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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의 전당에 마련된 장영실 코 너. 자격루 개발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장영실 혼자 한 것 이 아니라 세종의 명에 의해 여러 사람이 함께 이뤄냈던 업적이다


국립서울과학관에 마련된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에 가면 과학선현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접할 수 있다. 과학기술부와 한국과학문화재단이 마련한 이 전당에서는 최무선 장영실 이천 이순지 허준 홍대용 김정호 우장춘 이원철 이태규 안동혁 현신규 최형섭 이호왕 등 14명의 생애와 업적이 소개되며 관련 유품이 전시되고 있다. 일부 내용을 지면으로 만나보자.

‘대동여지도’를 만들기 위해 백두산에 일곱번이나 올랐으며 전국을 세차례나 두루 답사했다는 이야기의 주인공 김정호. 하지만 사료 어느 곳에도 이를 뒷받침해주는 기록을 찾을 수 없다. 또 대원군이 국가 기밀을 누설했다며 대동여지도 판목을 불태우고 김정호를 옥사시켰다는 이야기는 의도적으로 왜곡된 내용이다. 이 잘못된 이야기는 1934년 일제가 발행한 ‘조선어독본’에서부터 시작됐다. 일제는 진실을 조작함으로써 대동여지도처럼 훌륭한 업적을 알아보지 못한 우매한 지도층 때문에 조선은 망할 수밖에 없었다는 인식을 심어주려 했던 것이다.

‘허준이 스승 유의태로부터 의학의 진수를 배운다. 또 병들어 죽을 수밖에 없는 스승의 시신을 해부해 의학의 진전을 이룬다. 과거에 급제해 어의가 되고, 왕과 왕자를 고친 공로로 정1품에 해당하는 보국숭록대부라는 최고의 벼슬을 얻는다.’ 이런 내용은 ‘소설 동의보감’이나 ‘드라마 허준’을 수놓은 소재들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모두가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스승의 시신을 해부했다는 이야기는 소설가가 지어낸 것이고 유의태는 허준 사후에 민간에 떠돌던 야담에서 끄집어낸 인물이다. 과거급제는 양천 허씨 족보에 나와 있지만, 허준의 실제 활동을 적고 있는 유희춘의 ‘미암일기’에는 천거로 내의원에 들어간 것으로 암시돼 있다. 그리고 허준은 죽어서야 정1품 벼슬을 받았다.

많은 사람들이 화약을 처음으로 발명했다고 알고 있는 최무선은 어떨까. 이것도 오해다. 화약은 10세기 무렵 중국에서 발명됐고, 화약제조법은 중국만이 알고 있던 비법이었다. 당시 고려는 왜구의 잦은 침입에 대응하기 위해 화약무기를 절실히 필요로 했고, 이에 요구되는 화약을 중국에서 수입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무선은 화약을 자체적으로 개발했던 것이다. 최무선의 화약 개발은 정보수집을 위한 부단한 노력과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이룬 쾌거였다. 화약제조법뿐 아니라 화약 신무기의 개발도 최무선이 이룩한 중요한 성과였다. 화통도감에서 개발한 첨단 화약무기는 14세기 당시로서는 세계 수준의 것이었다.

또한 우리는 세종시대 과학기술의 여러 업적들을 흔히 각각 한 개인에 의해 이뤄진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당시 과학기술은 세종의 명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국가적 사업으로 추진됐다. 예를 들어 갑인자 같은 금속활자 인쇄기술의 혁신에는 이천의 주도로 장영실, 이순지 등 많은 사람이 함께 참여했고, 혼천의를 비롯한 천문관측기구의 제작에는 문관인 정초와 정인지가 이론적인 문헌연구를, 무관 출신의 이천과 장영실이 실무 제작의 공역을 맡는 식의 역할 분담이 있었다. 칠정산이라는 자주적 역법의 정비도 이순지가 주도했으나 김담 등의 협동작업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세종시대의 찬란한 과학기술업적 뒤에는 국가적 차원의 지원 아래 많은 과학기술자의 적극적인 협력과 협동이 있었던 것이다.

한편 “오랑캐의 학문이라도 훌륭하면 배워야 한다”며 북학사상을 고취했던 18세기 실학자 홍대용에 관해서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다. 홍대용은 직접 서양의 천문학과 수학에 관심을 갖고 연구했던 인물인데, 동아시아 최초의 지전설(지동설) 주창자로 지목받는 것은 잘못이다. 이미 60여 년 앞서서 김석문이 지전설에 바탕을 둔 우주론을 제시한 바 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홍대용의 과학사상이 갖는 가장 중요한 의의는 무한우주론에 있다. 그는 우주에 대해 자유롭게 상대주의적인 사색을 펼침으로써 전통적 우주관을 벗어나 무한우주의 관념을 보여줬던 것이다.

2003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동아사이언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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