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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동키즈] 누구나 자신만의 북극성이 있습니다

 

과학동아는 과학고 진학을 준비하며 처음 만났어요. 비싼 사교육을 많이 받기 어려웠는데, 어머니께서 매달 새 책을 사 주셔서 밑줄 치며 읽었어요. 우주가 얼마나 거대한지, 바다가 얼마나 깊고 신비한지, 미래의 우리 사회는 어떨지 흥미로운 이야기로 가득했어요. 20년이 지나니 정말 모든 사람과 물건이 인터넷으로 연결되고 전기차가 다니는 세상이에요.

 

 

처음 영재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마냥 신났어요. 전국에서 모인 과학을 좋아하는 친구들이라 말이 잘 통했거든요. 가령 저는 자동차 번호판을 보면 그 숫자 네 개를 이용한 사칙연산이나 거듭제곱으로 등식을 만들곤 했죠. 너무 괴짜처럼 보일까봐 누구에게도 말하진 않았어요. 한 친구에게 조심스레 이야기했더니 실은 자기도 인수분해가 습관이라며 반가워했어요.

 

용기 내서 도전했던 영재학교 추억들

 

영재학교의 경험들 중에서도 첫 물리학 수업이 특히 기억에 남아요. 중학생 때 읽은 책 ‘번쩍번쩍 빛 실험실’의 저자 분이 눈앞에서 강의하신다는 사실이 일단 신기했어요. 그날 주제는 ‘과학이란 무엇인가’였어요. 과학은 과학적 방법으로 체계화된 지식 체계이고, 가설을 세워 검증하는 것이 과학적 방법이라고 하셨죠. 그러므로 과학은 끊임없이 변하는 지식의 집합체라고 가르쳐주셨어요. 흔히 자연과학을 줄여 과학이라고 하지만 실은 과학적 방법으로 인간 사회를 연구하는 사회과학도 과학인 거죠. 

 

기숙사에서 친구들과 친해지고 이론과 실습이 가득한 시간표를 따라 여러 건물을 오가며 새내기 시절을 즐겼어요. 그러다 첫 수학 시험을 봤죠. 37점! 우리 반 18명 중에 뒤에서 2등이었어요. 나름 수학 올림피아드 수상도 했는데. 같이 놀던 친구들이 갑자기 너무 대단해 보이고 자신감은 뚝 떨어졌어요.

 

그 무렵 한 은사님께서 조언을 주셨어요. “지금은 너희가 학교라는 울타리에 모였지만, 곧 사방팔방으로 흩어질 거야. 100명이 100가지의 다른 길을 갈 거야. 그러니 옆 친구와 비교하지 말고, 진짜 좋아하는 걸 찾아. 혼날 만한 일도 몰래 한번 해봐. 다치지 말고, 들키지 말고.”

 

한결 마음이 편해져 비교 대신 도전을 시작했어요. 연습이 많고 가족처럼 지낸다는 사물놀이 동아리에 용기를 내 지원했어요. 오디션에서 자기소개를 하고 개인기도 준비해서 합격했죠. 사물놀이는 모두 타악기라 엄청 시끄러운데, 실컷 두드리면 스트레스가 풀렸어요. 장구를 배웠는데, 처음엔 어설펐지만 나중엔 장구 양편을 휙휙 오가며 멋지게 채를 휘둘렀어요.

 

필수교과를 마친 2학년부터 원하는 과목을 수강했어요. 팀별로 주제를 정해 실험하는 탐구물리학이 가장 재밌었어요. KAIST 등 과학기술특성화대학에서 학점이 인정되는 선행 AP 과목 중에는 일반물리학, 기초 양자역학을 다루는 일반화학 등을 선택했어요. 관측천문학에서는 망원경으로 초승달에서 보름달을 지나 그믐달이 되는 과정인 월령 변화를 찍었는데, 밤새 천문대에서 달을 보다 끓여 먹은 라면 맛이 지금도 기억나요.

 

여름방학엔 친구들과 함께 여고생 물리 캠프에 참가했어요. KAIST의 연구실에서 조교님의 도움을 받아, 파란 색소가 없는 모르포나비의 날개가 왜 파랗게 보이는지 광결정에 대한 실험을 했어요. 여학생이 적은 과학고에서도 물리를 좋아하는 친구는 더 드물어요. 서울에서 제주까지 전국에서 모인 여학생들과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교류한 시간은 그래서 소중했습니다.

 

KAIST 학부과정은 학과를 자유롭게 정해요. 전 기계공학을 선택했어요. 미시적인 입체구조로 다양한 전기적 입출력 신호를 처리하는 MEMS(Micro Electro Mechanical Systems・미세 전기 기계 시스템) 장치부터, 거대한 플랜트에도 응용하는 역학까지 물리학에 기반한 기초 공학 지식을 폭넓게 접했어요.

 

 

첫 마음으로 다시 찾은 나만의 북극성

 

KAIST 대학원에선 인간-컴퓨터 상호작용을 전공하며, 연구와 개발의 차이를 구체적으로 배웠어요. 연구자는 알려지지 않은 것을 탐구해 새 지식을 만들고, 개발자는 사람에게 유용한 것을 만듭니다. 지식을 익히는 것과 만드는 것의 차이는 컸어요. 전 연구보다 개발이 적성에 맞는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죠.

 

결국 대학원의 석박사 통합과정을 그만두기로 결심했어요. KAIST 부설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까지 에스컬레이터를 갈아타듯 진학하다가 갑자기 툭 튕겨나간 느낌이었어요. 

 

생각을 정리하려고 혼자 배낭여행을 떠났어요. 러시아의 동쪽 끝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유럽으로 향하다 지구에서 가장 깊은 바이칼 호수에 도달했어요. 동쪽에서 출발한 동양인들과 서쪽에서 출발한 서양인들이 만나 다채로운 삶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곳이에요. 밤이 되니 호수 위 너른 하늘로 별들이 쏟아졌어요. 제가 한 여행자에게 북두칠성을 찾아주자, 이내 그는 북극성은 어디에 있냐 묻더라고요.

 

북극성. 생각해보면 북극성이 특별한 이유는 수많은 별, 즉 항성 중에 지구라는 행성의 자전축과 같은 방향에 있다는 우연뿐입니다. 남반구에서는 보이지도 않고요. 하늘에는 수많은 별이 있고, 지구에는 수십억 명의 사람이 각자의 인생을 살아요. 북극성도 우연히 북극성이 됐듯, 내 삶도 어차피 내 의지로 시작되지 않았으니 의미와 재미만 있다면 어디서 뭘 해도 괜찮다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내 북극성은 내가 찾지, 뭐. 여행 후 인턴십을 하며 우여곡절 끝에 석사 학위를 받았어요. 지금 생각해도 그때의 교수님께 죄송하고 감사해요.

 

대학원을 마친 후 기계공학과 선배가 계신 스마트팩토리 컨설팅 프로젝트에 합류했어요. 고등학교, 학부, 대학원에서 경험한 조각들이 현장에서 퍼즐처럼 맞춰진다고 느꼈어요. 건물의 온습도를 조절하는 공조 설비실엔 코끼리만 한 냉동기가 수십 대나 있고 옥상에도 거대한 냉각탑이 있어요. 센서에서 데이터를 수집, 분석해 도출한 최적값으로 이 거대한 설비를 제어해서 더 효율적인 공장을 만드는 것이 스마트팩토리의 역할 중 하나죠. 물리적인 설비와 디지털 정보를 엮는 일은 마치 구슬 서 말을 꿰어 보배로 만드는 일 같아서 매력적이었어요. 

 

이후 제조업체의 관점에서 데이터를 분석해보고 싶어서 큰 제조사로 이직했어요. 하지만 스마트팩토리 부서에 배정받진 못했어요. 그래도 기구개발 부서에서 첫 폴더블폰 개발에 참여했어요. 제품의 개발, 생산 과정과 임직원이 10만 명인 회사의 시스템이 돌아가는 방식을 경험할 수 있었죠.

 

 

창업이라는 새로운 여정

 

지금 창업한 회사는 처음부터 설립을 의도하진 않았어요. 제가 사는 아파트에 공장과 비슷한 냉방장치가 있어서 예전 동료와 에너지 최적화를 해본 것이 시작이었죠. 옥상을 태양광 패널로 다 덮는 것보다 효율이 더 높았어요. 이 방식을 상업 건물에 적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벤처회사를 세우고, 감사하게 투자도 받았어요. 하지만 막상 시장에 뛰어드니 고객이 원하는 방향은 아니었어요. 건물의 소유주, 관리자, 입주자 간 이해관계도 복잡했고요. 시장에서 열광할 제품을 찾아가는 중이에요.

 

저는 고등학생 때 과학동아 지면에 ‘책을 고르는 여학생’으로 등장한 적이 있어요. 촬영할 땐 조금 부끄럽기도 했지만 함께 즐거워해주시던 어머니는 여전히 그 책을 간직하고 계세요. 지금 이 글이 실리는 과학동아도 저의 북극성으로 다가가는 도전의 기록이자 좋은 추억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또한 이 글이 독자 여러분께 자신의 북극성을 찾도록 용기를 준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죠. 

 

10년 넘게 국민들의 세금으로 뛰어난 분들과 쾌적한 환경에서 공부했어요. 이젠 좋은 기업가가 돼서 삶의 질을 높이고,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며, 세금도 잘 내서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어요. 현재 저는 30대 중반인데, 이런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제가 가장 저답다고 생각해요. 언젠가는 지혜롭고, 건강하고, 경제력 있는 엔젤투자자 할머니가 될 거예요.

 

이공계엔 수많은 길이 있어요. 정답은 없고 그저 선택의 연속이죠. 혹시 이 글을 읽는 10대, 20대 친구들이 있다면 각자의 북극성을 찾아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마음 가는 일이 있다면 겁내지 말고 용기 있게 도전해보라고. 가끔 넘어져도 괜찮다고. 다시 일어서면 한층 성장해서 또 다른 세상이 보일 거예요. 

 

 

용어 설명

 

 냉동기 : 가스나 고온수 등으로 냉방을 위한 냉수를 만드는 장치.

 냉각탑 : 실내에서 빼낸 열을 밖으로 내보내는, 에어컨의 실외기와 비슷한 설비.

 엔젤투자자 : 기술력은 있으나 창업 자금이 부족한 초기 단계의 벤처기업에 투자해 첨단산업을 육성하는 개인 투자자.

2023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손경희 에크록스대표
  • 에디터

    라헌
  • 디자인

    이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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