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보급이 확산되면서 이를 실제 학교교육에 이용하려는 CAI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현장교사가 보는 CAI의 가능성에 대한 시각은?
최근 학교현장에서 컴퓨터교육에 못지 않게 컴퓨터를 학습의 도구로 활용하려는 움직임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흔히 CAI(Computer Aided Instruction, 컴퓨터이용교육)라는 개념이 이것이다.
컴퓨터를 학습에 이용할 경우 여태까지 전통적인 수업방식에서 불가능했던 많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선진국에서는 실제 이러한 결과들이 많이 보고되고 있다. 그러나 컴퓨터역사가 짧은 우리나라에서는 CAI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일선학교 교사들의 컴퓨터지식도 짧은데다 시중에 나와있는 CAI프로그램들마저 제대로 교육적인 측면이 고려되지 않은 것이 많아 허다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우선 문교부가 그동안 막대한 예산을 들여 개발한 8비트용 코스웨어(course ware, CAI용 소프트웨어)들은 지난해 문교부가 16비트 중심으로 정책을 변경함에 따라 학교 현장에서 제대로 활용해 보지도 못하고 사장될 처지에 놓여 있다. 8비트용 코스웨어가 잘 활용될 수 없었던 이유는 각급 학교에 보급되었던 컴퓨터의 기종이 여러 종류여서 호환성이 없었고, 컴퓨터 시설을 제대로 갖춘 학교가 매우 적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컴퓨터에 관심이 많은 일선교사들은 컴퓨터의 교육적 활용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사실 학급당 학생수가 50명이상 되는 교육 환경속에서 학생 개개인의 성취도를 일일이 파악하지도 못한채 수업을 진행해야하는 우리 현실에서 CAI는 학생 개개인의 학습 능력에 맞도록 개별 학습을 실현해 주고 교사의 기능이 프로그램화 됨에 따라 교육이 더 필요한 학생에게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매우 큰 도움을 준다. 그 밖에 학습에 따라 동기 및 자극을 촉진시키고 비용이 많이 들거나 위험성이 있는 실험은 시뮬레이션(모의실험)을 통해 교육할 수 있어서 교육비의 절감과 안전성을 제공하는 장점도 있다. 그러나 컴퓨터의 설비 및 운용과 CAI 프로그램을 개발하는데 많은 비용이 든다는 점과 질이 낮고 교육적인 효과가 적은 코스웨어가 범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입시위주의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CAI가 어느 정도 정착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개인교수형이 주류
컴퓨터의 교육적 용도는 매우 다양하다. 통신망을 이용하여 각종 데이터베이스와 연결하면 졸업생들에게 다양한 진학정보 및 취직정보를 제공하기도 하고 전자 게시판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또한 원격교육에 컴퓨터를 사용하면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학생과 교사 또는 학생간의 신속한 의사소통을 통해 학습을 가능하게 하며 학생들이 원하는 지식을 신속하게 검색, 활용할 수 있게하여 학생들의 고립감을 덜어주고 학습의 성취도를 향상시킬 수 있다.
CAI의 형태로는 반복연습형 개인교수형 시뮬레이션형과 게임형이 있다. 코스웨어의 개발초기에는 반복연습형이 많이 이용되었는데 낮은 지식의 암기에 효과적이고 개발하는데 높은 수준의 프로그래밍 능력이 필요하지 않아 일선교사들도 쉽게 개발할 수 있는 장점은 있지만 교정기능이 없어 유인물이나 교재 이상의 기능을 발휘하기 힘들었다.
현재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코스웨어들의 형태를 보면 컴퓨터와 학생의 1대 1 대화형식으로 이끌어 나가는 개인교수형에 반복 연습을 가미한 것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형태는 학생들의 학습능력에 따라 개별학습을 가능하게 하지만 "한가지 주제를 전달하려면 다양한 피드백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매우 복잡해지고 분량이 많아져서 퍼스널 컴퓨터의 용량으로는 어려운 점이 많다"는 한 프로그래머의 지적도 있다. 실험을 요구하는 학습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시뮬레이션형(모의실험형)은 실제와 같이 구성된 상황에서 학습자의 판단을 유도하고 그에 대한 실제상황을 제시해 주는 형태로서 학습자가 입력시키는 내용에 따라 실제 상황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가를 판단할 수 있다. 즉 메스를 쓰지 않고도 해부시험을 할 수 있고 화학물질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도 자신이 만들고자하는 화학물질을 만들 수 있으며 그 생성과정까지도 생생하게 화면을 통해 관찰할 수 있게 한다. 이런 코스웨어는 비용이나 위험성, 시간적제약을 받는 내용을 학습할 수 있게한다. 선신국에서는 이미 높은 수준의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학교현장에 보급하고 있는데 프로그램 개발이 여간 어렵지 않아서 국내에서는 매우 단편적인 것만이 개발돼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81년 한국과학기술원에 대형컴퓨터를 이용한 플라토(PLATO)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CAI프로그램 개발이 시작됐다. 이 시스템은 스크린터치와 질높은 그래픽을 사용한 교육용 프로그램으로 알려져 있다. 필자도 2년전에 재직했던 창동중학교에서 이 시스템과 연결된 단말기를 통해 특수반 학생들을 지도하는 것을 보고 많은 기대를 가졌었다.
그 당시 특수반 담임교사는 "일단 학생들이 많은 호기심을 갖게 되어 학습 프로그램에 친숙해지고 있지만 좀 더 쉽고 다양한 프로그램이 제공돼야 할 것"이라고 아쉬움을 표현했다. 이 시스템은 대형컴퓨터를 이용한 것이어서 운용과 비용면에서 현실성이 적었기 때문에 대중화에는 실패했다.
학교현장에서는 거의 외면
컴퓨터 보급이 급증하고 있고 학습용으로 보다 효과적인 16비트 컴퓨터가 주축을 이루고 있어 CAI의 대중화에 밝은 전망을 주고 있다. 그러나 현재 국내에서 개발된 코스웨어는 교육전문가와 프로그래머들이 체계적으로 개발한 것이라고 보기에는 많은 미비점이 발견되고 있다.
코스웨어의 제작과정을 보면 일선교사가 교육내용을 작성하고 이를 프로그래머가 프로그래밍하는데 국내의 소프트웨어 업체들은 대부분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 있다. 대우통신에서 코스웨어를 개발하고 있는 한 연구원은 "아직 국내에는 코스웨어 제작에 필요한 툴(tool)이 전혀 개발되어 있지 않아 제작상 어려운 점이 많고 특히 이동그래픽이 어려워서 이동성 화면이 필요한 경우에 매우 난처하다"며 제작상 난점을 지적한다. 국내에서 시판되고 있는 16비트용 코스웨어의 내용을 보면 컴퓨터의 기능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구성은 대략 단원안내→단원요점정리→심화학습→종합문제풀이로 되어 있는데 대부분 기초적인 학습이론에 관한 연구가 부족하고, 문제풀이에서는 교정과정이 충분하지 않다. 특히 탐구적인 학습과정과 실험과정은 거의 취급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따라서 학생들에게는 가정학습에 참고자료가 되겠지만 교사가 학교수업에 적용시키기에는 부적당하고 실제 학교에서 수업용으로 활용하고 있는 사례는 볼 수가 없다.
각종 코스웨어가 자기 회사의 컴퓨터에만 사용할 수 있고 다른 기종에는 전혀 호환성이 없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따라서 학생들은 각종 코스웨어의 내용을 평가해 볼 기회도 없이(기종이 다르므로) 컴퓨터 구입시 일괄적으로 구입하고 있는 형편이다. 다만 현재 시스템공학센터에서 개발하여 (주)SKC가 상품화한 중학수학 소프트웨어만이 삼보트라이젬 286, 88플러스, 젬파워, 희망전자의 국민보급형 PC 대우전자의 코로나 XT4000L 현대전자의 Super-16E등에 호환성을 가지고 있다. 코스웨어는 각회사의 대리점과 교보문고, 종로서적내의 소프트웨어 판매부에서 판매하고 있는데(표2)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학년별 과목별 1세트당 3만~11만원으로 다른 학습 교재에 비해 매우 비싼 가격이다. 이들 코스웨어를 학교현장에서 사용하려면 복사가 금지되어 있어서 최소한 30세트이상 구입해야 하기 때문에 엄두조차 낼 수 없다.
코스웨어의 개발을 원활하게 하려면 먼저 프로그래밍에 필요한 저작도구(authoring tool)의 개발에 힘써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저작도구는 전문프로그래머가 아닌 일선교사나 교육전문가가 직접 프로그래밍할 수 있게 하기 때문에 개발의 의미가 매우 크다. 그러나 저작도구의 개발은 많은 투자와 연구가 뒤따라야 하기 때문에 정부가 주체가 되어 전문가의 양성과 장기적인 계획을 세울 필요성이 있다. CAI연구가 앞선 외국의 경우 퍼스널 컴퓨터에 사용할 수 있는 저작도구를 이미 개발해 놓고 있다.
과학기술처에서는 컴퓨터 가정교사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해 학계 산업계 연구소의 전문가들과 공동으로 3개년에 걸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이 연구의 중점 목표는 중학수학 과학 영어 교과별 학습방법별 코스웨어 개발 및 교사를 위한 학습활동 보조용 소프트웨어개발과 한국형 코스웨어 저작도구 개발 및 ICAI(Intelligent CAI, 인공지능형 CAI) 교육용 전문가 시스템 등이다. 87년 6월부터 시작된 1차년도에는 중학 수학 코스웨어를 개발했고 컴퓨터 가정교사 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한 세부실행 계획수립 및 CAI에 관련된 자료수집을 마쳤다고 한다. 한국교육개발원과 한양대학교 부설컴퓨터교육연구소에서도 본격적으로 코스웨어를 개발하고 있다.
자생적인 CAI개발
이외에도 학교 현장에서 교사들에 의한 코스웨어 연구 및 시범교육이 자생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서울 인수중학교에서 2개년 동안 2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수학과목 CAI를 실시한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었다. CAI의 효과를 알아보기 위해 전통적 수업만을 받은 집단과 전통적인 강의를 코스웨어로 복습한 두 집단으로 나누어 비교했다. 코스웨어는 학교 자체에서 관련교사들이 직접 만들었는데 과거의 완전학습식으로 난이도가 낮은 문제를 제시하고 학습자의 해결 능력에 따라 단계적으로 개별 학습을 하도록 구성했다. 즉 학습능력이 낮은 학생에게는 보충설명을 충분히 해준뒤 다시 풀도록 했고 성취도가 높은 학생에게는 점차 난이도가 높고 응용력을 필요로 하는 문제를 주어 학습목표에 도달시키는 방법을 사용했다. 연구결과 코스웨어로 복습한 집단의 학력이 전통 강의식 수업만을 받은 집단보다 2~4% 학습도가 신장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에 참가한 오경란교사는 "학력의 신장도 중요하지만 학생들의 학습태도 및 CAI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 학습의욕이 눈에 띄게 향상됐다"며 CAI가 교육적으로 효과적이기는 하지만 우선 컴퓨터 시설이 보강되어야 하고 현장교사가 프로그래밍을 한다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이에 대한 배려가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주변 교사들의 CAI에 대한 관심도가 아직 낮은 상태여서 일선교사들의 마인드형성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교부는 지난해부터 학교 교육과정에 컴퓨터단원을 설정하여 학생들의 컴퓨터마인드 확산을 기하고 있고 국공립사범대학 졸업자들에게 컴퓨터교육 과목을 이수하게 하고 있다. 또한 96년까지 컴퓨터보급, 교사훈련 코스웨어개발을 위해 9백87억원을 투자할 예정이다. 그러나 한 학교에 31대의 컴퓨터가 보급된다고 해서 모든 과목과 모든 학생들에게 CAI수업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또한 양질의 코스웨어 개발과 저작도구의 개발이 CAI를 통한 교육수준 향상과 직결한다고 볼때 코스웨어개발과 기초연구에 배정된 예산은 너무 적다고 지적할 수 있다.
특히 저작도구의 개발은 경험이 많은 전문인력과 새로운 기술도입으로 장기간에 걸쳐 연구되어야 하기 때문에 과감한 투자가 있어야 한다. CAI는 앞으로 우리 나라의 교육현장에 새로운 학습환경을 가져다 줄 것이며 교육수준을 크게 향상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따라서 이에 대한 정부차원의 꾸준한 노력과 아낌없는 투자가 있어야 하고 학교 현장에서의 관심도 보다 커져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컴퓨터교육의 궁금증을 풀어봅시다 「컴퓨터교사연구회」 활기
학교컴퓨터교육이 본궤도에 오르면서 초·중·고등학교 교사들의 자발적인 모임인 '한국컴퓨터교사연구회'가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지난해 4월 5명의 교사가 결성한 이 모임은 현재 41명으로 회원수가 늘어났다. 컴퓨터교육에 관한 지식과 경험을 나누기 위해 마련된 세미나에 참석하는 비회원 교사들까지 합치면 이 모임에 관심을 가진 교사는 의외로 많다.
"학교에서 컴퓨터교육을 맡고있는 교사들은 대부분 비전공자들이어서 모르는 내용이 있어도 어디가서 하소연할 데가 없는 경우가 많아요. 문교부에서 80시간정도 교육연수를 실시하지만 돌아서면 거의 잊어버리고 실제 컴퓨터교육을 하다보면 혼자서 독학해야 하는 일이 비일비재 합니다."
컴퓨터교사연구회 회장을 맡고있는 이광형교사(42, 홍대부중)는 회원들이 대부분 이런 답답한 심정을 갖고 있다가 모임에 대한 소문을 듣고 스스로 찾아왔다고 소개한다.
이교사 자신도 84년초 8비트 컴퓨터를 처음 구경한뒤 특별활동시간에 컴퓨터를 가르치다가 학생들보다 컴퓨터지식이 딸려 자극받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후 닥치는대로 책을 사서 공부하고 성적관리프로그램을 스스로 짜서 학교업무에 효용성을 과시하는 등 컴퓨터교육에 관한 나름대로 일가견을 가지게 됐다는 것이다.
이 모임은 지난해 네차례 세미나를 가졌다. 컴퓨터교육프로그램에 관한 내용이 두번, 컴퓨터통신과 초보자를 위한 컴퓨터이해에 관한 내용이 각각 한번씩 실시됐다. 모임에 참석한 교사들은 밤늦게까지 각자의 경험담을 털어놓으며 컴퓨터교육의 방향에 대해 토론하고 다른 학교의 사례를 청취하는 진지한 분위기였다고 한다.
지난해 중학교 교과과정에 컴퓨터에 관한 내용이 포함된데 이어 올해부터 국민학교와 고교과정에 컴퓨터과목이 신설된다. 또 문교부는 96년까지 모든 초·중·고교에 1학급분씩의 컴퓨터를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컴퓨터교사연구회는 이러한 컴퓨터붐에 힘입어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회원수도 늘리고 세미나개최도 보다 정기적으로 가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