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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르 태평양에 평안히 잠들라

본격 우주정거장 15년의 진기록과 사건

러시아의 자존심 미르 우주정거장이 15년 간의 생애를 마감하고 우주개발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인류가 우주공간에서 살아갈 수 있는 초석을 다진 미르호가 태평양에 평안히 잠들기를 바라며 그의 삶을 재조명해보자.

본격적인 의미의 우주정거장이자 최고령 우주정거장이 바로 러시아의 ‘미르’(러시아어로 평화라는 뜻)다. 올해로 미르가 우주공간에서 보낸 세월이 15년째에 접어든다. 아이러니컬하게도 2월에는 미르가 15회 생일을 축하할 겨를도 없이 바로 최후를 맞이한다. 태평양 깊은 바다 속으로 영원히. 그동안 미르는 우주공간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으며 수많은 기록과 사건을 남겼다. 이번에 미르를 태평양에 수장시키까지도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다. 미르의 파란만장했던 삶을 뒤돌아보자.
 

미르콥사는 미르를 우주호텔 등으로 활용할 계획이었다. 미르콥사의 로고가 보인다.


우주공간을 독점하라

1960년대 러시아와 미국은 인간의 달 착륙을 위해 서로 경쟁하고 있었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 우열을 가리는 싸움과도 같은 이 우주경쟁은 1969년 미국의 승리로 끝났다.

러시아는 유인 달 착륙 계획을 완전히 백지화하고 새로운 분야에서 미국을 앞서고자 했다. 이것이 바로 지구궤도에 영구적인 우주정거장을 건설하는 계획이었다. 우주정거장은 달에서 빼앗긴 러시아의 자존심을 세워줄 뿐 아니라, 군사적인 목적으로도 사용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주정거장에서 획득할 수 있는 장기간의 우주체류 경험은 미국과 있을지 모를 달 유인기지 건설과 화성 유인우주선 발사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 꼭 필요한 기술이었다.

러시아의 이런 원대한 꿈을 담고 최초의 우주정거장인 살류트 1호가 미국의 아폴로계획이 끝나기도 전인 1971년 4월에 발사됐다. 제1세대 우주정거장으로 불리는 살류트 1-5호에 이어 러시아는 1977년에 더욱 개량된 제2세대 우주정거장 살류트 6·7호를 계속해서 발사했다.

미국이 1973년에 잠시 동안 우주정거장을 운영한 것에 비해, 우주를 거의 독점적으로 활용해 오던 러시아는 이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제3세대 우주정거장 미르를 마침내 완성했다. 우연히도 발사시기는 미국이 우주왕복선 챌린저 폭발사고를 당한지 한달여만인 1986년 2월 20일이었다. 그리고 1988년 11월 15일에는 미르의 운반차량으로 이용될 러시아 우주왕복선 부란의 성공적인 발사가 있었다. 이제 우주공간은 완전히 러시아가 독주하는 것처럼 보였다. 적어도 옛소련이 해체되고 경제 파탄에 빠지기 전까지는.

지구로 돌아오자 나라가 없어진 우주인

미르는 갖가지 진기록을 남겼다. 먼저 유인우주선으로는 최장기간 동안 우주궤도에 머물렀다. 1986년 2월부터 2001년 2월까지 15년 동안 미르는 지구궤도를 8만7천여 바퀴나 돌았다. 최초의 탑승자는 1986년 3월 러시아의 레오니드 키짐과 블라디미르 솔로보프이고 최후의 탑승자는 2000년 4월에서 6월까지 머문 러시아 우주인 세르게이 잘료틴과 알렉산데르 칼레리다. 미르에 거주했던 우주인은 모두 1백5명. 이들이 우주에서 세운 기록들은 모두 기네스북에 기록될 만한 것이다.

러시아 보건부 산하 의료생화학연구소 부소장을 지낸 발레리 폴랴코프는 한번에 4백38일(1년 2개월 12일)을 미르에서 보냈고, 러시아의 세르게이 아브제예프는 3차례에 걸쳐 7백37일(2년 7일)을 미르에서 지내 ‘통합 최장기 체류기록’을 세우기까지 했다. 그러나 아브제예프의 이런 기록에는 러시아가 체코슬로바키아에 진 빚을 갚기 위해 미르에 태운 체코 출신 초빙 우주인에게 지구 귀환티켓을 양보함으로써 이뤄진 체류기간도 포함돼 있어 씁쓸함을 남기기도 했다.

최고령 탑승자는 프랑스의 장 루이 크레티엥으로 탑승 당시 59세였으며, 30세의 러시아인 세르게이 크리칼료프가 최연소 탑승자였다. 특히 크리칼료프는 탑승기간 동안 옛소련이 붕괴되는 바람에 예정된 귀환날짜에 돌아오지 못하고 우주미아로 미르에 남겨진 우주인이기도 했다. 원래 체류기간은 5개월 정도였던 크리칼료프는 독일의 지원으로 3백13일만에 땅을 밟을 수 있었는데, 그가 우주에서 돌아왔을 때 출발당시의 나라는 없어지고 난 후였다.

사상 최초 우주에서 밀재배

미르를 방문한 외국인은 지난 1987년 탑승했던, 시리아의 공군비행사 모하메드 파리스를 최초로 모두 62명이나 된다. 외국인들 중 대부분은 1995년 6월부터 시작된 미국의 우주왕복선을 타고 1-2주 정도 방문했던 사람들이다. 미국은 앞으로 건설될 국제우주정거장에 필요한 노하우를 습득하기 위해 미르에 돈을 주고 탑승했다.

프랑스의 장 루 크레티엥은 고르바초프의 개방정책에 따라 민주국가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미르를 방문하는 영광을 얻었다. 일본 도쿄방송국은 1990년 12월 창사 40주년 기념으로 아키야마 도요히로라는 기자를 1주일 동안 체류시키면서 약 3백억원을 지불해 가장 비싼 탑승료를 낸 것으로 기록됐다. 1991년에는 영국 대처 총리의 부탁으로 헬렌 샤만이 공짜로 탑승하면서 영국 최초의 우주인이 됐다. 우리나라도 1996년 한국방송공사(KBS)에서 특파원을 미르에 파견하기 위해 훈련까지 받게 했으나 결국 예산 부족으로 무산됐다.

미국 최초의 미르 체류우주인 새넌 루시드는 1996년 3월부터 1백87일을 머물러, 여자우주인으로서 최장의 우주생활을 하기도 했다. 루시드의 이 기록은 그녀를 태우고 돌아올 예정이던 우주왕복선이 로켓 고장과 일기 악화로 발사가 연기됐기 때문에 세워진 것이다. 1978년에 우주비행사가 된 루시드는 우주여행 횟수가 5차례, 체류기간이 2백23일(5천3백54시간)이나 되는 열성우주인이다. 미국에서는 일찍이 금녀의 집단이었던 우주비행사에 최초로 선발된 6명 중 한명이기도 하다.

미르는 이외에도 82시간 21분이라는 최장 우주유영기록 등을 남겼다.

미르는 또한 단일우주선으로서 최대의 실험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들 실험은 고순도 수정 등의 신재료 제조와 신의약품 제조를 비롯한 기초의학 연구, 오존층 감시를 포함한 지구 자원 및 대기층 탐사 등 2만여가지나 된다.

특히 사상 최초로 우주공간에서 밀재배에 성공하고 우주에서 파종해서 키운 씨앗을 이용해 ‘2세 씨앗’을 다시 싹틔워 키우는 놀라운 개가를 올리기도 했다. 이 실험의 성공은 앞으로 식용과 대기정화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다른 종류의 식물을 장기적 우주비행에서 연구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따라서 우주식물은 우주인들의 생활에 필요한 먹거리, 공기정화, 물 생산의 원천이 될 수 있다.
 

미르에서 이뤄진 실험. 최초로 우 주공간에서 도롱뇽을 키우기도 했다.


민간자본으로 재기 몸부림

미르는 1999년 8월 3명의 우주인이 철수한 이후 2000년 4월까지 러시아의 재정악화로 무인 우주정거장으로 방치돼 있었고, 2000년 8월 태평양에 용도 폐기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폐기될 위기에 몰렸던 미르호가 잠시 소생하기도 했다. 미국계 다국적기업인 골드 앤드 아펠이 러시아의 에네르기아(RSC Energia)와 함께 합작사인 ‘미르콥’(MirCorp)을 설립해서 미르 운영자금으로 약 2백40억원을 대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에네르기아사는 러시아 정부의 위탁에 따라 1991년부터 미르를 운영중인 회사였다.

이에 따라 2000년 4월 6일에 미르호의 재가동을 위해 민간자본의 러시아 우주인 세르게이 잘료틴과 알렉산데르 칼레리가 미르에 다녀온바 있었다. 이들은 미르에서 공기가 새는 구멍을 발견해 수리했고 필수 소모품들을 옮겨놓았다. 실험도구를 회수하기 위해 우주유영을 했으며 미르 외부의 파손여부를 검사하기도 했다.

미르콥은 미르호의 여생을 상업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미르호를 개조·보수해 운용할 계획이었다. 미르콥은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우주정거장이 건설중인 사실을 감안해도 2006년에야 본격적으로 가동될 것으로 보고, 현존하는 유일한 우주정거장인 미르는 최소한 2005년까지 활용가치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예를 들어 미르를 일반인용 우주호텔로 대여하고, 신소재 개발회사 또는 약품회사의 우주실험실로 임대하거나, 방송사 선전용으로 또는 무중력을 활용한 오락사업가에게 임대함으로써 수익을 얻을 계획이었다.

귀환 명령 거부하는 영화 촬영 예정

외신보도에 따르면 거액의 비용을 주고 우주호텔에 묵을 투숙객이 나서기도 했다. 주인공은 미국 사업가인 데니스 티토로 약 2백20억원의 비용을 지불하고 첫 민간인 우주여행객이 되기로 계약했다. 전직 항공 엔지니어로 현재 미국에서 투자회사를 운영중인 티토는 40여년 전 첫 위성발사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우주여행을 꿈꿔왔다고 한다(티토는 행선지를 국제우주정거장으로 교체해 4월말이나 5월초 우주여행을 떠날 예정이다. 러시아 정부가 미르 폐기에 따라 내놓은 대안으로 관광차량은 러시아의 소유즈우주선을 이용하게 된다).

미르는 영화촬영의 장소로 섭외되기도 했다. 제목은 ‘카산드라의 가면’. 이 영화는 미르 폐기처분 시간이 다가오자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승무원이 살아있는 동안 지구 둘레를 돌겠다며 지구 귀환 명령을 거부한다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주연을 맡은 1명의 배우가 미르에서 연기하고 촬영은 다른 우주인이, 감독은 지상의 통제센터에서 ‘레디 고’를 외칠 예정이었다.

또한 미르콥은 미르를 주식시장에 상장할 계획까지 세웠다. 이들이 예상한, 우주여행이란 수익모델을 가진 미르콥의 자체 잠재가치는 무려 약 3조6천억. 따라서 미르콥은 일반인 주식공모를 통해 적어도 4천억원 이상의 자금은 모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하기도 했다. 이 자금으로 미르콥은 미르에 새 모듈을 제작해 장착시킨다면 상업용 우주정거장으로서 손색이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 모든 계획이 예정대로 진행됐다면 유인 우주프로젝트의 자금지원이 민간기관에 의해 이뤄지는 사상 최초의 사건이 될 수도 있었다.

물거품으로 끝난 생명연장의 꿈

미르를 1년 동안 운영하는데 소요되는 비용은 약 3천억원. 미르가 지구 한바퀴를 도는데 소요되는 경비는 약 5천만원이 된다. 이런 막대한 예산을 마련할 예정이었던 미르콥의 노력은 그러나 별반 성과가 없었다. 죽어가는 미르의 생명을 약간 연장하는 응급처치에 필요한 예산밖에는 모으지 못했다. 러시아 정부도 미르콥의 자금조달능력을 점차 비관적으로 보았다. 이와 함께 지난해 12월말 벌어졌던 미르와의 통신두절 사건으로 인해 러시아 정부는 미르를 계속 우주에 떠있게 할 수 있는 재정 및 기술적 수단이 모두 소진한 것으로 판단했다.

사실 모두가 그동안 있었던 미르의 생명연장에 대해 달가워한 것은 아니다. 특히 러시아와 함께 국제우주정거장을 건설중인 미국은 미르의 계속적 운용을, 새 프로그램을 위협하는 원인으로 간주했다. 특히 2004년 완공 예정인 국제우주정거장은 재정적 문제를 안고 있는 러시아로 인해 2년 이상 지연됐다. 미국은 이 계획과 관련해 러시아에 약 5천7백억원을 지불한바 있다.
돈은 돈대로 소요되면서 계획이 지연됐기 때문에 러시아를 파트너로 선정한 일에 대해서 미국 내의 비난도 만만치 않은 형편이었다. 따라서 러시아 정부로서는 미르에 대한 정치적, 경제적, 기술적 측면에서 사면초가에 빠진 것이다. 이에 따라 지난 1월 5일 러시아 정부는 마침내 미르에 대한 최종 사망선고를 내리게 됐다.

온갖 기록을 남기며 우주에 화려한 불꽃으로 사라질 미르. 우리는 미르가 그 의미처럼 평화롭게 잠들기를 바라고 있다.
 

미르 우주호텔에 묵을 계획이던 미국 사업가 데니스 티토의 지상 훈련 모습.


전체무게 1백 40t의 거대규모

한때 러시아 과학기술의 표상이었던 미르의 가장 큰 특징은 우주공간에서 여러가지 필요한 모듈(소형 우주선)을 결합시켜 커다란 우주정거장을 완성했다는 점이다.

미르 우주정거장 건설은 1986년 2월 20일에 무게 20.4t짜리 본체모듈을 발사한 것으로 시작됐다. 본체에 1987년 3월 무게 11t의 크반트 모듈, 1989년 12월 무게 19.6t의 크반트 2호 모듈이 연결됐다. 이어 1990년 6월 크리스탈 모듈, 1995년 6월 스펙트르 모듈, 그리고 1996년 4월 프로리다 모듈이 결합됐다. 완성된 미르는 동체를 포함해 전체 6개의 모듈로 길이 30m, 폭은 33m이며 전체무게 1백40t이나 되는 거대규모였다. 여기에 무인우주화물선 프로그레스, 소유즈 우주선, 또는 우주왕복선이 필요에 따라 결합됐다.

미르 우주정거장은 각 모듈이 지름 3.5m, 길이 10m 내외의 원통형이고 무게가 20t 이내로 만들어져 프로톤로켓으로 발사돼 지상 3백50km의 우주에서 도킹해서 조립되는 방식으로 건설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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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정홍철 개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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