 솔방울을 닮았다. 메틴 시티 독일 막스플랑크 지능시스템연구소 연구팀이 천산갑의 형태를 본따 몸속에서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든 의료 로봇이다.
천산갑은 온 몸이 딱딱한 비늘로 덮여 있는 포유동물이다. 위험을 느끼면 몸을 순식간에 동그랗게 웅크려 포식자로부터 몸을 보호한다. 연구팀은 천산갑이 몸을 마는 방식에 착안해, 단단한 금속 재질이면서도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는 로봇을 설계했다.
연구팀은 자성 입자를 섞은 부드러운 고분자 층에 작고 단단한 금속 조각을 천산갑의 비늘처럼 겹쳐 붙여 로봇을 만들었다. 이 로봇은 자기장을 통해 몸 밖에서 무선으로 조종하거나 가열할 수 있다.
먼저, 로봇에 저주파 자기장을 가하면 로봇이 둥글게 말리며 앞뒤로 움직인다. 이 움직임으로 위나 소장 등 접근하기 어려운 깊숙한 장기까지 쉽게 이동해 약물을 전달할 수 있다.
또한, 로봇에 고주파 자기장을 가하면 로봇의 금속 부품을 70캜 이상으로 가열할 수도 있다. 뜨겁게 달군 로봇의 열에너지를 이용해 출혈을 멈추거나 종양 조직을 제거하는 등의 의료 시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연구를 이끈 런하오순 연구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이 로봇은 거의 모든 위장에 도달할 수 있다”며 “개복 수술에 의존하지 않고도 소장의 암을 치료하는 데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연구는 6월 20일,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발표됐다. doi: 10.1038/s41467-023-38689-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