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한 호수를 떠다니던 동물이 깃털을 다듬다 갑자기 날쌘 몸짓으로 물속으로 사라진다. 한참 만에 밖으로 나온 동물의 입에는 은빛으로 반짝이는 물고기가 물려 있다. 물새냐고? 국내 연구진이 최근 발견한 반수생(半水生) 공룡, ‘나토베나토르 폴리돈투스(Natovenator polydontus)’다.
이융남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팀은 2008년 몽골 고비사막에서 물속 사냥을 하는 신종 육식공룡을 발견해 2022년 12월 1일 국제학술지 ‘커뮤니케이션즈 바이올로지’에 발표했다. 학명은 ‘이가 많은 수영하는 사냥꾼’이란 뜻이다. 연구진은 ‘조류’를 제외한 공룡 중에서 물속 생활을 한 공룡을 처음으로 발견했다.
‘물에 사는 공룡은 많지 않았나?’ 독자 중에 이런 의구심을 가질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영화 ‘쥬라기월드: 도미니언’만 봐도, 물에서 튀어 오르는 모사사우루스가 나오지 않는가. 그런데 사실 모사사우루스는 공룡이 아닌 수생 도마뱀이다. 흔히 물에서 산 공룡이라 여기는 ‘어룡’과 ‘수장룡’ 역시 해양 파충류로 분류된다. 물고기를 닮은 어룡 이크티오사우루스도, 목이 긴 수장룡 엘라스모사우루스도 공룡이 아니라는 거다.
물속 생활을 한 공룡은 오히려 상상도 못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남아있다. 바로 펭귄과 같은 조류다. 생물학계는 현대의 새도 공룡의 일종으로 분류한다. 따라서 ‘조류’로 살아남은 공룡과의 구분을 위해 멸종한 공룡을 ‘비조류’ 공룡이라 표현한다. 이런 상황에서 반수생 비조류 공룡인 나토베나토르가 발견된 것이다. 나토베나토르 발견 이전에도 반수생 후보로 거론되던 스피노사우루스와 핼츠카랍토르 등이 있지만, 이 둘은 여전히 반수생 여부를 두고 논쟁이 이어지는 중이다.
“나토베나토르는 반수생에 대한 반박이 거의 없을 거예요.” 1월 4일 만난 이성진 서울대 고생물학연구실 연구원의 눈은 확신으로 빛났다. 이 연구원은 이번 논문의 제1저자로, 논문 작성과 연구 전반을 담당했다. 나토베나토르는 중생대 백악기 후기인 약 7000만 년 전 몽골 고비사막 바룬고욧 지층에서 발견됐다. 키 30cm, 몸길이 약 60cm로 오늘날의 오리와 비슷한 크기다. 두개골은 성인 남자 손바닥의 절반을 겨우 차지한다. 위아래로 넓적한 주둥이 사이에는 좁쌀보다 작은 크기의 이가 100여 개 박혀 있다.
이 연구원이 소개한 반수생의 결정적 증거는 ‘갈비뼈’다. 나토베나토르의 갈비뼈는 몸 뒤쪽을 향해 기울어진 모습으로 생겼다. 갈비뼈가 몸 뒤쪽을 향하면 체형은 자연스레 유선형이 된다. 몸이 유선형이면 하늘을 날거나 물에서 헤엄치는 데 유리하다. 연구팀은 나토베나토르의 갈비뼈를 여러 종의 물새, 타조, 그리고 육상 수각류 육식공룡과 비교했다. 그 결과 펭귄이나 바다오리 같은 물새와 형태가 비슷함을 밝혔다. 갈비뼈는 온전한 상태로 발견되는 경우가 드문데, 이번 화석에서는 척추와 갈비뼈가 잘 보존되어 있어 유선형 체형이라는 분석에 힘을 실어주었다. 이외에도 나토베나토르는 목이 길고, 주둥이를 다물었을 때 악어처럼 미끄러운 물고기를 가둘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나토베나토르가 호수나 강이 있던 당시 고비사막 일대에서 물고기를 잡아먹으며 살았을 것으로 추정하는 이유다.
지금까지의 연구 중 가장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나토베나토르 화석은 이성진 연구원에게 어떤 의미일까. 이 연구원은 “너무 오래 연구하다 보니 잠시 다른 공룡에게 한눈을 판 적도 있어요”라며 웃어 보였다. 그러면서도 “이젠 동반자 같죠”라고 말하는 목소리는 사뭇 진지했다. 이 연구원은 “나토베나토르 화석을 마이크로 컴퓨터 단층촬영(CT)로 스캔해놨다”며 “이 자료를 바탕으로 추가 연구를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