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 하늘, 저 멀리 하얗고 동그란 무언가가 떠 있다.
자세히 살펴보니 물체는 점점 더 높이 올라간다.
남극 황제펭귄의 눈에는 달이나 UFO처럼 보일 지 모르나, 실은 풍선이다. 그것도 고가의 망원경을 매단 풍선. 과학자들은 크고 튼튼한 풍선을 만들어 대기권 너머 우주를 바라보고 있다.
▲ 12월부터 1월까지 이어지는 남극의 여름은 풍선 망원경의 ‘단골’ 발사장이다. 성층권 고기압이 반시계 방향으로 돌며 풍선을 남극 상공에 맴돌게 하고, 하루 햇빛량이 일정해 풍선에 가해지는 압력차가 적다.
우주망원경 100분의 1 비용으로 우주 본다
밤하늘 너머 깜깜한 공간을 향한 인류의 오랜 호기심은 망원경의 역사에 드러난다. 1610년 천문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망원경으로 처음 목성의 위성 네 개를 발견한 후, 400년 동안 천체 관측용 지상 망원경의 지름은 점점 커졌다. 거울이나 접시 안테나의 지름이 클수록 많은 빛을 모아 천체를 더 자세히 관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 ‘톈옌’(하늘의 눈이라는 뜻)이라는 별칭을 가진 중국 패스트 전파 망원경의 안테나 접시 지름은 500m에 달한다. 분해능을 높이기 위해 여러 개의 전파 망원경을 하나로 연결하는 프로젝트도 있었다. 전세계 6개 대륙 8개 대형 전파 망원경을 연결해 2019년 4월 최초로 블랙홀을 관측하는 데 성공한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EHT)’ 프로젝트다.
하지만 지상의 망원경을 아무리 키운다고 한들 지구 대기의 방해를 극복하긴 어렵다. 지구 대기는 우주에서 오는 전자기파(빛)를 산란하거나 흡수해 천체 관측을 방해한다. 우주에는 파장이 긴 적외선부터 파장이 짧은 자외선, X선까지 다양한 전자기파가 있다. 이런 빛은 지표면에 도달하기 전에 상당 부분 지구 대기에 가로막힌다. 특히 감마선과 엑스선의 경우 열권에 있는 산소와 질소 원자에 의해 대부분 흡수돼 지상에는 거의 도달하지 않는다. 또 대류권의 수증기는 적외선을 일부 흡수하기도 한다. 이를 피하기 위한 좋은 방법은 전자기파가 대기에 흡수되기 전인 우주 공간에서 관측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주 망원경은 개발과정이 길고 또 천문학적인 비용이 필요하다. 제임스웹우주망원경(JWST)은 개발 기간만 23년이 걸렸고, 제작에 약 13조 원이 투입됐다.
고고도 풍선 망원경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고안됐다. 우주 망원경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성층권에서 원하는 파장의 빛을 관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성환 한국천문연구원(천문연) 우주과학본부 책임연구원은 “성층권 수준만 돼도 대기의 방해를 98% 정도는 피할 수 있다”며 “할 수 있는 연구들이 더 많아진다”고 했다. 고고도 풍선 망원경 운용 비용은 발사체로 위성을 발사하는 프로젝트 비용의 100분의 1 수준이다.
대표적인 고고도 풍선 망원경은 2003년 9월 남극에서 처음 시험 발사된 ‘BLAST(Balloon-Borne Large Aperture Submillimeter Telescope·블라스트)’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를 비롯해 브라운대, 마이애미대, 캐나다 토론토대, 미국항공우주국(NASA) 제트추진연구소(JPL)등 국제공동연구팀이 은하에서 별이 형성되는 과정을 연구하기 위한 목적으로 개발했다. 직경 2m의 망원경으로 다중 주파수 관측이 가능했던 초창기 BLAST는 2005년에는 북반구에서, 2006년엔 남극 상공에서 각각 100시간, 250시간 동안 비행하며 우리 은하 돛자리의 원시항성 등을 관측했다. BLAST의 관측 결과는 별의 탄생에 대한 비밀을 탐구하는 데 도움이 됐다. 차가운 우주 먼지의 물리적 특성을 포착해 별이 탄생할 때 먼지의 중력 외에도 자기장과 같은 외부적인 구속력이 필요했을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제시한 것이다.
국제연구팀은 이어 2009년, BLASTPol을 개발했다. BLASTPol은 일종의 편광카메라다. 관측 대상으로부터 반사돼 나오는 빛의 파동이 특정 방향으로 더 우세하게 진동하는 정도(편광)를 측정하면 물체 표면의 특성을 추정할 수 있다. 이를 이용해 별이 탄생하는 성운의 특성을 분석하면 성운을 구성하는 분자의 종류를 검출해낼 수 있다. BLASTPol로 별의 ‘원재료’를 밝히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BLASTPol보다 기능이 더 향상된 차세대 고고도 풍선 망원경 ‘BLAST-TNG’가 활약 중이다. 2020년 1월, 첫 비행을 한 BLAST-TNG는 기존에 만들었던 성운 편광 지도보다 훨씬 더 깊은 지도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별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자기장이 하는 역할이 무엇인지, 초창기 BLAST가 제시한 아이디어를 증명할 수 있다. 지금까지 20년 동안 이어지고 있는 BLAST프로젝트는 지상에서 관측할 수 없는 파장대 관측으로 우주를 향한 제3의 눈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1 지구에서 176광년 떨어진 오렌지색 왜성 바다뱀자리 TW. ASTHROS는 바다뱀자리 TW를 관측할 예정이다.
2 NASA JPL의 ASTHROS 연구팀이 탄소 섬유로 제작된 고고도 풍선 망원경의 지지대에 금색 조각 거울을 붙이고 있다.
3 ASTHROS 망원경. 2024년 12월에 남극에서 띄워 올릴 예정이다.
2024년에 뜨는 새 풍선
ASTHROS
고고도 풍선 망원경은 다양한 기술과 노하우의 집약체다. 한 예로 ‘포인팅 시스템’이 있다. 성층권 대기 흐름에 정처 없이 흔들리는 풍선이 안정적으로 관측을 수행할 수 있게 진동을 줄여주는 기술이다. 포인팅 시스템은 풍선의 흔들림이 관측 장비에 전달되지 않게 막아주는 짐벌 프레임과, 망원경의 각도를 1도 수준으로 정확히 측정하는 리졸버로 구성된다.
2019년 천문연이 태양코로나그래프 관측 장비를 개발한 뒤 NASA와 함께 풍선에 달아 성능을 시험했던 BITSE 프로젝트 당시에도 관측 장비가 태양을 안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포인팅 시스템 ‘WASP’을 설치했다. WASP은 NASA 왈롭스 비행센터가 개발한 장비로, 관측 장비의 측정 각도를 3600분의 1도까지 미세하게 제어할 수 있다.
2024년 남극 하늘에는 망원경을 매단 또 하나의 고고도 풍선이 떠오를 예정이다. NASA JPL에서 개발을 담당한 ‘ASTHROS(Astrophysics Stratospheric Telescope for High Spectral Resolution Observations at Submillimeter-wavelengths·아스로스)’가 그 주인공이다. ASTHROS는 남극 대륙에 있는 NASA의 장기풍선캠프에서 2024년 12월 초고압력기구에 매달아 올릴 예정이다.
12월의 남극은 고고도 풍선 망원경의 ‘단골’ 발사장이다. 이 시기 성층권에는 반시계 방향으로 남극 대륙을 도는 제트기류가 우세하다. 풍선을 띄우면 남극 대륙에 오래 머물며 안정적인 실험과 관찰이 가능하다. 또한 12월은 남극의 여름이라, 24시간 해가 떠있다. 햇빛이 일정하게 내리쬐니 1년 중 일교차가 가장 적다. 즉 풍선에 가해지는 압력차가 최소화된다. 태양광 패널을 이용해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는 이점도 생긴다.
풍선 망원경은 가벼워야한다. NASA에서 개발한 고고도 풍선이 버틸 수 있는 최대 하중은 3600kg이다. 망원경을 비롯한 각종 장비들을 이보다 가볍게 제작해야 한다는 뜻이다. ASTHROS에 탑재할 구조물은 가벼운 탄소 섬유를 사용한다. 원적외선을 모아주는 9개의 금색 조각 거울을 탄소 섬유로 제작된 지지구조에 부착하는 식이다. 이 덕분에 ASTHROS의 총 무게는 약 2500kg이다.
임무 수행 가능 기간도 훨씬 길어질 예정이다. 일반적으로 망원경은 매우 낮은 온도에서 관측을 수행해야 한다. 망원경 온도가 높으면 망원경이 방출하는 열이 관측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또 열을 내는 물체는 적외선을 방출하므로 적외선 망원경은 저온 유지가 필수다. 이를 위해 대부분의 풍선 망원경은 액체 헬륨을 싣고 올라간다. 액체 헬륨이 소진되면 임무 수행이 불가능했다. ASTHROS는 태양광 패널이 생산한 전기로 작동하는 극저온 냉각기를 달았다.
ASTHROS는 40km 상공에서 21~28일 동안 비행하며 지구로부터 약 176광년 떨어진 젊은 별 ‘바다뱀자리 TW’를 관측하고 항성 피드백을 연구할 예정이다. 항성 피드백이란 은하계에서 별이 새로운 별의 탄생을 가속하거나 감속하는 현상으로 은하계 진화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건 정말 쉬운(easy) 프로젝트야!’ NASA 연구팀과 BITSE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했던 최 책임연구원은 “그들의 말이 부럽게 느껴졌다”며 “앞으로 고고도 풍선을 연구에 더 많이 활용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