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5월 29일. 에드먼드 힐러리와 셰르파 텐징 노르기는 인류 최초로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에 올랐다. 올해가 에베레스트 최초 등반 50주년이다. 이를 기념해 한국, 인도, 네팔 탐험대가 세계에서 네번째로 높은 로체 등정에 성공했고, 곧 에베레스트 등정을 시도할 예정이라고 한다.
에베레스트와 같은 고산지대에서는 한여름에도 두꺼운 옷을 준비해야 할 정도로 기온이 낮다. 자외선도 강해 화상을 입기 십상이다. 무엇보다 힘든 것은 산소 부족이다. 고산지대는 1천8백-6천m 사이의 높이를 말한다. 해수면 수준의 대기압은 7백60mmHg이고, 산소 농도는 20.93%다. 이에 비해 해발 1천8백m는 해수면 수준과 비교해서 대기압은 6백10mmHg이고, 산소 농도는 17% 정도다. 또한 해발 6천m는 해수면 수준과 비교해서 대기압은 3백54mmHg이고, 산소 농도는 9.5% 정도다. 6천m 이상의 높이는 극고도라고 하는데, 이 높이에서는 사람이 살 수 없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약 1억4천만명의 인구가 해발 2천5백m 이상의 고산지대에 살고 있다. 특히 이들 중 약 1억3천만명은 해발 3천m-5천m 높이에서 산다고 한다. 에베레스트 등반대와 고지대 원주민은 어떻게 산소 부족을 극복할 수 있을까. 저산소 환경에 적응하는 인체의 신비를 알아보자.
히말라야 사람들은 통짜가슴
고산지대 환경에 인체가 적응하지 못해 발생하는 질병이 ‘고산병’(altitude sickness)이다. 고산병에 걸리면 머리가 아프고 식욕이 떨어지며 잠이 잘 오지 않고 심리적으로 불안정해진다. 보바르 박사는 이런 증상이 3천m 이상 높이의 고지대에서 주로 발생한다고 1995년 ‘의사와 스포츠의학’에서 밝혔다. 등산할 때 일정한 고도마다 베이스캠프를 설치하는 이유도 고산병을 예방하기 위해서다. 베이스캠프에 머무는 동안 휴식, 자전거타기, 걷기, 달리기 등의 단계적 훈련을 거쳐 고산지대의 환경에 점차 적응하는 것이다.
며칠간 고도가 높은 곳에서 생활하다보면 점차 산소가 부족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인체 내 여러 반응들이 부지런히 일어난다. 이것을 ‘생리적 순화’ 또는 ‘보상반응’(acclimatization)이라고 한다. 해수면 높이에서 살던 사람이 히말라야처럼 높은 산을 등반하기 위해서는 이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산소가 희박한 환경에서는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가빠진다. 즉 호흡할 때 최대한 산소를 많이 받아들이고 이산화탄소를 빨리 내보내기 위해 허파의 환기량(들이쉬는 숨과 내쉬는 숨의 양)이 증가하는 것이다. 산소와 이산화탄소를 교환하는 허파의 능력이 우수해져 인체가 산소를 더 많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이 메커니즘은 목 부위에 있는 ‘경동맥 소체’(carotid body)라는 작은 기관에서 조절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혈액 속의 산소 농도가 낮으면 경동맥 소체에서 허파에게 환기량을 증가시키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때 환기량은 일반적으로 해수면 수준의 높이에서보다 65% 정도 증가한다. 고산지대에 사는 사람들은 가슴이 두꺼운 통짜 모양인 경우가 많은데, 이는 환기량을 최대한 늘리기 위해 진화된 형태로 생각된다.
이렇게 흡수된 산소는 허파에서 체내의 각 혈관으로 퍼진다. 운동할 때는 산소가 확산되는 능력이 평소보다 약 3배 증가한다. 고지대에서는 운동을 하지 않더라도 이와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 저산소 상태에 몇달 또는 몇년 동안 체내 조직이 적응하면 혈관의 수가 늘어나고 그 크기도 증가한다. 따라서 산소를 체내 곳곳에 널리 공급할 수 있게 된다. 고산지대인들은 약 10세 전후까지 이런 반응을 보이는데, 해수면 높이에서 성장하는 사람보다 혈관의 수와 크기가 상대적으로 더 많이 증가한다.
인간이 고지대에 완전히 순화되면 전체 혈액 중에서 적혈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정상 수치인 40-45%에서 최대 60-65%까지 증가한다. 산소가 부족한 상태에서는 ‘에리스로포이에틴’(erythropoietin)이라는 적혈구 생성 촉진 호르몬이 만들어진다. 이 호르몬이 골수를 자극하면 적혈구가 되기 전 단계의 세포들이 빨리 자라 적혈구가 더 많이 만들어지게 된다. 이때 액체 상태의 혈액인 혈장의 양도 함께 증가해 적혈구가 체내에서 원활히 순환하도록 돕는다. 참고로 피부와 신장에서는 혈액이 적게 움직이고, 근육과 심장, 뇌와 같이 생명과 중요한 관련이 있는 기관에서는 상대적으로 혈액의 움직임이 빨라진다.
지역마다 헤모글로빈 농도 달라
적혈구 속에는 산소와 결합하는 단백질인 헤모글로빈이 많이 들어있다. 이 헤모글로빈의 농도도 고지대에 적응하는 기간 동안 서서히 증가한다. 해수면 높이에 사는 사람의 경우 혈액 1dL(데시리터, 1dL=${10}^{-1}$L)당 평균 15g의 헤모글로빈이 들어있다. 고산지대에서는 최대 22g까지 그 양이 늘어난다고 한다. 헤모글로빈이 증가한다는 것은 허파에서 산소를 붙잡아 인체 내 여러 조직으로 운반해주는 능력이 증가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2002년 10월 ‘미 국립과학원회보’(PNAS)에는 고산지대인들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가 게재됐다. 고산지대의 환경에서 진화해온 여러 민족들이 똑같은 적응 형태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아메리카의 안데스인은 혈액 내의 헤모글로빈 농도를 정상보다 높게 유지해 고산지대의 환경에 적응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산소포화도, 즉 혈액 내에서 헤모글로빈과 결합된 산소의 농도도 높다.
그러나 중국 남서부의 고산지대에 살고 있는 티베트인이나 아프리카 북동부의 고산지대에 살고 있는 에티오피아인의 헤모글로빈 농도와 산소포화도는 안데스인과 다르다. 신시아 빌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티베트인은 고산지대에 살면서도 헤모글로빈 농도가 해수면 높이에 사는 사람들과 큰 차이가 없었으며, 산소포화도의 경우 세 민족 중 가장 낮았다. 대신 티베트인의 혈액 속에는 헤모글로빈을 만드는 데 필요한 단백질인 트랜스페린(transferrin)과 결합하는 수용기가 많이 있었다. 트랜스페린은 철을 세포 안으로 운반해 주는 역할을 하는 단백질 운반체다. 티베트인의 적혈구 세포 내에 트랜스페린 수용기가 많다는 것은 헤모글로빈의 빠른 생성율을 나타내는 것으로, 산소를 운반하는 헤모글로빈을 조직에서 필요로 할 때 빨리 만들어 낸다고 가정해볼 수 있다.
한편 에티오피아인의 경우, 헤모글로빈 농도는 해수면 높이에 사는 사람들과 거의 비슷했으나 산소포화도가 세 민족 중 가장 높았다. 에티오피아인은 호흡에 필요한 산소를 혈액 내에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산소가 부족한 환경에서도 적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산소포화도가 어떻게 이처럼 높아졌는지에 대해 정확한 메커니즘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 해답은 산소가 아니라 질소에 있을지 모른다. 신시아 빌 박사는 2001년 11월 ‘네이처’에 고산지대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인체 내의 산화질소(NO)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고산지대에 올라가면 대기압이 낮아지면서 허파 안의 압력이 증가해 호흡이 힘들어진다. 이때 산화질소가 허파 안의 압력을 낮춰 호흡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또한 허파의 혈관을 확장해 허파 안에서 많은 양의 혈액이 원활하게 흐르도록 하고 헤모글로빈이 산소를 붙잡는 능력을 향상시켜 각 조직으로 산소가 충분히 운반될 수 있도록 돕는다. 따라서 인간이 고산지대의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허파 내에 산화질소가 많이 필요하다. 고산지대에 사는 사람들은 산화질소의 배출을 조절하는 효소에 영향을 주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산소 공급이 정상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다양한 요인들이 고산지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환경 적응 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외에도 아직 찾아내지 못한 메커니즘들이 많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멕시코 올림픽 계기로 고산지대 훈련 탄생
대부분의 사람은 평생 에베레스트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다. 그런데도 고산지대에서 인체가 어떻게 적응하는지에 대한 연구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뭘까. 넓은 시각에서 보면, 끊임없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려는 인체의 신비한 능력에 대한 호기심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높은 산을 등반할 때 걸리는 고산병을 예방하고 운동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다. 이봉주 선수를 비롯한 마라톤 선수들은 중국의 곤명이나 미국의 록키산맥, 또는 볼리비아와 같은 고산지대로 전지훈련을 떠난다. 그들은 왜 먼 이국땅의 고산지대를 훈련캠프로 선정할까?
1968년 올림픽은 해발 2천3백미터 높이의 고산지대인 멕시코시티에서 개최됐다. 단거리 달리기 경기 결과를 1964년 도쿄 올림픽과 비교했더니 멕시코시티 올림픽에 참가했던 선수들의 기록이 월등히 우수했다. 고산지대인 멕시코시티는 공기의 밀도가 해수면 수준보다 낮다. 따라서 달릴 때 공기와의 마찰력이 적기 때문에 단거리를 달리는 선수들에게는 유리했던 것이다. 그러나 1천5백미터 이상의 장거리 달리기에서는 상대적으로 선수들의 기록이 저조했다. 장거리를 달릴 때는 산소가 훨씬 많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멕시코시티 올림픽 이후부터 스포츠 현장에서는 고산지대에서 경기를 수행할 때 좋은 기록을 낼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개발된 방법이 ‘고지대저산소 트레이닝’이다. 1992년 ‘국제스포츠의학저널’에서 딕 박사는 운동선수들이 산소 섭취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고지대저산소 트레이닝을 한다고 밝혔다. 정상 농도의 산소 환경과 낮은 농도의 산소 환경에서 번갈아가며 연속적으로 훈련해 고산지대에서처럼 인체에서 적응 반응이 일어나도록 자극한다. 해수면 수준의 높이에서 살던 사람이 고산지대에서 경기를 할 때 환경 변화가 없는 것처럼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실제로 마라톤 선수가 해발 2천5백미터 정도의 고산지대 환경에서 한달 정도 훈련을 하면 적혈구 수가 증가하고 조직으로 산소를 운반하는 능력이 강화된다.
산소를 많이 받아들일수록 운동선수의 경기 능력이 향상된다. 2001년 헨드릭슨 박사 연구팀은 ‘스포츠 활동에서의 의학과 과학’에 철인3종경기 선수를 대상으로 정상 산소 농도와 2천5백미터 고지대의 저산소 농도(15%)를 반복적으로 제공한 트레이닝 결과를 게재했다. 이 선수는 ‘최대 산소 섭취량’이 7% 정도 증가했다. 최대 산소 섭취량이란 운동 중 가장 많이 받아들일 수 있는 산소의 양을 말한다. 보닝 박사는 1997년 ‘국제스포츠의학저널’에서 고지대저산소 트레이닝 결과 적혈구와 혈장량이 증가하고 호흡에 관여하는 근육이 강화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저산소 트레이닝 심폐기능 향상시켜
산소가 부족한 환경에서 훈련을 하면 고산지대에서의 경기에 잘 적응할 수 있다는 효과 외에도 대기 중의 산소를 이용할 수 있는 능력이 발달한다는 이점이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해수면 수준에서 수행하는 경기에 참여하기 전에도 고지대 훈련을 실시한 후 참가하는 것이 최근의 추세가 됐다. 산소가 부족한 상태에 적응하기 위해 증가한 헤모글로빈 수와 혈장량은 훈련을 마친 후 2-3주가 지나면 최초 수치로 돌아온다.
그러나 고지대 환경에서 훈련하면 운동 능력이 향상된다는 장점이 있지만 산소가 부족하기 때문에 훈련 강도가 감소할 수 있다는 단점도 있다. 심한 경우에는 고산병이 발생해 훈련을 중단해야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또한 기온이 낮아 체온이 떨어지므로 잘못 설계된 고지대 훈련은 선수에게 오히려 도움이 되지 못한다.
고지대 훈련의 부작용 문제를 해결하고자 최근에는 저산소 발생 장치를 이용해 인위적으로 고지대 환경을 만드는 기기가 발명됐다. 고산지대 현장에 직접 가지 않고도 산소가 부족한 환경을 체험할 수 있는 첨단장비를 이용해 훈련하는 선수들이 점차 늘고 있다. 스포츠는 과학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산인 백두산 정상의 산소 농도는 16.4% 정도다. 산소통을 메고 움직여야 할 정도로 낮은 농도는 아니기 때문에 등반할 때 고산병에 대한 위험은 그리 많지 않다. 지리산이나 한라산의 고도도 인체가 고지대 순화 과정을 거쳐야할 만큼 높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고지대저산소 트레이닝 기기를 사용하면 간접적으로 산소가 부족한 고지대를 경험해 볼 수 있다. 윌버 박사는 고지대저산소 트레이닝 기기가 운동선수의 경기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목적뿐만 아니라 일반인의 건강관리를 위해서도 사용될 수 있다고 2001년 ‘스포츠의학’에서 밝혔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도 심폐기능이 좋지 않은 일반인들의 치료 목적으로 이 기기가 사용되고 있다.
고산지대에서 적응하는 체내 메커니즘은 이렇듯 운동 능력과 건강에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세계적인 장수마을로 손꼽히는 네팔의 훈자, 에콰도르의 발카밤바, 코카서스의 아브하지야 등이 모두 고산지대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