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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사람다운’ 얼굴 찾아 반세기

 


최초의 인류 화석을 찾아서
시작은 1960년대로 올라갑니다. 당시 케냐에서 왕성한 발굴을 하던 고인류학자 부부가 있었습니다. 영국의 루이스 리키와 매리 리키 박사는 우리 인류가 속한 호모 속(속은 종의 상위 개념. 즉, 호모 사피엔스의 친척을 모두 일컬음)의 기원을 밝힐 화석을 찾기 위해 고심하고 있었습니다. 쉽게 말해 최초의 호모 속 화석을 찾는 일이었지요.

당시에 발견된 고인류 화석으로는 300만 년 전 등장한 남아프리카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 와 동아시아의 ‘호모 에렉투스’가 대표적이었습니다. 리키 부부는 최초의 호모 속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보다는 나중에 나왔고 호모 에렉투스보다는 원시적인 종일 거라고 내다봤습니다.

1960년대 내내 열심히 발굴을 한 리키 부부는 고인류학계에서도 손꼽히는 눈부신 성과를 냈습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남아프리카뿐 아니라 동아프리카에서도 번성했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또 탄자니아 래톨리 지역에서 유명한 ‘화산재 위의 두 발자국’ 유적을 발견했습니다. 이는 인류가 직립보행을 한 것이 기존 예측(70만 년 전. ‘곧선 사람’인 호모 에렉투스 시대)보다 훨씬 전인 330만 년 전이라는 사실을 밝히는 귀중한 성과였습니다. 큰 치아를 지닌 ‘파란트로푸스(또는 당시 명명법에 따라 ‘진잔트로푸스’) 보이세이’의 대표적인 두개골도 발견했습니다. 하나하나가 고인류학 역사의 이정표로 삼을 만한 대발견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가장 열망하던 호모 속의 기원은 쉽게 찾지 못했습니다. 리키 부부는 실망이 컸습니다. 그러던 중 탄자니아의 올두바이에서 손 뼈 하나를 발견했는데, 리키 부부는 이 손 뼈에서 도구를 만드는 손의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꿈에 그리던 호모 속의 조상을 찾은 것일까요. 리키 부부는 이 종에 ‘손을 쓰는 사람’이라는 뜻의 ‘호모 하빌리스’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아버지의 꿈, 아들이 완성하다
하지만 리키 부부의 열망이 완전히 이뤄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손 뼈 화석만 발굴해서는 완벽한 증거가 되지 못합니다. 인류 화석은 대부분 두개골을 기준으로 이름을 붙입니다. 얼굴과 머리에서 사람만의 특징을 봐야 하지요. 빨리 도구를 만들 만큼 큰 두뇌를 가지려면 큰 두개골과 곧게 선 이마가 필수입니다. 다행히 이어진 발굴에서 화석이 발굴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때부터 호모 하빌리스의 역사는 삐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무렵 동아프리카에서 쏟아져 나오는 화석 두개골은 크기에 따라 두 가지로 분류됐습니다. 작은 화석은 진잔트로푸스(파란트로푸스)로 분류됐고, 큰 화석은 호모 하빌리스가 됐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두개골 화석은 조각난 파편으로 발견됐는데, 아무리 경험 많은 고인류학자라도 이 파편만으로 정확한 전체 크기를 알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을까요. 주먹구구식으로 추정해 ‘큼직해 보이면’ 호모 하빌리스로 분류했습니다.

이런 와중에 1970년대에 케냐 북부의 화석지 쿠비 포라에서 호모 하빌리스의 특징을 보여 주는 진정한 두개골이 발굴됐습니다. 발굴한 사람은 리처드 리키라는 젊은 고고학자였습니다. 이름에 ‘리키’가 들어간 것은 우연이었을까요. 아닙니다. 바로 루이스 리키와 매리 리키의 아들입니다. 리처드는 어려서부터 부모를 따라 발굴 현장을 다녔는데, 1970년대에는 이미 부모 못지 않은 열정과 자질로 세계적인 고생물학자가 돼 있었던 것입니다.

리처드 리키가 발견한 화석은 사람들이 예상했던 대로 두뇌 용량이 크고 위로 곧게 선 이마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람다운 머리와 얼굴이 화석으로 확인된 셈입니다. 호모 속의 조상이 되기에 손색이 없었죠. 이제 ‘호모 하빌리스’는 명실상부한 최초의 호모 속으로 인정 받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동아프리카에서는 이후에도 끊임없이 고인류 화석이 발견됐습니다. 이들은 크기나 모양 등 모호하고 혼란스러운 기준에 따라 계속해서 진잔트로푸스 또는 호모 하빌리스로 분류됐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어느 순간, 그 동안 모은 호모 하빌리스 화석을 죽 늘어놓고 보니 하나의 종이라고 부르기 힘들 만큼 모습이 각양각색이었던 것입니다. 호모 하빌리스는 여러 특성이 뒤죽박죽 섞인 ‘천의 얼굴’을 가진 인류였습니다.

이제 고인류학자들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동안 발굴한 호모 하빌리스 화석들을 같은 종의 다른 모습이라고 봐야 할까요, 아니면 아예 다른 종으로 분류해야 할까요. 하나의 종이라는 학자도 있었지만, 적어도 두 개의 다른 종이 들어가 있으니 한시라도 빨리 재분류해야 한다는 학자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화석 중 머리가 큰 개체를 따로 모아 ‘호모 루돌펜시스’라는 새로운 종으로 분류했습니다.

리처드 리키가 발견한 화석도 머리 크기로 따지면 호모 루돌펜시스로 다시 분류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 화석은 머리는 컸지만 코 아래 얼굴은 호모 하빌리스와 똑같이 생겼다는 점입니다. 이 말은 이 화석이 두 종의 특성과 또 다른 특성을 지닌 제3의 화석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또 다른 문제가 겹쳤습니다. 다른 어떤 화석을 봐도 이 화석과 같은 형태를 지닌 화석이 없었습니다. 즉 리처드가 발굴한 화석은 특이한 예외로 학자들의 머리를 갸우뚱하게 했습니다.




또 다른 초기 인류 발굴한 미브 리키와 손녀 루이즈
호모 하빌리스를 발굴한 리처드 리키는 1990년대 이후 환경보호와 정치에 뜻을 두고 발굴 현장에서 멀어졌습니다. 주로 코뿔소 보호 운동을 했는데, 그 와중에 헬기 추락 사고를 당해 두 다리를 잃었습니다. 그 뒤로는 현장에서 완전히 떠났지요. 하지만 리키 가족의 발굴이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2008~2009년, 쿠비 포라에서 또 다른 두개골 화석이 발견됐습니다. 화석은 코를 중심으로 한 얼굴 뼈와 아래턱 뼈 두 점이었습니다. 이게 바로 지난해 8월 네이처 표지에 실린 화석입니다. 네이처에는 연구 논문도 함께 실렸습니다. 논문의 요지는 간단합니다. 이번에 발표된 화석이 리처드 리키가 1970년대에 발견했던 화석과 아주 흡사하다는 내용입니다. 리처드의 화석은 더 이상 ‘외로운’ 화석이 아니었습니다. 새로운 종의 대표 화석이 됐죠. 이를 통해 200만 년 전의 초기 호모 속은 호모 하빌리스 혼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제, 40년에 걸친 논쟁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습니다. 연구 결과와 별개로, 이 발굴과 연구를 이끈 연구자의 이름에 다시 눈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미브 리키와 루이즈 리키. 각각 리처드 리키의 아내와 딸의 이름입니다. 대를 이은 이들의 연구가, 남편이자 아버지가 발굴한 화석의 운명을 다시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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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에디터 윤신영 | 글 이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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