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6일, 오스트레일리아 남부의 사막에 캡슐 하나가 떨어졌다. 일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가 발사한 소행성 탐사선 ‘하야부사 2호’가 소행성 ‘162173 류구’의 표면에서 긁어낸 시료를 담은 캡슐이었다. 2년 여가 지난 지금, 과학자들은 이 시료에서 유기물을 찾아냈다. 생명의 씨앗이 될지도 모르는 물질 말이다.
3월 21일, 오바 야스히로 일본 홋카이도대 저온과학센터 교수팀은 소행성 ‘162173 류구’에서 가져온 시료에서 유기물인 ‘우라실(uracil)’을 찾았다는 연구를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하야부사 2호가 가지고 온 소행성 시료 약 10mg을 뜨거운 물과 섞어 추출물을 만들고, 화학 조성을 분석했다. 그 결과 우라실과 나이아신 등 생명 활동에 필요한 핵심 유기물이 발견됐다. doi: 10.1038/s41467-023-36904-3
우라실은 유전 물질인 RNA를 이루는 네 가지 염기 중 하나다. DNA가 A(아데
닌), G(구아닌), T(타이민), C(사이토신)의 네 종류 염기서열로 유전 정보를 저장하듯, RNA는 우라실(U)을 포함해 A, U, G, C 등 네 가지 염기로 유전 정보를 저장한다. 나이아신은 비타민B3라고도 불리며, 에너지 대사 등 다양한 체내 화학 반응에 관여한다. 둘다 생명체에게 필수적인 화학 물질이다.
하지만 우라실과 나이아신은 류구에서 발견된 유기물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앞선 2월 24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는 류구 분석 결과를 담은 논문 다섯 편이 실린 특별판을 발표했다. 그중 한 연구에서는 히로시 나라오카 일본 규슈대 지구 및 행성과학과 교수가 이끈 공동연구팀이 시료를 메탄올에 녹여 분석해 거의 2만 종에 달하는 유기물 신호를 검출했다고 밝혔다. doi: 10.1126/science.abn9033유기물에는 글라이신, 알라닌 등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 15종과 지방족 아민, 카르복실산 등이 포함돼 있었다.
소행성 류구는 24가지 종류의 소행성 중 유기물이 많이 발견되는 C형에 속한다. 문홍규 한국천문연구원 우주과학본부 우주탐사그룹장은 “C형 소행성의 C는 ‘탄소질(carbonaceous)’의 준말로, 태양 가까운 궤도를 돌며 가벼운 휘발성 분자가 말라버린 S형(규소질)이나 M형(금속질) 소행성에 비해 유기물이 더 많다”며, “태양계 생성 당시의 화학 조성을 그대로 갖춘 화석과 같다”고 설명했다.
과학자들이 류구에서 발견된 유기물에 주목하는 이유는, 유기물이 곧 ‘생명의 블록’이기 때문이다. 지구 생명체의 화학적 기반은 액체 상태의 물과 탄소로 이뤄진 유기물이다. 단순한 유기물이 합쳐져 더 큰 고분자를 이루며 생명에 가까워진다. 작은 아미노산 분자들이 결합해 만들어진 단백질이 화학 반응을 제어하고, 우라실과 염기들이 모여 만들어진 유전 물질에 유전 정보가 저장된다. 또 이렇게 모인 고분자가 세포를 이루면서 생명이 가능해진다(93쪽 모식도 참조).
따라서 유기물은 생명의 흔적을 찾는 첫 발걸음이다. 태양계 초기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 C형 소행성에 유기물이 풍부하다는 것은, 원시 지구가 만들어지던 태양계 생성 초기에 소행성들이 지구에 유기물을 전달해줬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를 가진다.
우주는 유기물의 불모지가 아니다
외계에서 유기물이 발견된 사례가 소행성 류구가 처음은 아니다. 1969년, 오스트레일리아 빅토리아 주 머치슨 마을에 운석이 하나 떨어졌다. 부서진 조각을 다 합하면 100kg이 넘는 이 ‘머치슨 운석’은 아미노산, 지방산, 당, 요소 등 수많은 유기물의 창고였다. 2010년에는 독일 헬름홀츠 뮌헨 센터 연구팀이 머치슨 운석에 최소 1만 4197종류의 탄소 화합물이 들어있다는 분석을 발표하기도 했다. doi: 10.1073/pnas.0912157107
소행성과 운석, 혜성 같은 태양계 내부의 여행자들은 물론, 더 먼 우주에서도 유기물의 흔적이 발견된다. 멜리사 맥클루어 네덜란드 라이덴대 교수가 이끈 국제연구팀은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으로 약 630광년 떨어진 성간운 ‘카멜레온 1’에서 유기물의 흔적을 찾았다. doi: 10.1038/s41550-022-01875-w 화학 분자는 종류에 따라 특이한 파장의 전자기파를 흡수한다. 따라서 분자 구름을 통과한 빛의 파장을 분석하면 분자 구름에 어떤 물질이 들어있는지 알 수 있다. 연구팀이 카멜레온 1 분자 구름을 통과한 적외선을 분석한 결과, 분자 구름에는 메탄, 암모니아는 물론 메탄올과 같은 유기 물질이 들어 있었다.
그렇다면 이번 류구 연구가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연구의 제1저자인 야스히로 교수는 기자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소행성에서 직접 채취한 시료에서 유기물을 발견했다는 것은 외계에서 유기물이 만들어진다는 점을 확증한다”고 힘줘 말했다. 지금까지 운석에서 발견된 유기물은 지구에 떨어진 이후 오염됐을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지구에서 만들어진 유기물이 운석에 묻어 분석에 오류를 일으켰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다르게 류구 시료는 소행성에서 밀봉돼 지구로 왔기 때문에 오염의 우려가 없는 직접적 증거다.
생명 외계 기원설, 힘 받을까?
쌓여가는 연구 결과들은 우주 곳곳에서 유기물이 만들어질 수 있으며, 이 ‘외계산 유기물’이 지구에 쌓여 지구 생명을 탄생시키는 데 도움을 줬을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또한 우주생물학 분야에서도 이 발견은 의미를 지닌다. 우주에서 유기물이 만들어지는 게 흔한 현상이라면, 생명이 만들어지는 현상도 드문 일이 아닐 수 있다.
물론 소행성 유기물 연구는 이제 시작 단계다. 류구의 유기물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도 풀어야 할 숙제 중 하나다. 야스히로 교수는 “류구 내부 열수 작용이나 태양계 생성 전 광화학 작용으로 만들어졌을 수 있다”고 추측했다. 그래서 소행성 연구자들은 올해 9월 소행성 ‘101955 베누’의 시료를 가지고 지구로 돌아올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오시리스-렉스’ 탐사선을 기다리고 있다. 오시리스-렉스는 하야부사 2호보다 훨씬 많은 양의 시료를 채취해서 더 다양한 연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만약 외계에 유기물이 풍부하다면, 첫 번째 생명이 외계에서 먼저 탄생했을 가능성은 없을까. 기원전 그리스의 철학자인 아낙사고라스나 DNA 구조를 밝혀 노벨상을 수상한 프랜시스 크릭은 생명이 외계에서 왔다는 (항상 소수 의견이었던) 가설을 지지했다.
이 가능성에 관해 야스히로 교수에게 물어보자, 그는 확실하게 선을 긋는 대답을 했다. “이번 연구는 생명을 구성하는 유기물이 외부에서 원시 지구로 유입될 수도 있었다는 뜻입니다. 소행성에 유기물이 존재하는 것과, 생명의 기원이 우주에서 탄생했다는 가설 사이에는 거대한 간극이 있습니다.”
즉 RNA를 이루는 우라실 분자를 외계에서 찾았다고 해서, 유전 정보를 담고 있는 거대한 RNA 분자가 외계에서도 만들어졌을 것이라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이 유기물들은 어떻게 더 커다란 고분자가 됐을까. 고분자들은 어떻게 모여 최초의 생명을 탄생시킬 수 있었을까. 다음 장에서는 최초의 생명을 찾아 원시 지구로 되돌아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