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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생명과학자들은 바이러스를 연구할까

분자생물학 연구모델에서 유전자 치료까지

왜 생명과학자들은 바이러스를 연구할까


인간에게 질병을 주는‘독’과 같은 존재인 바이러스. 퇴치의 대상으로만 여겨졌다. 그러나 오늘날 생명과학자가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까닭은 단지 질병퇴치뿐 아니라 분자생물학 발전과 유전자 치료에 바이러스가 큰 기여를 하기 때문이다.



‘바이러스’하면 원래 의미보다 컴퓨터 바이러스를 먼저 떠올릴 정도로 인터넷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 하지만 인류의 오랜 역사를 살펴보면 컴퓨터 바이러스보다 원래 의미의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좀더 끈끈한 존재였다.

이집트의 미라에서 천연두의 흔적이 발견되고 중국의 고문헌에 천연두에 대한 기록이 등장한다. 로마제국과 잉카문명의 멸망이 천연두와 홍역에 의한 것으로 믿어지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인 1918-1919년 겨울에 만연한 스페인 독감은 무려 3천여만명의 목숨을 빼앗아갔다. 인류 역사 이래 바이러스와 인간과의 접촉은 계속됐던 것이다.

하지만 그 존재는 1백여년 전에야 알려졌다. 최초로 바이러스를 발견한 것은 1892년의 일이다. 러시아의 이바노프스키가 담배모자이크병을 일으키는 물질이 세균여과기를 통과한다는 사실을 관찰한 것이다. 바이러스는 이전까지 세균의 일종이라고만 여겨졌다.

바이러스는 동물뿐 아니라 지구의 거의 모든 생물체(세균, 곰팡이, 식물 등)에서 발견된다. 바이러스는 숙주세포 내에서만 증식하고, 숙주세포 밖에서는 무생물과 다름없는 존재가 된다. 따라서 바이러스는 무생물과 생물의 경계선에 위치하는 일종의 기생생물이라할 수 있다.
 

백신의 개발로 천연두와 소아마비는 현재 지구에서 거의 사라진 바이러스 질병이 됐다. 바이러스 연구의 첫 목표는 인간에 게 질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의 퇴치다.



라틴어로‘독’의미

바이러스가 근래에 들어서야 발견된 까닭은 크기가 고작 수십nm(나노미터=${10}^{-9}$m)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바이러스의 실체가 확인된 것은 1930년대의 일로, 전자현미경이 개발된 후에 가능했다. 그리고 그 용어는 19세기 중반‘독’을 의미하는 라틴어‘바이러스’에서 유래했다.

그 의미에서처럼 바이러스는 사람에게 독과 같은 존재다. 때문에 생명과학자들이 왜 바이러스를 연구하느냐는 질문을 던진다는 것은 왠지 싱거워 보인다. 뻔한 답이겠지만,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많은 전염성 질병의 원인인 바이러스를 규명함으로써 질병을 진단하고, 예방하며, 치료하기 위함이다. 이런 목적에서 바이러스학이 탄생된 것이다.

생명과학자들이 바이러스를 연구한 결과로 거둔 첫 성과는 바이러스를 퇴치하는 다양한 백신의 개발이다. 21세기를 맞아 세계적인 학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한 설문조사에서 지금까지 인류가 개발한 가장 위대한 발명품 중 한가지로 백신이 선발됐다. 백신은 환자에게 항체형성을 유도해 바이러스감염을 막아주는 예방약이다. 실로 백신은 인간이 개발한 가장 값싸고 효과적인 명약 중의 명약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2백여년 전 제너라는 의사가 재치있는 관찰로 개발한 천연두 백신은 지구에서 천연두라는 질병을 사실상 퇴치했다. 만약 천연두 백신이 아직까지 개발되지 않았다면 천연두는 인간에게 엄청난 재앙이었을 것이다.

천연두뿐 아니라 196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백신이 개발∙보급된 소아마비 바이러스도 사실상 퇴치됐다. 최근에는 B형 간염바이러스 백신이 개발돼 B형 간염의 감염도 점차 감소 추세다. 특히 B형 간염백신은 유전공학기술로 개발된 최초의 백신으로 안전성이 뛰어난 장점이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백신이 개발되지 않은 바이러스성 질병은 많다. 수혈이나 성 접촉과 같은 방식으로 감염되는 에이즈나 C형 간염의 경우가 그렇다. 이들은 RNA를 유전체로 갖는RNA 바이러스로 염기서열의 변화가 심해 변이체가 많다. 이는 바이러스 변종이 쉽 게 생겨난다는 말이다. 또한 항원의 면역성이 낮아 우리 몸 속에서 항체 형성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 따라서 종래의 기술로 개발된 백신은 효력이 없다. 끊임없이 새로 등장하는 컴퓨터 바이러스를 퇴치하는 완전한 백신 프로그램이 개발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현재로는 에이즈 바이러스와 C형 간염바이러스에 감염이 안되도록 유의하는 것이 최선의 예방책이다.
 

백신은 이미 걸린 환자에게는 의미가 없는 예방약일 뿐이다.



에이즈 치료제 10여개 시판

그러나 현재 수많은 사람들이 에이즈와 C형 간염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이런 까닭에 이들 바이러스성 질병을 퇴치하는 좀더 적극적인 방법이 최근 들어 본격적으로 연구되고 있다. 바로 항바이러스제의 개발이다. 항바이러스제는 항생제와 비슷하다. 세균의 성장을 억제하기 위한 약이 항생제이고, 바이러스의 성장을 억제하는 약이 바로 항바이러스제다.

항바이러스제는 에이즈의 원인인 HIV가 발견된 이후 1980년대 중반에 비로소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1990년까지만 해도 바이러스성 질환을 치료할 항바이러스제가 사실상 없었다고 과언할 정도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승인한 항바이러스제가 몇가지에 불과했으나, 현재는 에이즈 치료제 10여개가 FDA의 승인을 얻어 시판중일 정도로 그 숫자가 늘어났다.

이렇게 된 까닭은 항 HIV 치료제의 개발연구가 경쟁적으로 이뤄진 결과다. 미국의 경우 에이즈로 국민들이 죽어가는 상황에 직면하자 여러 대통령이 선거 공약으로‘에이즈 치료제 개발’을 내놓았다. 대통령은 자신의 재임기간에 에이즈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 FDA에 정치적 압력을 가해 10-15년 걸리던 신약개발 기간을 불과 2-3년으로 단축시켰다. 따라서 연구개발비의 조기 회수 가능성과 엄청난 부가가치를 탐낸 많은 제약회사가 경쟁적으로 에이즈 치료제 개발에 나섰다.

그 결과 종전의 신약개발 수준을 한 단계높이는 결과를 얻었다. 과거에는 질병을 일으키는 단백질의 구조를 모르는 상태에서 신약개발이 이뤄졌다. 때문에 수만종의 화학물질을 무작위로 스크리닝해 행운을 기대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항 HIV 치료제의 개발과정에서 좀 더 과학적 방법이 동원됐다. 항HIV 치료제는 HIV가 증식하는데 관여하는 효소(단백질)를 무력화시킴으로써 에이즈 질환이 악화되는 것을 막는다. 따라서 효소와 결합하는 물질을 개발하는 것이 바로 항 HIV 치료제가 된다. 이를 개발하기위해 질병단백질의 구조를 파악하는 X선회절법, 의약설계기술, 그리고 의약합성기술이 동원됐고, 이들이 시너지효과를 일으키며 신약개발에 본격적으로 활용됐다. 결국 에이즈는 현재 치료제 종류가 가장 많은 바이러스 질환이 됐다. 한편 이같은 신약개발 기술은 항바이러스제뿐 아니라 항암제 등 다른 신약에도 이용돼, 백혈병 치료제인‘글리벡’개발이 증명하듯이 신약개발이 가속화되고 있다.


분자생물학연구에 중요 모델로 기여

질병의 원인을 연구하고자 탄생한 바이러스학은 기초 생명과학의 발전에도 큰 기여를 했다. 1970년대 분자생물학이 시작된 이후 바이러스는 분자생물학 연구의 모델로 사용돼 이 분야의 학문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이는세포의 유전체에 비해 바이러스의 유전체는 크기가 대부분 1만 염기쌍 이하일 정도로 매우 작아 다루기 쉽고 유전자의 수가 몇개 안 돼 연구에 용이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핸서(enhancer)와 인트론(intron)과 같은 분자생물학의 주요 업적이 바이러스에서 처음 발견됐다. 프랑스의 피에르 샹본 박사는 1980년 초반에 원숭이 바이러스인 SV40에서 인핸서를, MIT의 필립샤프 박사가 1977년 아데노 바이러스에서 인트론을 처음 발견했다.

인핸서와 인트론이 바이러스에 처음으로발견될 당시, 과학자들은 이들이 단지 바이러스에서만 나타난다고 생각했다. 이후 진핵생물의 경우에도 인핸서와 인트론가 모두 발견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샤프 박사는 인트론 발견의 공로로 1993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이뿐 아니라 바이러스는 분자생물학에서동일한 유전자를 여러쌍 얻어내는 유전자클로닝 기술의 발전에도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M13이라는 박테리오파지가 그 주인공. 영국의 프레데릭 생거박사에게 1980년 두번째 노벨 화학상을 안겨준 염기서열 결정기술(DNA sequencing)에필요한주형인‘한가닥(single-stranded)의DNA 제조’를 가능하게 한 바이러스다. 30억쌍의 염기서열을 밝혀내는 인간게놈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수행될 수 있었던 데는 한가닥 DNA의 제조기술이 큰 공헌을 했다.

| 인핸서 |
유전자가 발현하는 정도를 늘려주는 촉진인자다.

| 인트론 |
DNA염기서열 중에서 단백질 정보를 갖지 않는 유전자 부위. 여러 조각으로 구성된 DNA는 일부 조각만이 단백질 정보를 함유하고 있다. 인트로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엑손이라고 하는데, 과학자들은 현재 인트론의 또 다른 기능을 찾기 위해 연구 중이다.


유전자 치료에 이용

바이러스는 기초 생명과학의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하긴 했지만, 그 이름이‘독’에서 유래했듯이 인간에게는 병을 주는 퇴치의 대상으로만 여겨질 것이다. 그렇다면 바이러스는 인간에게 유익한 도구가 될 수는 없을까. 아니다.

바이러스 학자들은 바이러스가 유전물질을 세포에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특성이 있다는 점에 착안해 유전자 치료에 치료용 유전자를 전달하는 벡터(vector)로 개발하고 있다. 1990년에 첫번째 유전자 치료가 실시된 이후, 현재 세계적으로 4천여명의 환자가 유전자 치료를 받고 있다. 이들은 대개 레트로 바이러스, 아데노 바이러스, 아데노 부속 바이러스와 같은 바이러스에서 유래한 벡터를 이용한 치료를 받고 있다.

유전자 치료는 초기에 주로 유전병의 치료에서 기대됐으나, 현재는 유전병뿐 아니라 종양이나 종래의 의술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당뇨병, 심장병과 같은 난치병의 치료에도 새로운 치료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현재 많은 의학자들은 유전자 치료가 21세기의 새로운 치료법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아직은 임상연구의 단계이지만, 유전자 치료의 실용화로 머지 않은 미래에 바이러스는 인간에게 ‘병’과 ‘약’을 주는 존재가 될 날이 올 것을 기대한다.
 

인간과 바이러스의 접촉은 계속되고 있다. 유행성 독감 으로 매년 수만명 이상이 사망한다.



B형 간염 환자 국내 8%

현재 국내의 대학, 연구소에서는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활발한 연구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간염 바이러스, 레트로 바이러스, 헤르피스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몇 연구실에서는 국제경쟁력이 있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고있다. 한편, LGCI와같은 기업체 연구소에서는 B형, C형 간염 바이러스 치료제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B형 간염의 경우, 다른 어느 질병보다도 한국에 환자가 가장 많은 질환이다. 약 8%의 인구가 만성 감염자일 정도다. 반면에 미국이나 유럽의 선진국에서는 B형 간염 환자가 거의 없어 정부의 연구지원이 축소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이유로 B형 간염 바이러스 분야는 우리가 가장 경쟁력 있게 연구할 수 있는 분야이다. 따라서 우리 국민의 질병인 B형 간염 바이러스의 퇴치를 위한 국가적 차원의 정책적인 연구지원이 아쉽다.

인간게놈프로젝트가 거의 완성돼 가는 현시점에서 생명과학자들 사이에서는 포스트 게놈시대의 유전체 기능연구가 화두가 되고 있다. 정부도 과학기술부의 21세기 프론티어 사업을 비롯한 포스트게놈프로젝트에 연간 수백억원 이상을 지원하고 있다.

반면 유전체의 크기가 작아 분자생물학의 초기인 1970년대에 각광을 받던 바이러스 분야는 포스트 게놈시대에는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아직도 전세계 인구 10%가 에이즈, 간염과 같은 생명을 위협하는 바이러스성 만성 질환을 앓고 있다. 심지어 유행성 독감으로도 매년 수만명 이상이 사망한다. 또한 몇년 전 홍콩에서 발생한 닭에서 유래한 신종 독감 바이러스 뿐 아니라 에볼라 바이러스 등의 신종 바이러스가 출현해 지구촌을 긴장시키기도 한다.

앞으로도 인간과 바이러스의‘접촉’은 계속될 것이며, 바이러스 학자들이 깨어있는한 인류는 이 위험한‘적과의 동침’에서 생존할 것이다.


세계가 가장 주목하는 바이러스

HIV(RNA 바이러스)

에이즈 바이러스인 HIV는 현재 가장 많은 학자들이 연구하는 바이러스. 지구촌의 약 3천6백만명이 감염된 에이즈는 지난 20여년간 세계인의 주목을 받으며 집중 연구됐다. 그 결과 아직 백신은 개발되지 못했지만, 10여개의 치료제가 개발됐고, 3개의 치료제를 동시 복용하는 치료법(일명 칵케일 처방)을 받은 환자에게는 바이러스 증식이 효과적으로 억제된다고 알려져 있다.

이 결과, 미국에서는 1998년부터 에이즈로 인한 사망자가 감소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프리카와 동남아 국가 인구의 상당수(약 1-2%)가 감염자이며 그 수도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불행하게도 에이즈 치료제는 고가여서 이들 개발도상국 환자에게는 도움이 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RNA 바이러스)

매년 겨울철이면 연례행사처럼 찾아오는 유행성 독감을 일으키는 바이러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RNA 바이러스로 염기서열의 변화가 심해 과거에 맞은 백신이 신종 독감 바이러스를 효과적으로 예방하지 못한다. 따라서 매년 출현하는 신종 독감 바이러스의 막 단백질로 제조된 백신을 맞아야만 예방이 가능하다.

최근에 항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제가 개발돼 1999년도에 FDA 승인을 받아 시판중이다. 이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대해 선택적으로 작용하는 항바이러스제가 개발된 것이다. 독감에 걸리면 항생제를 처방하던 과거의 우리 의료관행이 이제는 사라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B형 간염 바이러스(DNA 바이러스)

만성간염뿐 아니라 간암을 유발하는 바이러스. 전세계적으로 약 4억명이 만성감염자로, 임상적으로 중요한 바이러스다. 한국은 약 8%의 인구가 만성 감염자로 중국과 함께 세계 최고 만성 감염율을 기록하고 있다. 다행히 백신의 도입으로 20세 미만에서는 만성 감염자가 5% 이하로 감소하는 추세여서 불명예를 하루빨리 벗을 날을 기대한다.


C형 간염바이러스(RNA 바이러스)

1989년에 발견된 간염 바이러스로 B형 간염 바이러스와 유사하게 만성간염뿐 아니라 간암을 유발한다. 전세계적으로 약 2억명이 만성감염자, 임상적으로 매우 중요한 바이러스다.

아직 백신이 개발되지 않았고 효과적인 치료제가 없어 제약업계 연구소에서 치료제 개발을 위해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파필로마 바이러스(DNA 바이러스)

여성 자궁경부암의 원인이 되는 바이러스. 인간에게 종양을 일으키는 종양 바이러스라는 중요성 때문에 주목받고 있다. 자궁경부암은 우리나라 여성에게 가장 흔하게 발생하는 종양이기도 하다. 파필로마 바이러스에 대한 치료제와 백신이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기타

이밖에도 유전자 치료벡터로 이용되는 아데노 바이러스, 아데노 부속바이러스, 레트로 바이러스 등도 매우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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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류왕식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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