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부위에 손을 대는 행위만으로 환자의 상처가 아무는 기적은 가능한가. 현재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런 종류의 사이비 의료행위는 대부분 사기다. 일시적으로 통증이 약화되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전보다 더 심한 고통이 엄습할 뿐이다.
“일어나라. 당신은 치유됐다.” 부흥사의 외침에 수많은 청중은 환호하며 신을 칭송한다. 중세 이래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돌팔이’ 의사와 기적을 행하는 사람들이 등장해 병든 이들을 고쳐왔다. 이들은 스스로 터득한 내적 힘이나 신으로부터 전지전능한 능력을 부여받았다고 주장하면서 말 한마디, 손길 한번으로 아픈 이들의 상처를 아물게 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죽기 직전의 부상자나 이미 죽은 사람의 몸에 손을 대 치료하는 장면이 나오는 X파일 3차 시리즈 마지막편인 ‘의문의 사나이’(TALITHA CUMI :예수가 죽은 소녀를 살릴 때 했던 말로, ‘소녀여 일어나라’의 뜻)나, ‘기적의 사나이’(MIRACLE MAN)는 이같은 불가사의 현상을 토대로 제작된 것이다.
X파일의 구성과는 다소 차이점이 있긴 하지만, 오늘날 종교집회에서 흔히 보여지는 치유 현상은 상당히 의심스런 구석이 많은 이벤트다. 그럼에도 이같은 행사는 사회 성숙도 여부를 떠나 전세계적으로 매우 자주 벌어지고 있다.
우리보다 개명한 것으로 여겨지는 미국에서도 저명한 부흥 치료사들이 대규모 운동장에 사람을 가득 모아놓고 한바탕 대회를 벌일 때면 대중 가수의 공연을 능가하는 광란이 벌어진다. 심지어 이같은 치료대회는 디너쇼 형식으로 진행되기도 하는데, 클린턴 대통령이나 영화배우 데미 무어, 비틀즈 멤버였던 조지 해리슨 등과 같은 유명 인사 상당수가 이른바 ‘성령 치료’의 추종자로 알려져 있다.
성령 치유사들은 몇가지 부류로 나눠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이 가운데 전형을 이루는 것은 그들이 절대자를 근원으로 하는 치유 에너지를 환자에게 전달하는 ‘통로’의 역할을 한다거나, 또는 그들 스스로가 치유 에너지를 발산한다고 주장하는 부류다.
이들은 먼저 정교한 안무로 무대를 장악한다. 치유사는 치유하기로 예정된 사람에 대해 일절 모르는 체 하지만, 사실 환자는 그의 훌륭한 조연 내지 엑스트라다. 조력자들은 부흥사 앞을 지나가면서 그의 외침 한마디와 접촉에 치유돼 감사의 기도를 외친다. 그러나 사지가 마비되고 중풍을 앓고 있는 ‘진짜 환자’들은 청중석 뒷면에 위치해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극적인 장면을 찍는 사진을 빛내줄 뿐이다.
그럼에도 이같은 치료법이 성공하는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부와 명성을 이미 얻었거나 이를 얻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은 대개 물질적 안락감의 반대 급부로 정신적으로 뭔가 잃었다는 생각을 갖는다. 둘째 사람들은 ‘고통 없이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는 격언을 잊고 보다 손쉬운 방법으로 목적에 닿으려고 한다. 셋째 이들의 치료가 실패했다 해도, 이는 오염된 물과 공기를 마시고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환자의 잘못일 뿐 치료사는 아무 잘못이 없다.
심령치료의 이면을 조사해 ‘기적을 찾는 의사’라는 책을 쓴 미국의 의학박사 윌리엄 놀렌은 캐더린 쿨맨이란 여자 부흥 치료사에게 당한 한 50대 여자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현장에서 쿨맨이 ‘누군가 지금 암이 치유됐다’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게 바로 나라는 것을 알았다. 그와 동시에 몸이 갑자기 불처럼 뜨거운 것에 휩싸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이것이 성령이라고 생각했다.
수천명의 광적인 지지자들 앞에 놓인 무대에 올라간 내게 그가 부목을 던져버리라고 했을 때, 비록 몸이 아프긴 했지만, 4개월간 나를 지탱해준 그 보조구를 벗고 걸을 수 있었다. 집에 와 잠자리에 들면서도 감사의 기도를 거듭해 올렸다. 그러나 다음날 새벽 나는 지독한 통증에 다시 시달려야 했다.”
이 암환자를 x선으로 촬영한 결과 암으로 이미 쇠약해진 등뼈가 그날 무대에서의 열광으로 인해 아주 주저앉아버리고 말았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는 2주 뒤 사망했다.
그렇다면 이 환자가 약간의 고통을 느끼면서도 부목을 벗어던질 수 있었던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학자들은 이에 대해 인체가 분비하는 생체의 마약성분인 엔도르핀의 영향으로 해석하고 있다.
1980년대 초기에 행해진 실험에 따르면 엔도르핀의 수준은 환자가 치료받고 있다는 믿음에 따라 달라진다. 따라서 위약효과(placebo)는 엔도르핀의 생성에 영향을 준다. 과학동아(97년 6월호 참조).
예를 들어 동일한 병을 앓고 있는 환자를 두 그룹으로 나누어 A그룹의 환자에게는 약을 주고 이의 치료효과를 알려준다. 그리고 B그룹에는 비타민 약을 주고 A그룹에 준 것과 같은 약이라고 말한다. 그 결과 이 둘 사이에서는 다르지 않은 반응이 일어나지만, B그룹의 환자에게 제공된 약이 비타민이었다는 것을 알려주면 회복 속도가 매우 느려진다.
앞의 암환자는 치유사와 군중들에 의해 생성된 흥분에 휩싸여 높은 수준의 엔도르핀을 혈중에 발생시켰을 것이다. 이는 치유에 대한 강력한 욕망과 결부돼 환자를 충분히 휠체어에서 일어나도록 한다. 그러나 일단 흥분이 가라앉으면서 엔도르핀의 수준은 급격히 떨어지고 만다.
이같은 상황에는 개인적 신념이나 분위기와 함께 타이밍도 중요하다. 모든 질병은 예측할 수 없는 패턴을 따른다. 환자의 상황이 계속 악화되는 시기에도 통증의 시간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시간도 있다는 말이다. 좋은 시간에 그 장소에 있었다면 상황은 더 호전됐을 것이다. 게다가 심령 치료를 행하는 사람을 찾아갈 당시의 환자 상태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을 만큼 절망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치료사 입장에서도 밑져야 본전.
치유력이 있다고 알려진 특별한 장소도 같은 틀에서 해석될 수 있다. 대개 이같은 특별 장소는 신화나 종교적 사건이 일어난경우가 많은데, 이들장소는 특히 신앙심이 깊은 사람들에게 놀라운 치유력을 발휘한다. 이들은 그 장소에 와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자신의 병이 일시적으로나마 치유됐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