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림벌채 약초남획 자연석채굴 등으로 중국 동북지방은 아주 지쳐있는 자연으로 변해 있었다.
모스크바 콤소몰스카야역에서 유라시아 대륙횡단열차에 몸을 실은 것은 한여름밤 01시 15분이었다. 대륙의 서쪽에서 동쪽으로의 연속적 자연경관의 변화는 어느새 바이칼호를 경계로 크게 달라지며, 거기로부터 이틀을 더 달려 낯익은 동북아시아 자연 경관의 품으로 들어섰다. 중국 동북지방땅이 시작되는 대흥안령(大興安嶺)산맥을 넘어 든 것이다. 즉 유라시아 대륙의 우랄 알타이 지방으로부터 한반도에 이르기 위해서는 중국 동북지방땅과 백두산을 낀 장백산맥을 지나야만 한다. 이것은 중국 동북지방과 백두산의 자연이 바로 한반도 자연의 형성과 발달에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뜻한다. 그러므로 한반도의 자연을 보다 바르게 이해하고 보존하기 위해서는 중국 동북지방과 백두산의 자연에 대한 정보도 많이 축적할 필요가 있다.
쾌적한 온대기후
한반도 면적의 약 3배에 달하는 중국 동북지방땅(대략64만 ㎢)은 흑룡강(黑龍江)과 길림(吉林) 두 개의 성(省)으로 이루어지며, 고구려시대에는 민족의 활동무대이기도 했다. 중국 동북지방 벌판을 동서남북으로 마구 흐르고 있는 송화강(松花江)은 광활하고 비옥한 충적대지 중국 동북지방땅을 만들었다. 이 송화강은 북으로 소흥안령(小興安嶺)과 대흥안령(大興安嶺)의 양대 산맥과 남으로 백두산을 중심으로 하는 장백산맥에 그 수원지를 둔다. 또한 전세계 선진 도시들 특히 중부유럽의 기후가 그러하듯이 중국 동북지방 땅의 기후는 쾌적하고도 전형적인 온대기후에 속한다. 이것은 다리를 벌리고 선 듯한 소흥안령과 대흥안령이 한랭한 시베리아의 겨울 바람을 막아주고, 무더운 여름의 태평양 열대기단을 장백산맥이 막아주는 덕택이다. 이러한 기후조건은 자연환경을 풍부하게 해주기에 충분하다. 그래서인지, 나는 언제부터인가 중국 동북지방이라면 울창한 심림에 아직 중국 동북지방 호랑이가 살고 있는 그런 원시의 땅만 연상했다.
그러나, 순진한 나의 생각은 현실과 너무나 다르지 않은가. 이곳에선 원시림은 커녕 중국 동북지방땅의 식물사회와 경관을 대표할 수 있는 자연을 찾아 보기조차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20세기 초에 일본이 건설한 만주 철도에 의한 본격적인 개척과 개발 그리고 집약적 인간활동에 의한 자연파괴는 상상외로 심각했다. 삼림벌채 약초남획은 물론 토양 채취와 자연석 채굴 등으로 인해 중국 동북지방땅은 아주 지쳐있는 약한 자연으로 변해 있었다. 그리 험준하지 않은 중국 동북지방의 산들은 대부분 허리에 할퀸 자국을 가지고 있다. 지난 여름의 송화강 유역의 홍수를 집중폭우 때문이라고 사람들은 변명하고 있지만, 기실은 산림파괴 주변 야산으로부터의 토석(土石)채취 그리고 수리시설의 미비가 홍수의 피해를 가중시킨 것이다.
'강한 자연'이란 곧 그 지역의 기후와 풍토 그리고 주변 경관에 어울려 수백년 동안 발달되어 온 원시림이다. 이것을 식물사회학에서는 그 지역의 '원식생'이라고 한다. 그러나 어떤 지역에 있어서 현재의 자연 환경은 여러가지 파괴요인들로 말미암아 본래 모습의 원식생이 발달될 수 있는 입지 조건은 아니다. 이러한 현재의 환경조건하에서 인위적 자연파괴요소를 배제한다고 가정할 경우에 형성될 수 있는 최고의 숲을 '잠재자연식생'이라 부른다. 그러므로 토양의 유실과 같은 뚜렷한 토지의 변화가 없는 한, 어떤 지역의 잠재자연식생이란 바로 이 지역에 아주 단편적으로 남아 있는 원시림(원식생)을 의미하게 된다. 잠재자연식생은 그 지역의 자연적인 유전자를 모두 가지고 있는 유전자의 창고(Gene Pool)이며 미래의 가장 강한 자연인 것이다. 이 원식생에 대응되는 용어가 '현재식생'이며, 지금 주변에 관찰되는 대부분의 현재 식생은 인간 간섭에 의해 이차적으로 형성된 '2차식생'으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파괴 밝히는 식물사회학
자연이 파괴된 정도는 식물사회학적 개념으로부터 그 지역 식물사회의 종(種)조성을 면밀히 관찰함으로써 판단할 수 있다. 식물사회학은 20세기 초에 식물지리학으로부터 발달해 온 자연보존의 학문으로서, 중부유럽(스위스 취리히, 프랑스 몽펠리에, 오스트리아빈)에서 시작되었다. 지금도 자연이 잘 보존되어 있는 중부 유럽 각국에서 집중적으로 연구되고 있으며, 식물들의 사회성과 식물과 인간의 관계를 연구 주제로 삼는다. 예를 하나 들자. 질경이란 식물은 항상 인간의 발길이 닿는 길가에서만 자라며 숲 속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이 질경이는 숲 속의 여러 식물들과의 경쟁에서 밀려, 다른 식물들이 살기 싫어하는 장소인, 사람들에게 자주 밟히는 곳에 적응하여 자라고 있다. 그러므로 질경이는 경쟁력은 약하지만 적응력은 강하다고 말할 수 있으며, 질경이다운 질경이는 사람들에게 밟힘으로써 그 모양이 더 난다.
식물들도 동물과 마찬가지로 아주 엄격한 경쟁과 공존을 통해서 각각 독특한 사회를 형성하고 있다. 식물의 종자가 땅에 떨어져 하나의 개체로서 싹을 틔우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그 땅의 모든 환경 조건에 자신이 적응을 하면서 여러가지 어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무서운 경쟁사회에 사는 것이다. 그러나 동물들은 자신이 불리한 조건에 처하게 되면 다른 곳으로 이동을 시도한다. 이런 의미에서도 식물이란 어떤 지역의 환경 지표로서 동물보다 훨씬 유효하며, 식물 개체와 그 사회의 연구는 아주 중요한 우리들의 과제다.
우리가 최근에 흔히 듣는 멸종 위기종이니 희귀종이니 하는 것은 모두 이런 식물사회적연구로부터 얻어진 한 단편으로 유전자 손실에 대한 학자들의 경고인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 동북지방땅의 원식생(과거) 현재식생(현재) 잠재자연식생(미래)은 과연 무엇일까?
대신식생과 2차식생이 발달
중국 동북지방의 원식생은 잣나무 종비나무 분비나무 등의 바늘잎나무(침엽수)와 피나무 중국동북지방자작나무 신갈나무 등의 넓은잎나무(활엽수)가 섞여나는 혼합림임을 잔존하는 원시림 상태의 숲을 찾아봄으로써 알 수 있다. 여러 식물들 가운데 잣나무는 가장 왕성하게 생육하며 이 숲을 대표한다. 만약 중국 동북지방의 다른 지역에서도 이 원시림 상태의 자연 입지조건(특히 토양 조건)이 유사하게 잘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면, 그곳의 잠재자연식생으로서 바로 혼합림이 형성될 것이다. 한편 중국 동북지방의 현재 식생은 옥수수 경작지와 같은 '대신식생'과 산지의 신갈나무림과 같은 2차식생으로 이루어져 있다.
식물사회는 본래 다양한 층과 여러가지 식물들로 이루어진다. 식물사회의 단면을 관찰해 보면 일반적으로 키나무층(교목층), 작은 키나무층(저목층), 풀층(초본층) 등의 3층구 조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숲을 구성하고 있는 식물들이 서로 빛을 적당히 나누어 가지기 위해 나타나는 현상이다. 또 각 층에는 여러가지 종들이 경쟁을 하면서 섞여난다. 이곳 중국 동북지방의 예로서 원식생의 잣나무-피나무군락의 키나무층에는 잣나무 신갈나무 피나무 종비나무 분비나무 중국동북지방자작나무 거제수나무 고로쇠나무 등이 어울려 자라나, 2차식생의 신갈나무-당개지치군락에서는 신갈나무가 혼자서 우점하는 경우가 흔하다. 즉 식생이 파괴된다는 것은 곧 식물종들의 단순화를 초래하게 됨을 의미하며, 마침내 희귀종이 많이 발생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