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2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택배기사’는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만든 SF 드라마입니다. 250억 원 규모의 제작비가 투입되며 많은 주목을 받았죠. 작품 속 지구는 뿌연 먼지로 가득 차 있어 한 치 앞도 보기 어려운 상황인데요, 미세먼지가 가득한 지금의 지구와도 별반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택배기사에 등장하는 오염된 지구에 대해 더 살펴보겠습니다.
※ 편집자 주
사이언스 픽션(SF), 즉 과학적 사실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영화를 ‘과학덕후’의 시선으로 뜯어봅니다. 볼거리가 넘쳐나는 시대, 바쁜 과학덕후들을 위해 준비한 연재에 많은 관심 바랍니다.
작품 속 지구는 혜성 충돌 이후 급속도로 사막화가 진행돼 산소호흡기가 없으면 외출조차 어려운 환경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소수의 인류가 살아남았지만, 계급에 따라 살아가는 환경은 매우 다릅니다. 작품 속에서 한국은 코어 구역과 일반 구역, 난민 구역으로 나뉩니다. 최상위 계층이 살아가는 코어 구역은 산소와 물질의 부족함이 없어 산소호흡기 없이도 밖을 돌아다닐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녹음이 우거진 환경입니다. 반면 일반 구역은 산소와 생필품을 공급받아야만 생존할 수 있고, 난민 구역은 사막화된 폐허입니다.
일반 구역에 사는 시민들의 손등에는 마치 QR코드처럼 생긴 인식 장치가 있는데요, 이 코드가 있어야 산소와 같은 생필품을 구할 수 있습니다. QR코드가 없는 난민들이 일반 구역에 들어갈 수 있는, 이른바 ‘신분 상승’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택배기사가 되는 겁니다. 택배기사는 산소호흡기와 같은 생필품을 나르는 일을 합니다. 때문에 항상 이런 물건을 약탈하려는 헌터들의 표적이 되죠. 난민 출신 ‘사월’(강유석 분)은 우연히 일반 시민의 손에 자라게 되지만, 그 때문에 사월을 돌보던 은인이 공격을 받습니다. 복수를 위해 사월은 누구보다 강한 택배기사인 ‘5-8’(김우빈 분)을 찾아가고, 그 과정에서 공기를 독점하고 있는 천명그룹의 끔찍한 진실을 알게 됩니다.
전 세계인 99.99%가 미세먼지에 시달린다
택배기사 속 지구는 우리의 지구와 많은 점에서 비슷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역시 최근 미세먼지 문제가 심각한데요. 올해 3월 유밍 궈 호주 모나시대 교수 등 국제 공동연구팀은 세계 인구의 0.001% 만이 초미세먼지(PM2.5)로부터 자유롭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랜싯 플래니터리 헬스’에 발표했습니다.doi: 10.1016/S2542-5196(23)00008-6 연구팀은 2000년~2019년까지 65개국 5446곳의 초미세먼지 측정소에서 측정한 대기오염 지표 등을 토대로 초미세먼지 세계 지도를 완성했습니다. 그 결과 전 세계 인구의 99.999%, 육지 면적의 99.82%가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안전 기준치(연평균보다 높은 미세먼지 환경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한국이 포함된 동아시아는 초미세먼지 농도가 가장 높은 대륙이었습니다.
미세먼지가 무슨 대수냐고 생각하는 독자도 있을 수 있겠지만, 최근 미세먼지가 우리 건강에 치명적이라는 연구 결과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미국 하버드대에 소속된 하버드 T.H 챈 보건대 연구팀은 초미세먼지에 장기간 노출됐을 때 조기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2020년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내놨습니다. doi: 10.1126/sciadv.aba5692
연구팀은 65세 이상의 미국인 6850만 명의 체질량 지수, 흡연 여부, 인종, 소득, 교육과 같은 외부 요인을 모두 표준화한 뒤, 살고 있는 지역과 그 지역에서 수집된 대기 오염 데이터를 함께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초미세먼지가낮아지면 사망 위험이 약 6~7%가량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미국의 초미세먼지 기준을 연평균 12킽/m에서 10킽/m으로만 강화해도 10년간 14만 명 이상을 살릴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현실에서도 영화에서처럼 ‘코어 구역’과 ‘일반 구역’이 존재할지 모릅니다. 소득이 높은 나라는 미세먼지가 적고, 그렇지 않은 나라는 많다는 보고서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4월 WHO는 세계 117개국 6743개 도시 공기 질을 분석한 ‘WHO 대기질 데이터베이스 2022’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상대적으로 국민들의 소득이 적은 아프리카와 서태평양 지역의 미세먼지 비율은 WHO 기준치보다 8배 이상 높았습니다. 반면 유럽은 전 세계에서 가장 낮았죠.
WHO가 지정한 초미세먼지와 미세먼지(PM10) 기준치를 지킨 도시는 고소득 국가에서는 17%나 되는 반면 저소득 국가에서는 1%에 그쳤습니다. 이산화질소의 경우 저소득 국가가 고소득 국가보다 1.5배 높았습니다. 전문가들은 초미세먼지 발생 원인의 60~70%가 화석연료이다 보니, 화석연료를 이용하는 생산 공장 등이 많은 저소득 국가가 상대적으로 대기질이 나빠지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강인한 택배기사의 비밀?
현실에선 ‘근감소증’ 밝히는 연구
작품에서 중요하게 등장하는 또 하나의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천명그룹의 후계자 ‘류석’(송승헌 분)입니다. 류석은 자신의 불치병을 치료하기 위해 비정상적으로 강한 ‘특별한 존재’들을 납치해 실험하는 일도 서슴지 않죠.
현실 속에서도 힘의 원천인 근육을 강하게 만드는 연구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만 이들의 목적은 남들보다 힘이 센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노화로 인해 근육이 줄어든 이들이 건강한 삶을 이어 나갈 수 있게 하는 데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고령화가 심화되면서 많은 이들이 어떻게 하면 건강한 노년을 보낼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따라 노화에 의해 근육이 줄어드는 ‘근감소증’을 치료하기 위한 치료제 시장도 열리기 시작했는데요.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얼라이드마켓리서치’에 따르면 근감소증 관련 건강기능식품 및 치료제 시장은 2030년까지 연평균 6.1%로 성장해 47억 달러(약 6조 2700억 원) 규모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근육을 늘리기 위해 연구자들은 정말 다양한 시도를 했습니다. 그 중에는 젊은 사람의 피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었습니다. 2005년 토머스 란 미국 스탠퍼드대 박사팀은 늙은 쥐와 어린 쥐의 혈관을 연결하는 ‘병체결합’을 통해 늙은 쥐의 근육, 간, 심장 세포가 젊어졌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습니다. doi:10.1038/nature03260
이후 많은 연구자들이 젊은 개체의 혈액 속 단백질을 분석해 세포를 젊게 만드는 ‘회춘 단백질’을 찾아 나섰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사랑 호르몬’으로 알려진 옥시토신입니다. 옥시토신은 늙은 생쥐의 근육 재생능력을 높인다는 것이 연구를 통해 밝혀졌습니다. 그러다 2017년에는 급기야 16~25세의 건강한 사람의 혈액에서 분리한 혈장을 판매하는 기업도 등장했습니다. 암브로시아라는 기업으로 ‘젊은 혈장’을 1L에 8000달러(약 1070만 원)에 판매했습니다. 의외로(?) 많은 고객을 유치했으나 2019년 미국식품의약국(FDA)이 임상적으로 효능이 증명된 바 없고 감염 등 위험이 있을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암브로시아는 혈장 수혈을 중단했습니다.
최근에는 운동을 하면 늘어나는 혈액 내 단백질을 이용한 ‘운동모방약’에 대한 연구도 많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운동을 하면 근육세포는 여러 단백질, 호르몬, 핵산 물질(miRNA) 등을 분비합니다. 이런 물질은 근육을 재생하고 뼈를 튼튼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죠. 세드릭 드레이 프랑스 폴사바티에대 박사팀은 운동을 할 때 증가하는 ‘아펠린’이라는 단백질이 노화성 근감소증을 막는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doi: 10.1038/s41591-018-0131-6
물론 이런 연구 결과들은 노화된 근육세포를 재생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젊은 사람의 근육을 과도하게 늘려주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이로 인해 근육의 재생이나 성장, 운동을 했을 때 근육에서 벌어지는 생물학적인 변화 등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으니, 언젠가는 택배기사 속 ‘특별한 존재’들의 비밀이 풀리리라 생각합니다.
최지원
과학동아와 한국경제신문을 거쳐 현재 동아일보에서 과학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과학동아의 열혈 독자다. jw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