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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전기, 세포외소포체… 상처를 치료하는 n 가지 방법들

‘따끔’ 손을 씻는데 오른쪽 검지 끝이 아린다. 조금 전 책을 정리할 때 종이에 베인 모양이다. 어젯밤 모기 자국을 긁어 생긴 피딱지가 채 떨어지지도 않았는데, 오늘 아침 여드름을 짜다가 벗겨진 피부가 아직까지 쓰라린데 또 상처라니! 누구나 일상에서 자신도 모르는 새 입게 되는 피부 상처. 상처를 치유할 색다른 방법들을 찾아봤다. 

 

상처에 피가 맺혔다는 것은 피부 가장 바깥 층인 표피 아래, 혈관이 무수히 많은 진피층까지 다쳤다는 의미다. 진피에 상처가 생기면 우리 몸은 일단 피를 멈추려고 애쓴다. 출혈을 멈추기 위해 상처 주변의 혈관들이 수축하고, 혈액 속 혈소판은 혈액을 응고시킨다. 거의 동시에 염증 반응도 일어난다. 염증 반응은 우리 몸의 면역체계가 상처 속으로 침투한 세균 등을 제거하는 과정이다. 상처 주변 혈관이 부풀어 오르면서 백혈구와 다양한 면역 세포가 달려와 세균과 이물질을 제거한다. 

 

그렇게 응급 상황(?)이 지나면 피부세포는 다시 증식을 준비한다. 표피층에서는 각질을 형성하는 세포이자 표피의 90%를 차지하는 케라티노사이트가, 진피층에서는 콜라겐을 만드는 길쭉한 섬유아세포가 활발하게 분열 증식한다. 흔히 말하는 새살이 차오르는 단계다. 이것이 수 주일 지속되면 상처가 성숙하면서 콜라겐 섬유가 재구성되고 피부의 보호 기능이 일부 회복된다. 우리가 상처에 바르는 연고는 대부분 상처 치유 과정 중에 염증을 줄이거나 피부세포의 증식을 돕는 역할을 한다.

 

상처 광화학적 봉인 감염 가능성 줄여

 

최근 과학자들은 빛을 이용해 상처의 벌어진 부위를 더 빨리 봉인하는 방법을 찾았다. 영화 ‘킹스맨’을 보면 악당들이 귀 뒤에 칩을 이식하고 레이저로 봉합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런 일이 실제로도 가능하다는 뜻이다. 한세광 포스텍 신소재공학과 교수팀은 빛으로 상처를 치료하는 방법을 개발해 2017년과 2022년 국제학술지에 발표했다. doi: 10.1021/acsnano.7b04153, doi: 10.1038/s41377-022-01011-3

 

빛으로 상처를 봉합하는 게 왜 획기적일까. 5월 2일 포스텍 바이오오픈이노베이션센터 연구실에서 만난 한 교수는 “일반적으로 찢어진 피부가 회복되는 데는 2주 이상이 걸린다”며 “빛을 이용하면 피부가 하루 이틀 안에 붙을 수 있고, 외부 세균이 들어오지 못해 감염 가능성도 작아진다”고 설명했다. 

 

장점은 그뿐만이 아니다. 빛으로 상처를 봉인하면 실로 꿰맬 때 발생할 수 있는 2차 감염 문제에서도 자유롭다. 바늘로 살을 꿰뚫은 구멍도 ‘상처’이기 때문이다. 한 교수는 “광치료를 사용하면 끊어진 콜라겐이 분자 단위로 정밀하게 붙기 때문에 흉터가 잘 생기지 않는다는 장점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를 위해 한 교수팀은 빛을 흡수한 로즈벵갈(RB) 염료를 효과적으로 상처에 전달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로즈벵갈 염료는 녹색 빛을 흡수하면 자유 라디칼을 생성하는 감광제로, 식품의약품안전처와 미국식품의약국의 승인을 받아 의료용으로 사용된다. 자유 라디칼은 비공유 전자를 가지고 있는 원자라 반응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상처로 끊어진 콜라겐 분자들 사이에서 공유결합을 유도할 수 있다. 연구팀은 로즈벵갈 염료가 계속 작용할 수 있도록 빛 에너지를 저장해서 30분 이상 녹색 빛을 내는 잔광발광입자(ALP・afterglow luminescent particle)를 만들었다.

 

 

전기 

상처 자극 피부세포 증식 활성화

 

상처는 전기로도 치료할 수 있다. 세바스찬 샤너 독일 프라이부르크대 미세시스템공학과 연구원팀은 상처를 중심으로 방사형 전기장이 생성된다는 점을 활용해, 전기로 상처를 3배 빠르게 치료하는 방법을 1월 18일 국제학술지 ‘랩온어칩’에 발표했다. doi: 10.1039/d2lc01045c

 

상처가 생기면 우리 몸은 면역세포 등 각종 세포를 동원한다. 상처로 침투한 세균이나 이물질이 주변 조직을 파괴하는 등 문제를 일으키기 전에 막기 위해서다. 상처 치유와 관련된 세포 중 특히 호중구, 단핵구, 림프구, 대식세포, 섬유아세포, 각질형성세포 등은 전기 신호를 따라 이동한다. 피부 상피층이 파괴되면 나트륨 이온이 세포 안쪽으로, 염소 이온은 바깥쪽으로 이동하며 상처 주변에 자연적으로 작은 전기장이 형성된다. 이렇게 형성된 전기 신호를 받아서 호중구 등의 상처 치유 세포들이 모이는 것이다. 

 

샤너 연구팀은 마치 건전지가 +극, -극을 맞춰 정렬됐을 때 전기가 흐르는 것처럼 세포 주변 전기장도 세포의 방향이 일정할 때 더 강한 전기 신호를 만든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에 따라 상처 부위에 미세한 전기 자극을 가해 피부 세포 주변의 전기장을 강화했다. 그 결과 상처 치유 속도가 더 빨라진다는 사실을 실험으로 확인했다. 

 

연구팀은 일련의 실험을 칩 위에서 진행했다. 손톱 크키의 칩 위에 케라티노사이트(각질형성세포)를 올리고 한쪽 방향으로 전기 자극을 가했다. 그랬더니 상처 회복이 3배 빨라지는 것을 확인했다. 칩 위에서 다양한 바이오 실험을 하는 실험 장치는 일명 ‘랩온어칩’이라고 불린다. 

 

배원규 숭실대 전기공학부 교수는 해당 연구에 대해 “랩온어칩 실험 장치는 동물실험이 필요 없고, 통제된 환경에서 변수를 조절할 수 있다”며 “다양한 종류의 상처 각각에 알맞은 전기 자극을 알아내고 관찰하기 좋은 플랫폼이 개발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배 교수는 생체모방 전기자극을 활용하면 세포 활동을 더 활성화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바이오센서 및 생체전자공학’에 2020년 발표한 바 있다. 

 

 

 

 

세포외소포체

재생 약물 전달 회복 빨라져

 

‘세포외소포체’ 역시 상처 치료에 활용할 수 있다. 김진웅 성균관대 화학공학부 교수와 김준오 신세계인터내셔날 기술혁신센터장 등 공동연구팀은 미세조류인 ‘유글레나 그라실리스(Euglena gracilis)’에서 유래한 세포외소포체를 약물 전달체로 사용해 피부 재생 등에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1월 11일 국제학술지 ‘어드밴스드 머티리얼즈 인터페이시스’에 발표했다. doi: 10.1002/admi.202202255

 

동물뿐 아니라 식물, 원생생물 등 모든 생명체에는 세포외소포체가 존재한다. 세포외소포체란 세포들 사이에서 신호를 전달해 주는 운반체로, 크기에 따라 이름이 다양하다. 최근 주목받는 ‘엑소좀’은 대략 100~200nm(나노미터・1nm는 10억 분의 1m) 이하의 매우 작은 세포외소포체다. 공동연구팀은 유글레나 그라실리스에서 베타글루칸(면역, 피부재생 등에 효능이 있다고 알려진 다당류)이 가득 든 세포외소포체를 추출해 피부세포로 전달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지름 2~5탆(마이크로미터・100만 분의 1m)의 미세한 구멍이 뚫린 막에 유글레나 그라실리스를 통과시켜 세포외소포체를 압출해내는 방식이다. 김 센터장은 “유글레나 그라실리스는 대량 배양이 가능하고 몸무게의 60%까지 베타글루칸을 스스로 만들어 내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베타글루칸을 적절한 크기의 세포외소포체에 담아 피부 세포에 전달하면 상처는 더 빨리 치유될 수 있다. 김 센터장은  “크기 1.2탆의 베타글루칸 세포외소포체가 피부세포를 가장 효과적으로 재생시켰다”고 밝혔다. 실험 결과 케라티노사이트의 증식량은 40% 상승했고, 케라티노사이트가 증식, 이동하며 피부 공간을 채우는 속도도 60% 가량 빨라졌다. 진피층의 골격을 형성하고 지탱하는 콜라겐의 생성량은 약 50% 늘었다. 김 센터장은 “베타글루칸을 함유한 세포외소포체의 회복 능력을 실험적으로 증명한 것”이라며 “이번 연구가 피부과학 및 의학 분야에서 유글레나 유래 세포외소포체를 이용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세포외소포체 중 특히 작은 엑소좀을 이용해 유효 물질의 흡수력을 더 높이는 연구도 전 세계적으로 활발하다.

 

빛과 전기, 심지어는 세포외소포체까지 동원해 상처를 빠르게 치료하려는 이유는 비단 편의성 때문만은 아니다. 작은 상처라도 빠르게 치료하지 않으면 심각해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말초혈관과 신경이 손상된 당뇨병 환자는 발에 난 상처를 조기에 발견하지 못하면 괴사가 진행돼 발 전체를 절단해야 한다. 

 

배 교수는 “피부 상처는 그동안 생명과 직결된 질병이 아니라는 이유로 연구가 더디게 진행돼왔다”면서, “삶의 질을 높이고, 보편적인 복지를 향상시킬 수 있는 연구이기에 앞으로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2023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이수린 기자 기자
  • 디자인

    이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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