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의 귀화식물은 자연이 심하게 파괴된 곳에 나는 것이 보통이나 어떤 식물은 숲 속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고 있어 우리 식생에 큰 변화를 가져오지 않을까 염려된다.
우리들 주변에는 행운을 가져다 준다는 네잎클로버로 잘 알려진 토끼풀을 비롯해 망초 개망초 달맞이꽃 등 귀화식물들이 여러 경로를 통해 들어와 마치 원래부터 우리 강산에 자라던 식물처럼 판을 치는 것들이 꽤 많다. 이중에는 우리들의 필요에 의해 외국에서 들여와 재배하던 것이 야외로 퍼진 것과 외국에서 수입하는 물자에 섞이거나 사람의 옷 등에 묻어 들어와 여기 저기 전파된 것도 있다.
우리나라 논이나 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냉이 꽃다지 바랭이 방동사니 등도 벼나 보리농사에 따라 들어왔다고 봐 이를 사전귀화식물(史前歸化植物)이라고 정의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우리들의 필요에 의해 들여와 재배하던 것이 야외로 퍼졌으나 지금은 근대화의 물결에 밀려나 거의 재배하지 않는 것 일부와, 우리나라 근대화의 시초가 된 개항(開港) 이후에 들어온 신귀화식물에 대해서만 기술하고자 한다.
필요에 의해 들여온 귀화식물
아주 먼 옛날에 우리 생활을 풍족하게 하기 위해 주로 이웃나라 중국에서 들여와 재배하던 유용작물의 일부가 그동안 산업화의 물결에 밀려나 이미 재배를 포기했으나, 지금도 여기저기에 살아남아 마치 자생식물처럼 살아가거나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식물들이 있다. 이를 야화식물(野化植物)이라고 부르는 학자도 있으나, 대개 따로 구별하지 않고 귀화식물에 포함시킨다.
고려시대 문익점 선생이 도입해 우리의 의생활에 큰 혜택을 주었던 목화는 지금은 거의 재배되지 않고 있다.목화가 우리의 산과 들에 야화해 제 힘으로 살아간다면 이 범주에 들겠으나, 사실은 우리 풍토에 적응해 살아가지 못하므로 귀화식물이라 할 수 없다. 먼 옛날 우리 조상들이 들여와 유용하게 활용하던 작물들이 지금은 산업화에 밀려나 쓸모없는 식물로 돼버렸으나, 여전히 우리 강토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수박풀 어저귀 삼 등은 이에 속한다.
무궁화꽃을 많이 닮은 아프리카 원산의 수박풀은 처음에 관상용으로 들여왔으나 야화해 우리 국토의 여기저기서 산견(散見)된다. 그러나 재배하는 것은 거의 없으며 그 잎모양이 수박잎과 많이 닮아 그런 이름이 붙여진 귀화식물이다.
어저귀는 인도원산의 섬유식물로 들여와 유용하게 쓰이던 것이다. 지금은 재배가 중단됐으나 전국의 여기저기에서 조금씩 볼 수 있다. 심장형의 이 식물의 잎에는 마치 융단같은 털이 밀생해 만지면 그 감촉이 매우 부드럽다. 목화가 들어오기 전까지 서민의 유용한 옷감이었던 삼베의 좋은 원료인 이 식물은 지금은 거의 재배되지 않고 특정지역에서 특산품으로 재배하는 정도다. 전에는 재배지 이외의 길가나 냇가에 흔히 야화하고 있었는데, 대마초 파동 이후 아주 드물어졌다.
이밖에도 야화된 귀화식물에는 사리풀 쪽 황금 등이 있는데, 지금은 거의 보기 힘들다.
개항 전후에 들어온 귀화식물
개항 전후에 들어온 귀화식물에는 전술한 토끼풀을 바롯해 붉은토끼풀 망초 개망초 달맞이꽃 등이 있다. 클로버로 널리 알려진 토끼풀은 콩이나 팥과 같이 잎꼭지 끝에 작은 잎이 보통 3개가 붙어 있으나 간혹 4개가 붙은 기형(崎型)도 있다. 아마 이것이 희소하기 때문에 행운을 가져온다고 믿는지도 모른다. 어떻든 처음에 사료용으로 들여온 것이 전국적으로 퍼져 지금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인데, 이것이 외국 원산의 귀화식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 식물은 콩과식물이기 때문에 뿌리혹이 있어 땅을 기름지게 하는 장점이 있다. 밭을 갈지 않고, 금비와 농약을 쓰지 않으며, 제초도 하지 않는 자연농법을 실천하는 일본인 후쿠오카씨는 이를 벼논에 파종한 다음, 너무 무성하면 물을 대어 조절함으로써 매우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잔디를 가꿀 때는 매우 골치 아픈 해초가 된다. 왜냐하면 잔디는 햇빛을 잘 받아야 자라는 양지식물인데, 잔디 속에 이 토끼풀이 돋아나면 그 잎이 햇빛을 가리어 잔디를 자라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쇄국정책 뒤의 급격한 개방 때 들어온 귀화식물로 망초와 개망초가 있다. 언젠가 큰 장마가 져서 여기저기에 큰 사태(沙汰)가 났을 때 그때까지 보지 못했던 낯선 풀이 사태난 곳마다 잔뜩 우거졌다. 그래서 백성들은 나라가 망할 때 돋아난 풀이라고 해 '망국초(亡國草)'라고 불렀는데, 이것이 줄여져 '망초(亡草)'가 되었다. 중국이나 일본 등지에서는 문명 발달의 한 척도인 철도 부설에 따라 많이 퍼졌으므로 '철도풀'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이 식물무리에는 그 무렵에 같이 들어온 개망초와 근래에 들어온 실망초 큰실망초 등이 있다. 망초나 개망초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연대는 정확한 기록이 없어 확언할 수 없지만 불과 1백여 년밖에 되지 않으므로 TV 드라마 가운데 '조선왕조 5백년'의 전반부나 '삼국기' 등에 개망초가 하얗게 피어 있는 장면이 나오는 것은 잘못이 아닐 수 없다. 이 망초와 개망초를 혼동하고 있는 사람이 더러 있는데, 흰 꽃잎 같은 혀꽃부리가 잘 보이는 것이 개망초이고, 꽃잎이 없어 보이는 것이 망초다.
시골의 돌 많은 시냇가나 길가 등에는 마치 달마중하듯이 저녁이 돼야 노랗게 꽃을 피웠다가 이튿날 해가 돋으면 시들어버리는 미국 원산의 색다른 귀화식물이 있는데, 이를 달맞이꽃이라 부른다. 여름에 떨어진 씨가 싹이 터서 마치 방석모양으로 사방에 퍼진 어린 식물체로 추운 겨울철을 지낸 다음 봄에 줄기를 벋으며 1m 이상 자라는데, 여름철이 되면 밤에 노란 꽃을 피운다. 그리고선 마치 참깨 비슷한 꼬투리가 맺혀 그 속에 자잘한 씨앗이 많이 여문다. 이 씨앗 속에 성인병 예방에 효과가 있는 성분이 들어 있다고 해 한때 '달맞이꽃기름'의 선전광고가 요란했었다.
20여년 전에는 아주 큰 꽃이 피는 '큰달맞이꽃'이 흔해 저녁에 보름달이 떠오를 때 마치 풍선에 입김을 불어넣을 때처럼 사람이 지켜보는 앞에서 "폭, 폭" 소리를 내며 잠시 동안에 피어 신비감마저 자아내곤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동생뻘인 달맞이꽃에 밀려 서울같은 큰 도시 부근에서는 볼 수 없고, 강원도의 속초 부근이나 경상도 함양의 산 가까운 냇가에서나 더러 볼 수 있을 정도다. 그리고 근래에는 잎이 작고 줄기가 기어가며 꽃이 더 보잘 것 없는 '애기달맞이꽃'이 제주도와 남해안가의 모래밭에 퍼지고 있다.
6·25 전후에 들어온 귀화식물
6·25 전후에 들어와 근대화바람을 타고 급속히 퍼져 80년대 초에는 이미 전국적인 분포를 보인 것에 돼지풀 미국가막사리 서양민들레 등이 있다. 이중 돼지풀은 길가나 공터의 가장 흔한 풀이 됐다. 언뜻 보면 쑥 같은 이 풀은 한 그루에 암수꽃이 따로 핀다. 그 꽃잎이 두드러지지 않아 눈에 잘 띄지 않는데, 수꽃의 꽃가루가 알레르기성 질환을 유발해 이제는 인간의 기피식물로 되고 있다.
그리고 키가 2m가 넘으며 그 잎이 뚱딴지 비슷한 큰돼지풀도 약간 늦게 들어와 휴전선 등의 북부지역에 크게 번지고 있다. 또 미국가막사리는 도랑가 등 습기가 많은 곳에 자라는 가장 흔한 식물이 됐다. 이 식물의 열매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있어 지나가는 사람이나 짐승에 달라붙어 그 자손을 퍼뜨리고 있다.
민들레는 마을 근처에서 제비꽃 할미꽃과 같이 가장 흔한 봄꽃이었는데, 지금은 한적한 시골이 아니면 볼 수 없고 수도 서울을 비롯한 도심지에는 외래의 서양민들레가 판을 치고 있다. 이 서양민들레가 우리의 재래종 민들레와 다른 점은 꽃받침 비슷한 총포가 꽃봉오리 때부터 뒤로 발랑 젖혀지는 점이다. 그리고 노랑색이 더 짙으며, 봄부터 가을까지 계속 꽃이 피고, 심지어는 겨울철에도 더러 꽃을 볼 수 있으며, 3배체(倍體)식물이어서 수분(授粉)을 하지 않아도 결실하는 특성까지 갖추고 있어 더욱 잘 퍼진다. 여기에 아주 비슷하나 씨앗의 빛깔이 빨간 붉은씨서양민들레도 함께 귀화해 자라고 있다.
80년대에 들어온 신귀화식물
80년대 초에 외인부대 근처나 휴전선 부근에 들어와 급격히 분포역을 넓히고 있는 신귀화식물로 서양등골나물과 중도국화, 가시상치 등이 있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등골나물 골등골나물 벌등골나물과 매우 유사하나 키가 다소 작으며 줄기가 총생(한곳에서 많이 남)한다. 꽃색깔이 흰 이 식물이 워커힐과 남산의 한 모퉁이에 한두 포기 보이더니 지금은 남산에서 가장 흔한 풀이 돼버렸고, 올림픽공원은 물론 시내 곳곳과 남한산성 등 경기도 일원까지 퍼지고 있다. 대개의 귀화식물은 길가나 개발진행지 등 건조하고 자연이 심하게 파괴된 곳에 나는 것이 보통이나, 이 식물만은 예외여서 숲 속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고 있어 우리 식생에 큰 변화를 가져오지 않을까 염려된다.
또 다른 귀화식물인 중도국화는 70년대 말에 춘천의 중도라는 섬안에 몇 포기가 눈에 띄어 필자가 '중도국화'라고 국명을 새로 지었던 식물이다. 그 후 경기도의 전곡 부근에서 무더기로 볼 수 있더니 지금은 서울의 한강가에서도 간간이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의정부 이북의 동두천 연천 파주 철원 일대에서는 묵밭이나 길가에 흐드러지게 피어 새로운 가을 풍경을 나타내고 있다. 꽃집에서는 '백공작'이라 부르며 재배하고 있는데, 씨의 털이 낙하산처럼 바람에 잘 날리므로 급속히 번지고 있다.
이밖에도 역시 씨가 바람에 날리는 가시상치와 씨가 사람이나 동물에 묻어 퍼지는 가시도꼬마리 등이 구마고속도로와 남한강 주변으로 급격히 퍼지고 있으며, 서양메꽃은 군산항 부근, 주홍 서나물은 제주도와 남해안지역에서 분포역을 넓히고 있다. 또 민들레아재비는 제주도 일원을 비롯한 여러 곳의 골프장 부근에서 크게 번져가고 있으며 나래가막사리 애기범부채 등도 새로 들어와 있다.
귀화식물의 종수는 도시화의 한 지표가 된다는 것을 필자 등이 80년대에 밝힌 바 있다. 당시 1백10여종이던 것이 불과 10여년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지금은 1백50여종으로 늘어났고, 자꾸 낯선 얼굴이 산견되는 형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