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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공학재난' 경고

OECD가입계기로 관심 높아져

에이즈 바이러스 실험 대상은 주로 원숭이다. 이 '위험한' 생명체가 외부에 유출되지 않도록 철저한 통제가 필요하다.


지난 10월 11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이사회는 우리나라를 29번째 가입국으로 승인했다. 우리나라 경제가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경쟁하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공식적인 신호탄이었다. 그런데 하루 전 동아일보는 1면 기사에서 미국의 소비자 단체들이 유전적으로 변형된 ‘첨단 식품’에 대해 세계적인 불매운동을 벌인다고 선언해 관련 기업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유전적으로 조작된 콩과 옥수수, 그리고 이를 원료로 생산되는 코카콜라, 맥도날드 프렌치 프라이 등 10개 제품이 인체에 해로울지 모른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운동의 주도자는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은 ‘엔트로피’ 의 저자 제레미 리프킨이었다.

이 두가지 ‘사건’ 은 얼핏 보아 별다른 관련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OECD 회원국이 된 이상 정부나 기업이 이런 불매운동을 더이상 남의 일로 여길 수 없게 됐다. OECD가 우리나라에게 생명공학 분야의 ‘안전성’ 을 확보하라고 정식으로 요구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국제적인 환경 협약의 하나인 ‘생물다양성협약’ 에 따라 1998년부터 생명공학적으로 만들어진 각국 제품들의 안전성에 대해 까다로운 심사가 가해질 전망이다. 만일 심사에서 탈락한다면 다 만들어 놓은 제품을 외국에 수출할 길이 막히게 된다.

전갈과 콩의 위험한 만남

생명공학을 이용해 만든 식품이 과연 안전한지에 대한 문제 제기는 이미 선진국을 중심으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1994년 미국의 한 회사는 토마토에 유전자 조작을 가해 수분 함량이 적고 속이 꽉 찬 토마토를 생산했다. 이를 원료로 주스를 만들면 일반 토마토의 경우보다 훨씬 많은 양을 생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기형’ 토마토가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소비자들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이를 의식한 탓에 작년 미국의 많은 슈퍼마켓들은 ‘유전공학제품을 팔지 않는다’ 는 안내문을 밖에 내걸었다.

유럽도 마찬가지다. 주요 농작물인 옥수수를 생산할 때 해충이 늘 골치거리였다. 해마다 겪는 피해가 수백만달러에 달했다. 그래서 해충 피해를 막기 위해 옥수수 생산에 유전공학을 도입하기 시작했다.생물 중에는 병충해에 잘 견디는 개체들이 있다. 이들의 유전자에서 병충해 저항 기능을 담당하는 부위를 잘라 옥수수 유전자에 이식시키면 옥수수의 내성은 강해진다. 당연히 수확량이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지난 8월 유럽연합은 유전적으로 개량된 옥수수를 생산하지 말아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우선 사람이나 가축이 이 옥수수를 먹으면 병에 걸릴지 모른다. 동물의 내장에는 음식을 분해하는 박테리아가 적절한 수를 이루며 살고 있다. 변형된 옥수수를 분해하는 과정에서 박테리아의 내성 역시 강해질 수 있다. 박테리아 수는 점점 늘어나게 되고, 소화 기능에 필요한 생체의 균형은 깨질 것이다.

생태계의 불균형도 야기될 수 있다. 변형된 생명체가 워낙 생존력이 강하다 보니 야생 토종이 경쟁에서 질 수밖에 없다. 미국이 남미산 옥수수를 유전적으로 개량해 다시 남미로 수출했을 때 미국산 옥수수가 남미의 옥수수밭을 휩쓸어버린 사례가 있다. 만일 곤충이 변형된 옥수수의 종자를 다른 식물들이 살고 있는 지역으로 옮긴다면 그 지역의 생태계는 옥수수밭으로 바뀔지 모른다.

이식되는 유전자의 능력이 강력할수록 문제는 더욱 커진다. 만일 전갈이 뿜어내는 맹독을 만드는 유전자가 있다면 어떨까. 실제로 이 유전자를 콩에 이식해 웬만한 병에는 끄떡도 안하는 ‘독한’ 종자를 만드는 실험이 진행중이다.

유럽연합이 자체적인 생산을 규제한 이상 외국산 제품에 대해 단호하게 거부할 것이다. 지난해 미국의 대유럽 옥수수 수출액은 5억달러 규모였다. 그런데 올해 11월 수출될 예정인 옥수수의 0.6%가 유전적으로 개량된 신품종이라고 한다. 유럽연합은 이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무역수지에 차질이 생긴 셈이다.

우리나라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을까.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유전자 조작을 통해 만들어져 시판되는 상품이 없다. 하지만 지난 20여년 간 실험실에서 생명공학 연구는 계속 진행돼 왔다.

OECD는 우리나라가 회원국이 되는 조건으로 생명공학과 관련된 ‘안전대책’ 을 제도적으로 마련할 것을 권고해 왔다. 이를 계기로 현재 보건복지부는 생명공학과 관련된 잠재적인 위험성을 제거하기 위해 ‘실험지침안’ 을 마련하고 있다. 즉 유전자를 조작하는 실험을 할 때 변형된 생명체가 뜻하지 않게 외부로 전파되거나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처리방법과 기준을 설정하는 일이다. 또 사람 유전자의 경우 심각한 윤리 문제를 일으킬만한 실험은 사전에 제지받게 된다. 조만간 ‘실험지침안’ 은 생명공학과 관련된 국내 연구소나 병원, 제약회사 등에 적용될 계획이다.


유전자 조작을 가해 '실속 있는' 상품을 만드는 연구가 활발하다. 해충에 잘 견디도록 만든 면화(위왼쪽)와 일반 면화(위오른쪽). 속이 꽉 차게 만든 토마토(아래왼쪽)와 일반 토마토(아래오른쪽).


실험에서 완제품까지 규제 필요

실험실의 안전성 문제는 1970년대 생명공학자 자신들로부터 제기됐다. 암을 비롯해 인체에 치명적인 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나 병충해에 이겨내는 강한 생물을 다루는 일은 연구하는 당사자뿐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위험한 존재다. 우연한 사고로 변형된 생물들이 실험실 밖으로 유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커다란 사고는 없었지만 위험 가능성이 보고된 사례들이 20여개에 이른다고 한다. 그래서 미국과 일본, 유럽 국가들은 생명공학 실험에 관한 엄격한 지침을 만들어 규제하고 있다.

그러나 규제할 필요가 별로 없다고 보는 과학자들도 있다. 설령 변형된 생명체가 유출된다 해도 대부분 적응하지 못하고 죽어버린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수백만번의 실험이 행해졌지만 아직 별다른 사고가 없었지 않느냐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실험실에서 유출된 대상들은 우리 눈에 잘 보일만큼 크지 않다. 또 대부분의 환경문제가 그렇듯이 그 결과는 오랜 시간이 지나서, 그리고 더이상 돌이키기 어려운 상태에서 나타난다. 피해 당사자는 특정인이 아닌 지구 생태계 전체다.

생명공학의 위험성은 실험 차원에서만 머물 수 없다. 조만간 유전자가 변형된 새로운 작물이 우리 식탁에 등장할지 모른다. 이 완제품이 인간에게 어떤 위험을 줄지 사전에 충분한 평가를 거쳐야 한다.

이런 작업은 이미 국제 사회의 약속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생물다양성협약에서 결정돼 1998년부터 시행될 예정인 생명공학 의정서에는 실험 단계부터 완제품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통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OECD의 권고안에 비해 훨씬 강도가 세다. 만일 자격이 미달되면 세계는 우리가 애써 만든 제품에 냉정하게 등을 돌릴 것이다.

경제적인 부가 선진국의 유일한 상징으로 여겨지던 시대가 지나가고 있다. OECD 가입을 계기로 ‘삶의 질’을 높이려는 선진국들의 노력을 눈여겨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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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김훈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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