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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웅배의 최애 은하] 유령 은하의 심장이 감춘 비밀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으로 촬영한 ‘유령 은하’, M74. 사진의 왼쪽 아래를 보면 유독 둥글고 텅 빈 거품 같은 구역을 볼 수 있다. 이곳은 오래전 한꺼번에 많은 초신성이 폭발하면서 생긴 거대한 구멍, ‘동공(cavity)’이다. 폭발로 발생한 충격파의 경계를 따라 별이 다시 활발히 탄생하고 있기 때문에 이 적외선 이미지에서 둥근 가장자리가 유독 더 밝아보인다.

 

제임스 웹이 유령을 바라봤다. 이 으스스한 곳은 바로 나선은하 M74다. 이곳은 물고기자리 방향으로 약 3200만 광년 떨어져있다. 유령 은하(Phantom Galaxy)라는 별명으로도 불리는 곳이다. 지구에서 보면 은하 원반이 완벽하게 정면을 향한다. 이 절묘한 방향 덕분에 은하의 중심부터 외곽까지 아름답게 휘감긴 나선팔을 선명하게 볼 수 있다.

 

오래전부터 이 은하는 천문학자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허블 우주망원경을 비롯한 다양한 우주망원경으로 이곳을 바라봤다.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은 기존 관측보다 파장이 긴 적외선 빛으로 이곳을 담았다. 미지근하게 달궈진 먼지 필라멘트가 더 선명히 드러나며 최근에 벌어진 별 탄생의 흔적을 추적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알아낸 사실은 놀라웠다.

 

 

은하 중심에서 블랙홀이 안 보인다?

 

은하의 중심은 텅 비어있었다. 육중한 초거대 질량 블랙홀이 숨어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은하 한가운데만 가스 먼지 구름이 깨끗이 비어있었다. 일부러 청소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텅 빈 구멍 속은 바글바글하게 모인 별들로 빛나고 있었다! 블랙홀만 존재한다고 생각했던 은하의 심장 속에 성단이 모인 셈이다. 이 유령의 심장 속에선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흔히 은하 중심에는 거대한 블랙홀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중심에 육중한 블랙홀이 없는 왜소하고 가벼운 은하들의 경우, 블랙홀 대신 별들이 모인 성단이 그 중심에 자리한 경우도 있다. 이렇게 은하 중심에 모인 성단들을 은하 ‘핵 성단(NSC・Nuclear Star Cluster)’이라고 부른다. 어떻게 은하 중심부에 이 정도로 많은 별들이 높은 밀도로 모여서 빛날 수 있는지는 아직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가장 유력한 가설은 두 가지다. 하나는 성단이 은하 중심부 바깥에서 반죽된 후 중심부로 서서히 들어왔다는 가설이다. 일명 성단의 이주 가설이다. 또는 애초에 은하 중심으로 모여드는 가스가 직접 반죽돼, 처음부터 은하 중심에서 성단이 탄생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를 ‘제자리(In-situ)’ 가설이라고 한다.

 

재밌는 점은 은하가 무겁고 중심 블랙홀이 클수록 핵 성단은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거운 은하 중심에는 핵 성단은 없이 초거대 질량 블랙홀만 존재한다. 이런 까닭에 은하 핵 성단들이 시간이 지나 초거대 질량 블랙홀로 반죽되는 게 아닐까 의심하는 천문학자들도 있다. 여전히 잘 발견되지 않는 중간 질량 블랙홀들도 바로 이 핵 성단 속에 숨어있을지 모른다고 추측하기도 한다(참고로 중심에 핵 성단과 초거대 질량 블랙홀이 함께 있는 은하는 드물다. 그런데 그 어려운 걸 우리 은하가 해냈다! 우리 은하 중심에는 두 천체가 모두 있다).

 

가벼운 은하의 매력, 빛나는 심장

2022년 7월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은 M74의 중심을 바라봤다. 그곳에서 거대한 직사각형 모양의 텅 빈 구멍을 찾았다. 구멍의 크기는 대략 650광년×1300광년이었다. 천문학자들은 이 안에서 빛나는 핵 성단의 전체 질량을 계산했다. 결과는 태양 질량의 무려 약 1000만 배 수준이었다. 이것은 우리 은하 중심에서 발견된 핵 성단의 전체 질량에 맞먹는다.

 

앞서 설명했듯이 은하 자체가 무거워질수록 그 중심에서 핵 성단을 찾기가 어려워진다. 실제로 여러 은하와 그 중심에 있는 핵 성단을 비교해보면, 은하 자체의 전체 질량이 무거워질수록 그중 핵 성단의 질량이 차지하는 비중은 급감한다. 재밌게도 우리 은하와 M74는 핵 성단의 질량 비중이 가장 낮은 단계의 경계에 걸쳐있다. 두 은하의 질량이 그 중심에 핵 성단이 존재할 수 있는 범위의 경계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천문학자들은 이번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의 촬영 결과와 과거 허블 우주망원경 촬영 결과를 종합해 M74 중심에서 빛나는 핵 성단 속 별빛의 스펙트럼을 분석했다. M74 중심 핵 성단 속 별들은 대부분 나이가 아주 많았다. 탄생한 시기가 평균 80억 년 전이었다. 그리고 무거운 원소들의 함량도 아주 높게 나타났다. 별들이 이미 오래전에 진화를 마치고 터지며 다양한 원소를 주변에 날려 보내고 무거운 원소들만 남았다는 의미다. 그리고 더 이상 새로운 별들이 활발히 탄생하지 않는 상태로 보였다. 새로운 별이 만들어지려면 재료가 될 가스 먼지가 많아야한다. 하지만 M74 은하 중심엔 별 먼지가 하나도 없었다. 이미 오래전에 반죽돼 미지근하게 빛나는 나이 많은 별들과 이들을 에워싼 텅 빈 구멍만 있을 뿐.

유령 은하가 보여준 빛의 수수께끼

 

또 하나 이상한 징후도 포착됐다. M74 중심 핵 성단의 빛을 분석해보니 파장이 긴 중적외선 파장에서만 유독 밝게 빛나고 있었다. 이 빛은 은하 중심의 나이 많은 성단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또 은하 중심을 다른 파장으로 볼 때 가장 밝은 부분과 중적외선으로 볼 때 가장 밝은 부분의 위치가 어긋나있었다! 그 차이는 거리로 따지면 무려 30광년이었다. 중적외선 파장의 빛을 유독 강하게 방출하는 뭔가가 은하 중심에서 30광년이나 떨어진 자리에 존재한다는 뜻이다. 이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우선 한 가지 가능성은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활발한 블랙홀이 이 은하 중심에 숨어있는 것이다. 중심의 블랙홀에서 강력한 X선 에너지가 나오면 그 에너지가 블랙홀 주변을 감싼 먼지 구름에 다시 흡수된다. 이 흡수된 에너지로 미지근하게 달궈진 먼지 구름은 파장이 더 긴 적외선 영역의 빛을 방출할 수 있다. 하지만 M74 은하 중심에 블랙홀이 존재하는지 여부는 아직 논쟁 중인 가설이다.

 

또 다른 가능성은 은하 중심부를 향해 사방에서 많은 성단이 한창 유입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 가설은 은하 중심부에서 적외선이 유독 밝게 보이는 부분이, 은하 정중앙에서 약 30광년 거리만큼 떨어졌다는 점과 연결지을 수 있다. 은하 전체의 중력장에 이끌린 성단은, 나선 형태의 궤적을 그리며 은하 가운데로 빠르게 유입된다. 이 유입 과정에서 성단은 으스러지고 성단 속 별들이 해체된다. 그래서 두꺼운 가스 먼지에 덮인 별들처럼 보이는 착각까지 일으킬 수 있다.

 

으스러진 성단을 감싼 먼지들이 별빛을 받아 미지근하게 달궈지면, 결국 이 성단의 위치에서 현재의 관측 결과처럼 적외선 빛이 유독 강하게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시나리오도 완벽하진 않다. 최근의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성단의 이런 유입은 겨우 100만 년 만에 아주 빨리(!) 끝나야하기 때문이다. M74 은하 중심에서 실제로 관측되는 성단의 평균 나이 80억 년에 비하면 턱없이 짧은 시간이다.

 

은하와 은하가 겹치는 놀라운 우연

 

그래서 마지막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흥미로운 가설이 있다. 정말 정말 우연히 M74의 중심과 정확히 같은 방향으로, 아주 먼 거리에 또 다른 배경 은하가 겹쳐서 보일 수 있다는 가설이다. 이미 앞선 다른 연구들에서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이용해 가까운 은하 1271개의 이미지를 분석했다. 가까운 은하들 중 그 은하 뒤에 또 다른 배경 은하가 우연히 겹쳐서 숨어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데이터들을 자동으로 추렸다.

 

그렇게 나온 115개의 후보들 중에 바로 M74 은하도 있다. 이 가설이 사실인지는 아직 확실하진 않지만 이 아름다운 우주 유령의 심장을 뚫고 더 멀리 볼 수 있다면, 정확히 같은 방향에서 우연히 겹친 또 다른 배경 은하를 찾을지 모른다. 생각만으로도 재밌는 발견이다.

 

이 놀라운 가설을 가슴 속에 품고 다시 이 유령의 심장을 바라보자. 무엇이 보이는가? 아직 그 존재를 들키지 않고 잘도 숨은 거대한 블랙홀? 한창 은하 중심으로 빠르게 유입되며 해체 중인 성단들? 아니면 그 너머에 숨은 더 먼 새로운 은하? 아직 그 답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어떤 결말을 보더라도 모두 놀랄 것이다. 참, 사진을 너무 오래 바라보진 마시길. 정말 유령 같은 이 은하의 매력에 넘어가 정신을 잃을지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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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지웅배 연세대 은하진화연구센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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