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록색맹인 사람중 일부는 운전면허증을 받지 못한다. 신호등에 쓰이는 녹색과 빨강을 구분하지 못해 사고 위험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색맹인 사람과 일반인이 보는 세상은 어떻게 다를까. 색 구분력이 떨어져 일반인보다 더 적은 색의 세상을 볼까. 케임브리지대 연구팀은 색맹인 사람이 일반인보다 색을 ‘덜’ 보는 것이 아니라 ‘다르게’ 본다는 연구결과를 ‘커런트 바이올로지’ 12월호에 발표했다.
색은 적색, 녹색, 청색을 받아들이는 세 종류의 원추세포를 통해 인지된다. 적록색맹은 녹색을 인지하는 원추세포가 적색과 가까운 빛을 인지하도록 변형돼 적색과 녹색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 적록색맹에 관련된 유전자는 X염색체에 존재하며 남자의 6%가 적록색맹이다.
연구팀은 녹색계통의 색을 단계별로 구분해 보여주고 색을 구별할 수 있는지 실험했다. 예상대로 적록색맹은 녹색의 차이를 쉽게 식별하는 반면 일반인은 똑같은 녹색으로 봤다. 정상인이 볼 수 없는 색을 적록색맹인 사람이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연구를 주도한 존 몰론 교수는 “2차 세계대전 때 색맹인 사람들이 적군의 위장을 알아채는데 탁월했다는 속설이 있었다. 이번 연구가 이를 증명한 셈”이라고 말했다. 나뭇잎 등 주변 배경과 비슷하게 보이는 위장색은 보통사람에게는 잘 안보이지만 적록색맹인 사람에게는 좀더 뚜렷하게 보인 것으로 추측된다.
농업사회에 이르기 전 인류는 긴 시간동안 고기와 나무열매를 주식으로 삼았다. 적록색맹은 빨갛게 익은 열매를 발견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따라서 적록색맹 유전자는 도태됐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도 적록색맹 유전자가 높은 빈도로 남아있다는 사실은 손해를 충당할만한 이점을 지니고 있음을 추론케 한다. 진화는 이익과 손해의 중간점에서 균형을 맞추기 때문이다. 혹시 색맹 원시인은 사냥터에서 선봉장이 돼 가장 먼저 사냥감을 발견하고 진두지휘 했던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