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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이 전기를 통한다

GD램으로 가는 길목의 수문장

배터리 태양전지 센서 다이오드 트랜지스터 등에 사용되고 있는 전기전도성 플라스틱은 전자파공해의 「해결사」로 떠오르고 있다.

볼펜 도시락통과 같이 간단한 물건이나 전화기 텔레비전 자동차 비행기와 같은 전자 및 수송장비에는 많은 종류의 플라스틱들이 사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플라스틱이란 무엇인가. 플라스틱은 합성섬유 합성고무와 마찬가지로 고분자의 일종이다. 그 성질은 가볍고 가공하기 쉬우며 쉽게 착색할 수 있다. 따라서 현재 여러가지 물건이나 부속품을 만드는데 널리 쓰이고 있다.

고분자는 분자량이 적어도 5만 이상이 되는 것을 말한다. 이 큰 분자는 단량체라는 단위물질이 쇠사슬의 고리같이 서로 연결되어 얻어진 것이다.

고분자의 성질은 고스란히
 

(그림 1) 화학결합(중합)에 의한 고분자합성


비닐하우스의 덮개로 쓰이는 폴리에틸렌필름을 예로 들어 보자. 폴리에틸렌은 (그림1)에서 보는 바와 같이 실온에서 기체인 에틸렌 단량체가 연결되어 분자량이 커지면서 고체로 변한 것이다.

에틸렌과 같은 단량체를 섞은 뒤 화학결합, 즉 중합을 시키면 두 단량체는 고리처럼 서로 연결되면서 자라난다. 이와 같이 기체나 액체(분자량이 작은 물질) 등 단량체를 '모으면' 고분자물질이 탄생하는 것이다.

현재 전기를 통하는 재료로는 철을 포함해서 몇 가지의 금속이 대표적이다. 반면 유기물질인 고분자는 좋은 절연체로만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금속이 전기를 통하는 원리를 파악하면 그 원리를 고분자에도 적용할 수 있다. 분자설계를 금속과 비슷하게 하면 전기전도성 플라스틱을 합성할 수 있는 것이다. 전기전도성 플라스틱도 분명히 고분자이므로 가볍고 가공하기 쉽다는 고분자의 특성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동시에 전기를 흐르게 하므로 금속에 비해 그 용도가 클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우연히, 너무도 우연히
 

(그림 2) 폴리아세틸렌의 분자구조(공액이중결합)


흑연은 구리 정도는 아니지만 전기를 흐르게 할 수 있다. 특히 탄소가 결합하면서 이루는 평면층 사이에 요드(I) 같은 물질을 끼워 넣으면 전기전도도가 크게 향상되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전기전도성 물질은 금속이나 흑연말고도 많다.

합성에 의해 최초로 만들어진 전기전도성 물질은 분자식이 ${(SN)}_{n}$인 질화유황중합체다. 이 물질은 금속영역에 속하는 전기전도성을 가지며 절대영도(0°K) 근방에서 전기 저항이 없는 초전도성질을 나타낸다.

유기고분자로서 전기전도성이 높은 최초의 고분자는 분자식이 ${(CH)}_{n}$인 폴리아세틸렌. 이 폴리아세틸렌의 전기전도성은 반도체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요드로 처리하면 전기전도도가 급격히 향상, 금속수준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전기전도도가 높은 폴리아세틸렌을 처음부터 계획하여 합성한 것은 아니었다. 질화유황중합체의 전기전도성 실험을 하면서 마침 만들어져 있던 폴리아세틸렌을 같은 방법으로 처리해 보았더니 높은 전기전도성이 나타남을 우연하게 발견했던 것이다. 이때가 1977년으로 지금부터 불과 13년전 일이다.

전기전도성 플라스틱은 현재 전기도선으로 보다는 플라스틱배터리 태양전지 센서 다이오드 트랜지스터 등 전자산업소재로서 더 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최근 꽤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폴리아세틸렌이 높은 전기전도성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밝혀준 최초의 연구에 참여한 과학자가 귀국, 이 분야의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에서도 1983년부터 이 분야에 연구비를 적극 투입, 그동안 많은 연구가 수행되어 왔다.
고분자물질은 공유결합에 의해 원자들이 연결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고분자의 전자는 각각의 핵에 국한되어 쉽게 그 궤도를 벗어날수 없다. 바로 이와 같은 성질이 유기고분자가 전기를 통하지 못하게. 즉 절연체가 되게 하는 것이다.

반면 전기전도성 플라스틱의 전자는 궤도가 서로 중첩되어 있다. 그래서 전자가 한개의 핵에 국한돼 있지 않고 자유롭게 옮겨 다니게 된다. 그 이유는 고분자의 사슬이 공액이중결합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단공유결합과 이중공유결합이 교대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그림2).

만약 공액이중결합을 가진 고분자가 산화, 전자를 한개 잃게 되면 그 고분자는 전기를 더욱 잘 전하게 된다. 전자의 이동을 도와주는 바이폴라론(bipolaron) 이란 구조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보통 폴리아세틸렌은 반도체 수준, 산화가 된 폴리아세틸렌은 금속수준의 전기전도도를 갖는다.

최초로 만들어진 폴리아세틸렌의 전기전도도는 5×${10}^{2}$s/㎝였다. 이때 단위는 센티미터 당 리멘이라 읽고 리멘의 값은 전기저항의 역수를 말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전기전도도는 전자의 운동능력에 크게 좌우된다. 물론 이 운동능력은 고분자의 분자배열에 의해서도 큰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분자배열을 향상시키고 불순물을 제거하면 폴리아세틸렌의 전기전도도는 크게 좋아진다. 최근에 알려진 폴리아세틸렌중 가장 높은 전기전도도를 자랑하는 것은 그 능력이 ${10}^{5}$s/㎝ 에 달한다. 이는 구리의 전기전도도 5×${10}^{5}$s/㎝ 에 비해 결코 손색이 없는 수치다. 게다가 가볍고 합성을 통해 쉽게 생산할 수 있으므로 이 재료의 용도는 앞으로 더욱 다양해질 전망이다.

도핑을 통해
 

(그림 3) 전기전도성 플라스틱 제조장치


이번에는 전기전도성 플라스틱을 만드는 방법을 알아보자. 폴리아세틸렌은 아세틸렌을 '찌글러-낫타' 촉매로 중합시켜 얻은 얇은 판(sheet) 상의 물체를 산화제나 환원제로 처리해 만든다. 이와 같은 처리를 도핑이라 하고 이때 사용되는 산화제 또는 환원제를 도판트라 부른다.

현재 가장 많이 쓰는 전기전도성 플라스틱제법은 전해질 중에서 단량체를 전기화학적 방법으로 중합하는 방법이다. (그림3)에서와 같이 전해질이 담긴 그릇에 백금으로 된 두 전극을 꽂고 전기를 통하면 음극표면에 검은 색깔의 전기전도성 필름이 얻어진다.

또 다른 방법은 축합·중합방법이다. 즉 두개의 화합물이 반응, 적은 물질을 부산물로 생성하면서 고분자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 축합·중협에 의해 얻어진 폴리파라페닐렌(그림4)는 벤젠핵이 연결된 고분자인데 엔지니어링플라스틱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그림 4) 폴리파라페닐렌의 공액이중결합구조


컴퓨터 기억장치를 보호해줘
 

(그림 5) 플라스틱 2차전지


그러면 전기전도성 플라스틱은 어디에 쓰일까.

전기전도성 플라스틱을 사용해 만든 최초의 상품은 고분자배터리다. 전기화학적 중합에 의해 얻어진 전기전도성 플라스틱은 음이온으로 도핑(doping, 반도체안에 소량의 불순물을 첨가, 필요한 전기적 특성을 얻는 일)된 상태. 따라서 이 재료를 배터리의 양극으로 사용하면 충·방전이 가능한 배터리를 얻을 수 있다. 즉 전기를 소비할 때 는 도판트가 전해질로 흘러 나왔다가 충전을 하게 되면 도로 전기전도성 플라스틱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최초로 시판된 고분자배터리(그림5)는 폴리아닐린을 양극으로 하고 리튬금속을 음극으로 해 만든 것이다. 일반건전지가 전압을 1.5V밖에 내지 못하는 데 비해 이것은 3V의 전압을 낸다. 또 사용한 재료가 모두 가벼워 단위 무게당 낼 수 있는 전기량이 일반 건전지보다 높다. 뿐만 아니라 충전시 효율이 90% 이상되고 충·방전회수가 1천번을 넘는다. 특히 이 배터리는 정전이 되었을 때 컴퓨터의 기억장치를 보호하기에 아주 적합하다. 실제로 반지름이 2㎝, 두께가 1.6㎜ 밖에 되지 않는 배터리도 선보이고 있다.

또 폴리피롤을 사용, 고분자배터리를 생산하기도 한다. 곧 시판될 예정인 폴리피롤배터리는 전기화학적 방법으로 쉽게 만들 수 있으며 공기중에서도 안정, 다루기도 쉽다.

태양전지에의 응용도 유망하다.
금속반도체는 햇빛을 전기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미 실용화되었다. 실제로 일반 건전지를 쓰지 않고 태양전지를 사용해 만든 휴대용 계산기나 휴대용 전자게임장치를 흔히 볼 수 있다. 특히 강우량이 적은 곳에서는 고속도로의 가로등에 태양전지를 설치, 낮에는 축전을 하고 밤에는 그 전기로 길을 밝혀 준다. 또 사막이나 섬지방은 햇빛을 받는 시간이 길어 태양전지 설치 장소로 매우 적합하다.

전기전도성 플라스틱으로 만든 태양전지의 구조를 살펴보자(그림6). 플라스틱 태양전지는 얇은 전기전도성 플라스틱필름의 양면에 금속이나 금속산화물을 입힌 것이다. 햇빛을 받는 부분은 빛이 지나갈 수 있는 물질, 즉 알루미늄 인듐 크롬 산화아연을 얇게 입히고 반대면에는 금 은 산화주석을 얇게 입힌다. 그리고 양면의 금속 또는 산화금속막에 도선을 연결하고 저항을 삽입한다.
 

(그림 6) 플라스틱 태양전지의 구조


햇빛의 광자가 투명한 금속필름을 지나 전기전도성 플라스틱에 흡수되면 전자와 정공(正孔)을 쌍으로 가지고 있는 분자들의 에너지준위를 높여준다. 에너지준위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라가면 전자와 정공이 분리된다. 이때 전자는 입사광 쪽의 투명금속필름으로, 정공은 반대편 전극으로 옮겨감으로써 회로내에 전류가 흐르게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전기전도성 플라스틱으로 태양전지를 만들면 태양에너지의 겨우 1~3%만을 변환시킬 뿐이다. 이에 비해 실리콘단결정체나 갈륨알세나이드는 18~22%의 변환율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들 무기소재는 생산비가 많이 들고 수명이 짧아 오히려 비경제적이다.
 

(그림 7) 고분자 배터리의 소재들


연탄가스를 예고해 주기도

그런가 하면 전기전도성 플라스틱은 센서로의 가능성도 타진받고 있다.

암모니아나 황산가스는 산화 또는 환원성이 높은 기체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도핑이 되지 않은 전기전도성 플라스틱과 접촉하면 착색이 되거나 전기전도도가 커진다. 이와 같은 현상을 이용하면 가스센서를 만들 수 있다.

한편 일산화탄소는 강한 환원제이므로 음이온으로 도핑된 전기전도성 플라스틱을 환원시킬 수 있다. 따라서 산화된 상태의 전기 전도성 플라스틱을 일산화탄소가 있는 공기 중에 노출시키면 이 플라스틱이 환원되면서 전기전도도가 떨어진다. 이 원리를 활용하면 일산화탄소의 존재를 암시해주는 가스센서를 만들 수 있다.

또 전기전도성 플라스틱 중에는 방사선을 쬐면 조사량에 따라 전기전도도나 광흡수 스펙트럼이 변하는 것이 있다. 이런 원리를 도입한 방사선센서의 개발이 현재 활발하게 진행중이다.

빛 또는 전류에 의해 화학반응이 일어나면 물질의 색깔도 따라서 변한다. 이 성질을 이용해 만든 기구를 광 또는 전기변색소자라 한다. 그런데 이 광정변색소자도 전기전도성 플라스틱으로 제조할 수 있다.

전기화학적 방법으로 중합된 대부분의 전기전도성 플라스틱은 광전변색을 한다. 이 소자의 구조는 태양전지의 구조와 거의 같다. 즉 전기전도성 플라스틱 필름의 한쪽 면에는 투명도전판을 붙이고 반대면에는 반사전극을 붙이는 것이다. 전해질 속에서 전기 전도성 고분자는 두 전극 사이에 걸린 전압에 따라 색깔이 변한다. 예컨대 폴리피롤을 사용하면 검은 푸른색에서 연한 황색이 되었다가 다시 황록색으로 바뀐다. 게다가 색깔이 변하는 속도가 O.02초에 불과하므로 빠른 정보전달이 가능하다. 또한 주어진 전압에 따라 고유한 색깔을 나타내므로 정보기억소자로의 응용도 가능하다.

트랜지스터도 전기전도성 플라스틱의 활용 영역에 포함된다.
전기전도성 플라스틱도 도핑을 시키면 실리콘반도체와 마찬가지로 n형 또는 p형이 될 수 있다. 이 둘을 접합시켜 전류를 통과시키면 정류작용을 하는 다이오드가 되는 것이다. 즉 n형은 폴리사이오펜을 양이온으로 도핑시키고 p형은 폴리피롤을 음이온으로 도핑시켜 다이오드를 만든다.

전기전도성 플라스틱은 전기화학적으로 산화 또는 환원상태에 따라 전기전도도가 달라진다. 바로 이같은 성질을 이용하면 트랜지스터를 만들 수 있다. 예컨대 폴리피롤을 이용해서 (그림8)과 같은 설계를 하면 고분자트랜지스터가 얻어진다. 그러나 이것이 실용화되기 위해서는 우수한 고체전해질이 개발돼야 하고 또 반복되는 산화·환원반응에 전기전도성 플라스틱이 견뎌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림8) 플라스틱 트랜지스터의 구조


대용량 정보처리기술의 기대주

전기전도성 플라스틱의 용도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전기전도도가 ${10}^{5}$s/㎝ 이상, 공기중에서도 안정, 성형도 쉬운 전기전도성 플라스틱이 개발된다면 구리 대신 전기도선으로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비중이 1.4정도 밖에 되지 않으므로 전기전도성 플라스틱을 우주비행선에 사용하면 무게를 크게 줄일 수 있다.

한편 각종 전자제품이 다른 전자제품의 기능을 방해하는 전자파공해가 최근 심각할 정도가 되었다. 이를 대비하려면 전자장차폐를 도입해야 한다. 여기서도 전기전도성 플라스틱은 '감초'다. 전기전도도가 높고 가볍기 때문에 미래의 전자장차폐소재로 크게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일반 플라스틱과 잘 혼합되는 새로운 전기전도성 플라스틱이 개발되었는데 이것은 전자제품 외각소재로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기억용량이 매우 높은 4MD램 기억소자가 시판되고 있으며 16MD램도 이미 개발되었다. 그러나 현재 알려진 소재로 G(기가)D램을 만들기는 어렵다. GD램의 고집적회로는 분자단위로 취급되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인체의 뇌작용이나 신경작용도 모두 분자 단위에서 일어나고 있다 따라서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현재보다 뛰어난 기억소자가 있어야 한다. 결국 분자 단위를 취급하는 분자전자학에 의존해야 하는데 전기전도성 플라스틱은 분자전자학의 기본소재인 것이다.

요컨대 고분자의 일종인 플라스틱에 전기가 흐르게 된 '사연'은 그들이 특수한 분자구조를 가졌기 때문이다. 이 현상은 고분자의 활용도를 크게 넓혔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기능을 가진 소자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자연과학이 발달하면서 모든 현상을 분자구조와 결부시켜 논리적으로 해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분자는 설계에 의하여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어지고 있다.

금속이나 무기물은 유기물질에 비해 종류도 많지 않고 신물질을 창출할 가능성도 적다. 그러나 유기물질 특히 유기고분자는 원소의 결합배열 입체구조 분자량에 따라 수없이 많은 종류를 예상할 수 있고, 또 필요한 성질을 가진 구조를 설계하여 쉽게 합성해 낼 수 있다.

특히 정보사회로 발전해 갈 미래에는 대용량의 정보를 빨리 처리하는 기술이 요구될 것이다. 따라서 전기전도성 플라스틱은 미래 정보산업용 필수소재로 발전될 것이 기대되며 분자전자학의 발달과 더불어 대용량정보처리기술을 크게 향상시킬 획기적인 신소재로 믿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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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김정엽 고분자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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