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2 호르몬에서 항암제까지 얻는다

의료 보건

생물공학의 여러 분야중에서 가시적인 성과가 가장 두드러지는 의약품 부문은 미래에도 바이오테크놀로지 전반을 이끌 것이다.

흔히 생물공학(바이오테크놀로지)은 돈많은 나라들의 학문영역으로 알려져 있다. 막대한 연구비와 인력이 장기간 뒷받침돼야 성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같은 첨단과학기술인 반도체나 컴퓨터 분야와 성격이 사뭇 다르다. 반도체는 투자한 노력과 돈을 금방 회수할 수 있으나 생물공학으로 뭔가를 이룩하려는 국가나 기업은 먼저 인내심부터 길러야 한다.

대부분의 생물공학 제품들이 오랜 연구기간과 엄청난 투자를 요구하지만 특히 의약품의 경우에는 빨리 잡아도 '10년 농사'는 지어야 한다. 한 제품의 연구비도 10억달러가 보통이다.

이렇게 의약품의 개발속도가 상대적으로 더딘 것은 그것이 인간의 몸에 직접 투여된다는 데 기인한다. 아무리 유전공학적으로 완벽하게 대장균에서 인간의 성장호르몬을 얻었다 할지라도 그 성장호르몬이 인간의 몸에서 어렵게 뽑아낸 성장호르몬과 똑같을 수 있는가도 의문이다. 따라서 인간의 의약품을 유전공학적으로 생산하는 일보다 그것의 안전성을 보장받는 일이 더 어렵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인내력부터 배워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물공학의 여러 응용 분야중 의약 보건 부문이 가시적인 성과를 기장 많이 쏟아내고 있다. 단 한번만 성공하면 '10년 농사비'를 탕감하고도 엄청난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계적인 제약회사와 기술력만 믿고 뛰어든 수많은 모험기업들이 이 분야에 몰리고 있다.

당뇨병 치료에 이용되는 사람의 인슐린을 유전공학적으로 대량생산할 수 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인슐린의존성 당뇨병 환자의 혈당치(혈액내 포도당의 농도)를 낮추는 데는 인슐린이라는 호르몬이 특효약인데, 여느 호르몬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몸안에서 워낙 적게 분비되기 때문에 오랫동안 돼지의 인슐린을 대신 이용해 왔다. 그런데 돼지의 인슐린은 사람의 인슐린과 화학구조가 다소 달라서 갖가지 부작용이 끊이지 않고 있다. 돼지의 인슐린을 주입받은 당뇨병 환자가 일종의 거부반응을 일으킨 것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유전자재조합 기술을 이용해 사람의 인슐린을 대량으로 얻고 있다.

사실 생물공학의 핵심은 유전자 조작이며, 또 유전자 조작의 요체는 유전자재조합이다. 인슐린을 비롯해 항암제인 인터페론, 키를 크게 하는 성장호르몬 등이 모두 이 유전자 조작을 통해 대량생산된다.

시판이 정식으로 허용된 최초의 유전공학 제품은 '휴물린'이라는 상품명을 가진 인공 인슐린이었는데(1981년 미국의 모험기업인 제넨테크사 개발) 그 제법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사람의 DNA에서 인슐린을 생산하는 유전자를 잘라낸다. 그리고 이 유전자를 플라스미드(plasmid, 대장균 등에 있는 고리모양의 DNA)에 끼어 넣어 재조합한 뒤 이것을 대장균(E. coli)에 집어넣으면 된다. 이제 남은 일은 기다리는 것뿐인데 대장균은 엄청난 속도로 증식되므로(하루에 2천조개로 증식) 오래 기다릴 필요도 없다. 이로써 사람의 호르몬이 미생물의 균체 속에서 합성되는 새로운 운명을 맞게 된다.

이런 작업은 완전히 DNA 차원에서 이뤄진다. 그 작은 DNA를 자르고 붙이는 일이 쉬울 리 없다. 다행히도 DNA를 자르는 칼(가위)인 제한효소와 두 DNA를 붙여주는 풀인 DNA리가제(ligase)가 이미 발견돼 있고, 재조합된 DNA를 대장균에 옮겨주는 운반체(vector)인 플라스미드가 존재하므로 3박자가 완전히 갖춰진 셈. 여기서 제한효소란 플라스미드를 특정 위치에서 절단해 주는 물질이고, DNA합성효소라고도 불리는 DNA리가제는 서로 다른 두 유전자를 결합시키는 기능을 갖는다.

바이오암치료와 α-인터페론
 

B세포(가운데)가 T세포들에 둘러싸여 있다. B세포를 대량배양하면 α-인터페론을 얻을 수 있다.
 

유전자재조합기술은 왓슨과 크릭이 이중 나선형의 유전자 구조를 처음 규명한 지 약 20년 후인 1972년에 미국 스탠퍼드대학 연구진들이 개발해냈는데 인슐린 외에도 수많은 의약품들의 탄생을 돕고 있다.

국내에서도 크게 문제되고 있는 B형간염을 예방하는 약, 즉 B형간염 백신도 생물공학기술의 도움을 받아 개발돼 시판되고 있다. 유전자 재조합기술을 이용해 B형간염 백신을 제조하려면 무엇보다 B형간염바이러스의 표면에 있는 HBs 항원만을 따로 떼어 내는일이 중요하다. 이때도 DNA의 '가위'가 활약한다. B형간염 백신제조로 유명한 회사는 미국의 카이론사(社).

가톨릭 의대 맹광호교수(예방의학)는 "국내에서도 유전공학적인 기술을 활용해 B형 간염 백신과 그 진단시약을 개발해 냈다"고 들려준다.

인체의 성장호르몬도 생물공학적인 대량생산이 가능하다. 사람의 뇌하수체에서 분비되는 성장호르몬은 이름그대로 성장을 촉진하는 물질인체 특히 뼈의 성장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물질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호르몬 역시 우리 체내에서 극소량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왜소증 환자라 할지라도 재력이 웬만해서는 성장호르몬치료를 받기 어려웠다. 수천만원에 이르는 치료비를 감당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겠는가.
따라서 유전자재조합을 통해 얻어진 성장 호르몬은 성장이 더디거나 멈춰진 어린이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고 있다. 국내에서는 성장호르몬보다 오히려 더 나은 효력을 보인다는 성장촉진인자(IGF-1)를 개발한 바 있다.

알파(α)-인터페론도 생명공학기술로 제조되고 있다. 1986년 미국의 바이오젠사가 만든 α-인터페론은 미국의 식품의약국(FDA)이 인정한, 바이오기술을 이용한 암 치료법 '제1호'다. α-인터페론은 사람의 B세포를 대량으로 배양하면 얻어지는데 이 약은 신장암이나 다발성 골수종에 효능이 있다고 한다. 한편 독일에서는 류머티즘성 관절염의 치료에 쓰이는 감마(γ)-인터페론을 유전공학적으로 개발해 특허를 받았다.

조직 플라스미노겐 활성소(TPA, tissue plasminogen activator)는 치명적인 심근경색이나 뇌경색의 원인이 되는 혈전(핏덩어리)을 녹여주는 물질이다. 쉽게 말해 막힌 혈관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약이다. 이 약의 열렬한 팬중 한사람인 연세대 심장내과 이웅구교수는 "임상에 적용해 보니 TPA의 효능은 참으로 놀라웠다. 기존의 혈전증 치료제인 유로키나제보다 몇수 위"라고 단언한다. 실제로 TPA는 오줌에서 뽑아내는 유로키나제보다 강력하며 부작용이 적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TPA는 혈전을 녹여줄 뿐아니라 악성류머티즘과 장기이식 후유증(염증)에도 효능이 큰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것을 제조하는데 두 가지 생물공학적 기술이 동원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TPA는 유전자재조합기술과 세포 배양기술을 통해 얻어진다. 구체적으로 말하 면 'TPA를 생산하라'고 명령하는 인간의 특정 유전자를 대장균에 집어 넣거나 TPA를 생산하는 세포를 대량으로 배양하면 된다.

현재 TPA를 유전공학으로 생산하고 있는 희사는 미국의 바이오젠, 다몬, 몬산토, 스미스클라인벡맨사(社) 등이다. 이중 스미스클라인 벡맨사는 항(抗)염증제인 SOD(superoxide dismutase)의 개발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SOD는 장기이식 후 이식거부 반응에 따른 염증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투여될 것이다.

"미국 식품의약국의 허가를 얻어 시판중인 유전공학 제품(의약품)은 인슐린 성장호르몬 B형간염백신 α-인터페론 TPA EPO(적혈구의 생성을 촉진하는 조혈제)등이다. 또 단클론항체와 DNA탐침(probe)을 이용한 진단시약 1백여종이 시판되고 있다"고 원로 생물공학자인 한문희박사는 말한다. 이밖에도 현재 FDA의 허가를 기다리고 있거나 연구단계에 있는 것은 수두룩하다. 그중 가장 근접해 있는 것이 항암효과가 기대되는 인터류킨(interleukin)-2. 인터류킨-2는 국내의 연구진에 의해서도 이미 개발돼 있으며 생산기술까지 확보해 놓은 상태다. 임상시험도 거의 마쳤으므로 FDA같이 권위있는 허가기관에서 화룡점정만 해준다면 당장 내일이라도 신문광고가 나갈 수 있다.

유전공학적인 항암제 후보는 α-인터페론이나 인터류킨-2 외에도 여럿 있다. 예를 들면 조직괴사인자 암파괴인자 마크로파지(macrophage) 활성화인자 콜로니(colony) 형성촉진인자 등을 대장균의 균체를 이용해 대량생산할 수 있다.

흔히 '유도탄'으로 통하는 단클론항체(monoclonal antibody)는 정확하게 암세포를 향해 돌진한다. 따라서 암의 진단이나 치료에 매우 유용하다.
그렇다면 단클론항체란 무엇인가.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단클론과 항체를 따로따로 살펴보자. 알다시피 항체(antibody)는 우리 몸을 방어하는 면역시스템의 주역이다. 외부에서 세균 바이러스와 같은 이물질(異物質)이 침입하면 우리 몸은 즉각 그에 대한 항체를 만들어 방어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클론(clone)은 같은 성질을 가진 세포군(群)을 지칭한다.

그런데 체내에서 항체를 만드는 세포의 증식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이는 우리 몸의 입장에서 보면 안타까운 일이다. 그렇다면 항체생성세포의 증식속도를 높일 무슨 묘책은 없을까. 생물공학자들은 자신들의 유력한 무기중 하나인 세포융합기술을 활용해 보았다. 즉 증식능력이 큰 세포와 항체를 생산하는 세포를 융합시킨 것이다.
 

마크로파지(macrophage). 이 세포의 활성화인자도 유전공학적으로 제조할수 있다.


「쪽집게」단클론항체

생물공학자들은 증식능력에 관한 한 자타가 공인하는 골수종 세포와 항체를 만드는 플라스마세포를 세포융합했는데 결과는 그들의 기대를 충분히 만족시켰다. 항체를 만들면서 증식능력까지 뛰어난 잡종세포가 얻어진 것이다. 이 잡종세포를 흔히 하이브리도마(hybridoma)라고 부른다.

이 양수겹장의 잡종세포중에서 원하는 항체를 만드는 세포를 골라 배양하면 최종산물인 단클론항체가 얻어진다.

이 단클론항체를 이용하면 '숨어 있는' 암 세포를 찾아낼 수 있다. 암세포가 분비하는 어떤 특수한 물질에 단클론항체가 꼭 달라 붙으므로 암의 조기발견이 가능한 것. 따라서 단클론항체는 암의 진단시약으로 활용된다. 또한 단클론항체라는 미사일을 발사할 때 항암제를 함께 실어서 보내면 암세포에 치명타를 가할 수 있다. 미국의 조마사(社)는 단클론항체에 항암제를 태운 이무노특신이라는 약을 개발했는데, 이 약은 백혈병환자가 골수이식을 받을 때 유용하다고 한다. 단클론항체는 또 AIDS 등과 같은 바이러스성 질환에 걸렸는지 여부를 검사하고, 치료하는데도 유용하다. 원리는 항암제로 쓰이는 경우와 마찬가지다. 무수한 잡종세포들이 펼쳐진 생물공학 연구실의 진열대(?)에서 특정 바이러스를 죽이는 항체생산이 장기인 세포를 골라 대량배양하면 원하는 단클론항체를 무수히 얻을 수 있는 것.

유전공학적으로 대량생산할 수 있는 의약품은 또 있다. 예컨대 항암제의 일종인 림포 톡신(limpho toxin)을 대장균에서 얻을 수 있는데, 이 작업은 이미 국내에서도 완료된 상태. 그런가 하면 난쟁이와 당뇨병환자에게 새 희망을 주는 성장촉진인자 IGF-1이 국내기술로 얻어졌다. 사람의 간세포에서 분리된 뒤 유전공학적 처리를 하면 대량생산되는 IGF-1은 근육의 손상이나 골절치료시에도 유용하다고 한다.

또 피를 멎게 하는 일종의 지혈제인 α-트롬빈, AIDS 말라리아 인플루엔자 등의 백신, 혈우병 치료제인 제8인자, 항(抗)트립신, 상처회복을 도와주는 표피생장유전자, 혈압강하호르몬, 관절염과 노화방지에 효과가 있다는 약 등이 국내외에서 이미 개발됐거나 개발중이다.

아울러 질병을 일으키는 특정 유전자를 찾아내는 검사시약의 개발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예컨대 심장마비를 일으키게 하는 유전자를 추적하는 검사시약이 나왔는가 하면 당뇨병 간질환 신장질환을 간편하고 신속하게 알려주는 진단시약도 개발돼 있다.

이처럼 생물공학 기술을 이용하면 우리 몸 안에 있는 무수한 생리활성물질을 효율적으로 얻을 수 있다. 대부분의 생리활성물질들은 그 화학구조가 복집해서 인공적으로 합성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동안 극소량만을 체내에서 채취해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제공할 수 있었다. 예컨대 항암제인 인터페론은 우리 몸안에서 극소량 만들어지는데 암환자 한사람분을 제조하려면 약1백ℓ의 피를 뽑아야 했다. 그러나 이제는 대장균과 같이 증식속도가 빠른 미생물에 필요한 유전정보를 끼워넣으면 얼마든지 유용한 생리활성물질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림) 혈우병치료제로 사용될 수 있는 제8인자의 클로닝 과정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1992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박태균 기자

🎓️ 진로 추천

  • 생명과학·생명공학
  • 화학·화학공학
  • 의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